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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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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소총이 관통한 어린 병사의 발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7)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07-22 (수) 05:38:09

치떨리는 비정함에 분노 회한

      

 

68, , 1975

여기선 여가선용으로 배굴하면 해가 빠지도록 해야한다. 그것도 고참들만 공을 만지고 졸병은 뒤에 멀그니 서있다가 공만 주워서 주어야 한다. 개좃같이 기분이 나쁘고 정말 환장할 일이다. 시간을 주면 책도 보고 잘 쓸텐데 그렇게 시간만 때워버리게 한다.

아침에 또 배구할 낌새가 보여 피하려고 또 성경을 읽을 겸 무릴해서 눈치보며 교회로 갔다. 거기서 성경을 한 시간 읽다. 그 신비적이고 예정운명론적인 말씀에 감명을 받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오다. 기분이 괜찮다. P. X.에 들려서 일기를 쓸 수첩을 사려 했으나 없어서 시험질 잘라 묶을 생각이다. 이 종이도 이젠 다 되어 노야와의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종이를 묶어야 한다. 일기를 쓴다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크나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KakaoTalk_Photo_20200508_0221_41236면회갈 때 주고 건 수첩이 차면 시험지를 오려 꿰매서.jpg

 

성경 구절에 태초에 빛이 어둠을 밝혔다. 그러나 어둠은 그 빛을 느끼지 못했다.” 무척이나 시사적인 말이어서 인간의 감성과 지성의 한계와 우둔함을 감지한다. 허나 그 속에 빛을 발견한 자는 하나님의 자제로 선택함을 받다라는 구절은 이 세상의 암과 명, 지와 우, 선과 악, 미와 추를 규정적으로 구별하고 있다.

 

Vist der vernunft (理性狡智) 라는 Hegel의 말. 미를 위한 추의 존재가치와 선을 위한 악의 존재의의를 생각하다. 이성은 변함이 없지만 이성이 산출하고 파생하는 비이성적인 요건은 항상 인간을 혼돈시키고 교란시키며 애매하게 한다. 이 혼돈과 곤고함 속에서 절대 빛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투쟁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어머님! 차마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정말 이런 일이 이 천지에서 공공연히 자행될 수가 있습니까.

노야, 교회에 갔다 오니 병실이라고 칸막이 해놓은 곳에서 처절한 울부짖음이 나길래 달려갔다. 한 어린 병사가 M1 소총으로 사격을 하다 발을 관통당했다. 뼈와 살이 갈라지고 고통에 그의 입은 연신 어머닐 부르고 근육은 경련을 마구한다. 그러나 나의 치를 떨게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더러운 인간의 속성과 심리 그리고 무관심하고 냉혹한 비정함이다.

위생병들은 점심을 안 먹었다고 그를 그냥 두고 밥을 먹는다고 돌아앉아 있고, 보안대새끼, 나이를 상당히 처먹은 놈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잡고 수사를 한다고 난리다. 자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아닌가. 가장 졸병인 내가 그를 후송하는 ambulance 에 탔다. 자원도 아니고 어찌된 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올라 탔다. 내 자신이 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나의 의지로 나는 차에 올라 타서 내 힘 닿는 한 그를 간호했다.

위생병들은 점심을 먹는다고 보이지도 않고 내 옆에선 보안대 놈의 수사가 한창이다. “이 새끼, 너 자해지? 너는 다리를 끊어야 해.” 나는 보안대에게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빨리 가자고, 빨리 가야 한다고. 그놈의 상판을 못 갈긴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간절히 기도하며 자갈길을 몇 분인가 모르게 달려 후송부대로 왔다.

거기선 나를 정말 처절하게 만들었다. 그 인간들의 무관심, 울부짖는 병사. 속터지게 몇 시간을 또 지체한다. 우중충한 MASH 안에서 김일병을 만났다. 파리한 놈의 얼굴이 무척 반가웠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의 비틀어진 허리. 그는 말했다. “현형, 서럽습니다. 자살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어요.”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말은 우리 용길 가지고 살아 갑시다.”

마치 푸줏간 같은 Mash의 분위기. 나는 피로 물들은 그 병사의 붕대를 내 손도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조심조심 끌렀다. 그의 살은 갈라지고 터져 었다. 어머니, 그에겐 홀어머니 밖에 안 계신다고 해요. 그를 큰 병원으로 후송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이 글을 쓰고있다.

