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 쫌 힘들다

옷깃만 스쳐도 억겁(億劫)의 인연(因緣)이란다.
발리의 우붓에서 페친을 만났다.
수억겁의 인연이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 전 부터 알았던 것처럼 편했다.
두번의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다. 신기하다. 존경스럽다.
왕년 얘기하는걸 진짜 싫어한다.
그러나 최선생님이 살아온 얘기는 완전 다르다.
돈 내고도 들을수 없는 서사가 있다.
값지고 귀한 만남은 행운이다.
나하고 여행 코드도 잘 맞는다.
우연이지만 숙소가 100m도 안떨어져 있다.
중심지 골목에 있는 배낭 여행자 거리의 저렴한 호스텔이다.
로컬 레스토랑에서 로컬 맥주를 놓고 자축했다.

여행 얘기에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
며칠 후 나는 세부로 간다.
최선생님은 자카르타로 갔다가 귀국하지만
바로 다음 달에 다시 튀르키예로 가서 꽤 오래 지낸단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노매드는 지구별 어디선가 우연히 다시 만난다고 믿는다.
여행은 만남인거 맞다.
혼자 떠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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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 쫌 힘들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다.
발리는 힌두교다.
종교 뿐만이 아니라 문화, 건축 양식, 풍습도 완전히 다르다.
'발리네시아'라고 부를만하다.
발리는 신들의 섬으로 알려져있다.
신화가 곳곳에 담겨져있다.
왠지 완전히 다른 세상이 숨어 있을것 같다.

특히 우붓은 오래 전 부터 배낭족들의 블랙홀 혹은 개미 꿀단지로 유명하다.
발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시간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접근성이 좋지않았다.
물가가 싸다.
그래서 오래 머물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호기심이 그냥 놔둘리가 없다.
관광객들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유럽인, 미국인,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들의 순서였다.
나는 오래 전에 발리에 처음 갔었다.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음이 포근했었다.
발리섬에서 우붓은 가장 적게 변했다.
물론 고급 호텔이 들어서고 차도 늘고 고급 식당과 수비니어 가게로 가득 채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가난한 배낭족들이 편하게 머물수가 있다.
가성비 좋은 저렴한 숙소와 식당이 성업중이다.

발리의 우붓은 아프리카의 잔지바르를 생각나게 했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엔틱한 느낌으로 가득한 골목과 건물과 환한 미소가 닮았다.
두리번거리며 골목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지루하지 않다.
며칠은 구석구석 걷기만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우붓에서 전혀 엉뚱하게 시간을 보냈다.
밤을 새워가며 못본 영화와 드라마 몰아보기를 했다.
말로만 듣던 정주행을 했다.
배우들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작가들의 대단한 발상과 반전과 전개에 홀딱 빠졌다.
현실감 없는스토리다.
현실은 단지 모티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내 속이 비어서인지 달달하고 시고 짜고 매운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우붓은 발리의 중앙에 자리 잡은 내륙의 역사 문화 도시다.
볼것도 많고 액티비티도 많다.

그런데 왠지 내가 앗싸, 이방인 같다.
이런데는 혼자 오는게 아니다.
커플, 친구, 가족이랑 같이 와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지금은 한번으로 됐다로 바뀌었다.

횡설수설 관두고 솔직히 까야겠다.
예전에 아내와 함께 했던 장소와 기억과 마주한다는게 쪼끔 힘들다.
16개월 째 여행을 하면서 드라마 몰아보기에 빠져서 시간을 보낸건 처음이다.
시간을 역주행(逆走行)하며 살고 싶지 않다.
Here and Now!
내 여행에 몰두하기 위해 우붓을 떠나기로 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