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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범의 ‘We are America
90년대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에 도미,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있다. 그동안 여타 이민자들처럼 자영업, 회사생활 등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한편 94년부터 커뮤니티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 활동가의 시각으로 본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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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쌩얼’(上) 이민자의 나라? 차별자의 나라?

글쓴이 : 차주범 날짜 : 2012-07-14 (토) 12:27:52

2012년 상반기 마지막 주는 두루 뜨거웠다. 막 시작된 한여름 폭염(暴炎)은 몸을 힘들게 했다. 그리고 두 가지의 연방 대법원 판결은 머리를 달구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열기에 휩싸인 6월의 마지막 주였다.

지난 6월 26일과 28일에 연방 대법원은 주목을 끌던 사안에 각각 판결을 내렸다. 전자는 애리조나 반이민법(S.B. 1070)이고 후자는 건보개혁법 판결이다. 이 판결들은 오늘의 미국을 정확히 가리킨다. 다시 말해 미국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S.B.1070은 2010년에 애리조나주에서 통과된 주법이다. 만고에 쓸데없는 반이민법이다. 지역경찰의 이민단속을 용인하고 서류미비 이민자를 복날에 개잡듯 족치자는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지역경찰의 이민단속 조항이 쟁점이다. S.B.1070의 조항에 따르면 서류미비자로 “의심되는” 사람은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하고 연행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애리조나 경찰들은 척보면 사람의 마음까지도 보인다는 궁예의 ‘관심법(關心法)’을 전수받은 도사들이 아니다. 겉모습만 보고 서류미비자를 색출해 낼 순 없다. 이는 결국 유색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단속을 유발한다. 애리조나 경찰들이 백인에게 이민신분을 물을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리조나 반이민법은 통과되자마자 도전에 직면했다. 분노한 이민자들의 전국적 반발을 불러왔다. 당시 이민자, 인권단체들은 동시다발로 시위를 벌여 애리조나 반이민법을 비난했다. 심지어는 2011년에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개최된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 보이콧 운동까지 벌였었다.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팀이 워싱턴 디시에서 경기할 때 등장한 SB-1070 반대 배너

한편 NBA 피닉스 선수 선수들은 S.B.1070을 반대하는 문구를 유니폼 상의에 새기고 경기에 출장하기도 했다. 최근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와 계약해 피닉스를 떠난 NBA 최고의 포인트 가드 스티브 내쉬는 “내가 뛰고 있는 홈팀의 지역에서 이런 법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이 창피하다”며 ‘개념발언’을 했다.

S.B.1070의 통과에 당황한 오바마 행정부는 곧바로 연방 법무부를 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부무는 연방정부의 고유권한인 이민법 관련 행정조치를 주정부가 집행해선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주법 조항의 핵심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행정집행 상의 법리를 따지는 소극적 접근이다.

그럼에도 당시 심리를 담당한 샌프란시스코 연방 순회지법은 1, 2심에서 연방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이에 불복한 잰 브르워 애리조나 주지사는 곧바로 연방 대법원에 항소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방 대법원 판결이 공표되었다.

연방 대법원은 쟁점이 되었던 조항들에서 세 가지는 위헌판결을 한가지는 합헌판결을 내렸다. 위헌판결이 내려진 조항은 이민신분을 증명하는 서류의 미지참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조항(Section 3), 서류미비자가 직업을 구하거나 일을 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Setion 5-C)과 법원영장없이 서류미비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무차별 연행하도록 허용한 조항(Section 6)이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이 조항들에 헌법불일치 판정을 내린 셈이다.

문제는 합헌 판결을 받은 조항(Section 2-B)이다.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의 검문을 당한 사람이 서류미비자로 의심되면 영장없이 연행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그러니까 길가던 생사람을 잡아 영장없이 연행하는 행위(Section 6)는 위법이지만 일단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대상(Section 2-B)으로는 이민단속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연방 대법원이 합헌판결을 한 조항을 개연성있는 실제 상황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교통법규 위반을 저질러 애리조나 경찰에게 적발되었을 때 그 사람이 서류미비자로 의심되면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아무런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만단속은 불허하지만 일단 어떤 이유로든 경찰로부터 정지를 당한 사람의 이민신분은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연방 대법원의 상반된 판결은 엎어치나 메치나다. 위헌판결을 내린 조항과 합헌판결을 내린 조항이 절차만 조금 다르지 본질은 똑같은 인종차별적 단속(Racial Profiling)을 용인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아무리 사건 연루자를 대상으로만 단속을 제한한다고 하지만 같은 교통법규 위반을 저질러도 경찰이 백인에게 이민신분을 뭍을 일은 거의 없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僞善(위선)의 법리해석이다. 또한 야바위의 행태와도 닮았다. 마치 인권을 고려하는 듯이 하면서 실제로는 지역경찰의 이민단속을 슬쩍 허용했다. 원숭이의 식량배급 확대 투쟁에서 유래된 ‘조삼모사(朝三暮四)’ 를 떠올리게도 한다.

 

S.B. 1070의 일부조항 합헌판결은 거대한 파장을 예고한다. 법조항의 내용도 문제지만 이면에 자리잡은 사고방식이 진짜 거지같다. 모든 이민자를 단속대상으로 설정하고 잠재 추방자로 취급하는 태도가 그 안에 깔려있다. 미국사회 전반에 이민자에 대한 악감정을 증폭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위험도 있다.

S.B 1070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애리조나주의 주법에 국한된 사안만이 아닌 현실에 연유한다. 이미 유타, 앨라배바를 비롯한 6개 주에서 유사 애리조나 반이민법이 통과됐다. 현재 연방정부는 이 주법들을 상대로도 법률소송을 걸어논 상태다. 뿐만아니라 텍사스, 캘리포니아를 위시로 한 20개 주에서도 유사법안을 상정했었다.

미국을 지칭할 때 흔히 “이민자의 나라”로 표현한다. 대통령 후보들이나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주둥이를 모아 이민자의 공적을 칭송한다. 그렇지만 이민의 역사는 아울러 지독한 이민자 차별의 역사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1882년에 제정된 미국 최초의 종합 이민법이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 of 1882)’이겠는가.

S.B. 1070의 출현과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아직도 이민자가 완전한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것이 21세기가 개막하고 12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목도(目睹)하는 미국의 ‘쌩얼’이다.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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