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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浚論)이 아닙니다. 칠십 노인이 된 등촌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변잡담(爐邊雜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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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한 성경책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2-02-13 (월) 03:14:09

남미(南美)에서 올라온 박목사가 돌섬을 찾아와 우리집에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 읽고 있는 성경책이 걸레다. 얼마나 오래됐던지 검은 표지가 너덜너덜 허옇게 헤어졌다. 물에 빠진 책을 불에 말린 듯 가운데가 맹꽁이배처럼 부풀어 올라있다. 책갈피마다 메모지를 끼워 넣어 부피는 두배나 두꺼워 보이고.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슬쩍 책장을 열어봤더니, 맙소사! 구구절절 빨간줄 파란줄 노란줄 검은줄로 두겹 세겹 겹겹이로 좍좍 어지럽게 거미줄언더라인을 쳐놨다. 여백은 깨알글씨로 가득 채우고. 여간 지저분하고 더러운게 아니다.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남미선교 하느라 오죽 가난했기에 새 성경 하나 못 샀을까? 내 새것 사 줄수는 없지만 중고성경이라도 하나주자. 내가 10년 읽은 성경책도 저것보다야 열배 낫지’

나는 너덜너덜한 거렁뱅이 성경책을 냉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10년 읽은 내 성경을 갖다놓았다. 내 서재에는 십여권의 성경이 꽂혀있다. 난 읽을 때 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지 않는다. 10년 읽었어도 어제 산 것처럼 깨끗하고 말짱하다.

 

www.en.wikipedia.org

나도 처음에는 줄치고 메모하면서 요란을 떨었다. 그런데 성경을 40번 이상쯤 읽고 나니 눈 감고도 훤하다. 바보나 둔재가 아닌데 줄치거나 메모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 성경은 깨끗하다.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더 결정적인 동기가 있었다.

동도공고 야간부 고3때 4.19를 만났다. 내가 다닌 동도공고가 사대문밖 마포변두리라서 경무대로 들어가는 세종로에서 벌어진 4.19 데모소식을 알수 없었다. 수백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안해하던 참인데 4월 26일에 2차 데모가 있다는 기별이 왔다. 나는 겁이 많아 앞장서지 못하는 성격이다. 데모대 꽁무니에 붙어 서대문 적십자병원 옆에 있는 이기붕집으로 쳐들어갔다. 때려 부수고 집어던지고 불을 지르는데 마당에 성경책이 뒹굴고 있었다.

성경이 무슨 죄가 있나? 아이성 무너질 때 아간이 몰래 시날산(産) 고급코트를 훔쳤듯이 나는 성경을 집어 가슴에 감추고 도망쳐 나왔다. 이기붕이 싸인한 신구약영어성경이었다. 얇고 질긴 미농지에 붉은색 양피가죽으로 덮은 킹제임스 판이었다. 미국유학생활을 하면서 구한 성경이었다.

책갈피에 큼지막한 흑백사진 한장이 끼어있었다. 이기붕 박마리아부부, 아들 이강석형제, 네 식구가 건장한 모습으로 서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4.26이후 아들 이강석의 권총으로 집단 자살한 이기붕일가의 죽기 전에 찍은 모습 같았다.

초등학교시절 소설가 염상섭과 1, 2등을 나눠 가졌던 문학소년 이기붕. 부통령에 당선 되고난 후 목사 되는게 꿈이었다고 고백했던 이기붕. 그가 어쩌다 이승만 독재의 앞잡이가 되어 비극의 종말을 맞이해야 했다. 그런 이기붕의 성경을 내가 갖고 있는 것이다.

난 이기붕성경을 보물섬 지도처럼 숨겨놓고 몰래 훔쳐보곤 했다. 그건 나에게 성경이상이었다. 나만의 비밀과 괴로움을 성경사이에 적어놓았다. 여자의 유혹에서 벗어나자는 투지와 맹서를 기도문 혈서로 써 넣기도 했다. 내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이기붕성경을 펼쳐보면서 투혼을 불살랐다. 이기붕성경은 가보요 보검이었다. 엉큼스럽게 이런 계산도 해봤다.

‘30년만 지나면 이게 값나가는 골동품이 되겠지!,

그런데 10년 쯤 지나고 나니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체 없이 그 성경을 불살라 버렸다. 누가 탄식했다.

“아까워라 아까워! 그걸 골동품 수집가에게 팔면 로또 당첨금처럼 횡재를 할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때부터 성경을 신주 모시듯 하는 걸 싫어한다. 성경뿐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귀하게 여기는 골동품들을 우습게 여기는 객기가 생긴 것 같다. 이기붕성경도 버렸는데 박목사의 너덜너덜한 거지성경이 내 앞에서 온전할 리가 없다.

“내 성경 어디 갔어? 내 성령의 검 어디 갔어?”

화장실에서 나온 박목사가 골리앗이 잃어버린 보검을 찾듯 허둥댔다.

“여보게, 자네 성경이 하도 더러워서 내다 버렸네. 내가 주는 성경이 훨씬 깨끗하니 그걸로 읽게나”

“아이구 목사님, 저는 그 너덜너덜한 성경으로 읽어야 은혜가 돼요. 성경구절 찾기도 쉽고 메모만 갖고도 설교가 되구요.”

얼마나 성경을 안 읽었으면 표시를 해놔야 구절을 찾을까?

그건 아니다. 가식이요 위선이요 권위과시다. 고승(高僧) 성철이 누더기 장삼(法衣)을 입고 다니자 젊은 중들은 멀쩡한 법의를 걸레로 만들어 입고 다녔다. 심지어는 빨지도 않고 이를 잡지도 않아 이가 스물스물 기어 다니는 중 옷을 입고 다녔다. 고약스런 냄새에다 얼마나 가려웠을까? 불쌍타 불쌍해!

 

www.en.wikipedia.org

기독채널 TV에 목사들이 줄줄이 나와 설교하고 있다. 그중 젊은 목사가 가관이다. 가장 젊고 가장 키가 작다. 돋보이게 하느라고 그러는지 3배 이상으로 배가 뽈록하게 부풀어 오른 너덜너덜한 성경을 강단위에 올려놓고 설교다. 이상한 건 설교하면서 단 한 번도 성경 보는 걸 못 봤다. TV 설교이니 완벽하게 암기했을 것이다.

성경배가 워낙 뽈록하게 불거져 나와 손으로 펴들고 읽을 수도 없다. 그저 거룩하게 보이려는 전시용 장식품인 것이다. 사해사본도 아닌데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성경이 무슨 권위인가? 허옇게 늙은 목사라면 몰라도 머리가 새까만 젊은 목사가 그러는 건 꼴불견이다.

성철이 일렀다는 말이 생각난다. 목사들도 들어야 할 것 같아 적어 놓는다.

“50이 되면 불경을 읽지도 말고 갖고 다니지도 말라. 아예 불경(佛經)을 버려라. 젊었을 때 안면(眼面)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도록 수천번 읽었으면 머리와 가슴속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마다 꺼내 기억하면서 실천하는 게 참 불경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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