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하게 비치는 햇볕은 온 방과 거실 곳곳을 아침이 왔노라고 어김없이 인사를 한다. 길게 늘어진 소파에는 환한 햇살이 하루내내 머물다가 떠나기가 아쉬운 듯, 곳곳을 따스함으로 덮여주고 간다.
향긋한 커피 한잔을 따스한 햇살과 벗 삼아.. 한 모금 한 모금 음미(吟味)해 본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이 햇살은 진정 생명과 희망을 공평하게 전해준다. 그 간의 남 모를 고생을 다 이해하듯 포근하게 속살거리며 감싸준다.
진정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4년여 동안, 조용하지만 밝지 않은 클래식 톤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방들은 그래도 낫지만 많은 생활이 이루어지는 거실은 어두운 편이었다. 큰 딸이 이사 가자고 불평 할 적에도 정이 들어서 그냥 눌러 앉아 살아 왔던 것이다.
오늘 얘기하는 햇살은 비단, 그 햇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11년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고 힘들었던 해였다. 끝이 없어 보였던 어둠의 긴 터널은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만큼 위협적이었고 난생 처음 “좌절” 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자신감(自信感)을 송두리째 상실할뻔한 해였다.
몸이 무거워서도 아닌데, 마치 토박이라도 된듯 정을 중요시 생각하고 안주(安住)하며 15년을 한 집에서 살았다. 마찬가지로 남아공에 와서도 렌탈임에도 불구하고 내 집 같이 한 집에서만 4년 6개월을 살아 왔던 것이다.
▲ 앞에 보이는 곳이 새로 이사온 플랫(아파트)
지금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이 따스한 햇살은 남아공에 온 이래로 처음 맛보는 여유로운 삶의 향유이리라. 이삿짐도 다 풀기 전에 남편이 일주일, 한국의 친구가 3주일 머물다 가는 바람에.. 정신없이 한 달이 또 갔다.
그리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뭉게구름은 나의 마음을 말해주듯 솜사탕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두둥실 떠간다.
▲ 테이블마운틴 위로 구름이 정처없이 떠간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조용한 시간,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기대 앉아 헤이즐넛 향기가 감도는 커피를 맛보며 책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이 여유.., 정말 꿈만 같이 행복하다.
즐길거리도 많고 여유롭게 구경할 것도 많은 아름다운 케이프 타운에서 혼자서 세상 고민을 다 껴안고 사는 양 뭘 그렇게 바쁘게 허둥대며 살아 왔는지..앞만 보고 살아온 시간을 잠시나마 남의 일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본다.
그런데.. 왜그렇게 낯설어 보이는지..모르겠다. 특히 지난 일년여 동안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어깨를 짓누르고.. 하는 일마다 꼬이고 힘들었는지.. 마치 사탄이 내 주변의 모든 일을 간섭이라도 하듯 내 뜻과 달리 흘러가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집에 불이 난 것은 그 많은 시련(試鍊) 가운데, 한가지 사건에 불과 한 것이었다.
이 집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져 왔고 몸의 모든 기(氣)는 다 빠져 나간 듯했다. 과로로 인해 정신은 혼미(昏迷)해지고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이사를 오기 전까지도 그 집은 6개월이 지났건만 화재로 인한 공사가 덜 끝난 상태였다.
▲ 클레이먼트에서 살던 하우스. 이사올때까지 화재사고 뒷수습 공사가 계속됐다
일생에 있어서 ‘포기’란 단어를 모르고 살아왔지만, 유학을 포기해야 할 성 싶은 두려움까지 들게 했던 악몽의 일년이었다. 산 넘어 산.. 그렇게 많은 산을 넘고 보니.. 멀고 먼 곳, 청정지역에서 부는 맑은 공기와 바람, 그리고 햇살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바로 이런 것일까.
작년 12월1일에 우리 가족은 이른바 ‘좋은 동네’로 불리는 쾌적한 지역, 론데보쉬(Rondebosch)에 있는 플랫(flat, 아파트형)으로 이사를 왔다. 비록, 집은 작지만 이사 온 이래로 온 가족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형언(形言) 할 수 없다.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기에도 부족한 날들이다. 이제는 몸의 컨디션도 정상이고 깊은 잠에서 깬 듯 쾌적함이 온 몸을 생기있게 해준다.
기러기 엄마가 하우스(정원 또는 수영장 딸린 넓은 주택)에 살기에는 부적합했던 탓도 있었다. 작고 아담한 아파트형 플랫은 여러모로 많은 잡일과 경비를 절감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애들의 페치가 제일 큰 관건(關鍵)인데 지금은 모두 걸어서 등교를 한다. 두 딸들은 걸어서 1~2분 거리이다. 막내 상연이는 나와 함께 10분 정도 걸어서 등교한다. 이참에 운동하는 셈이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도보 등교인 것이다.
▲ 유치원으로 향하는 여자아이와 엄마, 동네 공원 커먼에서
페치에서 해방된 것이, 제일 큰 이점을 준다. Travelling time(차 타는 시간)이 없어서 애들이 하루 한끼를 더 먹게 되었고 적어도 하루에 두시간 이상 차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졌다. 차 운행이 많이 줄어 시간, 체력 소모, 경비도 많이 절약이 되었고 패스트푸드 비용도 자연적으로 줄이게 된 것 같다.
조카 두명은 작년 6월말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덩치 큰 집에서 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우리 가족끼리만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살아 본지가 결혼한 이후로 처음이다.
▲ 등교하는 상연이 왼편으로 나가는 차량들이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여지껏, 시댁에서 큰 집조카들과 함께 4년, 분가하고 나서는 홀로된 언니와 6촌 여동생과 함께 7년을 거주했고 하늘나라로 간 여동생 애들을 한국에서, 남아공에서 6년을 돌보면서 살아왔다. 지금, 조카들도 새 엄마를 만났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항상 북적북적, 대가족 속에서 살다 보니, 혼자서 조용히 차 한 잔 마시며 누리는 여유(旅遊)를 항상 꿈으로만 동경했는데 이제는 현실이 된 것이다. 누구나 누리는 이 평범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나에게는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긴 잠을 푹 자고 난 듯한 이 화창한 이른 아침에, 이 모든 행복(幸福)을 주신 하나님께.. 오늘도 조용히 감사하며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련다.
▲ 1분만 더 걸어가면 왼쪽에 로스텐버그 하이스쿨이 있다.
인생의 길
우리의 인생에서 길을 가다가
부딪혀 넘어지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누구나 넘어지기 마련이지만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서
뛰어가는 사람이 있고,
계속 주저앉아서
울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흐르는 저 물은 장애물을 만나도
언제나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바위를 만나면 한번 부서졌다가도
다시 돌고 돌아서 흘러간다.
길이 없으면 때로는 없는 길을
만들면서 나아간다.
<출처 일지 희망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