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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저는 절대로 엘리트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보통 마라토너는 다 할 수 있고 제가 못 해도 다른 마라토너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을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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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내 슬픈 달리기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21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18-10-02 (화) 0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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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있어도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더 사무치게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오지(奧地)보다도 더 오지 같은 곳,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달려왔어도 쉽게 범접(犯接)할 수 없는 곳이 있다. 탐험심 많은 이조차도 한국인기기 때문에 엄두도 못내는 곳이 있다. 몽환의 세계처럼 지척에 있어도 갈 수 없는 곳, 대를 이어서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가보지 않은 곳 그러나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강이지만 잘 모르는 강 요하를 건너면서 아버지의 고향과 아버지의 타향살이, 아버지의 그리움을 떠올렸다.

 

만날 수 없는 것들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이루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절절한지, 가지 못하는 고향이 얼마나 아름답고 절절한지! 할머니와 아버지는 육신의 탈을 벗어버리고서 기어이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갈대밭에서 잘려나가 피리가 된 갈대 피리의 음색이 구슬픈 것은 갈대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한다. 근원(根源)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갈대 피리의 그리움만 못할쏘냐? 자기 근원에서 떨어진 모든 것은 다시 돌아갈 날만 애타게 기다리느니, 갈대피리 소리에도 사람들이 함께 흐느끼는데 내 슬픈 달리기에 어찌 눈물 훔치기 않고 바라만 볼 건가?

 

갈대밭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있다. 요하의 소택지다. 내몽골 사막에서 흘러내리는 유사(流砂)로 인해 소택지가 형성된 것이다. 요하를 기준으로 서쪽을 요서, 동쪽을 요동이라 하는데 요동반도는 압록강 하구 단동(丹東)에서 요하 하구에 이르는 축을 북쪽 한계로 하고 황해와 발해를 끼고 있는 반도를 말한다. 당나라 초까지 이 지역은 갈대만 우거진 요택의 진펄로 말과 마차가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부교와 다리를 설치하여 요택을 건넜고 19세기 말쯤 요하로 흘러드는 퇴적물이 충적되어 비로소 대륙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갈대는 사람을 가장 닮은 자연 속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 했던가. 파스칼은 단지 생각하는 갈대라고만 표현했지만 여기 신경림의 갈대라는 시 한편을 같이 읽어보자.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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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울 듯이 쑥쑥 자란 큰 키에 무성하고 억센 잎의 갈대도 운다. 서걱서걱 흔들리면서 운다. 이렇게 바다와 같이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갈대의 울음소리도 흔들리며 달리는 내 울음소리를 덮지는 못했다. 이렇게 먼 길을 달려와서 아버지의 고향, 할아버지의 산소, 내 근원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찾아 왔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머지 반쪽의 나의 조국은 정녕 몽환(夢幻)의 세계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베이징에 거의 다 올 때쯤이면 이미 내 손에는 입북허가서가 들려져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베이징을 지나고 산해관도 지나고 판진(盘锦)에 도착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더군다나 출발할 당시와 상황이 바뀌어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이미 우리끼리 종전협정, 평화협정 다 맺은 거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나의 입북 문제가 아직 결정이 안 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14km를 달려왔는데 신의주를 거쳐 평양을 지나 판문점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달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진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센양(瀋陽)에 있는 북 영사관으로 가기로 맘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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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있을 때 북한식당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꼭 가서 무언가 조금을 다를 것 같은 우리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한 핏줄이지만 또 무언가 다를 것 같은 북한 식당의 종업원들과 말을 섞어보고 싶었다. 식당 앞에는 색동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나와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홀 한쪽에 무대가 설치되어 드럼과 악기가 을씨년스럽게 놓여있었다. 정면의 대형 TV에서는 북한방송이 나왔는데 생산현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같았다. 주문을 받으러 여종업원이 메뉴를 가지고 와서 남쪽에서 오셨습네까?” “비지니스로 오셨습네까? 여행으로 오셨습네까?” 싹싹하게 물으며 관심을 표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 북 영사관에 들고 가려고 가져온 내 홍보책자를 보여주며 나는 남북통일을 위하여 작년 9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하여 달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이제 북한을 통과하여 판문점을 통하여 남으로 내려가려고요.”하고 답하니 주위의 종업원들 네댓 명이 눈이 땡그래지더니 내 주위로 몰려든다.

