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선평화학교 정지석 목사
5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화창했다. 신록은 물이 오르고 하늘은 푸르렀다. 2년 반 동안 사람들의 삶을 옥죄었던 코로나 방역지침은 대부분 해제되어 사람들의 표정도 밟다. 우리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모여 출발했다. 버스는 2시간 반 만에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섰다. 철원 노동당사에서 내린 우리들은 폭격을 맞은 채 박제(剝製)되어 서있는 노동당사를 초점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자유와 평화는 발목이 삐어서 더 이상 뛰지 못했다.

걸어서 약 1km 정도를 가니 국경선 평화학교 신축 부지가 나왔다. 옛 식품공장 건물의 600여 평 부지였다. 그곳에서 밀짚보자를 쓴 정지석 목사를 비롯한 여러분들이 나와서 박수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모자는 예로부터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농부의 신분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정지석 목사의 얼굴에는 만들어지기 않은 친근감이 배어있는 자연산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분단 현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이곳 접경지대에 오면 눈이 반짝반짝해요. 철조망을 바라보고 철조망 너머의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왜 저기는 못 가느냐?’고 질문을 쏟아내죠.” 군인들의 총에 실탄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고 했다. 산교육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곳에 청소년 50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 12실과 교실 3실, 도서실, 미디어 창작실 등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정전선언 60주년이 되는 2013년에 이곳에 왔다. 정지석 목사는 청담동 새길교회에서 사역했다. 새길교회는 3무(無) 교회로 교회 건물이 없고, 담임목사가 없고, 교파가 없는 교회로 당시 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그는 기도 중에 ‘남북통일이 멀지 않았다. 평화를 위해 일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생을 걸고 일할 결심을 하고 철원에 왔다.
국경선 평화학교는 '피스메이커(평화운동가)' 를 양성하는 3년 과정의 대안대학교이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비해서 전문 지식과 능력을 갖춘 인제, 국제분쟁 등의 여러 지역에 NGO활동가로 양성시키는 목표로 활동을 한다. 그는 순순한 민간 기부자 3만 명을 모집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경선평화학교 건물이 준공되는 내년 5월에는 기부자를 모두 초청해 비무장지대 철책을 따라 손을 잡고 노래도 부를 겁니다.” "천 사람의 입이 모이면 쇠도 녹인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시대의 흐름을 한 사람의 힘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꿈꾸고 여러 사람이 그 꿈을 나누고 행동하면 시대의 큰 물줄기는 바뀌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 꿈을 꾸었었다. 아시럽 대륙을 달릴 때였다. 불가리아에서였다. 불가리아 교포 어진이 가진이하고 ‘평화’‘통일’구호를 번갈아 외치면서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이 생각났다. 10만 평화 청소년을 양성하면 한반도 통일은 물론이고 세계평화에도 기여하며 문화 한류와 함께 평화 한류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 내가 꿈꾸었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정지석 목사를 통해서 이루면 어떨까 생각했다.

핵미사일 시험과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서울 불바다 협박과 선제타격론 등 악순환(惡循環)은 반복되고 우리는 늘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잠시 희망이 보였지만 다시 절망의 나락(奈落)으로 떨어졌다. 세상을 한 바퀴 돌면서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험한 산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의 외로운 길을 다 헤쳐 나왔어도 이렇게 앞이 망막하지는 않았다.
이 강고한 부조리(不條理)를 풀 열쇠는 오로지 우리 남북 8천만 동포들의 마음에 있다. 8천만 동포들의 꿈과 희망, 지혜와 역동성을 묶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떤 위대한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으로 해야 한다. 간결하고 생생한 꿈을 꾸는 민족, 꿈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지혜와 역동성이 있는 민족, 뜨거운 가슴을 가진 민족만이 고난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찬란한 역사로 창조할 수 있다. 하여 오늘 국경선 평화학교에 벽돌 한 장을 쌓고 간다.
벽돌 한 장이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를 소원하면서!
국경선평화학교 후원계좌 농협 355-0062-257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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