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잃은 열일곱 살 소녀의 눈물에는 향기가 있다. 오월의 블루릿지 마운틴의 험한 고갯길에 내리는 보슬비에도 향기가 배어난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흘리는 땀에는 희망의 향기가 퍼져나온다. 이 고갯길을 넘으면 이제 동부 해안(海岸)이다. 이 마지막 거친 언덕을 넘어가면 절망과 좌절을 넘어, 고통을 넘어 희망의 해안에 도착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를 태워다 줄 범선이 정박해 있는 곳!
‘하늘의 딸’이라는 쉐난도 계곡은 빗줄기에 실체를 가려 더욱 더 요염(妖艶)한 모습으로 나를 만난다. 인디언들의 이름은 가슴을 울리도록 문학적인 이름이 많다. 보고 느끼고 소원하는 바를 담아 작명을 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땅을 그렇게 여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면서 살다가 죽어서는 그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 묻힐 터이니 그 얼마나 영적인 사람들인가?

인디언들과 대대로 사랑을 나누었던 쉐난도. 쉐난도는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아름다운 곡선과 푸르름과 싱싱함. 사랑을 속삭이듯 간지러운 시냇물 흐르는 소리, 토라져도 예쁜 얼굴 같은 가파른 언덕, 거기에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향기까지. 나는 그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으로 계곡 깊은 곳으로 질펀하게 달리며 ‘하늘의 딸’을 마음껏 희롱(戲弄)한다. 열아홉 살 소년이 사랑을 얻기 위해 그러하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없는 힘까지 다하여 힘자랑을 하며 몽환적인 비내리는 숲 속을 달려간다. 나는 쉐난도가 지금까지 내가 넘어 온 고통과 고난을 알지 못하고 피곤하고 지친 모습에 실망할까 봐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부어 달려본다. 마라톤이 일종의 행위예술이라면 오늘은 관능적인 예술이 되었다.
백일이 넘는 동안 끝없이 달리면서 나의 몸의 열아홉 살 소년의 몸으로 복원(復元)이 되었다. 허리 둘레와 몸무게가 그렇고, 가슴은 그 때보다 더 벌어졌고 하체도 그 때보다 더 발달했다. 머리에 흰머리가 몇 개 더 나오고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생긴 것을 빼고는 나는 열아홉 살 보다 더 열아홉살 같아졌다. 백은 완전 숫자이다. 웅녀(熊女)는 백일 간의 수행을 거쳐 우리의 조상이 되었고, 아기도 태어나서 백일이 지나야 비로서 잔치를 베풀어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한다. 간절한 기도는 백일 동안 치성을 드리며, 부자 중에 부자를 백만장자라고 한다.
내가 그 열아홉 살에 맞는 뜨거운 사랑을 천상의 여인과 나누며 이곳에 눌러산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육체적인 결합이고 최고의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행위이다. 쉐난도와 최고의 사랑을 나누는 기분으로 살다가 그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취한다면 그보다 멋지고 값진 삶이 어디 있을까. 나 여기서 사랑에 빠져 대륙횡단을 중단하고 햇볕 따스한 곳에 통나무 집을 짓고 보금자리를 꾸며도 좋으리다.
나는 천상의 여인의 가슴에 추억의 갚은 발자국과 땀방울을 남기고 정처없이 떠나온다. 나에게는 버릴 수 없는 나의 쉐난도가 있다. 지금은 갈라져 두 조각이 난 나의 조국 쉐난도! 나는 나의 사랑하는 하늘의 딸, 통일조국을 향해 달려간다. 지금껏 내가 달려온 것보다 더 많은 시련과 고통과 고난이 닥칠지라도 나의 골인지점 통일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달려갈 것이다. 사랑을 잃은 열일곱 살 소녀처럼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잃은 열일곱 살 소녀의 눈물에는 묘한 향기가 있다. 쉐난도 계곡 도처에 있는 와이너리의 잘 익은 포도주 향이 퍼져나온다. 통일을 향해 달려가며 흘리는 눈물보다도 포도주보다도 진한 땀의 향기가 하늘 아래 끝없이 펴져나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