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도시인 지역에 45년 지기 선후배 친구들이 여럿 함께 살고 있다. 대부분 은퇴한 60대들이라 치열했던 삶을 정리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 느린 삶을 추구한다.

어처구니 없는 세상을 버티는 일로 공통 관심사는 대체로 텃밭 규모의 농사인데 작물을 심어 가꾸며 서로 돕고 나누며 산다.
어제는 거친 황사를 뚫고 전업농부인 후배네 벼농사 못자리 작업을 도우러 모였다. 함께 하면 일도 쉽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 웃을 일도 많아지고 활력을 공유하며 건강을 지킨다.
오늘은 지난 달 빚어 둔 술을 거르려 친구 농장에 모이는데, 그동안 재래식 자연 친화적인 해우소와 다목적 비닐하우스도 함께 지어 놓은 것이 빛을 발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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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진달래는 여전히 붉습니다
4.19 피와
4.16 눈물이 섞여
선홍빛 피눈물 뚝뚝 떨어지듯
지고 나면 봄도 기울고
꽃 진자리 어김없이 푸르게
푸르게 멍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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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하루

어릴 적 주전자 들고 동네 주막에 술 심부름을 가면 땅 속에 묻어 둔 큰 독에서 코가 빨갛던 쥔장이 긴 막대 끝에 달린 바가지로 막걸리를 퍼 담아주곤 했었다.
술 맛이 궁금한 호기심에 한 두 번 주전자 뚜껑으로 맛 본 적은 있었지만 아버지의 주사가 괴롭고 공포였던 시기라 술에 대한 호감은 일찌기 없었다.
나는 술을 잘 못한다. 아니, 몸에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을 분해하는 효소가 적어서 온몸이 붉어지고 심장은 쿵쾅대고 조금 지나치면 토하는지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주종을 망라하고 한 두 잔이면 기분을 낼 수 있어서 경제적이긴하다.


그간 마셔 본 시중의 막걸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맛있는' 막걸리를 맛보았고, 술을 맛있다고 표현한 건 처음이었다. 첨가물 없는 천연의 순수한 맛이었는데 오르내리는 취기가 아주 완만하게 오래 지속되었다. 한마디로 기분이 길게 좋았다는 얘기다. ㅎ
45년 지기 한 친구가 막걸리 제조법을 배워 지난 달 그의 농장에 모여 빚어 놓은 것을 엇그제 걸러서 시음하는 시간을 가졌다. 명품인 단풍나무 아래 모여 앉아 안주로 전을 부치고 고기도 굽고 은은하게 취하며 봄날의 하루가 갔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