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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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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란 nothingless 이상의 개념이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08-04 (화) 02:24:03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8)


   

610, , 1975

 

내가 이곳에 온 지도 보름이 된다. 어제 아버님한테서 서신이 왔다고 들었는데 나에게 배달이 되지 않는다. 기분이 언짢다. 어제 밤 잠을 설쳤다. 지난 날의 쓰라린 상처가 나를 전전반측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긴급조치 1호가 터지던 날 (741)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밤길을 톡기던 일, 긴장과 불안 초조 속에서 화원의 어느 여관에 피신해 있던 일. 어느날 밤 몰래 집에 가서 어머닐 찾아 뵙던 기억과 어머님의 불안해 하시던 모습, 화원으로 광우와 빨간 오바를 입은 노야가 날 만나러 오던 일, 며칠 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던 길에 집엔 들어가지 못하고 새벽 차로 서울로 달리던 일. 형님 댁에 피신해 있을 때 피가 한방울 한방울 마르는 것 같던 초조와 긴장 속에서 숨어 지내던 날들. 그 멀리 날 보러 달려와 주던 노야의 뜨거운 사랑.

나는 정말 너무도 운이 좋은 놈이다. 내가 해온 일 그 사건은 다른 동지들이

한 일에 비한다면 진정 아찔할 정도로 하나님의 가호가 있었고, 민청학련사

건도 내가 했던 사건의 후속타에 불과한 것이었고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나의 구상과 계획의 후속타를 친 것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너무도 쉽게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 투옥되고 혹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내가 피해온 그 무섭도록 깊은 낭떠러지를 뒤돌아 바라보면 지금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후둘거린다. 그 이후 내가 제명되고 입대하기까지 아니 어제까지도 나는 그것을 회상하며 유추할 여유도 공백도 없었다. 이것은 너무도 솔직한 고백이다. 어제야 비로소 그날들의 일들이 순서 있고 체계있게 내 머리에서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작년(74) 1월 이후 오늘 날까지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스스로 손가락을 베어무는 아픔 속에서 숨통이 꽉 막히는 듯한 질식감 속에서 두려움과 거대한 조직체의 톱니에 끼인 개미처럼 순간순간의 안전과 무사를 빌곤 하지 않았던가. 그 몸서리쳐지는 고통과 공포와 불안에서 초를 탈피하고 분을 피하기 위하여 타락도 할려고 했고 더한 공포와 초조를 찾아서 이미 주어진 공포와 초조를 피할려고도 했었다.

 

어쩌면 여기서 빚어진 내 행위는 다리의 고통을 덜기위해 팔을 끊어버리는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도와 같이 홀로 떨어져 있는 적막감과 외로움 속에서 홀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처절하고 피가 나는 노력을 했어야만 했다. 노야를 찾았다. 형님을 의지했었다. 동료들과의 자신에 넘친 대화 속에서도 내 외로움과 사면초가로 좁혀 들어오는 불안과 공포는 해소되지 않았었다.

 

노야! 그땐 정말 네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내 가슴에 넘실되는 평화와 사랑으로 내 가슴은 감사에 떨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즉자적인 발견 속에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지혜와 체념을 배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공포란 nothingless 의 감에서 비롯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내가 아는 공포의 개념이란 nothingless 의 무의식적 작용이상의 개념이다.

공포는 공포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공포가 된다. 하나의 주권 즉 일반적 존재가 그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실현시켜야 될 그 제도와 사회로부터 오히려 괴리 유리되고 적대적 역동력으로 대치될 때 공포는 조성되고 이식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organism이 파괴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조화와 정제의 파괴라는 것은 하나의 fear임에 틀림이 없다.

오후에 변소에서 똥을 푸고 있으려니까 중대장 김정호님이 불러서는 1대대가 사격하고 있는 사격장으로 가보라 해서 ambulance를 타고 왔다. 산이 무척이나 눈 앞에 가까이 있다. 피잉 핑 가르는 총알이 고막과 파란 산 정기와 공간을 물결처럼 흔들어 놓는다. 마치 두더지처럼 땅을 기는 병사들. 그들의 얼굴은 물기없는 밀가루로 빚어놓은 것 같이 푸슬푸슬하다. 애처럽고 가엾다. 인생의 길이란 역시 형극의 길이다.

누가 전쟁을 낭만어리게 그렸던가. 저주받을 손 전쟁이여 결코 이러한 비극이

이 땅에 재현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토록 고생을 할 수가 없다. 그 병사

들의 손을 봐라. 그것은 구덩살로 자갈처럼 못이 들고 손바닥은 진흙처럼 갈

라져 있다.

 

개울물에 내려가봐라. 두 넙적다리가 절단된 작은 개구리가 떠내려가고 있을 거다. 개구리 다릴 먹는다. 그것도 새끼 개구리 넙적다리를. 눈이 시그럽다. 그리고 멀미가 난다.

나는 지난 날의 나의 위치가 얼마나 행복하고 어려운 위치였던가 하는 걸 실감한다. 고위층과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논쟁하고 투쟁하던 그날들. ! 대부분의 병사들을 봐라, 그들은 몽매하고 몇 천년 그런 생활에 익숙한 것 같은 저 뼈아픈 자태들. 그들은 견디고 참으며 하루를 산다.

 

누가 인간이 인간과 서로 질시하며 피흘리며 독을 품으며 이를 갈게 하였는가. 산을 울리는 저 총성, 그게 무슨 소릴 닮았을까. 우뢰소리의 여운과 같다고 할까. 그렇다. 꼭 우뢰소리가 치고 난 후의 남은 여운과 같이 소리가 허공에 부서진다. 또 간간이 울리는 저 새소리. 가만이 귀 기우리면 들리는 물소리. 머리가 무겁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다. 노야, 지금의 내 심정과 기분을 이해할 수가 있겠소?

