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지여행도 유럽여행도 별로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만나는 게지 그분이 생전에 걸어 다닌 길을 걸어본다고 만나는 게 아니지요. 아침마다 KBS TV가 방영하는 ‘세계의 유산’을 보고 있으면 앉아서 세계의 명승관광지를 파노라마로 구경하는 기분입니다. 구태여 돈 내고 가볼 필요가 있을까요?”
아내가 자녀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도 난 搖之不動(요지부동)이다. 내가 여행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똑같기 때문이다. 어딜 가 봐도 빌딩과 자동차와 호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꼭 가보고 싶은데가 있다. 그곳은 아주 유별난 곳이다. 지구상에 딱 한곳만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와도 비교가 안 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시인 오바넬은 그곳을 파라다이스라 했다.
“새들도 보금자리 잊지 못 하거늘/ 하물며 푸른하늘 내 고향이랴/ 내가나고 자라난 파라다이스여”
내 고향은 경기도 평택군 현덕면 도대리 문곡. 사람들은 “글갱이”(文谷)라고 부른다. 고향에 가고 싶다. 99세가 되신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 계시고 우리 7남매가 모두 잘 살고 있는 고향에 가고 싶다.
그러나 고향은 함부로 가는 곳이 아니다. 출세해서 錦衣還鄕(금의환향)으로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출세했다고 너무 자주 찾아가도 안 되는 곳이다. 미국이민 25년에 나는 세 번 고향에 다녀왔다.
10년마다 가기로 했으니 네 번째는 88살이 돼야 가게 된다.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살아도 비행기를 탈수 있을까? 아무래도 살아생전에 고향가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더 그리워지는 내 고향 글갱이! 영원히 고향에서 살수는 없을까?
photo by 김은주
생각 끝에 고향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사는 이곳 이민의 땅에 고향을 만드는 것이다. 복잡한 아스토리아 노인아파트를 버리고 이곳 돌섬(Far Rockaway)으로 이사 왔다. 시영아파트라서 지저분하지만 주변에 농촌풍경이 널려있어서 맘에 들었다. 3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올 봄에도 30평짜리 밭에 시금치 상추 열무 미나리 파 옥수수씨를 뿌렸다. 다음 주에는 호박 오이 참외 가지 토마토 모종을 심을 것이다. 모두가 고향의 텃밭에서 자라던 것들이다.
photo by 김은주
나는 18살 때까지 고향에서 농사일을 했다. 모심기 논매기는 물론 어른들도 힘들다는 소 쟁기질도 해봤다. 그때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제일 하고 싶은 일들이다. 그래서 손바닥만한 농장을 만든 것이다. 30평짜리 조각농장이지만 흙을 만지고 있으면 고향냄새가 난다. 그래서 좋다. 도시출신인 아내는 흙의 아들인 나보다도 더 흙을 좋아한다. 아내에게 농사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예술이다.
우리 부부는 오전에는 밭일을 즐긴다. 북 돋아주기 풀 뽑아주기 비료주기 소화전에서 호수로 물을 끌어다가 물 뿌려주기. 일이 없을 때는 설치미술가처럼 感想(감상)을 즐긴다. 조금 씩 조금씩 매일 자라는 모습도 귀엽다.
photo by 김은주
오후에는 바다로 나간다. 돌섬은 앞뒤가 바다다. 아파트를 나서면 바로 북쪽에 꽃게를 잡는 포구(Bay)가 있다. 남쪽으로 8분을 걸으면 조개를 잡고 홍어를 낚시하는 바다(Ocean)를 만난다.
숲속을 걸어 바다로 간다. 길옆으로 개나리 해당화 맨드라미 복사꽃이 화사하게 반긴다. 숲속에 숨어서 알을 품던 갈매기 까치 종달이 로빈새들이 하늘을 날면서 봄을 노래한다. 꿩꿩! 외치면서 까투리 뒤꽁무니를 쫒아 가는 장끼도 있다. 꽃들도 새들도 사랑을 나누는 계절이기에 봄은 아름답다.
나는 해변을 걷고 아내는 조개를 줍는다. 70 넘은 우리부부는 고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소꿉장난을 하는 기분이다. 이만하면 돌섬의 고향 만들기가 근사하지 않은가! “고향 충청도“를 노래한 조영남의 노랫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내 고향은 돌섬이여유”
photo by 김은주
그런데 돌섬은 바람의 섬이다. 스칸디나비아 해협을 끼고 내려오다가 영국을 거쳐 대서양을 타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바이킹의 칼날처럼 매섭다. 후러싱보다 5도가 춥다. 감기조심. 엊그제는 겨울 잠바를 입고 나갔는데도 감기에 걸렸다. 약을 복용하고 생강 레몬을 달여 먹어도 나가주지 않는다.
아내가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뻘겋게 풀어서 한 대접 내왔다. 뜨거운 콩나물 국 한사발이면 감쪽같이 감기몸살을 끝내준다는 고향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매운 눈물에 몇 사발을 먹었어도 별무 효과다. 아내가 짜증을 낸다.
“어떻게 된 거예요? 고향식으로 콩나물국을 먹어도 낫지 않으니-”
“여보, 콩나물국도 고향의 콩나물이라야지, 타향의 콩나물은 효력이 없는 모양이요,”
“아이구 당신두, 고향 고향 그만하세요. 봄이면 똑같은 봄이지 고향의 봄 타향의 봄이 어디 있어요? 콩나물도 고향 타향을 가리나요? 당신의 그 지독한 고향체질이 타향의 봄을 앓고 있는 거라구요!”
아내 말이 맞다. 어디 나뿐이랴! 한국인은 너무 고향체질이다. AT&T 전화회사가 조사해보니 이민자 중에 한국인들의 국제전화사용률이 단연 으뜸이란다. 아무리 어려워도 한달에 한번이상 고국에 전화하는 건 한인뿐이라는 것이다. 내 아는 루마니아인은 이민 20년인데도 한 번도 고국엘 안 가봤다고 한다. 가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미국이 살기 좋은데 뭣하러 가느냐고 이상한 표정이다. 금의환향을 제일출세로 아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는 독한 맘먹고 이민 왔다. 그래도 꽃피고 새우는 봄이 오면 가고 싶어지는 고향생각.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시를 쓰고 홍난파가 작곡한 ‘나의 살던 고향’을 불러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식으로 텃밭을 만들고 고향의 농작물들을 모두 심어놨어도 생각나는 고향의 봄. 꽃이 피고 새가 울어도 타향의 봄은 春來不似春(춘래출사춘)인가 보다.
photo by 김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