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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슬픔 두번의 이별(下) 남아공의 장례문화

글쓴이 : 최경자 날짜 : 2011-11-24 (목) 05:16:39

앨리의 엄마 죽음을 통해, 조카 지현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스티나는 엄마 없는 지현이를 참 안타까워 했던 좋은 친구였다. 먼저 엄마를 잃은 지현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앨리를 많이 위로 해주었을텐데….

조카 지현이와 지환이는 제부(弟夫)의 갑작스런 직업 문제로 지난 6월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더 체류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제부는 애들 유학을 포기해야 했다. 갑작스런 귀국은 외국에서 홈스테이 하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겪는 당혹감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에 불이 났어도 쓰러지지 않았지만 조카들이 갑자기 떠난후에는 근 한달을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화재로 인한 복구도 채 되지 않은 힘든 상황에서 말이다. 주방이든 방이든 어디에 있어도 이모! 하고 당장이라도 웃으며 뛰어 나올 것 같은 애교 만점의 지현이 모습이 눈앞에 서렸다.


▲ 지난 3월 영화촬영장에서 수빈이 상연이와 함께 한 조카 지현이(오른쪽)

케어하기에는 인내심이 필요 했던 지환이 역시도 왜 그렇게 보고 싶고 그리운지정말, 밉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혼자서 말을 했다. 사랑한다.. 지환아, 지현아..여기 있을때도 그렇게 말해 보지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 미안했다.


▲ 지난 2월 론데보쉬 프렙스쿨 9학년이던 조카 지환이(가운데)가 친구들, 상연이와 함께 한 모습

주방에서 짐 정리 하던 나는, 결국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우리 애들이 모두 놀래서 다가와 앉아 주었고 다 같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죽은 동생을 잊기 위해 조카들까지 데리고 한국을 떠나 왔건만 제부는 지금까지 6년을 함께 한 조카들을 일방적인 통고로 데리고 갔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연말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도 매정하게 자르며 여기까지 와서 데리고 가버린 것이다. 집이 불이 나서 아직 정신도 못 차린 상태였다.

이제는 새엄마가 있으니.. 잘 키워 주겠지만 어떻게 두번의 슬픔을 나에게 주고 가는지…. 몇개월 동안은 섭섭함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한 동안은 두번의 슬픔을 주었다고 잠시 죽은 동생까지 원망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충분히 이해를 하게 되었다. 훗날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였던 것이고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현아, 지환아 새 엄마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나는 결혼식은 가지 않더라도 장례식을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날 즈음 한국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임순옥 집사가 누구냐? 는 것이다.

일주일 전에 부고(訃告) 메시지를 받았는데 누군지를 몰라서 못 갔다는 것이다. 가족에게도 똑같은 메시지가 왔지만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가족들은 은경이 엄마라고만 알았던 것이다. 그 엄마는 정말 친하게 지냈던 언니였다.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며칠전 통화할 때에만 해도 가족끼리 식사를 하고 있다는 유쾌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남아공 크리스티나 장례식에 있던 날, 그 언니는 한국에서 운명을 같이 했던 것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에서 내 몸이 느꼈던 것일까. 비록 크리스티나 장례식에 있었지만 두 사람을 위한 장례식 자리였던 것이다. 집에까지 찾아가 앨리와 밴자민을 만나 위로하고 앉아 주었던 것이 마치 은경이와 보경이를 만나 같이 울어 준 것 같았다.

가족 모두가 연락 받았지만 누구의 부음(訃音)인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 날 나는 크리스티나의 장례식을 조용히 지켜보며 미소보다는 눈물을 택해 하루 내내 슬픔에 차 있었다.

‘언니, 잘 가세요.. 그리고 하늘 나라에 가면은 꼭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니가 마지막으로 원하던 남아공 방문을 은경이 보경이가 단기 유학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울께요. 사랑합니다. 편안히 눈감고 하늘나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티나, 잘 가세요. 만나서 정말 행복하였고 유익한 남아공 생활을 도와주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앨리와 밴을 학교에서 한번씩 보면은 크리스티나 대신에 뽀뽀해 줄께요. 하늘나라에 가면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은 우연하게도 같은 운명이다. 오래전에 이혼해서 혼자서 애 둘을 양육하고 살았다. 그리고 한사람은 지병으로, 또 한사람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나이까지도 비슷하다.


▲ 지난해 할로윈데이때 즐거워하던 크리스티나  

 

오늘 아들, 상연이의 론데보쉬 프라징 데이(상장을 주는 날)에 참석을 했다. 마친 후, 다과를 먹고 있는데 크리스티나 언니가 와줘서 고맙다.면서 필자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아시아인이다보니 쉽게 눈에 띄었나 보다. 오히려 내가 그 가족을 전혀 못 알아 본 것이 미안했다.


▲ 크리스티나 언니와 친정엄마와 함께 

캐나다에서 두 언니와 친정 엄마가 와 계셨다. 이달말에 돌아간다고 하는 그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눈시울을 적셨다. 크리스티나처럼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쳤고 늘 활기차 보였지만 한국의 정서와 같이 그들도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비록, 문화의 차이로 장례식은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치러졌지만 그 슬픔은 한국이나 남아공이 같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슬픔을 왜 이해 못하랴. 나 역시 의료사고로 어이없이 동생을 잃었는데…. 그렇게 남은 자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 설 것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정말 보람되고 최선을 다하며 후회없는 나날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항상 이웃을 사랑하며 덕을 베푸는 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 한국서 큰딸 현주의 초등학교 졸업식때 은경엄마(왼쪽 두번째)와 함께 한 모습


* 지난해 7월 언니의 이야기를 칼럼에 실었습니다. 그로부터 석달이 지난후 언니가 댓글을 달았더군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http://newsroh.com/technote7/board.php?board=cckj&page=2&command=body&no=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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