副題: 歷史認識缺如-場所와 節次에 問題있었다.
필자가 처음 성당(聖堂)을 접하게 된 때가 고교 1학년때, 학교 인근이었을 뿐아니라 북악산(北岳山), 인왕산(仁旺山)이 병풍(屛風)처럼 둘러싸여 있는 청운동(淸雲洞) 집에서 가장 가까운, 광화문(光化門) 성당이었다. 5.16 전후하여 완공된 새 성전(聖殿)에 모친을 따라 족히 1년은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입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중단한 것이 일생 냉담자(冷淡者), 불신자(不信者)로 전락(轉落!!!)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로 갈 때면 빠짐없이 바티칸(Vatican)성당을 방문하여 교황(敎皇)의 용안(龍顔)을 찾아 뵈었고 Long Island Great Neck에 살 때는 딸아이가 Altar Girl로 활약(活躍!!!) 하였으나, 그 때도 신자(信者)의 반열(班列)로 한단계 Upgrade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필자는 일생동안 성당 담밖에서 서성였던 주변인(周邊人) 또는 외곽인(外廓人)이었던 셈이다.
필자가 다니던 광화문성당 관할지역에서 전 세계 카톨릭 10억 인구의 수장(首長)인 Papa이며 Pope이며, 교황(敎皇)이 광화문을 배경으로 미사를 집전(執典)하였고 조선조(朝鮮朝) 23대 순조(純祖) 재위시절(1800~1834)인 1801년 참수(斬首)된 순교자(殉敎者) 124위(位)에 대하여 시복식(諡福式)을 거행하였다.
<이하 사진 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시복식이란 복자(福者)품에 올릴 때 행하는 예식으로, 복자란 죽은 교인사람의 덕행(德行)과 신앙(信仰)을 증거하여 공경(恭敬)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발표한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전제군주제하(專制君主制下)라고 하여도, 무고(無辜)한 백성을 참수(목을 베다)하지 않는다. 이 기회에 왜 그 많은 백성들이 신유(辛酉), 기해(己亥), 병인(丙寅)년에 피를 흘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16세기 말 임진왜란시 왜군과 함께 참전한 예수회신부로 부터 외방종교인 천주교라는 종교에 접하기 시작한 조선 백성들은 18세기 말 공동체까지 결성하기에 이른다.
가부장(家父長)적인 권위(權威)와 유교(儒敎)적 의례, 의식을 거부하는 천주교의 교세(敎勢)의 확산(擴散)은 유교사회 전반에 대한 도전(挑戰)이었을 뿐아니라, 왕권(王權)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
이는 이번 124위 시복식 복자에 끼지 못한, 조선조 정조(正祖)치하에서 장원(壯元)급제로 전도(前途)가 촉망되었던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의 백서(帛書)에서 당시 천주학(서학-西學-으로도 불리웠음)에 심취(心醉)하였던 청년 선비들과 핍박(乏迫)받던 백성들의 심정과 결기(決氣)의 일면(一面)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로 62cm 세로 38cm 크기 한지에 극세필(極細筆)로, 13,384자가 쓰여진 백서에는 조선을 청(淸) 나라에 편입시키고 서양 군대를 조선으로 파병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였다. 북경교구 구베아(Alexander de Gouvea 1751~1808 중국명:湯士選)주교에게 전달하기 위해 발송되었으나, 중도에 발각되어 대역죄인(大逆罪人)으로 능지처참(陵遲處斬)이라는 극형을 받고, 일가는 풍지박산되었다.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의 조카되는 부인 정난주(丁蘭珠 兒名 命蓮1773~1838)는 제주도(濟州島)로 유배(流配)를 당한다.
한마디로 당시 천주교를 신봉하였던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을 동경(憧憬)하는 세력이었고, 외세(外勢)를 빌어 조선왕조를 붕괴(崩壞)시키려 했던, 현대어를 빌린다면 반정부(反政府)집단이었고 쿠데타 음모(陰謀) 세력이었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꿈을 가졌던 백성, 124위(位)의 시복식이 200년이 지난 2014년 조선왕권의 중심 근정전 (勤政殿) 앞마당에서 거행되었다.
조선의 현군(賢君) 세종이 내려다 보고 있고,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인 조선을 구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동상아래서 개최되었다.
장소와 시간은 상징성(象徵性)이 매우 큰 요소다.
현 정부가 개최장소를 결정하는데 이런 역사의식을 가지고 결정하였는지 의심스럽다. 일개 종교계의 행사를, 그 체제에 반기(反旗)를 들려 했던 백성들의 시복식을, 그 왕조의 앞마당에서 거행한다는 것은 조선왕조에 대한 모독(冒瀆)이다! 명동성당도 좋고, 상암월드컵 경기장도 좋았고, 대전 카톨릭 아시아청년대회장(大會場)도 좋았다. 왜 하필 그곳, 근정전 앞 광화문이었나? 일본 수상 아베 신조(安倍 晉三)만 역사인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당국자도 경우는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는 경우였다면, 박근혜정부가 200여 년 전 그들의 죄과(罪過)에 대해 사면(赦免), 복권(復權)을 단행한 후 교황이 시복식을 하였더라면 얼마나 멋이 있었을까? 대한민국이 대한제국과 조선을 승계(承繼)하고 있음을 입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정통성(正統性)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제스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가?
서구(西歐)에서는 500년 전, 300년 전 사안(事案)에 대하여도 사죄(謝罪)한다
逢 南 韓 泰格(www.TedH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