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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체스열기(下)

글쓴이 : 최경자 날짜 : 2011-07-01 (금) 23:23:23

 

‘2011 Western Province Closed Championships’ 대회는 South Africa 국가대표(國家代表)팀의 선수를 발탁하기 위한 최강자(最强者)를 뽑는 첫번째, 승부의 날이다. 두 번째는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치열한 결정전(決定戰)이 열리게 된다. 양 대회 전적으로 선발되면,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스페인으로 날아가 남아공 대표로 출전한다.

이름과 내용 면에서는 큰 대회이지만 한국의 경기도에서 열리는 바둑 대회 정도로 생각을 하면 될 것 같다. 어쩌면 최강자전이기에 때문에 Top 10에 들어 간 선수들만 모여서 많지 않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등학교 3학년인 상연이가 취미로 체스를 시작 할 때만 해도 이 자리까지 올 줄은 몰랐다. 학교 체스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경기도 나가야 한다고 신청서를 받았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받아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부만 하면 되지..무슨 체스 경기를.. 별 관심 없이 지나쳤다.

그러니까 1년 전, 단골로 가는 치과 병원에는 항상 체스 보드가 놓여져 있었다. 하루는 상연이와 그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체스 보드에 관심이 있어 하는 상연이를 보더니 의사선생이 “체스 둘 줄 아니?”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체스 보드를 꺼내더니 상연이와 한 게임을 두고 복기(復棋)까지 해서 왜 졌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진료 중에 환자와, 그것도 꼬마 손님을 한가롭게 붙들고 체스 게임을 하다니.. 그리고 한 수 한 수 일러주면서….

“다음에 올 때, 또 한 판 두자..”하며 여유롭게 진료 업무를 보는 그들은 일하는 현장(現場)에서도 삶을 즐기는 것 같다. 그들의 친절함은 오랫동안 몸에 배인 삶의 여유이다. 정말 이런 문화는 배우고 싶다.

그 후 병원 갈 때 마다 그 의사로부터 조금씩 체스를 배워서 왔다. 어느날 의사 왈, “상연이는 체스 코치가 필요하다” 는 것이다.

 

▲ 상연이에게 체스의 길을 안내해준 단골치과의사이자 전 체스 챔피언 

알고보니 이 의사 분도 과거의 챔피언이었고 지금도 대회에 출전하며 챔피언 복귀는 노리는 고수였다. 항상 큰 대회에는 빠지지 않는단다. 자기 아들도 꽤 체스를 잘한다고 미소를 머금으면서 답한다.

그렇지만 나처럼 반쪽(?)의 부모는 체스 코치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즈음에 학교 extra 선생님과 연결이 되어 솔로몬 코치를 소개받아 8개월째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솔로몬 코치 역시 챔피언 경력이 있다.

 

▲ 체스 코치 솔로몬과 함께 한 상연이와 사촌형 지환이

지난 5월에 웨스턴 프로빈스 선발 학교 대항전이 열렸다. 여기에서 Top 10에 들어가면 학교 대표로 George(조지)에 가게 된다. 케이프 타운에서 차로 4시간쯤 걸리는 곳이다. 각 도시의 학교에서 내로라는 체스 선수들이 모두 참가하는 대회였다. 운동장 같이 넓은 홀을 빌려서 열리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한국인 엄마 2명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학교에서 항상 대표로 다닌다는 학생들이었다. 상연이는 이 대회에서 4위를 했다.

 

▲ 서있는 사람들은 체스감독들이다. 오른쪽의 체스감독 아들이 상연이와 경기하고 있다. 

많은 대회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GPS를 차에 설치해야 할 정도로 지리에 밝아야 쫓아 다닐 수 있다. 아직 나는 길치인데도 GPS가 없다. 영국의 영향을 받아선지 한국보다는 교통체계, 도로, 신호등 환경이 기본적으로 잘 되어 있다. 웬만하면 주소만 들고 쉽게 찾아 갈 정도이다.

