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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에 도미,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있다. 그동안 여타 이민자들처럼 자영업, 회사생활 등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한편 94년부터 커뮤니티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 활동가의 시각으로 본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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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남긴 잡스러운 풍경

글쓴이 : 차주범 날짜 : 2011-12-16 (금) 15: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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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죽음이 엄청난 주목을 끌고 끊임없이 연관 뉴스를 쏟아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위인전에 등장할만한 정도의 정치가나 사상가 등이 사망했을 때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한 명의 엔터테이너를 넘어 신비의 존재로 군림했던 마이클 잭슨이 급사(急死)했을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이후 신화가 되었다. 생전에는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한 명의 수완좋은 사업가였다.

 

그가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등지자마자 그의 영정(影幀)앞에 온갖 찬사와 헌사가 바쳐졌다. 요약하자면 뛰어난 상상력과 추진력으로 기술혁명을 이끌었으며 그가 주도한 혁명이 인간의 삶을 엄청나게 혁신시켰다는게 골자(骨子).

 

 

www.en.wikipedia.org


 

스티브 잡스 열풍 현상의 팔할은 언론의 힘이다. 스티브 잡스를 소재로 쓴물 단물 다 빼먹고 더 이상 뉴스거리가 없는 이제야 좀 잠잠한 분위기다. 앞으로 그는 언론계에 한번만 더 출연하고 편안하게 영면(永眠)하면 된다. 연말만 되면 언론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쏟아내는 ‘2011 10대 뉴스’류의 기사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다시금 상기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 5일 그가 지병으로 끝내 사망하고 그 소식이 미디어를 도배했을 때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평소에 그를 존경은 커녕, 심드렁하게 대한 나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매니어’들에겐 거의 신격화된 존재지만 그가 이룩했다는 업적을 화투판의 흑싸리 껍데기 정도로 보는 편인 나에겐 그는 그냥 사업가다.

 

더구나 그의 생전 모습은 능력있는 사업가였는지는 몰라도 인간적인 면모는 미국말로 ‘똥구멍(Asshole)’ 수준임을 짐작하게 한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경쟁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막 대하며 광분하던 에피소드로 그의 인생은 점철(點綴)되어 있다.

 

이를 두고 능력있는 그를 추앙하는 측에서는 괴퍅하다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해 두둔한다. 요즘은 착하지만 가난한 사람보다 싸가지없어도 부자인 사람이 우대받는다.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능력은 인격의 상전(上典)이다.

 

내가 워낙 산업기술 분야에 과문한 탓에 스티브 잡스를 우습게 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따지자면 공자급의 성인이 아닌 이상 범인(凡人)에게 몇 가지 인간적 결함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인간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의 혁명적(?) 성과에 대해서도 한 번 얘기해 보자.

 

나는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기술적 측면에서 폄하(貶下)하진 않는다. 그가 개발한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기술자들을 닥달해 개발을 주도한 제품의 놀라운 기능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스티브 잡스가 남긴 제품이 혁명적 사회변화를 이끌었고 인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는다. 그러니까 그의 성과를 기술분야의 시각이 아닌 사람사는 원리에 기대어 분석하는데 이 글의 방점(傍點)이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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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제품은 잘빠졌다. 섹시한 모던걸의 자태를 닮았다. 회사이름처럼 달콤한 사과의 향기를 피우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심플한 디자인과 단순한 작동방식을 바탕으로 엄청난 기능을 구현(具現)시킨 놀라운 제품이다. 너도나도 갖지못해 안달하는 아이폰을 위시로 한 애플의 제품들은 21세기 기술개발 전선의 전위에 서 있다. 그러나 바로 거기까지가 애플 제품에게 부여된 평가의 최고점이다. 누가 무슨 사발을 풀어도 내 생각엔 변함없다. 왜 그런가?

 

나는 믿는다. 인간 삶을 작동시키는 기본원리는 접속(接續)이 아니라 접촉(接觸)이다. 인간의 숨결이 담긴 접촉이야말로 모든 사유와 행동을 발생시키는 기본 단위다. 기계에 의지하는 접속은 다만 접촉을 용이하게 하는 도구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애플의 제품이 접속기능을 무진장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혁혁한 공적은 인정한다.

 

시간을 단축시키고 공간을 초월한 접속기능을 담은 기기들은 21세기판 요술램프다. 알라딘은 손바닥 전체를 문질러 요술램프를 작동시켜야 했지만 21세기 알라딘은 손가락 하나만으로 능히 그 일을 해낸다.

