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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저는 절대로 엘리트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보통 마라토너는 다 할 수 있고 제가 못 해도 다른 마라토너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을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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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이 아니다 불꽃이다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23-03-05 (일) 17:04:31



 

내 영혼에는 쥐구멍처럼 하루 종일, 태어나서 지금까지 볕이 안 드는 곳이 있다. 그 쥐구멍 속에 웅크려 있는 나는 겁이 많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위험한 존재이다. 인도의 길 위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 구석구석 볕을 쬐어주고 있다. 양말 두 켤레를 사고 계산을 마치고 돌아 나와서 한참을 왔는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부르기에 돌아보았더니 그 사람 손에 백 루피짜리 지폐 두 장이 쥐어져 있었다. 가게도 비워 놓고 흘린 돈을 가지고 뛰어 온 것이다. 그 젊은이의 거친 숨결이 아름답게 들렸다.


나는 아마도 스스로 판 쥐구멍 한 군데를 움막의 거적 씌우듯이 덮어씌우고 자신을 그 안에 가둬버렸음이 분명하다. 인도인들이 다가와서 내 쥐구멍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거적을 슬쩍 들췄을 뿐인데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온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왜 거적을 들췄냐고 화를 내든지, 들춰진 거적을 거두고 햇볕 가득한 벌판에 나오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나는 인도 여정(旅程)이 끝나고도 아직도 많은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쥐구멍 안에서 거적으로 구멍을 막고 어두운 가운데 살아야 하겠나?


유모차를 밀며 드넓은 세상을 다니면서 평화의 노래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가슴 벅찬 나의 임무이다. 그 여정 중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기 힘이 들 때 반얀 나무 그늘처럼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되고 안식처가 되어주고 기운이 샘솟도록 힘이 되어주는 인도의 아름다운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친절과 온정이 고통과 외로움, 좌절과 절망, 두려움과 막막함 가운데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렇다.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그래서 천박한 편리함이나 아름다움만을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인도를 추천했다가 욕먹기 딱 좋을 것이다.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 영혼의 안식이 필요한 여행자들이나, 특별한 영감이 필요한 예술가들이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이나 철학가, 히피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런 사람에게 인도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세이렌 자매의 노랫소리처럼 유혹의 소리로 매료시킨다.


인도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은 대표적인 예가 헤르만 헤세와 비틀즈이다. 헤세는 서른네 살의 나이로 삶의 터전인 호반의 도시 가이엔호펜을 떠나 그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여행길에 오른다. 인도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憧憬)의 대상이었다. 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사로 포교 활동을 했던 곳이며 어머니가 태어나 성장한 곳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양친에게 인도 이야기를 들으며 그곳을 동경하게 되었다. 스물일곱 살 때부터 관심 있게 읽던 동양에 관한 이론적 인식을 실제 체험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여행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낯선 기후와 형편없는 식사, 열악한 위생 상태로 심한 설사와 건강이 나빠졌다. 그는 인도 본토의 남부 지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4개월 뒤 돌아가게 된다. 그는 이 여정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생각이 더 풍부해졌고 동서양의 문화를 함께 통합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 여정은 그에게 인간 내면의 고뇌를 정적으로 바라보는 영적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유럽 사회 속에서 이방인이었고 스스로 왕따가 되었던 헤세는 방랑 끝에 도달한 동양에서 비로소 생의 본질을 찾게 된 것이다. 인도여행 후 그는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마치 내가 미대륙횡단마라톤 후 평화주의자가 된 것 같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은 그의 인도 여정 후에 쏟아져 나왔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에 큰 상처를 받고 자신의 조국 빌헬름 2세를 비판하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하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헤세 열풍의 진원지가 데미안이었다면 서구에서는 황야의 이리와 싯다르타가 불러온 반향(反響)은 엄청났다. 헤세 생전에도 전쟁을 경험한 후 삶의 의미와 방향에 목말라 있던 젊은 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사후인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탈권위주의, 반전, 반핵, 환경 운동을 내세우며 미국 및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던 68 학생운동 세대와 문명을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히피들이 바이블처럼 여기고 열독하면서 헤세 열풍을 선도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사회적인 반항아였던 헤르만 헤세는 자기 존재를 통해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삶의 불꽃이 되어 그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와 국가와 기득권과 싸우고,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반전반핵운동을 벌이고, 평화주의를 외치고, 환경운동의 선봉을 섰다.

 

인도의 겨울은 우리네 겨울처럼 혹독하지는 않지만 가난한 난방시설이 없고 사방이 탁 트인 움막에서 담요 한 장 뒤집어쓰고 자는 이들에게는 그리 쉽게 나는 겨울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소똥 말리는 일에 열중하는 여인에 손길에서 읽혀지고, 밤새 떨며 자다 일어나 새벽이면 모닥불 앞에 삼삼오오 옹크려 앉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타난다.

 

천국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사람과 짐승이 같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인도를 달리면서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왜가리와 까치가 소와 염소의 잔등에 올라타서 오수(午睡)를 즐기는 모습이 정겹다. 개는 대로에서 팔자를 그리며 자다가 내가 달려가는 소리에 단잠을 깨서는 심통을 부리며 달려든다. 간혹 온순한 물소가 다가와 왕방울만한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나를 관찰한다. 어쩌면 그렇게 수줍어하면서도 호기심에 가득 차 나를 에워싸고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눈망울과 비슷한지 모르겠다.


인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육식을 안 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면서 식당에서 육식을 먹기란 하늘에서 별따기이다. 기껏해야 닭고기 정도이다. 물론 대도시야 사정이 다르겠지만 환생을 믿는 그들로서는 자기도 어느 생에 가축으로 태어날지 모르는데 고기를 먹고 이빨을 쑤시기가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멧돼지, 야생 공작새도 사람을 보면 그리 무서워하지 않는다.




야생 공작새의 무리는 얼마나 아름답고 진귀하고 잊지 못할 모습이었던가? 원숭이들도 마을 한복판에서 내가 다 신이 날 정도로 재미있게 유희(遊戲)를 즐긴다. 이름 모를 새들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모습과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주렁주렁 열린 바나나 열매, 끝없는 벌판에서 꽃같이 예쁜 사리를 입고 감자를 수확하는 여인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의 검은 보석 같은 눈망울이다. 가까이 다가가야만 느껴지는 친근한 숨결이다.


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건강한 생태적 삶의 전형을 인도에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는 나라 전체가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치유의 휴양지인 셈이다.

 

오늘의 강물은 어제 같은 모습으로 흐르다가 보이지 않는 형체로 하늘로 올라 히말라야 산 위에 눈으로 내리고, 물이 되어 갠지스 강에 흐른다. 사람들은 생을 영위하다 재가 되어 강물로 흐르다 하늘과 산의 순환 변천하는 물의 현상에 따라 더 나은 환생을 꿈꾼다.

 

나는 꽃이 아니다. 힌두스탄 평원의 바람을 타고 세상 끝까지 번져나가고 싶은 불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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