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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저는 절대로 엘리트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보통 마라토너는 다 할 수 있고 제가 못 해도 다른 마라토너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을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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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크 초원의 빛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9)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18-04-02 (월) 13: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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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 그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빛을 찾으리.”

 

초원은 말 그대로 풀밭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목가적인 풍광과 양떼들과 목동, 그리고 낙타들의 행렬, 뭉게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연상되는 곳이다. 그러나 초원의 삶이 그렇게 녹녹하기만 하겠는가? 사실 어떤 삶인들 그렇게 아름답고 평온하기만 하겠나! 초원은 온대 지방의 반 건조기후로 산림지대와 사막지대 사이에 나타난다. 이 드넓은 초원은 중국의 동북지방의 대흥안령 산맥에서 시작해 몽골 초원과 카자흐 초원을 지나서 동유럽의 헝가리까지 푸른 띠를 이룬다.

 

다 말라죽은 듯 황폐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생령(生靈)들이 봄을 맞아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여름이 오면 초원은 충만하고 가축들은 살이 찌고 하늘은 푸르고 아름답다. 들판은 온갖 생명이 환희에 넘쳐난다. 목동은 말을 타고 푸른 초원을 달리며 가축을 돌보면 하늘과 땅, 천지의 온 생령 그리고 자신이 하나가 된 것 같은 일체감을 느낀다. 그러다 기나긴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세상은 순식간에 척박해진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대자연의 원리이다. 이제 모든 생령들은 봄이 올 때까지 참고 인내하고 생명을 유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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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이 땅을 점령한 러시아 정권은 이 땅에 살던 호전적인 유목민들을 도시에 정착시키려 무척 고생을 했다. 아슈하바트는 1948년 대지진으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란에서 모든 SNS 활동이 금지되어 빨리 이란을 벗어나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는 순간 이란은 양반이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더구나 차량에 부착된 위성위치추적 장치는 나를 더욱 옥죄었다.

 

초원의 유목민은 억세고 강인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오늘도 한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낙타를 몰고 천진난만하게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에게 가축은 친구이자 놀이기구이다. 이들은 여름에는 가족단위로 평원에 흩어져 가축을 먹이고 살다가 겨울이 오면 산의 남쪽 언덕과 계곡 사이에서 집단으로 모여 월동(越冬)을 한다. 가족단위의 부족을 이루며 어떻게 협동하며 살아가는지 어려서부터 배운다. 그래서 유목민은 집단의 귀속성과 개인의 생존능력과 의식이 그들의 문화와 삶 속에 같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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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의 국토는 우리나라의 두 배나 되지만 90%가 사막이고 나머지 목화밭이 조금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황량한 사막 밑으로는 아무도 상상하지 모를 만큼의 석유가 매장(埋藏)되어있다고 한다. 소련연방 시절에는 송유관이 러시아로만 연결이 되어 러시아 석유회사가 쳐주는 가격을 그냥 고맙게 받아썼지만 중국이 자원외교를 펼치면서 가격을 올려놓았고 여기에 유럽으로 연결되는 송유관이 건설되면서 가격은 폭등하게 되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금방 돈방석에 올랐으며 미래의 경제대국을 꿈꾸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그 돈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고 산업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이 나라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찰과 군인인력을 늘렸고, 깔끔하신 분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거리 청소부가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 검정색 차도 우중충하다고 싫어하셔서 거리에 검정색 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아슈하바트의 가정집에 매달린 위성 안테나도 도시 미관에 안 좋다고 다 치우란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국가적인 비전이나 인류애도 없는 사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맞추느라 아슈하바트 시민들이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 초원의 겨울보다 혹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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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은 예로부터 사막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오아시스를 연결하며 동서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북으로는 낙양이나 장안에서 출발하여 안서에서 남도로 갈라진 후 구차를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이곳에 이르렀다. 타쉬겐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마리, 니샤푸르를 지나 이란을 거쳐 이스탄불까지 이어져 로마에 이른다. 이곳은 실크로드의 교통의 요지이자 미래의 유라시아 공영권의 주요 길목이다. 유라시아 횡단열차가 질주를 할 이곳이 지금 심한 동맥경화에 걸려있다.

 

어제 찾아온 경찰들이 우리를 아슈하바트에서 나가서 자라고 한 아나우에는 호텔이 없었다. 100km나 이동하여 물어물어 찾은 민박집에 짐을 푸는 순간 주인의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어서 우리가 지불한 돈을 다시 들고 나타나서 짐을 다시 싸서 나가라고 한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경찰이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경찰이 우리를 위치추적장치로 감시를 하다가 여기서 멈추니 전화를 해서 쫒아내는 것이다. 외국인은 오로지 호텔에서만 잘 수 있다고 하는데 아슈하바트에서 쫓겨난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300km나 떨어진 마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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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앞이 노랗게 변했다. 하루 42km 이동하는 내가 300km나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하고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감시를 하는 그들이 노숙(露宿)을 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절망적이었다. 목동들에게 들이닥친 초원의 겨울보다 내게는 더 절망적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 구간은 포기하고 어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서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스스로 포기하기 보다는 차라리 쫓아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하루만 더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50km를 되돌아가서 달리면 얼마 못 달리겠지만 하루 달리고, 다시 노숙을 해보고 하루 더 달려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250km를 되돌아가서 그날 25km를 달렸다. 그리고 비 내리는 길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차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왔다 가는데 다행히 아무 말도 없이 확인만 하고 갔다. 그날 40km를 달리고 나니 이제 숙소까지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고 다시 완주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힘을 내어 다음날 일정을 35km로 마무리 하려는 참에 이민국에서 전화가 왔다. 이 나라는 3일 이상 체류를 하려면 등록을 하여야하는데 등록을 하지 않아서 비자가 문제가 있으니 당장 이민국으로 오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 정말 힘들게 하는구나! 차라리 추방시켜주면 고맙겠다.” 그리고 만약 혹시 이런 글들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노트북을 압수당하고, 남영동 분실 같은데 가둬버리면 어떻게 하나 겁이 나서 우리나라 대사관에 연락을 했다. 적어도 누군가는 나의 위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민국은 시 외곽에 진짜 남영동 분실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군인들이 업무를 보고 있었지만 다행히 큰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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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들은 태생적으로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오아시스의 마을과 공생을 하여야 한다. 마을은 물건과 사람과 정보, 문화의 교차점이다. 종종 유목민은 유동성과 집단성이 강해 활쏘기 말타기 기술이 결합되어 군대로 변신되었을 때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총과 화약이 등장하기 전, 근대 이전에는 유목민 집단은 가장 훌륭하고 강한 기동군단이었다.

 

유목민들은 자신들의 삶과 문화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정주민들은 그들을 야만인들로 생각했고 버림받든 땅으로만 알려져 있던 중앙아시아가 이제는 학자들의 끈질긴 연구에 의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단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해주는 실크로드의 가교로서의 길로만 인식되어서 평가 절하되었던 국가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워진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극복하며 역사의 부침(浮沈)에 동참하고 인류 역사에 큰 족적(足跡)을 남기기도 했다는 공부는 내게 놀라운 발견이었다. 나그네는 이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펼쳐진 격동의 세월을 다 이해하기가 어렸다.

 

한때 그렇게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젠 영원히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 찾을 길 없을지라도 우리 서러워 말지니

도리어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얻으소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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