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계절도 변했을 거야
의심했으나, 가을은
그 빛 더욱 찬란했었네
자본과 권력을 따라간 천박한 영혼들
세상 찢고 까불어도
自然은 毅然(의연)히
그 자리 그대로네
가을 소묘 2
세간의 관심과 이목을 벗어난 동백
붉은 꽃 떨군 자리에 열매 맺고
씨앗 여무는 동안 봄을 기다립니다
화려한 여름을 보낸 부처님, 배롱나무로
백일동안 입었던 상의를 벗었으나
꽃무릇 떼 지어 하의를 입혀 줬네요
아내를 보필하러 간 마트에서
배추 한 포기 만삼천원인 것을 보고
30포기나 심은 배추를 생각하며
부자가 된 듯 흐뭇했습니다
가을 소묘 3
어릴 적 뛰놀던 동네 골목 같은 허름한 담장 아래 고독이 짙은 맨드라미, 그늘이 유난히 쓸쓸해 보입니다
높푸른 하늘 배경 삼아 화려한 군락을 이룬 꽃무릇, 칸나보다 더 붉고 강열한 빛에도 그늘이 있더이다
애써 매달려 철망을 감고 오르는 박주가리 덩굴, 무엇을 찾아 어디까지 가려는지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골고루 햇살이 닿기를, 한가위 달빛도 부드럽게 스미기를, 적어도 광합성을 못해 죽는 일은 없기를 바라는 가을입니다
가을 소묘4
노을이 아름답게 스러질 무렵
그 빛 여운이 깃든 격포항은
곱게 화장한 여인이었다
닻을 내리고 정박한 어선들
늦은 오후가 여유롭게 흐르고
100일을 서성거렸던 바닷가
목백일홍 아직 고운데
밤이슬 몰고 가을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가을 소묘 5
'자발스런 귀신은 무릇죽도 못얻어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꽃무릇 알뿌리는 녹말을 걸러내어 죽을 끓여 먹었는데, 옛날 가난한 백성들의 구황식품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네요.
독소가 있어서 이를 가라앉혀 우려내려면 꽤 시간이 걸렸는데, 참지 못하고 그냥 죽 끓여 먹으면 배탈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답니다.
오늘, 또 하나의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캐는데 밭이랑이 많이 내린 비로 얼마나 다져졌는지 문화재 발굴하듯 하는 호미질이 거의 끌질이네요. 추석 연휴는 틈 나는대로 고구마 발굴이 숙제입니다.
가을 소묘 6
지평선에 늘어선 나무 아래 길
팍팍한 서울살이 고단하던 자식들
환하게 들어서던 그 길을
혹시나 하고 바라보다 돌아서
곰소만에 물이 들자
습관처럼 낚싯대 드리운 강태공
어수선한 시름 가득한 잡념, 그리움
가을볕에 말리고
따라가기 숨 가쁜 요상한 세월
보고 싶던 손자들 모습 본
화상통화로 위안 삼으나
철 지난 바닷가 수평선에도
가을바람이 섧다
가을 소묘 7
고구마 발굴하느라 추석 연휴를 다 보내고 있습니다. 봄에 밭을 갈아 엎어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잡초가 나오지 못하도록 이랑에는 비닐을 씌우고 고랑에는 잡초매트를 깔았습니다.
흙을 모아 높게 만든 이랑에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 두 종류를 심었는데, 호박 줄기 뻗 듯 호박고구마 뿌리 중 하나가 고랑의 잡초매트 밑으로 파고들어 줄기를 뻗어 갔는데 가히 예술입니다.
매트의 짜여진 한 올 한 땀 사이를 뚫고 뻗은 것은 길을 잘못 들어섰어도 생존을 위해 절박한 고난의 행군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밭고랑의 매트를 재활용하려고 거두다 이 모습을 보고, 흐지부지한 개혁의 현재 상황에 많은 시민들이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 하는데, 시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개혁의 절박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국회부터 다시 갈아 엎어야 될까 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