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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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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워싱턴정국 1995년과 닮은꼴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1-03-12 (토) 08:01:23

1992년 선거에서 집권한 클린턴은 미국의 어떠한 비전을 제시했거나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하기엔 다소 부족했다. 55%의 투표율과 그 중 과반에도 못 미치는 43%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클린턴은 민주당의 눈높이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중도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범죄에 대한 강경책이나 국민 개개인의 능력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에 있어서는 분명히 전통적인 민주당의 입장과는 달랐다. 양당의 중간지대의 지지가 높았다. 더욱이 당시에는 민주당의 항시적 버팀목인 시민사회의 진보세력이 급격하게 퇴조하는 분위기였으며 보수 세력도 오랜 레이건혁명의 지루함으로 공화당으로부터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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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취임초의 클린턴은 국민지지율을 잠시 망각하고 역사의 흐름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자만했다. 과도하게 추진한 의료보험 정책이 공화당의 격렬한 저지(沮止)와 여론의 역풍을 맞아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 1994년 맞이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오랜 아성이던 하원에서마저 다수당의 지위를 빼앗겼다. 클린턴의 정치적인 운명이 절대절명(絶對絶命)의 위기에 봉착했다.

일부 성급한 전문가들은 ‘클린턴은 이미 끝났다’란 분석을 내 놓았다. 감정의 기폭이 심한 클린턴은 참모들 앞에서 연일 성깔만 부리고 버럭버럭 소리만 질러댔다. 여소야대를 맞이한 1995년 새해벽두 워싱턴의 분위기가 이랬다.


2009년 오바마의 집권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반감(反感)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전통적인 민주당 주류들로부터의 탈출과 동시에 부시 대통령의 8년 집권의 문제점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외면이 그 바탕이다. 조지 부시대통령은 8년이었지만 과거 공화당 12년 집권 이상의 후휴증을 유발했다. 미국 국민들은 1992년도의 클린턴에겐 중도주의 입장에 주목을 했지만 2009년 오바마에게서는 ‘변화와 비전’에 점수를 줬다.

후자의 지지율이 높았던 것은 오바마가 정치적인 리더쉽을 피하고 사회운동가로서의 방식을 취하면서 정치권 밖의 시민사회에서 정치세력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극우보수(꼴보수)층을 제외하고서는 어디에서든지 어필하는 방식이 그의 인기였다. 공화당의 반대와 저지가 클린턴 때보다 더 결사적이었지만 오바마는 의료보험개혁에 성공했다. 의원들을 설득해서 의회를 앞에 내세운 오바마의 방식은 성공했고 개혁의 명분만을 갖고서 대통령의 리더쉽에만 의존했던 클린턴은 실패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보수세력의 결집을 막지 못했다. 바로 공화당의 대중외곽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티 파티’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오바마는 ‘티 파티’에게 참패를 당했다. 클린턴은 아젠다가 분명치 못해서 패했고 오바마는 아젠다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에 졌다.

1994년 클린턴은 공화당의 깅리치에 졌지만 오바마는 공화당에게 진 것이 아니고 공화당의 모자를 쓴 시민사회 보수세력에게 졌다. 취임 후 2년 동안 이룩한 금융개혁, 의로보험개혁 에 대해서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것을 패인으로 인정하고 의회와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클린턴은 의회를 집단의 개념으로 상대했는데 오바마는 의원 개개인을 상대하면서 나섰다. 2011년 새해벽두 워싱턴의 정국이다.

1995년,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클린턴이 맞이한 첫 번째의 난관은 ‘1996회계년도 예산안’이었다. 2년전(1992년), 클린턴이 접수한 미국은 엄청난 빛더미에 올라앉은 형편이었다. 레이건 8년 동안 소위 우주전쟁과 아버지 부시대통령 때의 걸프전쟁에 쏟아 부은 돈으로 인해서 정부의 재정적자가 최악이었다. 공화당의 12년간 집권의 결과다.

 

▲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 www.wikipedia.com

자신들의 실정으로 최악의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민들에게 가장 민감하게 작용할 아젠다인 ‘재정적자’를 들고 나왔다. 상원과 하원 양쪽을 점령한 공화당은 풋내기 클린턴을 얼마나 빨리 워싱턴의 무대에서 쫒아 내는가에 목표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화당에게 대통령의 예산안이 씨가 먹힐 리 없었다.

공화당은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서 미국이 위기에 처했다고 행정부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수준의 예산안 감축을 주장했다. 공화당은 국가의 균형재정을 위해서 사회복지부문의 대폭적인 삭감을 주장했다. 공화당의 주장으론 시민권자에 한해서만 복지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주로 소수계 이민자 그룹의 3천만명의 비시민권자 수혜자들에게 복지혜택을 금지하자는 주장이다.

