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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에 도미,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있다. 그동안 여타 이민자들처럼 자영업, 회사생활 등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한편 94년부터 커뮤니티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 활동가의 시각으로 본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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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쌩얼’(下) 오바마케어의 빛과 그늘

글쓴이 : 차주범 날짜 : 2012-07-14 (토) 13:15:24

애리조나 반이민법 판결이 공표되고 이틀뒤 연방 대법원은 또 하나의 작품을 선보였다. 건보개혁법 판결이 그것이다. 사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 판결에 이목을 집중했다. 오바마 집권 1기의 최대 야심작인 이른바 ‘오바마 케어’가 휴지통으로 들어갈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했었다.

결론은 알려진대로 ‘오바마 대장 구하기’로 결판났다. 연방 대법원은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의료보험 의무가입 조항에 합헌판결을 내렸다. 의료보험 미가입자에 부과되는 벌금을 세금으로 해석해 타당성을 인정했다. 다만 연방정부가 건보개혁법에 의거해 주정부에 지원하는 메이케이드 프로그램 확대를 위한 지원금을 주정부가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회수할 수 있다는 조항엔 위헌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오바마는 일단 룰루랄라를 외치며 건보개혁법을 시행하게 되었다. 허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건보개혁법 합헌판결은 정책추진의 법적 정당성을 공인한데 불과하다.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공화당측은 롬니가 백악관을 접수하면 건보개혁안 폐기를 업무 첫날에 추진하겠다고 지랄하고 있다. 반대파의 정치공세는 오바마가 직면할 작은 도전이다. 더 큰 도전은 건보개혁의 성공여부 그 자체다.

 

오바마 케어가 제대로 된 개혁정책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금 미국의 의료체계는 말기 중병환자의 몰골로 신음하는 실정이다. 우선 무보험자가 5,000만 명에 육박한다. 인구의 1/6이 심각한 질병에 걸리면 빚을 내서 병원비를 감당하거나 아니면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여기엔 한인들도 한 몫 한다. 미주 한인은 의료보험 미가입율이 35%에 달해 아시안 중 최고치를 기록한다. 이민와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 자식들 교육시키고 근근히 먹고살만 하니까 병에 걸려 살림이 거덜나거나 황망하게 급사하는 주변인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 보조제도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도 상태가 불량하다. ‘고비용 저효율’로 대표되는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시스템은 어디서부터 개혁해야 할 지 난망한 상황이다.

연방정부는 1년 예산의 ¼에 육박하는 23% 정도의 막대한 예산을 이 두 프로그램 유지에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수혜자들은 부족한 의료 서비스에 늘 신음하고 있다. 이 와중에 메디케이드 사기까지 저지르는 의사와 병원들도 혼란을 부추킨다. 대형 메디케이드 사기사건으로 구속되고 벌금을 부과받은 일부 한인 의사들의 소식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건보개혁법이 추진 당시 난관에 부딪혔던 가장 큰 이유는 이해 당사자들의 극렬한 반대다. 의료서비스를 일찍이 국가가 통제하는 복지분야로 통합시키지 못한 결과 수많은 의료종사자들의 이해가 난마(亂麻)처럼 얽혀버렸다. 보험과 병원진료를 포함한 민간 의료산업이 지나치게 거대하게 성장한데서 비롯된 어두운 측면이다.

 

이런 현실에서 오바마 케어가 진정 치료제의 역할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바마 케어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지칭이다. 성공하면 오바마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의 반열에 오른다. 실패하면 온갖 비난은 기본이고 국민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의료개혁에 심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오바마의 정치적 성공을 염려할 이유는 없으나 의료개혁의 실패는 애석한 일이다.

건보개혁법이 합헌 판결을 받은데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역할이 컸다. 연방 대법원 대법관은 레이건이 지명한 2명, 아버지 부시 1명, 아들 부시 2명, 클린턴 2명과 오바마 2명, 이렇게 총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수, 중도보수, 진보의 비율이 4대 1대 4로 보수가 약간 우세한 성향을 보인다.

이러니 대다수 관측은 위헌판결로 모아졌지만 아들 부시가 지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성향의 대법관들에 가세해 5대 4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오바마가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시절 임명을 반대했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원수(?)를 사랑으로 구한 기막힌 반전이다. 덕분에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세력의 원흉(元兇)이 되었고 판결이 끝난 후 참석했던 어느 행사에서 “섬으로 휴가를 떠나야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연방 대법원 판결직후 오바마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하는 말들이 많았다. 이번 판결이 그의 대선행보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예측하고 있다. 연방 대법원 판결의 정치공학적 측면은 둘째치고 건보개혁법 판결을 둘러싼 논쟁은 매우 저질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구호다. 미국이 과연 이 말에 부합하는 복지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사회안전망을 구성하는 복지제도가 본격 도입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상당수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고생으로 점철된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교육과 의료 등 복지의 근간이 되는 영역들이 여전히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실이다.

건보개혁법을 반대한 진영에서는 소비자의 권리를 주요 논거로 내세웠다. 정부는 의료보험 ‘상품’ 선택에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는 볼멘 소리를 내질렀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합헌으로 귀결되자 그들은 이죽거렸다. “그러면 앞으로 정부는 생필품이나 야채 등을 구입할 때도 품목을 정해 통제할거냐?”며 짜증을 부렸다. 의료를 일반 상품과 똑같은 거래 품목으로 취급하는 그들의 ‘자유주의’적 사고가 귀엽다.

건보개혁법 연방 대법원 판결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 상식이 되지 못하는 이상한 복지국가인 미국의 자화상이다. 자유와 복지의 메이크 업으로 잔뜩 치장한 2류 복지국가 미국의 또 다른 쌩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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