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와 제재는 답이 아니다
정치외교적 방법은 과학기술적 가능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최근 들어 북핵 처리 방안에 대한 변화를 기대하는 이야기가 많다. 북핵을 정치 외교 영역에서 다루어야 하기에 정치적 환경이 바뀌면서 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는 흐름이다. 문제는 2017년 11월 이후 북핵의 과학기술적 환경이 바뀌었음을 인식하고 이를 반영한 대책 마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정치 외교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지구상에 없는 것을 만들 수는 없고, 지금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불가능한 것을 할 수는 없다.
2017년 11월 29일 북한은 핵탄두 장착 가능한 ICBM인 화성-15형을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 지도부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노선 변화를 시도하였다. 당시 북한 지도부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할 수 있었던 근거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수십 기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확보했다는 것과 사거리가 1만km를 훌쩍 넘어갈 수 있는 ICBM, 그리고 SLBM을 만들었다는 실질적인 것이었다.
본인이 최근 가장 보수적으로 계산하여 본 결과, 2017년 말을 기점(起點)으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을 핵탄두 수는 71~86개라 추정된다. 이는 1990년대 중반 기술로 추정한 것이고 2008년 북한이 공개한 1차 핵시험 당시 소모된 플루토늄 양(2kg)을 근거로 추론한 것이다. 20년 지나 이 당시 기술 수준이 조금이라도 발전한다면 1개의 탄두에 들어갈 핵물질의 양이 더 적을 수 있으므로 2017년 말 기점으로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확보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한 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이 핵폐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완벽히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짧게는 2008년 이후 10여 년, 길게는 1989년부터 30년에 걸친 북한의 핵활동 전체를 검증할 수 없다. 플루토늄을 만들어냈던 영변의 원자로는 최소 3번 이상 연료봉을 추출해서 처리해버렸고, 6번에 걸친 핵시험은 얼마나 많은 핵물질을 소비했는지 알 길이 없다.
첫 번째 핵시험에 대해 북한은 스스로 2kg의 플루토늄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외부에서는 3~10kg을 사용했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가 ‘폐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어떤 외교적 합의를 하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니면 핵폐기를 검증할 방법부터 제시해야 한다.
만일 북한의 핵을 ‘폐기’한다고 합의한다면 ‘제한된 수준’의 폐기(廢棄)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제한된 수준’은 상호 ‘신뢰’가 있어야만 찾아낼 수 있다. 북한이 설득 가능한 수준에서 최대한 핵무력을 신고하고, 이에 대해 미국 등 외부 세계에서는 ‘인정’해 주어야만 의미 있게 된다. 2008년처럼 CVID가 아니라 ‘Complete and Correct’라는 조건에 맞추어 북한이 신고와 보고한 내용을 미국이 ‘의심’하고 ‘합의한 수준을 넘어선 검증’을 시도한다면 북핵은 영원히 처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신뢰’와 ‘봉쇄/제재’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무언가 하지 못하게 하는 negative 행위인 ‘봉쇄와 제재’는 positive 명제인 ‘신뢰(信賴)’를 무너뜨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봉쇄와 제재란 핵무력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나갈 때, 외부의 유입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이다. 이는 단순히 북한을 괴롭히기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다. 핵무력 개발에 필요한 외부 영향을 줄여서 핵무력을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런데 북한은 봉쇄와 제재를 뚫은 건지, 자체적으로 수행한 건지는 모르지만 핵무력을 완성하였다. 일단 자생력이 생긴 북한의 핵무력을 봉쇄와 제재로 통제할 수 없다.
결국 봉쇄와 제재는 북한의 핵무력 개발을 막지 못했고, 일단 완성된 핵무력에는 무력하기에 존재 가치가 사라졌다. 또한 만일 협상에 의해 핵폐기가 합의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행하는데 필수요소인 ‘신뢰’를 깨뜨리는 역할을 하게 될 봉쇄와 제재는 북핵을 처리하는 데 있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글 강호제 |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Research Professor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저자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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