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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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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당신을 찾아 떠납니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08-04 (화) 02:36:30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9)

 

612 , , 1975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휘청거린다.

님이여!

 

긴 소매깃 펄럭이며 하늘따라 가신 내 님이여

 

핏빛 빨간 웃음 입가에 씹으며

 

즐겨 가싯길 가신 내 님이여

 

지금은 들녁에 민들레 피어올라 새소리 꿈결처럼

 

흐르는 하늘

 

내 님이 꺽어 묶은 꽃반지 하나

 

가신 님 계실 때에 귀한 그 언약

 

타는 눈물 감추우고 따르리이다

 

소매깃 펄럭이며 가싯길 떠난 내 님

 

정화수 맑은 마음 드리리이다

어젠 후반기 교육연대의 중대장 홍성준, 이병석 소위에게 편질 띄우다. 밤에 아버님이 주신 편지를 받았다. 주선생님, 정영순을 생각하다. 좋은 분들, 고마운 사람들.

Hegel의 글을 몇 자 여기에 옮겨 적다.

 

민족정신은 역사적 발전을 주도하는 특정계급이 지니는 세계정신의 표현이며 그 가치는 인류발전에 대한 공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세계사적 민족정신을 갖는다고는 볼 수 없다

 

국가는 민족정신의 지도자이고 동시에 목적으로서, 그것은 민족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 즉 문명에 있어서 도덕적 정신적 의의를 가지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국가는 사실상의 힘이며 분명히 민족적 통일과 자치에 대한 민족적인 열망의 표현이긴하나 근본적으로는 민족의 의사를 국내외에 실현시키는 힘이다.

 

따라서 국가는 그 재산을 집단적으로 보호하는 집단으로서 그의 유일한 근본적인 힘은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충분한 시민적 군사기관을 확립하는 데 있다. 국가란 민족의 의사와 운명의 정신적 구현이었다.

 

종일 찌는 무더위 속에서 동료들은 노동을 한다. 이곳의 일과란 사역에서 사역으로 끝이 난다. 나는 열외가 되어 내무반 감시로 남았다.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한경직 목사의 글을 읽다. 사랑이란 사랑에서 나온다고 한다. 사랑이란 사랑 이외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완전한 통일 순환 mechanism이다.

어린 동료들이 나를 상당히 질시 속에서 보는 것 같다. 그들과는 너무도 상이함이 많은 나다. 군의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나이도 그들 보다 많다. 학력도 길다. 그리고 쫄병인데도 여러가지 혜택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저녁에 잔심부름을 하고 있으려니 인사계 상사가 날 불러 그리운 나의 천사에게서 온 편질 건네준다. 노야가 19일날 날 보러 온단다. , 하나님! 이 기쁨, 이 환희, 제 가슴은 그냥 이상스럽게도 차분하고 담담하옵니다. 남산동 부모님과 신천동 아버님, 수남이에게 편질쓰다. 나는 19일 그날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대구로 가야 한다. 나는 가능한 내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해야만 한다. 노야! 널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다.

 

 

****나의 님!

수요일은 가장 홀가분한 날입니다. 딴 날은 5시간씩 수업이나 이날은 3시간입니다. 요새는 이곳 선생들과 아이들과도 낯이 익어 스스럼이 없어졌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거창으로 전근와서 1주일을 신세지던 후배 집에서 나와 이사도 했습니다.

 

당신이 보시면 무척 좋아하실 방입니다. 방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바로 들판이요 산과 하늘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습니다. 방이 반듯하고 꽤 큼니다. 이 방을 정하기까지 며칠을 발이 닳도록 거창 바닥을 돌아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우묵하고 쑥 들어가는 방이 좋았는데 요새는 그런 방은 답답해서 잠시도 못 있겠고 전망이 탁 터진 곳이 좋습니다.

 

퇴근해서 사둔 살림살이를 말끔히 예쁘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집 앞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그 맑은 물에 얼굴도 씻고 빨래도 할거예요. 졸졸 흘러가는 물소리가 참 상쾌합니다. 시장에 가서 찬거리와 우유 비콤을 사겠습니다. 부지런히 해먹고 살이 띠룩띠룩 해서 줄구장창 살찌라는 당신의 잔소리가 쑥 들어가게!

