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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에 도미,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있다. 그동안 여타 이민자들처럼 자영업, 회사생활 등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한편 94년부터 커뮤니티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 활동가의 시각으로 본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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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정치극 ‘뿌리깊은 나무’와 ‘노무현’

글쓴이 : 차주범 날짜 : 2011-12-27 (화) 10:39:12

과거에 비해 확실히 요즘 사극은 형식과 내용의 측면에서 다채로워졌다. 왕을 둘러싼 궁중 여인들의 암투를 주로 묘사했던 고전 사극은 ‘왕의 여자’를 정점으로 생명력을 점점 잃어버린 듯 보인다. 사극의 주요 소비층이 아줌마 부대에서 아저씨들과 젊은이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고전 사극들을 보면 역사가 오로지 왕의 총애(寵愛)를 놓고 다투는 여인네들의 극렬한 싸움판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거의 괴담에 가까운 기록보단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궁궐 스캔들을 역사의 중심인양 과도하게 인용한 사례가 되겠다. 이제 표독스러운 지랄발광이 트레이드 마크인 장희빈은 더 이상 사극의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어요, 희빈 장씨.

몇 년 전부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장르는 이른바 대하사극(大河史劇)이다. 이런 종류의 사극은 영웅을 등장시켜 한민족의 장대한 역사를 그리겠다는 웅장한 포부로 제작된다. 주인공은 대부분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았던 인간들이다. 가깝게는 18세기의 정종 이산부터 멀리는 기원전 시대의 동명성왕 고주몽까지 고대부터 중세를 아우르는 영웅담이다.

대하사극을 몇 편 시청하며 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선은 초반부에 제법 시선을 끌던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며 하품나게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사료(史料)를 무한 상상력으로 떼운 나머지 얼토당토 않는 막가파식 내용전개도 일반적인 특징이다. 대하사극의 영웅들은 땅위의 인간이 아니라 하늘의 간택을 받은 신에 가깝게 놀라운 능력자로 묘사된다.

방송국 입장에서도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투자를 벌충하는 이윤을 창출하려면 이야기가 말이 되든 안되는 상관없이 최대한 방영횟수를 질질끌며 광고와 부가 수익을 올려야 하니 말이다. 이 경우는 형식이 내용을 파괴한 사례가 되겠다.

사극의 단골 주역인 왕을 배제하거나 극중 역할을 축소하고 의원, 상인, 무사 등 전문직 백성을 전면에 내세운 사극들도 있다. 이런 종류의 사극은 대체로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뛰어난 영상미와 박진감있는 이야기를 조합한 사극의 신종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보다 진일보한 사극이긴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그것은 도무지 사극일 이유가 없는 작품이 많다는 사실이다. 등장 인물의 행동이나 말투, 이야기 전개가 현대극과 전혀 다른 점이 없다. 시대배경은 그저 그림 만들기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똥폼만 우라지게 잡을 뿐 사극에게 요구되는 고증(考證)을 통한 시대 묘사나 역사의식이 심히 부족한 사례가 되겠다.

반면에 몇 년전부터 사극의 정수(精髓)를 제대로 표현한 작품들이 가끔식 나오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조선시대 정종이 시대배경인 ‘한성별곡, 정’과 ‘정조암살 미스테리 8일’이 시작이었다. 이 두 작품엔 정조연간을 살았던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관철(貫徹)시키기 위해 극중에서 처절하게 투쟁한다. 이를 통해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당시 역사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갖도록 유도한다.

몇 년 전에 방영됐던 ‘대왕 세종’도 끝내주는 드라마다. 이 작품은 사극이 본격 정치극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사례다. ‘대왕 세종’은 사극이 다루는 정치담론(政治談論)을 웬만한 현대극보다 더 뛰어난 내용성을 가진 형태로 표현했다. 특히 제대로 각 잡힌 중견 배우들이 와장창 등장해 화면속 모습이 마치 당시의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가 직접 목격하는 장면으로 느껴질 정도로 무섭게 연기했다.

