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 글에서 중동 여러 나라의 모순, 외부인으로서 느낀 당혹감 등은 누굴 비방하거나 비하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단지, 이 지구상에는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가 존재하고 얽히고 설킨 실타래같은 문제들이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그것들이 언젠가는 인류의 지성에 입각한,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 있는 상태로 통일되었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문명의 충돌에서 야기(惹起)되는 이라크 전쟁, 아프칸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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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을 떠난 스위스항공 여객기는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조국을 떠나 유랑길로 들어가는 이란 사람들을 태우고 첫 기착지 시리아 다마스커스를 경유해서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였다.
첫 목적지를 스위스로 생각하고 그 어려운 Visa를 받게 된 경위 또한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아는 분이 스위스 UN 대표부(뉴욕은 정치 문제, 제네바는 경제문제 담당)에 근무했던 관계로 그곳과 주고 받은 여러 통의 서신을 첨부해서 발급 받게 되었다.
외국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취리히 공항에서 제네바 행 비행기로 바꿔 타야 하는데 공항이 위낙 복잡해서 머뭇거리다 시간이 지체(遲滯)됐다. 출발시간이 임박해서야 Gate를 확인하고 그곳까지 온 힘을 다하여 뛰어 갔더니 문을 닫자마자 항공기가 이륙했다.
지금은 조종사가 되어 항공기의 이착륙 과정을 소상히 알게 되었으나 그때 제네바 공항에 착륙하는데 옆만 볼 수 있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꽉 막힌 산속의 눈밭으로 들어가는 기억만이 아물거린다. 스위스는 역시 산의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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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이 올망졸망 딸린 초라한 동양인 일가족이 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제네바 공항에 도착했으니 서양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곳 공항에서 우리 가족을 맞아주신 분은 대한민국 외교관으로 그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사로 활약하며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지금은 은퇴해 노후(老後)를 보내고 계시는 신효헌 대사님이다.
세계 제2위 산유국 호텔에 난방이 되지 않아 방마다 하나씩 넣어주는 손바닥만한 전기 히터로 지새웠던 테헤란의 수많은 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 타오르는 관공서, 호텔 옥상에 올라가 바라본 데모 군중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무장 헬기, 유년기(幼年期)에 겪었던 먼 세월속의 기억들인 한국전쟁의 참혹함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가족을 테헤란에 남겨두고 퇴직금과 잔여급여를 받으려 야간 버스를 타고 14시간 만에 도착한 타브리스 공군기지에서 다시 시내의 은행에 환전하러 갈 때 맞닥뜨린 성난 데모 군중의 정면충돌, 삽과 곡괭이, 쇠몽둥이 등을 들고 호메이니 초상화를 앞세우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함성을 지르는 그들과 만났을때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싸였다.
그때 나를 태워준 이란 공군 친구는 염려하지 말라며 Seat 밑에서 호메이니 사진을 하나 꺼내더니 차 전면 유리창에 붙였다. 대부분 시골 출신인 데모대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털이수북했고 그 모습에 질려 눈을 감고 있는데 유리창을 손으로 치며 흔드는게 아닌가.
약간의 안도감이 생기며 나도 그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까지 하였으나 데모대들을 통과하는 약 10여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은행에 도착하여 Iran공용 수표를 미화로 환전하려 했으나 달러는 하나도 없단다. 할 수 없이 전 금액을 영국 파운드화 Traveler's Check로 환전하고 다시 야간 버스편으로 테헤란에 도착 했었다.
그토록 막막한 긴장감 속에서 오지(奧地)를 떠나 드디어 문명세계로 돌아 왔다는 안도감에 싸여 불안감이 사라지고 오랫만에 조그마한 행복감이 나의 가슴에 스며드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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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이 아름다운 레만 호수와 알프스 산맥이 바라다 보이는 아담한 호텔에 여장(旅裝)을 풀고 우리 가족은 거의 한달만에 달콤한 숙면에 들어갔다.
다음날 일어나 샤워를 하려고 욕조의 온수를 틀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로 문의했더니 목욕탕 문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란다. 세계적인 관광대국 스위스가 그토록 에너지 절약에 앞장 서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 기억이 잔잔한 감동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