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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에 도미,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있다. 그동안 여타 이민자들처럼 자영업, 회사생활 등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한편 94년부터 커뮤니티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 활동가의 시각으로 본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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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시절에 두 명의 거인을 추억한다(下)

글쓴이 : 차주범 날짜 : 2011-02-18 (금) 23:07:34

여기 2010년에 스러진 또 한명의 거목이 있다. 그의 이름은 하워드 진(Howard Zinn).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하워드 진 교수는 리영희 선생과 같은 고난을 겪진 않았다. 한국에 비해 출판과 집회의 자유가 좀 더 보장된 미국에 살았던 덕분이다. 하지만 하워드 진 교수도 생전에는 그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는 극우세력들에 의해 테러위협을 당하는 등의 상시적 위협에 시달리곤 했다.

1922년 뉴욕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하워드 진은 진보적 입장에서 미국의 주류 학계를 비판하는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 사회비평가, 희곡 작가로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해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양심적 목소리를 대표하는 미국의 양대 지식인으로 불렸다.

리영희 선생이 전쟁에 참전했던 것처럼 하워드 진도 미 공군 폭격수로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다. 이 때의 충격적인 경험은 그로 하여금 평생을 반전운동에 매진하도록 이끈다. 군 고위층이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오로지 진급을 위한 성과를 남기기 위해 항복 직전의 독일군과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감행하는 장면을 보곤 전쟁에 환멸(幻滅)을 느꼈다고 그는 증언했다.

 

www.wikipedia.com

군을 제대한 이후에는 뉴욕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고 이후 흑인 여학생들만 다니는 스펠만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당시 학생들에게 흑인의 접근이 차단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도록 하고 흑인 여학생들이 스스로 민권운동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하워드 진 교수 역시 생전에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그를 얘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필생의 역작이 바로 <미국 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이다. 미국 민중사는 현재까지 약 2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개의 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미국 민중사의 가치는 이렇게 표현된다. 미국에서 살지만 미국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미국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고 할 수 있다. 혹시 미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았어도 그 사람이 알고 있는 미국 역사는 절반의 역사에 불과하다. 미국의 주류 역사가 외면한 절반의 역사를 복원하고 제대로 자리매김 하도록 한 저서가 바로 미국 민중사다.

 

미국 민중사에서 하워드 진은 컬럼버스가 ‘발견’했다고 찬양하는 기존의 관점을 뒤집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투쟁에 주목했다. 또한 미국의 정신이라 추앙받는 ‘프론티어 정책’에 대신 칭송 대신 그로 인해 희생된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제도의 희생자들의 아픈 역사를 살폈다. 미국 발전의 주역이면서 이전의 역사 서술에선 철저히 소외(疏外)됐던 노동자, 흑인 및 이민자들은 미국 민중사에 의해 비로소 자신들의 존재를 복원하게 되었다.

하워드 진은 또한 미국 민중사에서 미국이 평화와 민주주의의 미명하에 일으킨 여러 전쟁의 실체를 밝히는데도 주력했다. 이런 하워드 진의 노력을 가리켜 노엄 촘스키는 “하워드 진의 서술은 한 세대의 의식을 바꿔 놓았고 우리 삶의 중요한 의미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우리의 활동이 신뢰할 만한 사표(師表)를 요구할 때 그는 언제나 맨 앞줄에 서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워드 진 교수는 평생에 걸쳐 반전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소임을 다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전쟁이 일어날 때 마다 무조건 정부를 지지하는 행태를 두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문화를 깊숙이 파헤쳐 보면 두 가지 이유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역사적 관점이 결여(缺如)됐고 국가주의적 사고의 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아울러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역사를 모른다면 우리는 이미 정치인들의 식탁에 놓인 ‘밥’이 될 것이고 그들에게 식탁을 차려주는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에게 좋은 요리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리고 과거의 대통령들이 우리를 얼마나 속여 왔는가를 안다면 우리는 다시는 속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파(說破)했다.

아닌게 아니라 미국의 해외 원정사는 곧 거짓말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이 점에 대해서도 하워드 진은 이라크 전쟁 발발 3주년을 맞아 미국인들의 역사 인식 회복과 각성을 촉구하는 글 <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역사(Lessons of Iraq War start with U.S. history)>를 통해 다음과 같이 역대 통치자들의 기만(欺瞞)을 폭로했다.

1898년 맥킨리 대통령은 쿠바인들을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쿠바침공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진실은 미국의 거대 농업기업들의 쿠바진출을 돕기 위함이었다. 맥킨리는 또 필리핀인들을 ‘개화’시킨다는 이유로 필리핀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쟁의 실제 목표는 필리핀인들을 죽이더라도 태평양 지역에서 교두보(橋頭堡)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제 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거짓말했다. 그러나 당시의 전쟁은 부상하는 강국인 미국을 위해 세계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트루만 대통령은 히로시마가 군사 목표물이었다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이유로 원자탄을 투하(投下)하며 애꿎은 민간인을 대량 살상했다.

베트남전에 대해서는 모든 대통령들이 거짓말을 했다. 케네디는 미국의 개입 정도에 대해, 존슨은 통킹만 사건에 대해, 닉슨은 캄보디아 비밀 공습에 대해 진실을 가리고 거짓으로 일관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그라나다가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거짓말로 그의 군사주도 모험주의 정책을 홍보했다.

아버지 부시는 거짓으로 파나마를 침공해 수 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1991년 쿠웨이트를 지키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거짓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중동의 석유자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진실에 기초한 하워드 진의 역사서술에 따르면 그럴듯한 이유로 전쟁을 벌인 대부분의 미국 지도자들이 실상은 인간백정(人間白丁)에 다름 아니다.

하워드 진은 베트남전의 교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무차별적인 살상무기로 대변되는 현대의 군사기술을 고려할 때, 모든 전쟁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에 불과하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전쟁일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전쟁을 촉구하는 정치 지도자는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하워드 진은 진보적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에 생애 마지막 글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년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인들은 지금 오바마의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어 있다.오바마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전국적인 운동이 없다면 그는 그저 그런(mediocre)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시대에 '그저 그런 미국 대통령'이란 위험한 대통령을 뜻한다."

1988년 교직에서 은퇴할 때 하워드 진 교수는 마지막 강의를 30분 일찍 끝내고 교내 간호사들의 파업시위 현장에 달려가 피켓을 들고 동참한 유명한 일화(逸話)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수업을 듣던 500여 명의 학생들 중 100여 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퇴직 후에도 하워드 진은 반전‧평화를 위해 거리에 섰고 대중들의 마음을 흔드는 연설을 했다.

오늘 우리는 현실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앞날을 밝혀줄 지혜의 스승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작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등진 리영희 선생과 하워드 진교수의 존재가 더욱 그립다. 김민기의 노래 <친구>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리영희와 하워드 진. 그 두명의 거인들이 남긴 발자취는 그저 역사의 장강(長江)과 함께 잊혀질 과거형이 아니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평등과 평화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는 이 시절에 그들이 남긴 유산(遺産)은 우리 모두가 계승해야 할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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