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불륜(不倫)이다.‘ 라거나 ’내당너당‘,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라.‘라는 것은 기준의 문제입니다.
‘내로남불’이 나와 너를 다른 기준에 두고 있는 것이라면 ‘내당너당’은 나와 너를 같은 기준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의 근거가 되게 하는 것은 올챙이 꼬리 같은 권위의식이라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되면 없어져야 함에도,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면 없어져야 함에도 아직도 달고 있는 권위의식의 꼬리는 결국 미성숙한 인간의 표본(標本)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기준은 ‘행함’입니다. 성폭력에 대해 사과성명이 남발하지만 정작 사과행동이 없는 사과성명이 쓰레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아무리 다스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겨댄다 하더라도 하는 행동이 이명박의 것이면 결국 다스가 이명박의 것임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기준이 되어야 함을 가르친 예수의 말은 결국 행함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면 한국적 민주주의이고 남이 하면 북한식 사회주의라거나, 내가 하면 민족주의이고 남이 하면 사대주의, 내가 하면 복지 남이 하면 포퓰리즘, 내가 하면 교육적 차원 남이 하면 반항적 일탈, 박근혜가 하면 평화통일이고 문재인이 하면 적화통일이라는 것 더 나아가 내가 하면 하나님의 뜻이고 남이 하면 마귀의 짓이라는 것은 그 행함의 주체가 누구이든 그 행함을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예수의 요구는 ‘내로남불’, ‘내당너당’으로 기준을 옮겨 다니는 비굴함이 아니라 ‘네가 누구이든, 네가 행한 것이 내가 행한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인정하는 당당한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네가 나보다 낫다’는 화두(話頭)를 2018년 사순절에 잡아 봅니다.
***********
사순절 이야기 일곱 번째 편지
잠언 8:1 ...
<지혜가 부르고 있지 않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느냐?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마을 어귀 성문 곁에서, 여러 출입문에서 외친다.>
“나는 자유로운가?”,
“나는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건 옳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건 잘 못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인데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것인데, 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함으로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습니다.
‘잘못인줄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 때는 다 그랬다’는 핑계는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라는 회피(回避)로 책임을 피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 때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그 일의 한 켠에서 음탕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지혜와 명철이 세상 곳곳에서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있었는데,
귀를 막고 듣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고 보지 않았습니다.
발을 멈추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춰 질 줄 알았습니다.
세상안에 숨겨 질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모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숨겨놓은 것은, 사람 앞에 부끄럽고 욕된 모습은, 하나님 앞에 악하고 죄된 모습은 반드시 드러나고 맙니다.
사람 앞에 욕되고 부끄러운 자는 먼저 사람 앞에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사람이 용서해야 하나님도 용서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jhj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