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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범의 ‘We are America
90년대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에 도미,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있다. 그동안 여타 이민자들처럼 자영업, 회사생활 등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한편 94년부터 커뮤니티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 활동가의 시각으로 본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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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이민살이...지친 가슴을 위무하는 노래

글쓴이 : 차주범 날짜 : 2011-02-27 (일) 11:09:51
제목 없음

뉴스로의 필자로 참여하면서 주로 딱딱한 주제로 글을 써 왔다.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이 직면한 심각한 사안들이 널린 탓이다. 그러다보니 다소 부하(負荷)가 걸린, 정색을 하고 쓰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오늘은 조금 부드러운(?) 주제로 글을 한 편 써 보기로 하자. 뉴욕에 이십여 년 가까이 살며 괴로울 때나 슬플 때 또는 힘들고 외로울 때 흥얼거리던 노래 두 곡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평생 노래를 부른다. 기뻐도 부르고 슬퍼도 부른다. 엄마의 자궁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며 우렁차게 한 번 목을 푼 다음부터는 밥 숟갈 놓고 요단강을 건널 때까지 노래를 부른다. 특히 한국인들은 노래를 부르려는 집착이 대단하다. 그 결정체가 바로 어제도 오늘도 성업중인 노래방이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어둠컴컴한 골방에 틀어박혀서까지 노래를 불러제껴야 하는 종족들이 한국인들이다.

노래를 부르는데 있어 음치(音癡)이건 박치(拍痴)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노래는 모름지기 테크닉이 아니라 가슴으로 부르는 법이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기쁨과 슬픔, 회한 등의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치받혀 오를 때 인간은 음주가무의 무드로 돌입한다. 여기서 먹고 마시고 춤추는 행위와 더불어 노래는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다.

다른 이민자들처럼 나 역시 이민살이를 돌아보면 기쁨만땅 보다는 지랄가득스러운 기억들이 더 많다. 돈이 없어 괴로웠거나, 그녀(년)한테 까이고 죽고 싶었거나, 친척이 웬수라며 발광했거나 고향이 그립거나 뭐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짜증났거나 하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럴때 나는 역시 술을 처마시며 마음속의 괴로움들을 떨쳐버리곤 했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 맥주 거품보다 더 많은 양의 게거품을 입에 물으며 한바탕 난장을 치고나면 다소나마 위로가 되곤 했다.

그렇다고 약물의 힘으로 모든 괴로움이 다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술자리를 파하고 삐질삐질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의 마음은 정처를 잃어버리고 이민살이의 고단함을 실감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기분이 아주아주 그지같을 때, 나의 아가리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여기서 언급하는 노래들은 내 사적인 이민살이의 기억과 함께하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무반주 라이브로 길바닥에서 흥얼대던 곡들이다.

먼저 조용필 옵바의 <꿈>이다. 조용필이 누구던가. 불세출의 가왕(歌王)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근데 워낙 위대한 이름이다 보니 정작 이 뮤지션의 세세한 공적에 대해선 오히려 덜 조명되지 않았나 싶다. 조용필의 음악 인생은 바로 한국 대중음악 백과사전이다. 락과 발라드, 댄스에다 트로트까지 대중음악이 포괄하는 거의 모든 장르의 노래를 집대성해 작곡하고 직접 부른 장본인이다. 심지어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그 유명한 독백신으로 오늘날로 치면 랩의 일단까지도 선보였다.

 

www.choyongpil.net

<꿈>은 조용필 13집 <The Dream>의 타이틀 곡이다. 이 음반엔 <꿈>이외에도 <꿈꾸던 사랑>, <꿈의 요정>, <꿈을 꾸며>, <어제밤 꿈속에서>까지 왼갖 꿈을 소재로 한 노래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노래는 역시 <꿈>이다. 80년대 초, 중반에 "노래하는~~ <창밖의 여자>" 다음에 "아~~아아악"하는 자연 발생성 후렴구가 따라붙던 옵바부대의 원조 조용필은 불혹을 갓 넘긴 91년에 이 노래를 발표했다.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던 옵바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형님의 면모를 보여주는 노래가 바로 <꿈>이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원숙미로 조용필은 <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1.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2.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 <꿈>

이 노래는 가사도 죽이지만 아련한 잔상(殘像)을 남기는 멜로디가 듣는 이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맛이 있다. 좋은 노래가 흔히 그렇듯이 대단한 중독성을 또한 함유하고 있어 한 번 들으면 자꾸자꾸 듣게한다. 내가 미국에 기어, 아니 날라들어온게 92년이니 이 노래는 나의 미국생활보다 딱 한 살 더 먹었다. 그동안 나는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않는 캔디의 심정으로 이 노래를 수 백번이 넘게 불러왔다. 그래도 여전히 똑같은 느낌으로 이 노래는 나의 가슴을 달군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 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이 대목은 이민살이 아니 어쩌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이 담겨있다. 마치 조용필의 또 다른 명곡 <그 겨울의 찻집>에 나오는 한 구절인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인생의 비극성이 오롯이 녹아있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아메리칸 드림 따위와는 상관없는 꼬라지로 미국에서 살아갈지 모른다. 그래도 조용필 옵바의 <꿈>이 있어 덜 외롭고 허전하다.

