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 정도 사고라서 다행인지도. 애초에 받지 말았어야 할 화물을 받은 탓인가?
맥주 실을 때부터 쉽지 않았다. 내리는 일은 훨씬 어려웠다. 나쁜 일에는 조짐이 있나? 새벽 2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하려니 퀄컴 네비게이션이 배달처 주소를 인식하지 못했다. 4개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퀄컴은 최적의 경로는 아니라도 항상 정확한 위치에 데려다 주었다. 할 수 없이 발주서에 적힌 주소를 입력한 후 갔다. 새벽 4시 40분 배달처 주변에 도착했다. 가민과 퀄컴 모두 그 위치를 가리켰다. 구글맵을 통해 미리 확인한 지형과 같았다. 도로에서 진입로로 들어선 순간 트럭 진입금지 안내판이 보였다. 이미 늦었다. 일반 소형차 주차장이다. 앞에 출입구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철망으로 막혀 있었다.
밤운전은 이래서 좋지 않다. 트럭을 돌릴 수 없었다. 뒤를 봐주는 사람 없이 도로로 후진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 건물로 다가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까 혹시 나갈 길이 있나 싶어 주차장으로 좌회전하려다 각도가 안 나와 포기했는데 천만 다행이었다. 주차장은 막혀 있었다. 들어갔다면 빼도박도 못할 뻔했다. 주차장을 지나 좀 더 걸어가니 트럭 진입로가 나왔다.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창문을 두드렸다. 흑인 중년남자가 자다가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나는 도움을 청했다. 입구를 잘못 들어와 도로로 후진해야 하는데 뒤를 봐달라 했다. 그는 기꺼이 나와 주었다. 바로 앞도 아니고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그가 도로의 차를 막아 주는 동안 나는 어렵게 후진해 도로로 나와 다시 좌회전해 트럭 진입로로 들어갔다. 얼마 후 걸어온 그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표했다.
다른 난관(難關)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은 좁은데다 다른 트럭들도 서 있었다. 7번 닥 양쪽에는 다른 트럭이 짐을 내리고 있었다. 닥의 간격도 좁았다. 오른쪽 공간으로 들어가서 후진해 볼까 시도해봤다가 포기했다. 절대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은 하지 말라는 교훈을 되새겼다. 나는 짐을 내리고 있는 트럭 중 한대에 접근해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백인 중년 남성이 자다 나왔다. 뒤를 봐달라고 부탁하며 어떻게 후진하는 게 좋을 지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최대한 넓게 턴을 해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역시 그 방법 밖에 없다. 다른 트럭 두 대를 옮기고서야 턴을 할 수 있는 각도가 나왔다. 간신히 후진해 닥에 트레일러를 댔다. 선에 칼 같이 맞추지는 않았지만 오차 범위 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트럭 후미로 가보니 땅에 허연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었다. 이게 뭘까 생각하다 트레일러를 보니 젖혀 두었던 왼쪽 문이 닥의 구조물에 찢겨져 단열재(斷熱材)가 터져 나왔다. 새벽이라 어두컴컴하고 조명도 제대로 안 된 곳에서 못 봤던 것이다. 낮이었다면 봤을 것이다. 다른 곳의 닥에는 없는 구조물이다. 여기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선에 맞춰야 했다.
출발 전 회사 도로지원팀에 연락해 트레일러 파손 사실을 알렸다. 근처 트럭스탑에 왔다. TA에는 트럭 서비스 센터가 있다. 이곳에 사진을 보였더니 자신들은 수리할 수 없다고 했다. 타이어 가는 정도의 작업은 해도 그 이상은 무리다. 지원팀에 알렸더니 샬럿(Charlotte)의 트레일러 수리공장에 가라고 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빈 트레일러를 찾았으나 수리 끝난 것이 없다. 플릿 매니저는 세일즈팀에 연락해 빈 트레일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마침 샬럿에 내려와 있는 노창현 국장님 부부가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김치와 불고기 등 반찬까지 가져오셨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트럭 얘기를 나누었다. 글렌에게서 30분 떨어진 곳에서 빈 트레일러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식사를 마치고 노국장님 부부와 헤어진 후 밥테일 트럭으로 이동했다. 이미 다음 화물 일정까지 나와 있었다. 빈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하고 가까운 트럭스탑 중에서 규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새벽 2시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오후 4시에는 일을 마쳐야 한다. 20분을 남겨 두고 트럭스탑에 도착했다. 샤워부터 했다. 이제 인간 같은 몰골이 됐다.
내일도 새벽 2시에 출발할 예정이다. 몬로에 있는 타이슨 식품 가공 공장이다. 다행이도 전에 네이슨과 가본 적이 있다. 밤이라도 입구 찾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모레 아침까지 뉴저지 주 뉴왁에 배달하는 일정이다. 발송처나 배달처 모두 만만찮은 곳이다. 그래도 해내야지 어쩌겠는가. 더 조심하고, 더 자주 내려 확인하고, 주변에 도움 요청하고.
어떻게든 되겠지는 안일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어떻게든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사고 덕분에 노국장님을 만났으니 나쁜 일만은 아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인가?
트레일러가 더러운데 시간이 없어 세척을 못 했다. 새벽에 문을 여는 세차장이 있나 모르겠다. 발송처에 셀프 세척 시설이 있다는데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떤 묘기스러운 후진을 요하는 것은 아닌지? 트럭 운전하지 않는 동안에도 온통 일정 생각이다. 제발 밤 일정은 피하고 싶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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