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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저는 절대로 엘리트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보통 마라토너는 다 할 수 있고 제가 못 해도 다른 마라토너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을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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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라에 든 많은 생각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8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18-09-23 (일) 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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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넘어졌다. 왼발이 못에 걸렸다고 느끼는 순간에서 넘어지기까지 0.5초나 걸렸을까?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뒤쪽에 있는 오른발을 빨리 앞으로 끌어 착지(着地)를 하려했지만 늦었다. 평소에 체력 같았으면 충분히 균형을 잡았을 것이다. 그 순간 길 옆 포플러 가로수에서는 이 가을 첫 낙엽이었을 낙엽이 한 장 나뭇가지에서 분리되어 바람의 파문을 따라 휘청거리면 떨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감지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해결 능력이 없이 당하고 말 때 생기는 쓴웃음이 내 입가에 맴돌았다.

 

이제 0.5초 사이에 내가 넘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넘어져야한다. 공중그네나 외줄타기 곡예사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넘어지는 방법이라고 한다. 유도나 태권도에서도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기술을 배우기 전에 내가 잘 넘어지는 낙법(落法)을 먼저 배운다. 이제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넘어지되, 잘 넘어지는 수밖에 없다. 충격을 줄여 안전하게 넘어지는 방법이 낙법이다. 이제 나는 멋지게 넘어지고 멋지게 일어나는 방법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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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낙엽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바퀴 22개 달린 괴물 같은 트럭이 사정없이 지나가자 핵폭탄이 터질 때 일어나는 버섯구름이 일어나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먼지 구름에 쌓여서 북적이는 시장의 그 누구도 내가 지금 넘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공포의 삼륜차가 죽음의 검은 매연을 시커멓게 내쏟으면 벽돌을 싣고 통통통 통 소리를 내며 반대 방향으로 지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60년대에 사라져버린 삼륜차가 이곳 매연의 주범이다.

 

65kg의 내 몸은 바닥을 향해 무너져 내렸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자세를 최대한 낮추어야했다. 전반기, 중반기까지 넘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지난달에 도로에 박힌 못에 걸려 넘어지더니 이번에도 다시 못에 걸려 넘어졌다. 이제 이 평화마라톤이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체력이 조금만 더 있어도 그렇게 허망하게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바로 잡았을 것이다. 내 바로 앞 길 옆에는 즉석에서 전병(煎餠)을 구워 파는 행상이 있었고 그 먼지 속에서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명의 남자가 전병을 받아들고 먹고 있었으며 두 명의 여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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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위지엔(옥전)을 지나 작은 마을의 시장판을 막 지나려는 참이었다. 어느 나라든지 시장판은 시끌벅적하고 분주하지만 중국의 시장판은 더욱 요란하고 생기가 넘쳤다. 길가를 따라 햇과일을 가지고 나온 과일 장사들이 늘어섰고 나온 개와 염소, 오리와 닭, 거위에 비둘기까지 매물로 나왔다. 그 한쪽에는 자라를 즉석에서 고아서 파는 사람도 보였다. 넘어지면서 조금 전에 본 양의 선한 눈동자와 개의 동공이 풀린 눈동자가 자꾸 눈에 밟힌다.

 

지금 위지엔(옥전)을 지나 산해관(山海關)으로 가는 길은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이 한양을 출발해 압록강을 건너 박천, 의주 풍성, 요양, 거류하를 거쳐 베이징으로 다시 우리가 피서산장으로 부르는 열하로 건륭제의 칠순잔치를 위해 가던 그 길을 거슬러 가는 길이다. 1780년 음력 624280여 명의 대규모 사신단이 압록강을 건넜다. 박지원은 4촌 형 박명원의 제의로 아무 직책도 없이 그가 꿈이었던 베이징 여행길에 나섰다.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발전상을 다각도로 증언하면서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개혁할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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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가 이 길을 갈 때도 강행군이 이어졌었던 모양이다. 연암은 88일 일기에서 객점에 이르니 곧 밥을 내어 왔으나 심신이 피로하여 수저가 천근이나 되는 듯 무겁고, 혀는 백 근인 양 움직이기조차 거북하다상에 가득한 소채나 적구이가 모두 잠 아닌 것이 없을뿐더러 촛불마저 무지개처럼 뻗쳤고 광채가 사방으로 퍼지곤 한다.”고 적었으니 얼마나 힘든 행군인지 이해가 간다. 지금 내가 그렇다. 힘든 데다가 배탈이 자주 나서 이젠 주기적으로 설사를 한다. 어제 저녁도 오늘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설사를 그렇게 하면서도 하루 42km 달리는 일에는 지장이 없으니 지금 내 몸이 참 신비하다. 참 신비로운 내 몸에 경의를 표한다.

