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에 왠 이스탄불?

10월 30일날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위드 코로나 운운하기에 서둘러 준비해서 해외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태국으로 갈까 했었다.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단기 관광객에게는 좋지만
장기배낭을 선호하는 노매드에게는 맞지 않았다.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터키의 지중해 연안 도시 안탈리아에 꽂혔다.
지중해성 기후라 겨울에도 영상 10도 정도로 춥지 않다.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는 올드 타운도 매력적이다.
물가도 싸고 인프라도 잘 되어 있다.
몇 년전 아내와 함께 갔던 안탈리아의 에메랄드 빛 지중해와 예쁜 해변길이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비행기 요금이 가장 싼 날짜를 골랐다.
12월8일 0시20분 카타르 항공이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편도 46만원으로 가장 싸서 낙점했다.
환승 포함 19시간의 소요 시간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내에게는 돈 조금 내고 비행기 오래 타고 기내식도 3번씩이나 먹으니 좋다고 농담을 했다.
숙소는 도착 후 3일만 예약했다.
안탈리아를 비롯한 나머지 일정은 현지에 가서 마음 내키는대로 정하기로 했다.
코로나 예방접종 영문 증명서를 떼고 내친김에 영문 면허증, 국제 운전 면허증, 황열병 예방주사, 여행자 보험 등등도 마쳤다.

그 사이 아내가 결석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다행히 바로 돌이 빠져서 회복이 됐기에 함께 상의해가며 다시 준비를 진행했다.
그러다가 12월2일 새벽에 아내가 갑작스럽게 폐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정말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에 아내를 잘 떠나보낼수가 있었다.
남은 가족을 생각해서 마음을 굳게 먹고 버텨야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마음이 무너지자 몸이 지탱하지 못했다.
나만 아픈게 아니라 두 딸도 아파서 모두 다 병원에 가야만 했다.
혼자 남은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내 여행준비를 가장 많이 도와준 큰 딸이 여행은 어쩔꺼냐고 물었다.
싼 비행기표라서 환불이나 변경이 안되니 그냥 날려버리겠노라 말했다.
그런데 내 여행계획을 알고 있던 친구와 후배가 계획대로 떠나라고 권했다.
특히 나의 멘토인 이동훈 내과 병원장이 문상(問喪) 왔다가 취소얘기를 듣더니 강력하게 떠나라고, 아무 생각도 하지말고 떠나라 했다.
쎄부 유목민 아우도 목포 문쌤도 그외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딸들도 찬성이었다.
이대로 한국에 있다가는 계속 아프다가 죽을것 같았다.
맨탈은 이미 해체됐고 피지칼도 바숴지고 있다는걸 알아차릴 정도였다.
불안감과 공황장애를 밀어내기 위해서는 낯선 곳에 뛰어들어 위험한 상황과 부딛치는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게 내 방식이다.
약이나 편안한 휴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낯선 곳에서 잔뜩 긴장하고 예상못할 고난과 싸워 이겨나가며 치유와 회복을 이룰것이다.
여행의 영어인 Travel의 어원은 고대 프랑스어 travail이다.
작업, 몸부림치다, 고난, 고통이라는 뜻을 갖는다.
나는 travail을 통해 몸부림치며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려고 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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