 

교실마다 칠판 옆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걸려 있어서 수업 중 틈만 나면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양평은 의정부보다 서울에서 더 멀더군요. 이제 여덟 밤만 자고 나면 저는 그리운 당신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양평이란 곳이 벌써 정이 들고 이제 제가 이 하늘 아래에서 가장 그리운 곳이 되었습니다.

 

얼마 만인가요. 벌써부터 제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혹 당신이 그곳에 안 계시면 어떡하나? 하루 밤을 자고 일어나면 손을 꼽아 보는 게 첫 일과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요. 하루에 몇명의 환자를 돌보아 주고 계시는지요.

 

주인 집 세살 먹은 여자 아이가 새벽 4시면 얼마나 악을 쓰며 울어 잠을 설칩니다. 오늘 새벽애는 더 울어대어 안고 와서 달래고 꼭 품고 재웠더니 그치는군요. 아이가 잠들고 저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벽을 바라 봅니다. 당신 생각이 나며 눈물이 쨀끔 나오는군요.

 

당신과 헤어져 넉달을 보내면서, 사는데 바빠서 아니! 만난다는게 불가능하다고 아예 포기를 해서인지 보고싶어 못 견뎌 하지도 않고 지내다가 이 며칠 간은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고 정말 못 견딜 것 같습니다.

 

당신을 만나 사랑을 하고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안 만나 본 일은 없어서 당신을 보면 처음 보는 사람같고 서먹서먹할까요.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가 말도 못해 봤는데 누가 당신을 데려가면 어떡 하지요? 같이 지내는 분들은 좋은 사람들인지 그 고된 생활을 다 넘겼으니 당신은 이제 어디 가도 큰소리 칠 수 있겠지요,

지금 당신 어머님과 통화했습니다. 두 형님이 15일날 당신 면화하고 오셔서 전화하시면 같이 가신다고요. 저는 18일 오후 차로 대구 가서 19일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하겠습니다. , 당신을 보러 간다니 꿈만 같습니다!

1976612, 노야.

 

 

----노야

19일 오신다는 편지받고 급히 씁니다. 딴 말씀은 우리 만나서 하기로 하고. 나를 도우시는 분이 노얄 이리로 모셔 올테니 겉봉에 쓰인 주소로 찾아 오면 고생을 덜 하리라 믿소. 당신이 고생을 할까봐 부탁을 드렸다오.

 

오실 때 역사철학 1, 2권 가져 오시면 좋겠고. 선생님께나 형님께 연락을 하고 오시면 좋겠소. 돈도 좀 필요하고. 그리고 작은 영어 단어집 하나 가져다 주오.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소. 몸이 너무 수고스러우리라 죄송하고 송구하오. 급히 쓰는 것이라 줄이니 용서하오.

 

<노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동대문 터미널에서 여주 오는 고속버스로 여주에 오셔서 다시 대신으로 오는 일반버스를 타시면 됩니다. 오시다가 천서리에서 내리십시오. 바로 앞에 부대 정문이 있습니다.

 

정문에서 저의 이름으로(남상룡 상사) 면회 신청하십시오.

주소는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2리 의무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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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 , 1975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잔소릴 듣는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자유에 산다. 그들의 행동이나 욕설과 질시가 내 평화로운 가슴에 파문을 만들 수 없다. 한쪽 귀로 듣고 흘려 버리리라. 욕하는 놈의 주둥이만 아프다. 분대 전투훈련을 오전에 받다. 소총중대가 하는 훈련에 비하면 이건 어린애 장난이다. 꼬락서닐 보니 오늘은 책 볼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을 듯하다. 시험지를 오려 만든 이 일기장에 글이 가득하여지는 날 노얄 만나리라는 생각이 나를 하염없이 이 글들을 쓰게한다.

어제 읽은 한경직 목사의 설교집은 무척이나 조잡하다. 영은 영적으로 느껴야 하고 그것은 주어지는 것인데 그는 그것을 가르치려 한다. 그의 무신론에 대한 설명은 하등의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신이 있는 것은 하나의 증거로 가능하지만 신이 없다는 것은 우주의 모든 곳에서 모든 역사적 현상과 닥아 올 미래의 시간 속에서도 그것을 일일이 없다고 증명해야 하기에 신은 존재한다는 결론이다.