그래도 새로운 곳을 가다보면 길 잃어버리는 일도 자꾸 나오기 마련이다. 위험한 흑인마을에 들어가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기도 하고, 그래도 다행한 것은 항상 게임 시작하기 전에 도착을 했다. 체스 대회는 바둑과 같이 게임 시작 전, 상대방이 공석(空席)이 되었을 때는 30분의 웨이팅 타임(WAITING TIME)을 준다. 그리고도 오지 않으면 자동으로 승자가 되는 것이다.

 

▲ 웨스턴프로빈스팀에 빠지지 않는 단골선수 1학년 아미나

대회에 참가하다 보면 자녀들을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밀어 주는 가족들을 많이 본다. 마치, 체스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양 보이기도 한다. 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학교는 체스 경기 시설이 잘 된 학교이다. 체스 게임을 하는 모습을 밖에서도 볼 수 있도록 유리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 경기가 열리는 곳엔 항상 체스 물품을 판매하는 부스가 있다.

 

▲ 학교 매점에서는 점심과 간식류를 판다.

체구가 나의 세배는 됨직한 한 엄마가 밖에서 두 손을 모으며 기도 했다가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힘을 실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푸칸의 엄마는 체스를 마치 자기가 하는 양,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하고 끄덕대기도 하는 것이 마치 아이와 한 몸이 되어 체스를 두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상연이를 경기장에 데려다 주는 것만으로 사명을 다한 택시 기사에 불과한 엄마였다. 푸칸의 엄마는 무슬림계 르하나인데 나와는 유일한 체스 친구가 되었다.

  

▲  대회 안내문과 경기 일정표 

그 엄마를 통해 체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같은 론데보쉬(Rondebosch Boys Preparatory School) 학부모이고 비슷한 또래였기 때문이다. 집도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모르는 길은 안내받기도 하고 같이 동행하기도 했다.

르하나의 가족 친지들은 케이프 타운의 체스 단체 임원도 맡고 있는 체스 매니아들이다. 체스에 모든 것을 건듯한 가족이다. 르하나는 잘 나가는 교수이고 남편은 변호사이다. 푸칸의 사촌, 룩만의 아버지는 의사로 부유층 무슬림들이다. 남아공에서 상류층은 백인과 무슬림계 사람들이 많다. 체스 같은 두뇌 스포츠는 무슬림계 사람들이 많음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푸칸은 당연히 체스를 잘한다. 론데보쉬 전 학년(G1~Gr7)의 체스 A팀에서 2위를 지키고 있고 4위가 상연이, 5위와 6위는 푸칸의 사촌 룩만과 압두하버이다. 론데보쉬는 웨스턴프로빈스는 물론, 남아공에서도 최고의 공립 명문학교 중 하나이다. 체스와 수학,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輩出) 된다.

 

▲ 챔피언들이 겨루는 체스 게임장

체스 랭킹은 학교 대항전에서 얻은 결과로 평가된다. 그래서 순위는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다. 르하나의 딸, 1학년 아미나는 웨스턴프로빈스에서 항상 메달을 받을 정도로 똑똑하다. 가족들은 한 명만 빼고 모두 웨스턴프로빈스 팀에 소속이 되어져 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연이가 만약 학교에서도 넘버원의 선수가 된다면 그때도 이들이 나와 깊은 유대관계를 갖고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누가 먼저 챔피언이 되느냐라는 치열한 경쟁을 그들의 가족사(家族史)에서도 엿 볼 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염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4월부터 상연이가 학교 체스 A팀에서 줄곧 1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푸칸은 3위, 나머지 사촌들은 5, 6위 순이었다.

체스팀에서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2학년이나 3학년이 1위로 표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은 아이들을 리드하는 캡틴은 5학년 이상이 맡기 때문에 공식적인 1위는 어린 학년을 배제한다. 그러나 성적으로는 상연이가 1위인 것이다.

 

5월에 치른 학교 대항전에서 선발된 학생들이 George(조지)에 가기 위해 있었던 일이다. 선수들을 조지에 보내기 위해 버스, 호스텔과 식사 포함한 모든 것들을 예약(豫約)을 해야 했다. 먼 곳에 상연이만 보내기에는 안쓰러워 WPH chess 담당자이기도 한 푸칸의 아버지 Madri에게 이메일로 물어 보았다.