양평이 뒤로 뒤로 멀어진다. 덕성리, 천서리를 지나오고 있다. 가는 차의 방향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뒤로만 처진다. 가슴도 무겁다. 노야! 수첩을 살 수 없어 이렇게 종이를 묶어 당신과 대화를 계속한다오. 편지엔 쓸 수 없는 사연, 하고푼 말들, 이렇게 하나하나 다 적고 있다오.

지금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고 멀리 산들이 층층이 포개진 선들은 마치 살얼음처럼 얕게 보이고, 지는 해를 등져서 동쪽을 보면 마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이 환각처럼 파란색 초록색으로 머리가 어지럽도록 현란한 저녁 풍경이오.

 

무척 낭만어린 모습으로 느껴지지 않으오? 산하의 풍경은 그렇게 펼쳐져 있소. 남한강은 여러 갈래가 분지되는 모습이 마치 수 겹 rail이 달리는 것

같이 저 언덕 밑으로 이어져 있소. 산들이 무척이나 낮아 보이는구려.

 

나는 지금 괴롭디 괴로운 배구사역을 하고 있다오. 고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공을 무려 3시간이나 주워주고 있다가 눈을 돌리면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찬다오.

성경구절이 생각나오. 한 소경에게 광명을 준 예수에게 묻기를 그가 소경이

된 것은 그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들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누구의 죄도 아니고 단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지금은 낮이니 빛이 있어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을 해야 함이

요 밤은 어두워 우리가 일을 할 수 없도다.” 하시니라.

 

단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얼마나 처절을

극한 말이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선 개인은 희생을 당할 수도 무시될 수도 있다는 말이오만, 다시 생각하면 그것은 신의 모습을 현현하기 위한 수단

으로 인간을 사용하는 것이니 병고, 고통, 슬픔, 그 자체는 하등 일반자 이성

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오, 이것은 이성의 狡智임에 불과하오.

노야! 나는 그 병사의 발이 부서져 없어진 걸 보고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발을 생각하고 주님이 마치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나에게 그 병사를

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오. 나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짬이 나는대로 고참들의 눈을 피해가며 숨어서 책을 조금씩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오.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슬픈 싸움이라오.

 

성경에서 말하는 빛이라 함은 절대진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오.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당할 때, 처음에는 기아 다음은 공포 최후에는 명예를 가지고 시험을 당한 것은 정말 인간의 작품으로는 생각되어지지 않소. 그것은 짧은 글이나 함축되고 내포된 의미는 진정 보여주는 것이 많소.

나는 난생 처음으로 훈련기간 중 배고픔을 느꼈고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오. 돈 한푼없이 P.X 에 어슬렁 거리면서 동료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빵을 애타게 바라보던 심정,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체험이 되었고 이제는 쌀 한톨한톨에서 농부의 땀과 고뇌를 읽을 줄 아는 심성도 지니게 되었다오. 공포는 내가 강제징집 당하기 전 피를 말리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겪어보았소. 난 그때 노야가 정말 미웠다오. 그때 정말 나 혼자선 견뎌내기 힘든 지독한 고통과 싸웠다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밤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많다오. 나에게 신념이 부족했고 죽음과도 겨룰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의 결여에서 공포는 파생된다고 생각하고, 무릇 고매한 사람은 공포와 증오와 노여움을 않는다고 배웠소. 자신의 진리 속에 살기에 공포를 느끼지 않고, 타인을 자기와 동등한 인격으로 생각하기에 타인을 증오치 않으며, 타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치 않기 때문에 노여워하지 않는다고 말이오.

나는 노야의 편질 기다리며 노야와의 옛 기억을 더듬으며 지내고 있다오.

노야가 날 버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오. 꿈에서라도 그런 회의를

한 적은 없소. 우리의 사랑은 그 차원과 높이와 깊이가 그 어느 사랑과도

달리한 그런 것이 아니었소? 오늘도 아름다운 나의 천사의 예쁜 밤이 되

기를 기도하오. 안녕. 당신의 편질 받은 지도 몇 달이 되었소.

69, 1975

날씨 쾌청. 오늘도 많은 느낌을 주는 하루다. 나는 필설이 무디어 내 머리에 유성처럼 흐르는 생각을 다 옮겨 적을 수가 없다. 탈영병이 생겨서 오늘은 군법교육을 받다.