 

신의 존재는 감각과 논리적 사고의 유추와 외계에 실존하는 존재물로서 파악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가만히 속삭이는 가슴과 영혼으로부터 샘솟는 그런 것이기에 논리적 논증이나 실험적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유물론자들은 물질로 구성된 brain에서 어떻게 사유가 나올 수 있는가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유의 과정을 거쳐서 느끼고 어떤 것임을 명시할 때 그것은 이미 하나의 결론이다. 다시 말하면 사유란 하나의 결론적 사실을 의미함이다. 우리는 그 결론이 날 때까지는 brain을 가지고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다시 말하면 우리의 brain 속에는 전제와 결론이 분리되지 않는 완전한 통일적 양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보기를 Hegel 에서 유도해 보면 was ich weiss 즉 내가 안다는 것과 das ich weiss 내가 아는 것, 이 양자가 이 자의식이 구분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로서 우리의 뇌수는 작용한다. 나는 내 뇌수를 가지고 나의 뇌수가 생각하고 결론짓는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나의 뇌수는 전제인 동시에 결론이다.

이와같이 brain 에 있어서는 물질과 정신이 동일물로서 현현된다. 즉 정신은 물질의 최고형태이다 라고 Feuerbach 는 얘기하지 않았던가. 철학이라는 것이 우주의 제一原因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노력일진대 그것은 외계에서 발견하는 제 사실의 단순한 축적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한 쇠사슬의 고리로 다음을 잇고 또 다음을 잇고 하는 연결의 방법에 불과하며 거기에는 끝이 없는 무한의 연속만이 계속될 뿐이며 하등의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는 적합치 못하다.

 

즉 바람직한 방법은 한 개체 개체의 생성소멸이 유한한 과정 속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이렇게 볼 때 우주만물의 과정은 유한하다. 이 유한한 과정을 무한의 연속적인 변증법적 양식의 지양으로 볼 때 비로서 무한한, 참된 무한의 모습이 유한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고로 한경직 목사가 말하는 신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도입한 논리는 유치하기 그지 없다. 무신론도 하나의 第一原因에서 시작하여 만상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그것도 하나의 표징과 표상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단지 우리가 신앙적 본능을 가진 인간이란 하나의 이유만으로써 신을 믿는 것이며, 또 신은 존재되어야 하는 것이고 또 존재한다. 이 세상을 무신론으

로 볼 때 거기엔 신을 인정하며 영위하는 삶보다 삭막하며 재미가 없는 것이다.

이 종이에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갈 때 노얄 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져 간다는 것이 나의 크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고 내 가슴은 야릇한 흥분에 떨린다.

 

이렇게 일기를 쓰다보면 지나간 일들이 순서없이 무의식적으로 퍼뜩퍼뜩 떠올라 재미있는 생각이 많이 난다.

내가 논산 훈련소에서 전반기 교육을 받을 때 박종영 하사가 한 소행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땐 추운 날이라 (2) 무연탄 난로를 때었는데 60명 가까운 훈련병을 내무반에 일열로 세워놓고 난로 뚜껑을 열어 놓은 채 종이를 마구 태웠다. 내무반 안은 연기로 지척을 분별할 수 없었고 너도 나도 재채기 기침으로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정훈희의 안개를 부르게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밤안개로 잘못 불러 얻어 터지던 추억은 지금도 내 입가에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왜 이런 생각이 머리에 스쳐가는지 나도 알 수 없다 .

그리고 후반기 시절 박격포 사격 훈련을 나가서 내가 사격을 잘못하여 멀리서 사격 지휘를 하던 중대장 홍성준님의 머리 위로 포탄을 쏘아 중대장이 달아나던 기억도 나를 우습게 한다, 전반기 훈련 동안은 너무도 추억이 많았다.

 

거지보다도 못한 옷을 입고 얼굴이 퉁퉁부어 변소가에서 추위에 떨며 멀리 담 넘어 산 너머 달리던 고속버스를 바라보던 기억, 돼지 밥을 모우는 짬밥통 옆에서 찌꺼기 밥을 퍼 먹던 기억. 하수구 물에 식기를 씻어 다시 거기다 밥을 얻어 먹던 기억. 그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견딜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곳에서 겪었던 체험은 거지가 왜 죽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꾸정물이 가득한 밥그릇, 때가 진득진득한 잠자리, 그곳에도 웃을 수 있는 낭만은 있었다.

