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자영감 작은집 드나들듯 나는 오전부터 밭을 찾는다. 아내는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다. 지나가던 미국인들이 기웃거리며 묻는다.
“물주기 김매주기도 잘돼있어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을 또 하나요? 더구나 맨발로...”
“우리는 여기서 밭농사만 짓는게 아닙니다. 새농사도 짓는답니다. 저기를 봐요..”
은사시나무 꼭대기에 로빈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날개는 하얀빛을 덧칠한 은사시색깔인데 오렌지색 가슴이다. 아기주먹보다 작은놈이 가늘고 긴 꼬랑지를 반짝 쳐들어 올린채 아리아를 뽑고있다. 교향악단의 꼬마지휘자처럼 여간 귀여운게 아니다.
“찌르르륵 찌르락 죠아죠아”
우리 귀에는 찌르레기로 들리는데 미국인들에게는 치어걸들의 댄싱곡으로 들린다.
“Cheer-up cheerily, Cheer-up cheerily”
그러면 덩치큰 오리올 찌르레기 스털링과 고만고만한 참새와 잡새들이 날라와 전원교향곡을 합창한다.
나는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도라지와 훌쩍 커버린 더덕넝쿨 사이를 맨발로 걸으며 새들의 합창을 감상한다. 내 발끝에서는 붉은 흙색의 비둘기 ‘애도’ 한 마리가 아장아장 걷고 있다. 촌스럽지만 착하다. 비둘기가 텃새인데 이놈은 철새다. 영어로 Mourning Dove(슬픈비둘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애도는 희귀종이다. 한때 5억마리나 됐지만 지금은 보기힘들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우리 밭에 나타난 것이다. 올적마다 과자를 떨어뜨려 줬다. 도라지와 더덕사이를 애도와 함께 걸으며 로빈합창을 듣는것이다.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면서 “보리밭”을 노래하는 조영남의 기분이랄까? 아니지, 로빈후드가 된 기분이다.
영국시골마을에 활잘 쏘는 소년이 있었다. 청년이 되자 그의 활솜씨는 신궁(神弓)의 경지에 이르렀다. 마침 임금이 사는 노팅엄에서 활쏘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꼭 일등하여 임금을 모시는 근왕병이 되리라! 청년은 셔우드숲을 지나게 됐다. 사슴이 뛰어놀고 로빈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숲이었다. 임금님의 사냥목장이었던 것이다. 고약한 사슴관리인들의 흉계에 속아 청년은 그만 임금님의 사슴을 쏴 죽인다. 활쏘기 대회에서 일등을 했지만 사형수로 몰린 청년은 셔우드숲속으로 도망친다. 로빈새와 사슴과 어울려 숨어 지내는데 천하장사 뚱보 리틀죤과 왈짜패들이 몰려와 세(勢)가 커졌다. 그들은 왕실로 들어가는 부정한 뇌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 된다. 사람들은 그를 로빈후드(Robin Hood)라고 불렀다.
어릴때 내 우상은 로빈후드였다. 그런데 한국에는 로빈새가 없다. 로빈후드가 되려면 우선 로빈새가 있어야 하는데. 부산에서 목회하면서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 을숙도를 즐겨 찾았다. 지금도 내방에는 부산일요화가가 그린 을숙도 그림이 걸려있다. 을숙도에 여러번 가봤지만 로빈새는 보지 못했다. 서양철새이기 때문이다.
이민와보니 미국은 철새들의 천국이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살 때 스털링새떼를 만난적이 있다. 참새보다 크고 비둘기보다 작은 놈인데 등짝에 푸른빛이 감도는 까마귀 색깔이다. 성질이 고약하여 약탈자들처럼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수십만 마리의 스털링이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하늘을 까맣게 가리운채 날라들었다. 타운을 통째로 삼킬 기세다. 아파트, 주택가, 심지어는 자동차를 까맣게 덮쳐버린다. 날카로운 주둥이로 유리창을 콕콕 찍어대면서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눈을 부라린다. 히치콕의 영화 ‘새’를 보는듯했다. 자녀들이 무서워 벌벌 떨었다. 내가 눈을 왕방울 만하게 뜨고 공룡흉내를 내자 한 놈이 얼른 도망쳐 버린다. 그러자 우르르 태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면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어 모두 날라가 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돌섬(Far Rockaway) 서쪽에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Jamaica bay Animal refuge가 있다. 자연보호구역인데 나는 새섬이라 부른다. 섬중앙에 민물호수가 있고 섬둘레에는 먹이가 풍부한 개펄이다. 개펄에서 배불리 점심을 먹은 새들이 장소를 옮긴다. 오리과들은 민물호수에서, 참새과들은 호수주변 나뭇가지에서 오후의 사랑을 즐긴다. 새섬은 나의 단골 산책로였다. 새섬을 걷다가 남쪽을 바라보면 물위에 떠다니는 섬이 보였다. 정종현의 시가 생각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섬에 가고 싶다”
은퇴하고 노인아파트를 찾아 파라커웨이로 왔다. 와보니 내가 새섬에서 가고 싶어하던 바로 그 섬이었다. 난 새섬과 대칭하여 돌섬이라 부른다. 새섬, 돌섬, 모두 자마이카만(灣)에 붙어있는 가까운 이웃이다. 새들도 이웃으로 알고 찾아온다. 우리밭의 단골철새는 로빈 오리올(꾀꼬리) 스털링 찌르박이다. 텃새인 참새도 텃새행세를 하지 않고 몰려와 잘 어울린다.
철새는 아름답다. 텃새가 겨울희색인데 반해 철새는 봄꽃 가을단풍으로 단장한 칼라패션이다. 텃새는 참새처럼 단음으로 짹짹거리기만 하는 음치다. 철새는 종달새 꾀꼬리 뻐꾸기 뜸부기처럼 오페라수준의 명창들이다. 철새는 체력이 강하고 잘 뭉쳐 다닌다. 그래야 폭풍과 독수리를 이기고 13000 km의 먼 여행지를 날아 다닐수 있기 때문이다. 철새는 계절을 찾아다니며 세상을 아릅답게 해준다.
철새들을 보면서 나는 가끔 인간철새를 생각해본다. 양지만 찾아다니는 인간철새들. 돈 몇푼에 눈이 멀어 변절 배신을 하고도 눈하나 깜짝이지 않는 인간철새들. 5,16이 일어나자 민주주의 신념을 버리고 군사독재에 아첨하면서 부귀를 누린 인간철새들이 얼마나 많은가? 평생을 모시던 DJ가 서거하자 독재자의 딸에게 달려가 치맛자락을 매달리며 구걸한 인간철새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철새들은 추악하지만 조류철새들은 아름답다. 오늘도 맨발로 내 작은 밭고랑을 걸으며 새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로빈후드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철새 비둘기 애도가 보이지 않는다.
“여보, 과자가 없어졌으니 애도가 먹은게 틀림없는데 왜 안보이지?”
“며칠째 나도 애도를 못봤어요. 출출한 생각이 들어 과자는 내가 먹었구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아내가 촌비둘기 애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대기에서 꼬랑지를 쳐들고 노래하는 로빈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