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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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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크리스마스츄리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5-12-25 (금) 12:01:36

 

여보, 세상은 지금 크리스마스분위기에 들떠있는데 우리는 이대로 죽치고 앉아있기만 하니 따분하군요. 우리도 크리스마스 구경하러 가요.”

 

좋소. 내가 당신에게 내일 밤 돌섬이주 5주년기념으로 멋진 크리스마스선물을 안겨주겠오.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츄리 보다도 아름답고 라디오시티공연보다 감동적인 성탄이벤트를 말이오.”아내는 산타크로스를 만난 소녀처럼 흥분이다.

 

 

DSC_2334.jpg

 

우리는 뉴욕에 살면서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벤트를 즐겨왔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아름답다는 록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츄리를 가봤다. 100년 넘게 기른 30미터짜리 전나무에 3만개의 전구가 오색영롱으로 반짝인다. 추리 꼭대기에는 아기예수 탄생을 인도했던 베들레햄의 별(?)이 빛나고 있다. 냇킹콜의 목소리로 징글밸이 울려퍼지면 젊은 남녀들이 쌍쌍이 몰려와 크리스마스츄리를 돌면서 춤 춘다. 늙은 우리부부도 슬며시 끼어들었다. 흉내를 내봤지만 스탭이 엉클어져 얼른 도망쳐 나와 버렸다. 무안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추억인가?

 

맨해튼 록펠러센터 옆에 있는 라디오시티도 구경했다. 1933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로켓을 공연한다. 춤과 노래로 엮어지는 성탄극. 프랑스의 캉캉춤과 영국의 탭댄스를 결합하여 독특한 미국 춤으로 개발한 크리스마스뮤지컬이다.


SDC18190.jpg

 

성탄절이면 조국의 유명예술인들이 뉴욕으로 몰려와 무대를 마련했다. 엄정행 박인수 임응균 조수미 신영미 홍혜경의 성악을 들어봤다. 조영남 임형주 이동원 이미자쑈도 가봤다.

 

이만하면 성탄절을 일류로 즐긴게 아닌가?

 

이번에도 링컨센터로 갈꺼예요? 아니면 카네기홀이에요?”

 

아내는 김치국을 마시지만 내가 줄수있는 건 냉수(冷水)뿐이다. 난 유명한건 한번으로 끝내주는 성격이다.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는다. 세계명작문학작품, 영화, 관광, 예술품, 그리고 무대관람을 그렇게 한다. 처음 볼때 집중하여 크게 감동을 받는다. 두 번째 보면 처음만 못하다. 처음 받은 감동마저 줄어버린다. 그래서 명품은 딱 한번만 본다. 그리고 그 감동을 가슴에 남겨둔다.

 

그 대신 시시한건 자꾸만 본다. 보면 볼수록 감동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날마다 걷는 돌섬길, 갈대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 걸을 때마다 발길에 채이는 돌맹이, 들어주는 없어도 같은 소리로 지저기는 새소리, 길가에 자라다가 말다가 밟혀버리는 풀잎들.....그것들은 볼적마다 새롭다. 그러니 록펠러센터나 라디오시티는 갈일이 만무하다.

 

여보, 내일저녁에 가보면 알거요. 처음 가보는 아주 기가 막힌 곳이야.”

 

꺄우뚱. 참새머리를 굴리는 아내는 깜짝쑈를 기다리는 눈치다. 12월의 뉴욕은 오후 5시인데 어둡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갑시다. 밤새 구경해야 하니 겨울 잠바를 입고 따라와요

 

맨해튼으로 가는 전철역으로 가다가 갑자기 진로(進路)를 바꿨다. 동내 주택가로 들어갔다. 머리를 기웃거리면서 골목길을 걷기 시작 했다. 무얼 찾아요. 따라와 봐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돌섬 주택가는 가로등도 어둡다. 몇년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허리케인 아이린샌디2년 연속 돌섬을 강타했다. 집들이 태풍에 넘어가고 물에 잠겨 전기가 나가 버렸다. 아파트3층에 사는 우리부부는 무사했지만 애마 렉서스가 물에 잠겨 폐차가 됐다. 열심히들 복구했지만 가난한 집들은 아직도 버려진 체로 남아있다. 내가 사는 시영아파트 북쪽 동내는 3분이 1이 불 꺼진 폐가들이다. 그래서 돌섬주택가의 밤 골목길은 어둡다.

 

베들레헴의 마굿간을 비췄던 아기예수의 별이 불꺼진 돌섬골목길 어딘가에 있겟지!”

 

난 공동묘지를 방황하는 유령처럼 참담한 심정이었다. 저린 가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아내가 팔을 잡아끌면서 속삭였다.

 

여보, 저것 좀 봐요. 크리스마스츄리가 있어요

 

돌섬에도 크리스마스츄리가 빛나고 있었다. 띄엄띄엄 열다섯집에 한집 꼴로 보였다.

 

됐어. 이제부터 크리스마스츄리 경연대회를 시작하는 거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츄리를 돌섬에서 찾아보는거지

 

록펠러센터 크리스마스츄리가 아름답다. 뉴저지 펠리사이드파크에는 아예 크리스마스츄리 골목이 있다. 집집마다 츄리정원이다. 하도 유명하여 시에서 특별지원을 한다. 롱아일랜드의 부자동내사람들도 대형크리스마스츄리를 뽑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츄리가 있다. 고향의 어린시절 시골 글갱이교회의 크리스마스츄리다. 초등학생인 나는 도끼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 항아리처럼 예쁘게 자란 소나무를 베어왔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젊은이들이 달려들어 신부 화장하듯 츄리를 만들었다. 솜을 뿌리고 색종이로 장난감을 만들어 매달았다. 나뭇가지에 촛불을 꽂아놓았다. 목화솜이가 눈처럼 덮인 츄리 꼭대기에서는 납종이로 만든 별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청년들은 소나무츄리 앞에서 새벽송 연습을 했다.

 

돌섬에 어쩌면 고향시절의 크리스마스츄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내를 데리고 골목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골목길 2층집 크리스마스츄리가 볼만했다. 수천개의 전구가 반짝이는데 아기탄생 이야기가 연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 크리스마스츄리 오, 크리스마스츄리 사랑스런 그 모습

 

우리부부가 새벽송을 부르자 주인아줌마가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크리스마스츄리가 너무 아름다워 우리 부부가 초저녁인데 새벽송을 불렀습니다.”

 

오 탱큐. 매년 크리스마스츄리를 만들고 있지만 길가던 나그네의 칭찬을 듣고 새벽송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들어오셔서 커피와 쿠키를 들고 가시지요?”

 

고맙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츄리가 있는 집을 찾아서 새벽송을 돌아야 하기에 시간이 없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해피뉴 이어!”

 

70넘은 우리부부는 크리스마스츄리가 있는 집을 찾아 캐롤을 부르면서 주택골목을 돌아다녔다. 교회청년들 틈에 끼어 새벽송을 돌던 초등학교 소년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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