지금 내 발 앞에 나는 나도 모르게 돌로 ‘shame’이라고 쓰고 있다. 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종일 생각해본다. Adam이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발가벗은 몸에 대해 수치감을 느끼고 숨어 버리며 피한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는 담을 쌓는 행위로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들끼리 속이고 미워하고 두꺼운 장벽을 치고 사랑하는데 인색하고 싸움과 전쟁이 유발되었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shame이라는 것, 이것을 느끼기에 인간은 몸을 가리게 되고 타자와 마주보고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고 인간 인식의 최초의 느낌인 자책과 자성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shame때문에 인간은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예술을 하며 문화와 문명을 창조했을지도 른다.

의학적으로는 아기가 6개월이 되면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 shame을 누가 주었는가. Shame은 원죄에 대한 인간의 수치심인가? 역시 신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와는 shame도 없고 사랑에는 외피가 필요없다.

오후엔 땅을 파는 중노동을 했다. 거기서 노가다처럼 막걸릴 한잔 한 게 몹씨 취한다. 이런 기분으로 사는가 싶다. 더럽게 취한다. 배에 기름이 빠져서 그런가. 군에서 먹는 건 수년씩 묵은 쌀로 지은 밥에 배추국이라 술을 어쩌다 한잔 먹으면 몹씨 취하고 정신이 아득아득해 진다. 조금 전에 쓴 일기는 글씨가 술에 취해 개판이다.

저녁을 먹고 동료들은 또 사역을 나갔다. 수도공사를 위해 땅을 지하 3m 가량 팠다. 나는 강우만 병장의 배려로 빠져서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무척 감사하다. 그리고 사람을 그릇대로 대접도 할 줄도 안다. 부산 친군데 몸이 대단히 좋다. 이젠 새로 종일 묶었으니 노야가 올 때까지 부지런히 이 종일 채워야 한다.

내 일기가 최소한 노야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나에겐 기쁜 일이며 유배생활을 하는 내가 노야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이렇게 남기는 나의 얘기와 거리 시간을 초월해서 노야에게 날아가는 나의 사랑의 연가 뿐이다.

 

나는 이 3년이란 세월을 남들처럼 허송으로 고통 속에 보내서는 결코 안된다.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내 결함과 부족함을 보완하는 필수의 3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구로 가겠다.

내가 군에 입대해서 성경을 읽고 사색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성경을 읽겠다고 벼루어 온 생각과 군에서 구할 수 있는 활자로 된 것은 성경과 기독교 계통의 책밖에 없는 것도 원인의 하나다. 세계 기독교인의 복음과 교리를 전하고자 하는 정열과 노력이 나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사랑과 노력과 끊임없는 투지에 찬사와 감사를 보낸다. 복음은 결코 사회를 개조 변혁하는 성질의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심성을 개조하는 데에만 국한된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기독교인들은 내적 가치인 자유와 심령과 천국에서의 평화와 구원 속에서만 자위해 왔는 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사회적 복음으로 확대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진리와 평화와 민주와 자유의 보루로서 그 전위적 투사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고도의 물질문명과 돈만능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성과 폭압적 파쇼에 대항하는 최대의 무기는 성경의 재해석에서 기대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또 하나의 재미있는 체험을 하다. 조병장이란 재미있는 친구가 뱀을 한마리 잡아서 구웠다. 나도 먹어보자 싶어서 한점 얻어 먹었다.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하루의 고된 일과 후에 씻고 나서 언덕에 올라 한개피 화랑담배의 연기로 그날의 피로를 씻는다. 그리고 간간히 멀리서 popular music이 들릴 때면 향수도 느끼곤 한다.

입대하기 전날 밤 주선생님의 차를 타고 노야, 진미, 영순, 수남이와 의성으로 달려올 땐 온 천지가 백설로 하얗게 덮혔었는데 벌써 녹음이 이렇게 우거졌다.

훈련기간 중 야전훈련을 나갈 때 바라보면 싹이 돋아나던 그 보리이삭들, 그때 듣던 산 너머 남천에는 누가 살길래노래가 멀리 담 넘어 들려올 땐 콧마루가 찡했다. 인간사회엔 아름다운 것도 많지만 추악하고 더러운 것도 너무나 많다. 나는 이제 배신과 배반의 의미를 터득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무자비한 보복에도 나는 냉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에 솟아나는 용서와 사랑이 나를 따뜻하게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 외아들을 죽음으로 보낸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사랑의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독생자를 보냈다는 것은 그 사랑의 깊이와 크기를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외아들을 죽음의 길로 보내겠는가. 성경은 계속 읽겠다.

밤이 되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무척이나 요란스럽다. 시골길을 걷는 노야도 개구리 소릴 들으며 날 생각하겠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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