  

이하 사진 sbs.co.kr

그리고 2011년 최고 사극 ‘뿌리깊은 나무’가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팩트와 픽션을 합친 말인 팩션 사극의 유형이다. 이런 장르는 픽션이 팩트를 말아먹지 않는 범위에서 설득력있는 이야기 전개가 관건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이 과제를 제법 훌륭히 수행했다. 각본을 집필한 작가가 정말 생각 많이한 증거가 한 회에도 몇 번씩 드러난다.

형식의 측면에서 뿌리깊은 나무가 여타 사극에 비해 특출나다고 말하긴 어렵다. 영상이나 음악, 편집 등은 요즘 평균적인 드라마의 수준 정도다. 특히 내러티브 구성에 있어 플레쉬 백과 교차편집을 한 회에도 몇 번씩 반복 구사한 점은 다소 거슬린다. 플레쉬 백과 교차편집은 색깔로 치면 보라색, 양념으로 비유하면 참기름과 같아 적당히 쓰면 좋지만 너무 많이 사용하면 느끼하다.

플레쉬 백은 훌륭한 발명품이자 양날의 검이다. 시간대 순으로 단순하게 진행하는 고전적인 이야기 전개의 관습을 극복하고 박진감있는 내러티브 구성을 가능케 하는 유력한 장치다. 반면에 너무 자주 사용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관객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플레쉬 백을 동원해 사실은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설명방식이 반복되면 관객의 입장에선 지금 보고있는 장면이 혹시 커다란 음모(陰謀) 또는 복선(伏線)이 아닐까 하며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교차편집 역시 너무 자주 사용하면 드라마에서 느끼는 질감을 협소하게 만든다. 마치 쪽집게 강사가 요점정리를 하듯이 이야기의 갈등구조를 너무 뚜렷하게 보여줌으로서 오히려 관객의 생각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는 역효과를 불러 오기도 한다. 플레쉬 백과 교차편집은 그간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엄청나게 우려먹은 기법이기도 하다. 스릴러 양식을 일부 채용한 뿌리깊은 나무로선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된다.

내용의 측면에서 뿌리깊은 나무는 강렬한 정치극이다. 극중 모티브인 한글창제는 이야기의 연결고리다. 더 중요한 주제의식은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를 놓고 다투는 등장인물에게서 보여진다. 뿌리깊은 나무에는 조선을 구성하는 3대 세력의 대표선수가 등장한다. 왕권을 상징하는 이도(세종), 사대부의 정신적 지주 가리온(정기준), 그리고 백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똘복이(강채윤)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작가의 고민과 성찰이 응축(凝縮)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은 두 번 등장한다. 두번 다 맞짱토론의 형식이다. 첫 번째 토론은 "한글이 백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똘복이와 이도가 벌이는 공방전이다. 이도는 백성이 한글을 알면 의사표현이 용이하고 권익을 증진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이에 대해 똘복이는 백성은 언제나 억눌리고 짓밟히는 존재일 뿐 글자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진 않는다고 항변한다.

    

두 번째 중요한 토론은 드디어 정체를 드러난 밀본의 본원 정기준과 임금 이도의 치열한 논리대결이다. 여기서는 "이상적인 국가체계와 한글반포의 여파"를 주제로 끝장토론이 전개된다. 정기준은 사대부가 주도하는 책임정치 만이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유일한 체계임을 주장한다. 한글의 유포는 지옥문에 들어서는 행위로 모든 이들이 잘났다고 떠드는 혼란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도는 사대부들 역시 무책임한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언로(言路)가 확대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맞받아친다.

한글은 빛나는 우리문화 유산 목록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위대한 발명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작가는 여기서 더 나가 한글을 단순히 문화유산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변혁의 중요한 도구로 확대 해석한다. 정기준이 밀본의 본원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한글반포를 막으려고 했던 이유가 한글이 조선의 근간(根幹)을 뿌리부터 흔들 불순한 물건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묘사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보여지는 주제의식은 사실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에 기반한다. 과연 한글이 반포되었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극중에서처럼 치열한 고민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픽션을 배제하고 팩트을 추적하면 답이 나온다. 역사가 가리키는 바로는 세종의 한글반포는 드라마와는 달리 일부 반대의견을 제외하곤 별다른 큰 저항없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글반포가 이루어진 시기는 15세기 조선이다.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한 봉건적 왕정국가인 조선이 개국한 지 불과 수 십년이 지났던 시기다. 그 시대를 살았던 왕족과 사대부를 망라한 지배계급과 백성들이 한글을 사회변혁의 중요한 동인(動因)으로 여겼다고 보기에는 정황상 무리가 있다.