클린턴의 대응에 관심이 쏠렸다. 클린턴은 공화당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전략으로 ‘균형예산’을 대폭 받아 들였다. 여론조사결과 국민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클린턴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공화‧민주 구분없이 국민들의 여론이라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클린턴 정치다. 클린턴은 의회의 반응에 관여하지 않고 공화, 민주 양당을 무시한 채 직접 국민 앞에 나섰다. 국민이 원하는 사안인만큼 7년 내에 정부의 재정을 균형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공화당으로서는 클린턴이 자기들의 주장에 무릎을 꿇었다고 여겼지만 클린턴은 순식간에 국민과 직접 소통하면서 국정운영권을 틀어쥐었다. 클린턴은 균형 예산안을 내긴 했지만 의회에서 통과시킨 공화당의 예산안을 끝내 거부했다. 기한내에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폐쇄되는 사태가 초래되었다. 클린턴은 정부폐쇄의 책임을 공화당에 뒤집어 씌우는 데에 성공했다.

마침,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 사건, 코소보사태 등 대형사건은 국민들로 하여금 대통령에게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공화당 보다 더 우파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갖고 나옴으로써 민주당 좌파들에겐 분노를 샀지만 클린턴은 아랫도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재임에 성공했다.

2011년, 오바마를 공격하기 위한 공화당의 첫 번째 무기는 ‘2012년 회계년도예산안’이다. 2009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사상 최악의 재정적자 정부를 물려받았다. 조지 부시의 8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을 거덜내고 말았다. 빛 더미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뉴욕 월스트릿이 부도가 났다. 서민들의 노후대책(老後對策)으로 모아놓은 돈을 대형 투자은행들의 부도를 막아내느라 쏟아 부었다. 은퇴연령을 연장하고 사회복지 혜택의 연한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2년 동안 별수를 다 썼지만 오바마정부는 실업률을 줄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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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빼앗은 공화당은 공격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국가 예산을 과감하게 줄일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오바마도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여 나가기 위해서 예산을 감축했지만 공화당은 의료보험개혁을 되돌려 놓고서 사회복지 예산을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구분하자는 주장이다. 이것은 예산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고 오바마의 이민개혁과 이민정책에 대한 반대다.

지난 2월14일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2012회계년도 예산안’의 여.야 쟁점은 진보진영의 예산삭감(사회복지예산)과 예산 삭감의 범위이다. ‘존 뵈너’ 하원의장은 메디케이드, 메디케어, 소셜시큐리티 등의 비용을 줄일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저소득층 학자금 지원(Pell Grant)예산과 난방비 보조, 환경보호예산을 없애라고 반발하고 있다.

클린턴은 재집권 전략으로 당파적인 싸움을 벌였지만 오바마는 논점에 대해서 진정으로 진지하다. 공화당은 정치적인 입장의 주장일 뿐이지만 대통령은 균형재정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현실적이다. 사회복지 예산을 줄일 방법은 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고 수혜자(受惠者)를 줄이는 일이다.

빈곤층의 치료받을 권리를 완전하게 보장하는 거대예산이 들어가는 메디케이드 수혜자를 줄이는 방법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를 구분하는 일이다. 이렇게 시민과 비시민을 구분하면 3천5백만명의 수혜자를 줄인다는 계산이다. 벌써부터 연방의회의 각종 청문회에 이러한 내용이 등장하고 있으며 예산관련해서 이것이 워싱턴의 컨센서가 되고 있다. 200만명 이상의 한인사회에도 시민권 취득의 열풍이 서서히 일어날 태세다. <클린턴 중반때인 1995년, 96년 한인사회에 시민권취득 바람이 생각난다.>

1995년도의 예산안싸움에서 처절하게 쓴 맛(클린턴에게 뒷 통수를 맞은 경험)을 본 공화당이 다시는 그런 전철(前轍)을 밟지 않겠다고 하면서 오바마의 예산안을 갖고서 전쟁을 선언했다. 공화당의 맞불 예산안엔 공화당의 아젠다가 모두 들어 있다. 감세를 확대 연장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정부를 작게 만들고 시민의 권리를 축소시키며 서민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없애고 이민자 그룹을 축소시키는 일이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정부가 대도시 극빈자에게 제공하던 혜택을 갑자기 줄인 결과가 1992년도 LA의 폭동이었다. 공화당과 충돌하는 오바마의 예산안에서 4.29폭동의 악몽이 살아나고 있다. 시민권자에게만 혜택을 주자는 주장이 워싱턴의 ‘Common Ground’ 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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