 

방정맞은 주둥아리들은 여기서 더나가 접속기능을 중심으로한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사회변화를 추동했다고 나발을 불어댄다. 애플의 제품이 구축한 신세계는 근래에 최고 화두로 언급되는 소셜 네트워크(SNS). SNS세계를 구축하는 양대 요소인 소프트 웨어와 하드 웨어를 양산하는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과장과 허세로 포장한다. 마치 자신들이 세계의 변화를 가장 앞장서서 주도하는 선각자인양 행세한다. SNS가 사람들을 더욱 공고히 묶어내고 행동의 촉매제로 작용한다고 떠벌린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SNS의 가장 큰 미덕으로 칭송받는 접속을 통한 광범위한 인간관계의 구축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인간들 사이의 단절(斷切)을 낳았다. 실재 현실에선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도 변변히 없는 주제에 얼굴책(Facebook) 친구만 열심히 늘리는 작금의 꼬라지가 우습다. 다음에 제시한 풍경들은 요즘 일상생활에서 내가 빈번히 직면하는 모습들이다. 어쩌면 당신도 나와 비슷한 경우를 자주 경험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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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 동료들과 회식을 한다. 회식은 직장생활의 꽃이다. 바쁜 업무의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측면에 대해 얘기하고 인간관계의 정도 나눈다. 회식자리에서 마저 직급을 내세우며 주접을 떨어 밥맛 떨어지게 하는 꼰대들만 없으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회식은 예전만큼 훈훈한 맛이 많이 사라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일제히 스마트 폰이나 아이 패드를 꺼내 대가리를 처박고 검색질이나 심지어는 게임을 하는 인간들의 우라질스러운 행태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뇌인다. “으그, 이 잡스러운 인간들아..

 

풍경 2: 동료들과 회의를 한다. 회의는 주거니 받거니가 핵심이다.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듣고 나의 의견을 합쳐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회의석상에서 끊임없이 스마트 폰에 몰아일체(沒我一體)의 경지로 해골을 들이대는 인간들이다. 그래놓고 회의 말미에 봉창 후려패는 소리를 하곤 한다. 회의를 할 때마다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남의 얘기는 건성으로 듣는 인간들이 꼭 있다. 너와 내가 함께 일하는 공동체의 안녕이 달린 중요한 의제로 열리는 회의에서 굳이 또 다른 ‘접속’을 감행해야 하는가.

 

자폐증(自閉症)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반복행동, 인지발달의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인다. 애플의 제품에 열광하며 옆구리에 끼고 사는 인간들의 상태는 거의 ‘집단자폐’에 가깝다. 접촉을 해야하는 인간관계 구축엔 관심없거나 귀찮아 하면서 액정화면으로 다른 사람의 얼굴책을 염탐하며 엄지 손가락(좋아요 사인)이나 클릭하는 찌질한 모습들이다.

 

접속은 실재 현실에서 공동체의 문제로 몸을 쓰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소통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기서 애플의 제품들은 아직 덜 자란 어른들의 비싼 장난감이다.

 

나는 아직 미혼에 다행히 자식도 없지만 만에 하나 일어날 불의의 사태를 대비해 자녀사육의 원칙을 하나 정해 놓았다. 내 새끼는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고 세상사는 원리를 어느 정도 깨우칠 때까진 절대로 컴퓨터를 못하게 할 방침이다. 그리고 스마트 폰 따위는 나중에 니가 벌어서 사라고 말해줄 참이다.

 

자연과 어울려 우주의 섭리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친구들과 놀이를 하며 인성을 쌓아야 할 어린이가 혼자 골방에 처박혀 빌 게이츠가 설정한 윈도우를 통해 세상을 대면하는 장면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혹시 내 자녀분께서 컴퓨터같은 허접한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아빠를 미워하겠다고 개지랄을 떨면 어차피 우리는 결국 남남이야 이 새끼야(년아)라고 귓가에 속삭여줄 계획이다.

 

SNS의 공적을 설명하려고 요새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등장하는 사례가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다. 폭풍 드리블로 중동지역을 휩쓴 시민혁명의 MVP로 많은 이들이 SNS를 꼽는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제발 왕새우 허리펴지는 소리 좀 작작하세요. SNS 덕분에 일부 중동국가가 오랜 독재체재를 종식시켰다는 분석은 웃기고 자빠진 헛소리다.

 

이렇게 얘기해 보자. 최근의 중동 민주화 바람 이전에도 역사속에서 혁명은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한국만 하더라도 가깝게는 87 6월항쟁부터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까지 혁명의 역사가 면면히 흘러내린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말기가 시대배경이다. 조선시대는 디지털 기기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던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왕정국가였다.

