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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소녀가 가라데 대표가 된 까닭은

글쓴이 : 최경자 날짜 : 2011-10-08 (토) 13:38:16

남아공의 축제인 부라이 데이와 함께 헤리티지 데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趣向(취향)이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미식가라면 바닷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또는 야외에서 부라이를 마음껏 즐길 것이다. 예술가들은 박물관, 트레치코프 작품 전시회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나는 큰딸 현주의 프로젝트 관계로 어쩔수 없이 트레치코프 작품 전시회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전시회는 말할 것도 없고 이날 너무나도 많은 볼거리와 좋은 풍경으로 두 시간을 할애해서 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서 못내 아쉬웠다.

   

사실 이날은 가라데 국가 대표 선발전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둘째 딸 수빈이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사이 잠시 짬을 내어 큰딸과 함께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날씨가 아름다울 수 없었다. 경기장에만 있었다면 이 아름답고 좋은 날에 구경 못했을 것 생각하니 새삼 우리 딸이 고맙기도 했다. 그 중요한 시합중에 나왔기 때문에 더 구경을 오래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9살인 아들은 배가 고프다고 빨리 오라고 성화였다. 그렇담, 시합을 하고 있는 수빈이는 또 얼마나 배가 고파 힘들어 할까 생각하니..발길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7시30분부터 시작된 시합은 저녁 8시30분이 되도록 거의 12시간 이상 진행되고 있는 체력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딸은 긴장때문인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음료수만 연거푸 마시는 것이다.

그렇게 집에 오니 10시가 다 되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가 지쳐 그 맛있던 립(갈비)과 스테이크는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평소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을 먹었건만 아들 상연이 포함 가족 전체가 반도 채 먹지 못했다.

  

▲ 관중들 앞에서 직접 품새 시범을 보이는 관장들


사실, 이번 시합이 중요했던 만큼 새벽과 밤낮으로 훈련에 들어간 관계로 가족 모두가 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었기때문에 혼자 시합이 아닌, 가족 모두가 잠을 설치며 훈련에 들어 간 것이다.

한달 전부터 본 수업 외에 별도로 수빈이는 1:1의 센세이(관장) 특별 교습을 해주었다. 특별히 체력 보강과 克己訓鍊(극기훈련) 차원에서 약 2주전부터는 새벽에 한 시간이상 러닝과 품새 연습, 낮으로는 출전 종목인 유니슨 연습(3명으로 구성된 팀)을 해야 했고 밤으로 어른들과 함께 또 품새 연습과 겨루기 연습을 해야 했다. 하루 반 나절 이상은 가라데에서 살다시피 한 것이다. 아트 숙제와 시험 기간과 맞물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다.

 

▲ 품새를 하고 있는 박수빈

큰 딸 역시 새벽 시간에는 같이 투입이 되어 연습했다. 끝나는 시간 맞추어 아들과 나는 때로는 차에서 시간에서 보냈지만 거의 짐(Gym 운동센타)에서 간단한 운동 또는 샤워를 하고 나왔다. 현주, 수빈이 두 딸은 운동이 끝나고 바로 샤워를 마친 후 곧장 학교로 갔다. 그리고 집에 오기 무섭게 수빈이는 가라데 도장에 가서 밤이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일을 한달 가까이 했으니… 피곤이 오죽하랴.

시합이 끝난 주일은, 주일 예배 역시 얼마나 피곤했던지.. 졸음이 계속 와서 어쩔줄 몰랐던 것같다. 나 역시 애들 뒷바라지 그러니깐, 도시락과 아침을 먹게 하려면 새벽 4시나 4시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시합에서도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수들은 강철 체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워낙 유년시절부터 전체적으로 운동이 잡혀져 있어 체력적인 면에서도 아시아인 보다 월등히 강하다.

그러면을 보았을 때, 수빈이가 국가대표가 된 것은 정말 잘 싸운거라고 남편이 칭찬을 해 주었다. 수빈이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를 든다면 한국에서 유치원 시절부터 태권도를 8년이상 해왔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오고나서도 태권도를 몇 개월 했지만 사범이 멀리 이사를 해버렸고 결국엔 남아공을 떠나 버렸다.