또 한곡의 노래가 있다. 김광석의 <불행아>다. 아, 김광석. 너무 일찍 가버려 신화로 남은 영원한 가객(歌客). 나와 자서전을 공유하는 세대의 영원한 친구이자 형님. 김광석에게선 슈퍼스타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왠지 이웃 집에 가면 한 명 쯤은 있을법한 순박한 청년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은 대단한 영향력으로 우리 세대의 정신을 지배했다. 돌이켜보면 김광석없이 어떻게 그 험한 시절들을 살아냈을까 싶을 정도다.

 

한국에 사는 지금의30~40대는 어찌보면 불행아라 할 수 있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는 무식한 삽질로 대가리의 발육이 시작되어 올림픽씩이나 주최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골통에 주입당하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회에 나와선 권위주의가 처놓은 덫에 발목이 잡힌채 내내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어디 그 뿐이랴, 운전하다 말고 수영해야 하는 황당한 사태(성수대교 붕괴사건)를 시작으로 급기야는 국가가 통째로 부도나는 스펙타클(IMF 사태)을 목격하며 얼얼해진 뒷 다마를 쓰다듬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리해고를 걱정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여전히 꾸역꾸역 엮어가는 중이다.

김광석의 노래들은 이런 불행아들을 위로하는 작은 희망이었다. 그는 나즈막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어른이 되어 가면서 부딪히는 갖가지 삶의 회한을 노래했다. 동 세대인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모진 세파(世波)를 견뎌내곤 했다. 여기 소개하는 <불행아>도 바로 그런 노래 중의 하나다. 원래 이 노래는 원곡이 따로 있다. 그런데 김광석의 명반 <다시 부르기 1,2>에 수록되면서 사람들은 그의 노래로 기억하게 된다. 그만큼 김광석이 탁월하게 불렀다는 뜻이다. 한 줌의 승자들에 밀린 다수의 루저들의 정서가 담겨있는 이 노래에서 김광석은 이렇게 읊조린다.

1.

저 하늘에 구름 따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정처없이 걷고만 싶구나 바람을 벗삼아가며

눈앞에 떠오는 옛 추억 아 그리워라

소나기 퍼붓는 거리를 나 홀로 외로이 걸으면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홀로 가슴태우다 흙속으로 묻혀 갈 나의 인생아

2.

깊고 맑고 파란 무언가를 찾아 떠돌이 품팔이마냥

친구 하나 찾아 와 주지 않는 이 곳에 별을 보며 울먹이네

이 거리 저 거리 헤매이다 잠자리는 어느 곳일까

지팡이 짚고 절룩거려도 어디엔들 이끌리리까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 갈 나의 인생아

김광석 <불행아>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는 동포들이 미국에 얼마나 될까. 적어도 25만 4천 2백 75명 쯤은 될 성 싶다. 이 노래를 들으면 연상되는 뚜렷한 이미지가 한 가지 있다.

 

미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우리 동포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그 열차, 7번 전철을 탔을 때의 기억이다. 당시에 왠 40대 중반 쯤으로 보이던 한인 아저씨가 건너편 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분이 손에 든 비닐봉지 안에는 테이크 아웃 중국음식으로 보이는 봉다리와 비디오 테잎 1개 그리고 신문 한 꾸러미가 담겨있었다. 아마도 그걸로 저녁을 대충 때우고 신문과 비디오를 열독한 후 피곤한 하루의 생활을 마감했으리라. 지금은 환갑이 다 되었을 그 아저씨의 안녕(安寧)이 궁금하다.

 

타향살이의 설움을 묘사하는 노래는 위의 두 곡 말고도 또 있다. 나보다 호적을 먼저 등재하신 아저씨, 아줌마들은 대체로 “타향살이 몇 해던가~~”로 시작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달래실 것이다.

나는 <꿈>과 <불행아>를 듣고 부르며 이민살이의 고단함을 견디곤 한다. 가슴 저 밑바닥에 남아있는 꿈과 오늘은 불행해도 내일은 행복하고 싶다는 희망을 간직한 채, 나는 오늘도 뉴욕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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