“혼자서 보내기가 걱정되는데 직접 데리고 가자니 길을 모른다.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냐?” 그랬더니 “no space in the bus.(버스에는 자리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이다. “당신 가족은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따로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한다. 상연이 혼자 보내도 될 정도로 안전하냐는 질문에 “걱정하지 마라, 거기에는 부모 없이 오는 아이도 있고 매니저 7명이 인솔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남편은 “상연이도 이제 스스로 할 나이가 되었다고 혼자 보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상연이 혼자 가는 것으로 돈을 송금하고 예약을 끝냈다.

그렇게 포기하고 한참 지난 뒤였다. 체스 코치가 집에 들렀다. 그에게 예전에 조지에 가는길을 물어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코치가 집에 오자마자, Chess Team이 가는 버스가 있다고 전화번호, 이름까지 적어 주는 것이다. 상연이랑 같이 가라고. 그날 담당자와 통화가 되지 않아서 ‘버스를 이용하고 싶다, 전화해 달라’는 SMS(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메일이 왔다. 엉뚱하게도 Madri, 푸칸의 아버지였다. 자리가 없다고 해서 상연이 것만 송금하게 했던 그 사람이다. “지금 조지에 가는 버스를 예약 할 수 있다”고 송금을 하라고 한다. 급히 호스텔과 식사비를 포함한 경비를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했다. 마드리는 그 위의 매니저를 통해 나를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내가 언어가 부족해서 오해를 한 것일까. 고의가 아닌 실수였겠지라며 좋게 생각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들려 만든 유일한 친구와 그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았다. 사실 질투심이 약간 있어 보이는 룩만 엄마는 나에게 가끔 물어본다. 한국에는 언제 돌아가냐고. 왜 궁금한 것일까. 떠나는 날 알았는데 그 가족 모두 Chess Team 버스로 가는 것이다.

 

▲ 푸칸의 아빠와 엄마

다음날, 푸칸의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려고 기다리는 나를 피한다. 어렵게 나는 눈을 마주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웃고 지나치는 것으로 끝냈다. 한 마디도 말 못하는 벙어리인 채.

남의 나라에서 남편도 없이 혼자 사는 아시안 엄마가 그들 보기에는 한 없이 힘없고 약한 자로 보일 것이다. 그룹의 강자들 속에서 소통도 잘 안되는 한낱 기러기 엄마에 불과한 내가 그들에게는 외롭게 피어 있는 들판의 꽃 한송이에 불과할 것이다. 한번만 꺾어버려도 쓰러지고 넘어지는 그런 존재.

솔직히 슬프다. 이렇게 혼자서 외롭게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 슬프다. 상연이는 이번 대회에서 공동 3위를 했다. 아빠가 옆에 있다면 코치가 되어 주고 매일 같이 한 수를 가르쳐 줄텐데. 상연이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 상연이 아빠는 아마추어 바둑 9단이다. 옆에 있다면 큰 힘이 되어 줄 아빠인 것이다. 그나마 사촌 형, 지환이가 같이 있어서 외로움을 달랬건만. 이제는 그 사촌도 곧 떠날 예정이다.

 

▲ 노장 챔피언과 체스를 두는 지환이

나는 체스를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상연이를 낳고 한 동안 바둑에 빠진 적이 있었다. 노후에 남편과 바둑이라도 둘까하고 배웠던 것인데 어찌하다보니 바둑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바둑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여동생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동생은 갑자기 의료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이다. 그때 그 충격으로 바둑과는 인연을 끊었던 것이다.

여기 남아공에선 애들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장소에 부모가 있더라도 절대로 눈을 떼지 않는다. 치안이 불안하고 많은 유괴, 납치 범죄가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Missing Child(잃어 버린 아이)” 라는 뉴스를 많이 접한다.

모든 학교에서는 경비원이 한 두 명이 항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학교에서 부모가 오랜 시간 동안 올 수 없는 경우는 부모 사인을 받거나 도서관으로 데리고 가 보호를 한다. 언제 어느 때 아이가 범죄 대상으로 노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 이번 대회에서 공동3위를 한 상연이의 성적표

기러기 엄마가 언제까지 상연이를 서포트 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챔피언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 위험하다. 아빠도 안 계시는 먼 외지(外地)에서 상연이가 홀로 설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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