 

무릇 법이란 걸 생각해 본다. 그것은 하나의 강제적 질서다. Marxist들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라고 법을 정의한다. 그것은 유산계급의 독점물로서 무산대중을 착취하기 위한 하나의 생산력이 생산력으로서의 행사를 가능케하는 생산관계로 설명을 맺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나에겐 일부분을 지적한 것밖에 못 된다는 생각이 든다. 법이란 하나의 자유가 자유이기 위하여 무릇 모든 개체가 그것을 전 영역에 걸쳐서 포유하고 현현하는 일반자의 과정으로 지향하기 위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는 요소라 생각한다. 개체가 일반자로 통일 지향되기 위해서는 탈자아 탈개체의 과정을 수반해야 하며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법이라 정의내려 본다.

개인-가족-민족-국가의 발전양상 속에서 법과 규율과 질서는 존재한다. 지금 숨어서 읽고 있는 성서의 심오한 교리는 나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아연케 한다. 인간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도 인간의 다양하고 요상함에 탄식하는 모습이 창세기에 나온다. 성서 구절구절에 흐르는 의미는 인간 개체 개체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성적으로 대립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발전을 하는 통일양태로서의 실체임을 얘기하고 있다.

 

이 자유가 내재적인 속성으로 존재하는 까닭에 신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고 그것은 죽은 자의 신이 아니라 산 자의 신일 수 있다. 개념이란, 말 어떤 사실 사물에 대한 개념이란 한 마디의 말로써 표시할 수 없다. AB이다 라고 할 때 그 속에는 A는 이미 B가 아니다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무릇, 모든 개념이란 생성과 소멸 즉, 전 과정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일진대 어찌 한두 마디로 개념을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과 순결함으로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

이미 먹어서는 안될 선악과를 벌써 먹어버렸는지도 모를 나의 두뇌와 사고능력.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을 지닌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옳은 말이다.

원죄란 인간이 영과 육으로 구성된 데서 비롯된 하나의 속성이다. 인간이 사고하는 이성과 느끼는 감성의 이중구조적인 데서 직면하는 필연적인 하나의 사항이다. 앞에서 얘기한 일반자의 의미, 무릇 모든 인간의 진리는 상대적 진리이다. 허나, 그것이 상대적 진리가 상대적이기 위해서는 절대 진리의 확립과 존재를 확신해야 한다. 왜냐,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만 본다면 상대 그 자체가 이미 절대가 되기 때문에 상대는 이미 상대가 될 수 없다.

상대가 상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절대기준을 중심으로 해야 상대적 개념이 가능하다. 그 상대적 진리는 절대진리의 한 부분 한 조각으로 진리적 가치를 내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개체 개체가 일반자의 전진에 있어서만 그 개체는 개체일 수 있으며 그 존재가치와 당위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와같이 일반자 속에서만 각 개체는 그의 특성 그의 빛깔 그의 냄새를 유지 보존할 수 있으며 그것은 동시에 일반자의 한 부분으로서의 통합적 요소를 발전 지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얘기는 나의 지식의 유추와 기억에 기인한 거다. 오늘 그 법무관의 고자세 (중위였다) 무척 똑똑한 체하는 폼 속에서 약간은 울화통이 터진다. 어느 놈 한때 안 똑똑해 본 놈 있나. 내가 생각하는 법이란 그런 차원에서 해설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놈은 무조건 엄단에 처해야 하고 일말의 추호의 용서도 없다로 일관한다. 내 가슴에 뭉게구름처럼 퍼지는 자유, 나의 사상적 자유는 그 아무도 침해할 수 없다. 오직 노야만이 나를 슬프게 할 수 있다.

성경을 읽겠다. 읽어서 나도 성령과 영적인 체험을 해야한다. 인생은 길다. 노야 자신을 갖자. 무척이나 노야의 편지가 기다려진다. 그럴 리가 없을 게다. 아마 노야가 몸이 불편해서 편지를 못 하겠지.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였으니까. 미친 듯이 읽고 싶은 갈증에 고통이 크다. 그리고 내가 일기를 이렇게 늦게 시작한 것이 후회가 든다. 내 잃어버린 아름다움이 아쉽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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