 

국제정세는 아랑곳 없이 다 쓰러져가는 명나라만 우러르며 개기던 인조에게 열받은 청태종은 대군을 보냈다. 당시 병자호란에서 용골대가 이끄는 청나라가 대동강을 건넜을 때 그 소식을 알린 장계(狀啓)는 청나라가 평양을 출발한지 사흘만에 겨우 궁궐에 도착했다. 인조는 청나라가 파주를 지나 도성의 턱밑까지 당도해서야 부랴부랴 애초의 목적지였던 강화도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도바리를 쳤다.

 

바로 이런 저품격 아날로그 시대에 홍경래는 난을 일으켜 5개월 동안 평안도 일대를 휩쓸었다. 그들 농민군들 손엔 스마트 폰이 아닌 창검만이 들려있을 뿐이었다.

 

갑오농민전쟁(동학혁명)은 또 어떤가. 서찰과 봉화만이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던 시절에 조선 최고의 폭력조직이었던 농민군은 죽창 하나로 정권의 안위까지 위협했다. 6월항쟁 때는 셀폰은 있지도 않았고 PC도 흔하지 않았으며 집집마다 전화 한 대가 고작이었다. “누구누구 좀 바꿔주세요.” 방식으로 소통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이한열 열사 시청앞 노제(路祭) 100만의 인파가 몰렸다.

 

이집트 시민혁명에 참가한 상당수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SNS를 쓸 줄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시위규모가 가장 컸던 날엔 이집트 정부가 인터넷을 차단했을 때였다. 서구 세계에선 중동 민주화운동에서 SNS의 공적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며 흥분했지만 정작 속사정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혁명은 예나 지금이나 분노를 참지못해 들고 일어난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SNS가 정말로 혁명을 불러올 수 있다면 소위 IT 강국이라는 한국은 지난 10년간 혁명이 일어나도 열 번은 일어났어야 한다. SNS가 꼭 필요한 순간이 있기는 하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인간들이 배우자에게 연락해 자식새끼가 학원에 잘 갔는지 확인할 때이다.

 

근래에 들어 언어의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실정이다. 어떤 대상이 가진 본래의 가치 이상으로 포장되는 사례가 흔하다. SNS가 그런 예에 속한다. SNS가 일정 정도 진보적 사회변혁에 기여하는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그만큼 그 반대의 위험성도 상존한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인터넷 통제기능을 활용해 시민들의 일상을 더욱 상세히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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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을 말하자. 그러면 도대체 스티브 잡스가 생산한 제품들과 그 제품들이 구축한 신세계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로 ‘상품’이다. 매우 허탈하고 단순한 결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품이란 이 두 글자에 참으로 많은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상품은 자본주의의 꽃이자 독이다. 인간의 삶을 혁신하는 재화(財貨)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생산자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의 애플을 위시로 한 디지털 전자제품 소비패턴은 공급이 소비를 창출한 경우다. 특별히 하이테크 소통체계가 필요없는 사람들까지도 수 백달러를 들여 제품을 구입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거기에 이들 제품들이 유의미하게 쓰여지는 통로를 구축하기 위한 체계로 SNS가 작동한다. SNS가 정말로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분한 요소인지는 깊이 생각해 볼 사안이다. 어떤 측면에선 인간관계를 왜곡하고 소통체계상의 역기능을 양산하기도 한다.

 

아무튼 만든자들은 무조건 팔아먹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갖가지 구라가 등장한다. 스마트 폰 없으면 마치 인생의 낙오자라도 되는양 사기치고 SNS가 세상을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유력한 도구라고 계속 약을 팔아야 한다. 이렇게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 회사가 연합 또는 경쟁으로 완성된 신세계는 이제 사람들의 의식까지 지배할 기세다.

 

벌써 조짐은 보인다. 스티브 잡스가 죽자 추모의 심정으로 아이폰 4S를 구입하겠다고 애플 매장앞에 길게 늘어 선 사람들의 풍경은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스티브 잡스는 저 세상에서 이 장면을 보며 찢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좋아했을 성 싶다. “어휴 내가 만든 상품을 구매하겠다고 모인 저 귀여운 것들..”이러면서. 한편으론 시장을 독점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업자들끼리 다구리까지 붙고 있다. 애플과 삼성 주연의 법정 드라마가 세계 곳곳에서 절찬리에 상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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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스마트 폰을 애무(愛撫)하며 흥분하는 인간들아. 스마트 폰이 똑똑해 질수록 니들은 멍청해진다. 그러니 가끔은 아이폰, 갤럭시, 4G, 아이 패드와 그 안의 페이스북, 싸이월드, 구글, 네이버 등속에 처박은 대가리를 들어 하늘도 올려다 보고,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아련한 잔상도 느끼고, 네 주변의 풍경도 살피고, 무엇보다 네 눈앞의 인간들에게 관심을 좀 가져라. 류시화의 시집 제목대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시대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리 손가락질만 열심이냐. 인간이 좀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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