 

또 이 길이 몽골의 침략 이후 끌려갔던 수십만의 고려인들이 끌려갔던 길이었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들 중 일부가 힘들게 살아서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여자를 '환향녀'라고 했다. 조국은 살아서 돌아 온 그녀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가족과 이웃들은 그녀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은 '화냥년'이라고 부르고, 더러운 년으로 불렸다. 그녀들은 집으로 돌아 갈 수 없었다. '화냥년'은 고려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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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도 6.25 이후에도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다. 잔혹한 전쟁의 역사는 여자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조국은 그녀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군위안부가 그랬다. 그런데 넘어지는 그 화급한 순간에도 왜 미군위안부 문제는 이슈화 되지 않을까? 의문이 생겼다. 미국은 모든 추악한 모습을 잠재우고도 남을 만큼 힘이 세서 그럴까?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을 지나온 이제 와서 사뭇 느끼지만 미국은 참으로 엄청난 힘을 가졌고 그 힘을 간교하게 사용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뒤에서는 미국을 욕하지만 앞에서 드러내놓고 흉을 보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국을 드러내놓고 흉보는 이란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확실히 보았고 세르비아가 또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지금은 터키가 당하고 있다. 과연 벌거벗은 임금님 미국에 옷을 입히는 것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보다 더 힘들까?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감쪽같이 미국에게 멋진 옷을 입힐까? 아니면 순진한 소년처럼 미국을 향하여 벌거숭이 임금님이라고 손가락질을 할까? 그것도 아니면 비굴하게 손바닥을 비비며 멋진 옷을 입으셨다고 아부를 할까? 몸의 중심이 이제 거의 아래로 내려앉아 손바닥을 아스팔트에 대면서 내 머리에 스친 생각들이다. 손바닥을 아스팔트에 대는 순간 손바닥은 까질 것이고 그렇다고 무릎이 아스팔트에 닿지 않게 막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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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이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손에 통증이 느껴졌고 바로 뒤이어 무릎이 바닥에 닿아서 또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충격을 최소화하려 몸을 비틀어 한 바퀴 뒹굴었다. 그때 길가의 벽에 붙은 수많은 구호와 표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중국 어디를 가나 가장 아름다움 단어는 다 골라 담벼락이고 어디든 공간만 있으면 플래카드를 붙인다. 민주, 자유, 평화, 평등, 부강, 행복, 건강. , 수도 없는 공허한 단어들이 울림도 없이 눈에 피로감만 더하는데 표어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불망초심 뢰기사명(不忘初心 牢記使命),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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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과 손바닥에 약간의 피는 흐르지만 지난번 넘어졌을 때보다 훨씬 잘 넘어졌다. 이 정도면 성공했다. 그러나 역시 바로 훌훌 털고 일어나기에는 통증이 있어서 한참을 바닥에 앉아 있자니 옆에서 전병을 파는 사람이 다가와 뭐라고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넘어져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 손을 내미는 그 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 먼지구름도 가시고 매연도 그 사이 가셨다. 나는 시장판 가운데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고 앉아있었다.

 

다가오는 재앙(災殃)을 바라보면서도 어쩔 수 없을 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함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긴 0.5초 사이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자꾸 넘어지는 것이 기력도 떨어져서이겠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이 나의 긴장을 푸는 것 같다. 불망초심 뢰기사명(不忘初心 牢記使命),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 평화가 올 때까지! 이 말을 되 내이며 마음을 다지며 최대한 멋지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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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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