세종 역시 한글반포를 통해 지식체계와 국민 언어생활의 근본적 변화를 꾀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미 그 자신이 유학에 정통한 지식인이자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왕인 최고 통치자로서 한글 대중화가 지식 대중화와 권력분점의 상황을 유발하리라고 예측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세종이 그것까지 생각하고 한글을 만들었다면 그는 일개 국왕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신에 가까운 예지자(豫知者)다.

만약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정말로 한글이 극중에서 묘사된 정도의 정치사회적 폭발력을 가졌다고 믿었다면 어쩌면 세종 자신부터 한글반포를 포기했을지 모른다. 물론 사대부들도 길길이 날뛰며 목숨걸고 반대했을 것이며 백성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세종은 다만 자애로운 성군(聖君)으로 백성이 불쌍했을 뿐이다. 그래서 백성의 삶에 약간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글자를 발명했다. 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한글창제의 이유가 정확히 나와있다. 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했던 서문은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백성이 하도 불쌍해서 내가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사용하길 바란다."는게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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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증명하는 바 한글이 명실공히 국민글자로 인정받는데는 세종 사후에도 근 5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글은 처음부터 지식인 그룹에서 철저히 외면했다. 고작해야 정식 교육을 받지않은 양반 여인들과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던 언문(諺文)에 불과했다. 지식이 곧 권력인 시대에 한글은 아직 유력한 글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대부들이 세종의 한글창제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수긍이 간다.

현대사회에 넘어와서도 한글은 천대받았다. 신문을 예로 들면 불과 십수년 전까지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채 제작됐다.

지금 모든 신문이 한글전용의 양식을 채택한 이유는 지식의 대중화와는 별 연관이 없다. 다만 한자교육이 제대로 되지않아 한글전용을 하지 않으면 신문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뿌리깊은 나무에서 표현된 한글을 둘러싼 극중 인물들의 쟁투는 상당히 과장된 이야기 전개다. 현대적 관점으로 분석한 한글창제의 의미를 15세기가 배경인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의 입으로 표현한데서 비롯된 씩씩한 내용전개다.

뿌리깊은 나무는 오늘의 관점으로 바라본 한글창제의 영향과 대칭하는 국가 정치체계에 대한 고민도 볼 만하게 그려져 있다. 시청자로서 나는 사실 한글에 관한 내용보다는 그 부분의 이야기 전개가 더 흥미로웠다. 이도가 추구하는 왕도정치와 정기준이 주장하는 사대부 중심의 정치가 모두 제 나름의 설득력으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조선을 실제로 건국한 이는 삼봉 정도전이라는 사실엔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던 군부의 수장(首長)이었다. 이성계를 얼굴 마담으로 내세운 정도전은 조선 건국후 국가를 떠 받치는 모든 구성요소를 직접 디자인했다. 법전부터 정치직제 심지어는 경복궁 설계도 그가 담당했다.

정도전은 극중에서 재상총재제로 일컬어지는 사대부가 중심인 정치를 꿈꾼 인물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그는 태종 이방원에게 무참히 살해되면서 제거된다. 뿌리깊은 나무가 만든 가상인물인 정도전의 조카 정기준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종 이도와의 마지막 정치토론을 끝으로 운명한다.

그로서 정도전과 그의 이상은 한 풀 꺾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계산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진정한 승부는 역사가 증명한다. 정도전은 현실정치의 패배자일 따름이다. 이방원과의 권력투쟁에선 비록 패퇴했지만 역사의 승리자로서 그의 존재는 길이길이 살아남는다.

조선은 명실공히 사대부(士大夫)의 나라였다. 이씨 왕조가 면면히 이어진 왕정국가이긴 했지만 실제 국가경영은 사대부가 전담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왕들은 사대부의 정치적 대리인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한 명목상의 최고 통치자였다.

