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벗님들께 보내는 서른일곱 번째 편지
벗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뉴욕은 2020년 한해의 마지막 날 오후입니다. 그러나 조국은 2021년 새해 아침입니다. 벗님들께 세배드립니다. 지난 한 해 베풀어주신 호의와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따지고 보면 새해니 묵은해니 하는 것은 무한한 시공에 인간이 지구의 공전주기에 맞춰 토막 내 정해놓은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한 해를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送舊迎新의 기회라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벗님 여러분, 모두 지난해 가장 악몽 같은 어려운 해를 보냈습니다. 새해에는 부디 모든 업장(業障)이소멸하고 새 기운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천주교 신자인 제가 佛家 용어인 ‘業障’이란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은 그동안 인간의 ‘思言行爲‘ 즉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지은 악업에 대한 ‘자연의 되갚음’이라고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등 많은 종교지도자들과 사려 깊은 분들이 무수히 지적한 것처럼 그동안 인류는 ‘공동의 집’인지구를 온전히 자본의 논리에 의한 탐욕스러운 개발로 파괴해 왔습니다. 도에 넘는 탄소배출과 난개발, 화석연료로 인해 생명체인 지구는 심한 중병을 앓아왔습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물론, 온갖 유해물질이 대기를 오염시켰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는 지구의 ‘自淨’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를 괴롭힌 결과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상한 전염병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간 활동이 줄어들면서 멸종된 줄 알았던 동물들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오고 대기의 질이 좋아졌다는 조사결과도 나옵니다. 보이지 않던 바다거북이 해안에 떼 지어 몰려온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얼마 전 CNN은 “코로나는 인간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해 유심히 읽었습니다. 잇단 백신개발로 새해 하반기에는 팬데믹이 수그러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매우 다행이지만 또다시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새해 새 아침은 너나없이 ‘悔心’과 ‘回心’을다짐하는 날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벌써 코로나는 세계인구의 1.7%에 해당하는 8,300만 명이 감염되어 대전시보다 많은 180여 만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인구 4백만명으로 한인동포가 가장 많은 L.A카운티를 예로 든다면 인구 18.5%인 73만4천명이 감염되어 9,560명이 사망했습니다. 인구 5,200만 한국보다 12.3배 많은 확진자와 16배나 되는 사망자입니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국의 160배 확진자와 사망자는 208배에 달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와 함께 세계는 영국에서 시작된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로 초비상입니다. 유럽은 물론 호주, 일본, 한국, 대만, 미국에서도 발견되는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70%나 강력할 뿐 아니라 현재의 백신이 변형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지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경우 변형 코로나에 맞는 백신을 다시 개발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 경우 인류가 코로나에서 해방되는 시간은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나마 대한민국은 인구의 0,13%인 6만740명 확진에 900명 사망으로 세계 순위 86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에 사는 동포들은 조국의 K방역 성과를 무척 부러워하며 미국인들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벗님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나와 이웃을 위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나가기를 부탁드립니다.
코로나지옥 미국에서는 새해 아침 ‘Happy New Year!!' 인사가 무색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지옥 속에서도 해는 변함없이 뜨고 집니다. 다음 달 중순이면 악몽 같은 庚子年을 보내고 소띠 辛丑年을 맞이합니다. ‘辛丑年’이라쓰고 ‘新築年’이라고읽고 싶습니다. 새로운 세계와 각자의 마음을 ‘새로 짓는’ 신축입니다. 사실 과거의 관행을 허물고 새로 신축해야 할 것들이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 사회. 지역, 국가와 세계적 차원에서 하나 둘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 낡은 관행이나 악습을 벗어던지고 새 집을 신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인류는 이번 팬데믹을 통해 개인과 인류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염병 앞에서 개인의 건강은 가족의 범위를 넘어 ‘생활공동체’ 전체 건강과 직결돼 있고 나아가 ‘세계 공동체’ 전 인류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나 혼자의 건강, 가족의 건강이 안전할 수 없으며,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를 돌보지 않으면 부자 나라도 안전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결국 ‘인류공동의 집’ 지구 전체가 안전하려면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따라서 부자 나라들이 코로나백신을 경쟁적으로 독과점하는 현재 상태는 인류가 아직 팬데믹의 교훈을 체화시키지 못했음을 말해줍니다.
과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그는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하느님이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물을 때 아우를 죽이고 시침떼면서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대답하지 않고 “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인류가 되어야 한다고 외친 바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를 더 가난하게 죽이는 부자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나라를 도와 함께 부자가 되게 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 인류에 대한 강대국의 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이러한 이상은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한 인류에게 기대할 수 없는 꿈같은 것일까요. 이러한 이상은 전 세계적으로 성찰과 회심운동이 각 나라 사회전반에서 일어날 때 이뤄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사는 세상 말입니다. 아무래도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의 신앙인들이 떨쳐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벗님여러분, 그러나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저는 밝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고 말씀드립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벗님 여러분 가정에 더할 수 없는 행운이 깃드시기를 소망합니다. “옛것은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라는성서말씀처럼 ‘어둠의 옷 벗고 광명의 갑옷’으로갈아입는 새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며 세배를 올립니다.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1년 1월1일 새해 첫날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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