 

▲ 가라데 국가대표 증서

태권도를 하고 싶었지만 배울 도장은 없고 반면 가라데는 이곳에서 아주 대중화된 것이어서 고민 끝에 가라데 도장을 두드리게 되었다. 知彼知己(지피지기)면 百戰百勝(백전백승)이라고 이번 기회에 가라데의 장단점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사명감같은 것이 생기며 더 의지가 단단해졌다.

 

▲ 가라데 초단증

그래서 시작하게 된 가라데를 아이들이 5년 째 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쳐서 아쉬웠지만 3종목에서 은메달 두개와 동메달 하나를 받았다. 내년 미국서 열리는 가라데 세계선수권대회에 남아공 대표로 출전 자격을 얻은 것이다.

 

▲ 은메달을 수상한 수빈이

이 날, 금메달을 쥔 현지인 아이는 비록 운동 경력은 수빈이보다 짧지만 마치 인생을 가라데에 바쳤다고 할 정도로 열심이고 매일같이 사범과 함께 연습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가라데 도장에서 보내다보니 태권도와 비교되는 점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엄격한 룰과 체계적인 조직, 가라데 세계엔 일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전통과 문화가 고스란히 엿보인다.

 

▲ 남아공 가라데 8단 크리스 톰슨 (Chris Thompson)

또한 큰 시합장에 가면 사범, 또는 관장(도장)이라고 해서 절대 경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장년부 파트가 있어서 그들 역시 선수로 임하는 도전정신을 보게 된다. 협회장급(남아공 최고 일인자)이라고 해서 도복을 벗지 않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제자들과 관객들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오점을 잡아 주기도 한다.

 

▲ 수빈이가 다니는 도장의 관장 브루스 사범(Sensei Bruce)

그리고 격려와 사랑도 빠지지 않는다. 많은 관중속에서 일일이 학부모와 악수, 또는 옆에 스쳐만 지나가도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한다. 권위와 카리스마를 가지면서도 잔잔한 사랑과 품위를 느끼게 한다. 어디서든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직접 한 수를 가르쳐 주는 모습은 진정한 大家(대가)의 面貌(면모)를 느끼게 한다.

관장과 사범들도 항상 시합이 있기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합을 통한 실력의 순위가 나오고 도장의 랭킹도 절로 나온다. 승부에 인정하는 자세와 자신감과 긍지를 엿볼 수가 있다. 날마다 실력을 연마, 연구해야만 인정받는 가라데 도장이 되는 것이다.

랭킹은 밥줄과 관련이 되어 있어서 예민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언짢은 일임에는 틀림없건만 모두가 자기 관리, 연습이 없으면 언제나 도태되는 것을 이미 그들은 관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장이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怠慢(태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을 무척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자기 관리, 자기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와 영예를 얻기만 하면 전직을 버리든가 좀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바꾸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움을 느낀다. 물론, 더 이상의 고된 훈련을 벗어나 편안하게 쉬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데 이들은 밥벌이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닌 운동이 좋아서 평생 즐기면서 살아가는 스포츠맨의 정신을 갖고 있다.

 

두번째로 놀란 것이 있다. 한국에서는 두가지로 인격를 평가한다. 두뇌형의 공부를 잘 하는 아이, 공부가 아니면 운동을 잘 하는 아이. 그렇다 보니 대부분 운동쪽에 속한 아이들은 공부는 못한다고 인식이 되어진 것 같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처럼 남아공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운동 상위권에 오르게 되면 강한 체력 테스트는 필수적이고 에세이 실력도 필수이다. 에세이 내용은 운동, 가라데를 바라보는 관점, 왜 운동을 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등등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학생들의 몸과 마음, 정신세계를 보는 것이다. 운동도 잘해야 하지만 기본적인 문장력이 있는 영어 실력이 缺如(결여)되면 탈락이다. 블랙벨트로 승단하려면 에세이 문장력, 설득력, 마음가짐도 함께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수빈이는 가라데에서 초등부 보조사범으로 있다. 그리고 2012년 World Championship 을 위하여 미국에 가게 된 수빈이의 꿈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일 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한국을 알리고 싶어 하는 열의가 가슴에 가득하다.

약자를 위할 줄 알고 강자 앞에서는 당당해지는 정신 또한 운동에서 나온다고 스스로 말한다. 항상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는 수빈이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 엄마로서 대견한 딸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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