 

아가씨는 고향이 어디에요?” “우리들은 다 고향이 평양입네다. 평양에서 상업 대학교에 다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이렇게 외국에 나와서 실습을 합네다.” “보통 몇 년 정도 있어요?” “5년 정도 있습네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문을 했다. 주문을 받고도 이야기가 흥미가 있는지 바로 움직이지 않으니 연장자나 매니저쯤 돼 보이는 종업원이 날래날래 주문 올리라!”고 말하니 그때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날래날래라는 말은 어렸을 때 집안에서 자주 듣던 단어이다. 밖에서는 들을 수 없는 우리 집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였다. 나의 정체성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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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1인분, 모듬회, 그리고 운전기사는 냉면을 시켰다. 내일은 달리기를 안 해도 되니 거기에 평양소주를 더했다. 상을 차리면서 대부분의 재료는 조국에서 직접 가져다 요리합네다하고 설명한다. 김을 가리키며 김도 북조선에서 가져오냐고 물었더니 김은 현지 것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김은 중국에서 안 만든다. 일단 김치 맛이 우리네 일상의 밥상에서 늘 먹던 그 맛이다.

 

아버지의 고향 송림시에 대하여 물어보니 아무도 모른다. 평양에 바로 인접한 도시인데도 모른다. “평양시 안에는 손바닥 보듯이 다 알아도 외곽은 잘모릅네다.” 평양소주는 희석식 소주라 맛이 개운했지만 가격이 우리 돈으로 55천원이나 하니 소주 값으로 큰돈을 쓴 셈이 되었다. 중국에 들어와서 넉 달이 넘는 동안 말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고 외로웠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정겹게 가까이 와서 말동무를 해주니 기분이 들떴다. 거기다 나는 오랜만에 소주까지 한잔 했다. 1년 넘게 유지해오던 긴장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많은 말을 했다. 두 아가씨가 나올 때 문 앞까지 배웅 나와 인사를 하는데 내일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북영사관으로 갔다. 인공기(人共旗)가 휘날리는 철조망이 쳐진 건물이 보였는데 중국 경비병이 구석마다 한 명씩 경비를 서고 있을 뿐 썰렁했다. 다가가서 입북허가서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초청장을 보자고 한다. 초청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족 운전기사가 나의 홍보책자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니 10시 반에 다시 오면 안의 사람을 나오라고 해서 만나게는 해준다고 한다. 반은 성공이었다. 초청장이 없으면 십중팔구 문전박대(門前薄待) 받는다는 것을 알고 왔다. 알지만 뭐라도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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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겨 우리 영사관으로 갔다. 같은 골목에 있었다. 그 골목에 6개국 영사관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은 아침부터 한국비자를 받겠다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지나가는 동안 여러 명의 비자 브로커가 잡는다. 한국의 영사가 반갑게 나와 맞는다. 심양에서 있을 내 환영행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나 입북문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북영사관 앞은 계속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인다. 다행히 아까 그 경비병이다. 안으로 인터폰으로 통화를 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조금 있더니 여자가 굳은 얼굴로 나와 내가 지금까지 달려온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꼭 북한을 통과해서 판문점으로 넘어가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무뚝뚝한 말투로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들어간다. 이번엔 중년의 남성이 역시 굳은 얼굴로 나와 다시 설명을 하니 초청장을 가져왔냐고 묻는다. 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통일부장관도 북측에 내 이야기를 전달하였고 민화협에서도 내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이제 단둥(丹東)에 다와 가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서 답답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철문을 열더니 잠시 들어오라고 한다.

 

앞마당에는 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천지에서 손을 맞잡은 사진이 크게 붙어있었다. 그는 위로부터 전달받은 게 없고 초청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초청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 알고 왔는데 나는 평양을 거쳐 판문점으로 남북통일을 위해서 뛰어가려고 작년 9월부터 무려 13달이나 달려왔는데 여기서 내 조국을 달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호소했다. 지시 받은 사항이 없지만 여기서 역으로 외무성에 보고할 수는 있지 않느냐고 반문을 했다.

 

이제 그가 조금 얼굴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내 신분증을 보자고 하며 인적사항을 메모한다. “알갔습니다. 위에 보고는 해보겠습니다.” “이 야호!” 대성공이다. 일단 내가 하루 달리기를 멈추고 온 보람은 있었다. 나는 들고 간 내 홍보 책자와 재외동포 회장이 써준 추천서를 놓고 왔다. 여러 사람들이 내 입북 문제로 여러 방면으로 애를 쓰지만 지금 남북문제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됐거나 전달이 됐더라도 그쪽의 손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평마사 상임대표 이장희 교수님에게 베이징의 북측 민화협에서 내 인적사항 조회 의뢰가 왔다고 한다. 아주 좋은 징조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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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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