가장 쫄병인 내가 이렇게 자주 바깥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많은 고참을 제쳐두고 오늘도 사격장에 온 것은 나에게 새로운 느낌과 체험을 가져다 준다. 중대장님께 감사한다.

 

저녁 무렵에 한 병사가 사격을 하다 총의 반동으로 눈동자가 찢어졌다. 큰 상처가 아니라 마음이 놓인다. 황혼이 지는 계곡에 온몸을 위장망으로 위장한 병사들이 포를 쏘고 함성을 지른다. 나는 마치 국외자와 같은 기분으로 그들을 내려다 보며 이상한 느낌을 가진다.

 

나도 될 뻔한 박격포 대원들. 실전과 같은 훈련. 폭탄이 산허리에서 검은 연기를 동반하고 폭발하면 한참 후에야 산을 진동하는 폭음소리. 나는 거기서 월남 안케전투의 영웅 이무표대위를 보았다. 생존자 중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태극무공훈장의 주인공이다. 무척 단단하게 생기고 키가 작다. 인류사회에 전쟁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영웅은 그 시대 정신을 대변한다.

 

나는 영웅이 되기보다는 도를 전하는, 작고 겸손하며 용감한 선각자가 되고 싶다. 밤늦게 피곤한 몸으로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려 허기진 배로 돌아와서 라면을 끓여먹고 12시경 잠들다.

611,, 1975

지금 연대 본부에서 배구시합이 각 대대 대항으로 한창이다. 나는 그 자릴 살짝 피해나와 높은 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 글을 쓸 여유와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내 몸에 아직도 평범한 한 군인으로서의 심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때문인 듯 하다. 군인은 사고와 미련과 일체의 인간적 행위가 박탈당해 있다. 오전은 똥물을 터비기 하도록 나르고

거름을 주었다. 내 몸에서 구린내가 몹시 난다. 똥물을 주는 시간 틈틈이 성경을 읽다.

이젠 기독교에 대해서 윤곽이 잡힌다. 그것은 하나의 체계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연결 속에서 미래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구현의 체계이며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 표현할 수 없는 심원함과 깊이를 감지한다. 여호와는 태초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거기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에덴에서 추방된다. 이 죄를 죄 없는

이가 속죄한다. 죄를 진 자가 속죄할 수는 없는 거다. 여기서 예수의 성령으

로 남은 비밀이 풀린다. 그는 인간이며 동시에 원죄에서 자유인 비인간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가 전 인류의 원죄를 대속하며 십자가에 못박힌다.

여기서 인간은 비로서 원죄로부터 해방, 즉 용서의 실마리를 풀게되는 차원

으로 예수의 탄생은 예언되고 선지자에 의해 약속되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게 한다. 이 대속에 대한 감사의 정, 처절을 극한 그의 죽음의

방식은 너무도 예언적이며 시사적이고 상징적이다.

 

십자가의 가로목은 인간과 인간과의, 세로목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끊어지고 저주받고 버림받은 관계의 연결을 상징한다고 읽었다. 그의 죄없음과 처절한 죽음에서 우리는 감사와 사랑을 주께 돌린다.

 

성령, 영이란 것을 나는 분명히 체험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가만이

허공을 소리없이 나르는 구름처럼, 새벽에 반짝이는 샛별처럼 조용히 가슴

에 속삭인다. 그리고 그것은 안개처럼 가슴에 퍼지며 솜처럼 온 몸을 감싼다.

그것은 인간의 얼굴에 온유하고 안온한 미소를 띠게하고 그의 눈은

기쁨과 밝음에 초롱거리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노야의 모습과 꼭 같을지도

모른다.

Marxism 은 여기에 필적할 만한 과학성과 번뜩이는 예리함은 있으나 속삭임

과 온유함과 따뜻함이 아니라 강열하고 눈부신 하나의 인간의 작품이란 생각

이 지나간다. 그것은 역시 인간의 작품이기에 신의 글과 성령을 옮겨주는 심원한 고요와 맑고 청량한 정기는 주지 못한다. 어제 밤 돌아 왔을 때 작은

형님과 누나의 편지가 와 있었다. 노야가 전근했다는 소식. 많은 나의 편지가 타인의 손에 가 있는 것이 안타깝다.

고린도 전서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Hella인은 지혜를 구하지만 우린 그

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접한다는 말을 오랫동안 음미하다. 전자는 인간의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와 위치를 고집 고수한 채 신을 찾고, 중간자는 인간

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후자는 자아를 던져 버리고 신앙과 믿음 속에서 신

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연병장으로 내려와 불타는 6월의 태양 아래에서 뛰고 손뻑치고

하는 병사들을 본다. 씩씩하고 늠름하다. 비록 콜라 한 병, 맹물 한 모금 마

음대로 못 마시고 하는 경기지만. 멀리서 완전군장에 구보로 달려온 먼지 묻

은 병사들. 항고 뚜껑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른다.

소위 군에서 말뚝을 박은 친구들, 50이 넘은 상사, 중사들은 그렇게 철따구

니가 없고 조잡할 수가 없다. 웃긴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너의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텅 빈 상태를 의미한다. 일체의 의심, 인간적 헤아림, 회의,

비판을 떨쳐버린 의 상태를 의미함이어라.

내일은 일기를 쓸 시험지를 또 묶어야겠다. 밤엔 삼일 예배를 무리해서 가서 성경을 읽고 저녁엔 회식을 했다. 술이 조금 취해서 향수에 잠기다. 12시경 잠을 못 이루어 친절한 강우만 병장에게 내 지난 날의 얘기를 들려주다. 그는 좀 놀라는 듯 했다. 노야 잘 자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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