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벗님들께 보내는 마흔세 번째 편지
벗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폭설이 계속되더니 오늘은 모처럼 맑고 따뜻한 봄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오늘 조국은 정월대보름입니다. 오곡밥 먹고 호두 까먹는 부럼은 이곳에서는 단지 추억일 뿐입니다. 어릴 때 깡통에 줄을 매달아 나무를 태워 휘휘 돌리며 쥐불놀이하던 추억도 아련합니다. 미국에서 저는 정월대보름과 추석에는 가까운 해변에 나가 달맞이하곤 했습니다. 저는 유난히 달을 좋아합니다. 보름달을 보면 어릴 때 베고 누웠던 외할머니 무릎처럼 포근한 모성애를 느낍니다. 10여 년 전 대보름날에 맞춰 서부 Death Valley(죽음의 계곡) 국립공원으로 여행해 밤에 모래사막에 벌렁 드러누워 다른 곳보다 서너 배 쯤 크게 보이는 보름달 아래 ‘월광욕(月光浴)’을 즐기면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유성우(流星雨)를 감상했습니다. 정월대보름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런 꿈같은 낭만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날이 맑아 집에서 달을 안주삼아 월하독작(月下獨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주일 미국은 이상기후로 특히 남부지방 텍사스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이 생전 경험하지 못한 매서운 추위에 수도관이 파열되고 사흘 이상 정전으로 동사자들이 속출했습니다. 눈길에 수십 중 차량충돌로 고속도로가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변하고 추위를 피해 자동차 난방에 의지하다 질식사하고 실내에 불을 피워 화재가 나는 등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낮에 생전 처음 눈을 보고 기뻐하던 11살 소년도 난방이 없어 3살 동생과 함께 그날 밤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와중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식구들과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온 가족이 멕시코 휴양지로 날아가고 하원의원 게리 게이츠도 같은 날 자신의 전용기로 플로리다 주로 떠났습니다. 또 텍사스 검찰총장 켄 팩스턴도 주 상원의원인 부인과 함께 유타주로 피신했습니다. 이같은 정치인들의 도덕불감증에 주민들은 아연실색(啞然失色)했습니다. 텍사스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텃밭으로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긴장감을 잃은 탓입니다. 며칠 전부터 이상한파와 폭설이 예보되고 아열대 사막기후 텍사스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재난이 발생했으나 어느 누구도 대책마련에 나서거나 책임을 지지 않고 내빼기에 바빴습니다.
ABC 방송은 이번 한파로 텍사스 주에서 69명이 사망하고 약 18조 달러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남부지방을 강타한 폭설이 뉴욕까지 북상해 여러 날 쏟아진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런 이상기후를 대기오염으로 인한 현상으로 지적합니다.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적극 찬성했던 사람이 가족과 함께 멕시코 휴양지로 날아가 비난받는 크루즈 상원의원입니다. 텍사스에서는 그의 4년 전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상기후 대비 주장을 조롱하면서 2016년 9월 트위터에 "텍사스가 얼어붙는다면 그때쯤 난 기후변화를 믿겠다."고 썼습니다. 이제 그가 뭐라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한 것은 다행입니다. 인구 2900만 텍사스는 누적 확진자 26만4천 명에 사망 4만3,500명으로 캘리포니아 주 다음 미국 내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대란에 이상 한파까지 2중고를 겪는 셈입니다,
지금 미국은 백신접종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이자 백신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백신은 안전하며 백신을 맞는 것이 대유행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6천만건 이상 백신접종이 이뤄져 1차 접종을 끝낸 사람이 약 4300만 명입니다. 이런 속도면 취임 100일 내 1억 명에 백신 접종하겠다는 바이든 취임 첫날 약속은 무난히 달성될 전망입니다. 아내는 2차 접종까지 마쳤고 저는 보름 뒤 2차 접종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미 질병통제센터의 백신 접종자 조사에 따르면 접종자 160만 명의 0.4%인 약 7천명이 부작용을 경험했으며 심각한 부작용을 겪은 사람은 640명으로 전체 0.04%에 불과했습니다. 독감 등 일반 백신 부작용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현재는 전국을 강타한 폭설과 한파로 백신접종이 원활하지 못하지만 다시 정상화 되고 있고 코로나 신규환자는 계속 감소추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연말까지 정상에 가까워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질병통제센터 파우치 박사는 코로나가 완전 정상화될 때까지는 내년에도 마스크를 써야 할 것이라고 주의를 당부합니다. 또 미네소타대학 전염병연구정책센터 오스터홀름 소장은 25일 앞으로 몇 주 뒤 전파력이 강한 영국 변이바이러스 코로나 감염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서 영국 변이바이러스가 열흘마다 2배로 증가하는 것을 보고 있다. 이 같은 작은 불씨에서 대규모 산불로 가는 데 보통 4주, 6주, 8주까지 걸린다. 따라서 3월 셋째 주 무렵이 크게 걱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백신접종의 대량 확산을 통해 코로나의 짙은 먹구름이 차츰 엷어져가는 것을 예상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각 학교들도 단계적으로 대면수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저의 ‘벗님들께 보내는 편지’도 코로나가 아닌 다른 소식을 벗님들께 전하게 되기를 학수고대합니다. 한국에서도 백신접종이 시작됐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정상화될 것입니다. 저도 빠른 시일 내 벗님들과 대면할 희망을 가집니다. 벗님여러분 다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코로나 끝자락에서 더욱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2021년 2월 26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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