봉건국가 조선에서 권력을 유지하려면 두 가지가 필수요소다. 지식과 물리력이다. 성리학(性理學)을 이념체계로 한 조선에서 사대부들은 최고의 지식 엘리트였으며 또한 군권까지 틀어쥔 최대 정치세력이었다. 이들은 왕에게도 성리학의 도의를 강요하며 소위 성군이 되라고 다그쳤으며 심지어는 쿠데타를 일으켜 현직 왕(연산군과 광해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까지 했다.

조선의 27명 왕들 중에서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자기 뜻대로 정사(政事)를 펼친 임금은 몇 손가락에 꼽힌다. 그 중 대표적인 임금이 이산 정조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당시 국정을 장악하던 노론세력과 합의와 대결을 반복하며 자신의 구상대로 국정을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

정조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지식과 물리력을 공히 갖추었기 때문이다. 주상(主上)의 자리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조는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한다. 규장각은 세종의 집현전(集賢殿)과도 같이 정조의 학문기지다. 정조 역시 세종처럼 대단한 지식인으로 신하들의 스승을 자임할 정도로 학문적 자신감에 충만했다. 또한 노론이 장악하고 있던 최고 군부인 훈련도감(訓練都監)에 맞서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설치해 물리력도 확보한다.

정조는 18세기에 이르러 정치, 문화가 완전히 꽃을 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능력있는 임금이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당대에 그친다. 정조 사후 세력을 회복한 사대부들은 먼저 장용영을 와해(瓦解)시켰으며 이후 흥선대원군이 출현하기 전까지 안동 김씨가 주도하는 세도정치 시대가 이어진다.

고전사극에서 자주 등장하던 왕의 권능을 상징하는 "사약(賜藥)을 내리거라!"도 알고보면 사대부들간의 권력투쟁인 붕당정치(朋黨政治)의 산물이다. 조선초기에는 훈구 대신들이 중기부터는 사림파 사대부들이 조선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결국 정도전의 이상은 조선 역사 오백년에서 일부 시기를 제외하곤 면면히 관철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마지막 회에 또 다른 반전인 한명회를 등장시켜 이런 분석의 여지(餘地)를 남긴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과 정치체계를 둘러싼 15세기 인물간의 쟁투지만 실재 주제의식은 21세기인 오늘을 가리키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가 상징하는 오늘의 정치현실에 대한 성찰(省察)은 자명하다. 전작 선덕여왕에서도 그렇고 작가는 이상적인 최고 통치차를 몹시 갈망하는 사람인듯 하다. 두 작품에서 그려진 최고 통치자의 이상형은 권위의식이 없고 국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며 지배 엘리트에 맞서는 현실정치 감각도 탁월한 인물이다.

이 지점에서 중첩(重疊)되는 인물이 환영(幻影)으로 등장한다. 노무현(盧武鉉)씨 되겠다. 노무현은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신화의 위엄을 획득한 유형에 속한다. 그가 실재로 주도한 통치행위의 실체는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에서 공히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노무현씨를 추앙했고 추억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일종의 팬덤현상과도 같다. 이전 권력자들과 비견(比肩)되는 탈 권위적이었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던 인간 노무현을 몹시 그리워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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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아무리 연예인과 닮은 존재라지만 이미지가 모든 걸 대체(代替)할 순 없다. 지금 이명박정권에 몸서리를 치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은 실제로 노무현 정권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망각(忘却)한다. 노무현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사는 세상이 실제 정책으로 제대로 실현되었는지의 여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현실은 너무 팍팍하고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때에 뿌리깊은 나무는 사람들을 다독이며 이상적인 최고 통치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뿌리깊은 나무는 강렬한 정치극이자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위무(慰撫)하는 치료제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비록 뿌리깊은 나무가 지향하는 정치의식엔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드라마 자체로는 명품이다. 역사적 팩트에 개연성있는 픽션을 가미해 생각의 결을 풍부하게 엮은 이야기를 직조(織造)한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3류 판타지 만화나 다름없는 같잖은 드라마들이 판치는 요즘 뿌리깊은 나무는 2011년도 최고 역작이다. 불꽃튀는 액션장면보다 등장 인물들의 대사에서 더 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힘을 보여준다는건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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