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사랑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다
이제는 현승효를 잊고 현실에 충실하라고예?
사람들은 내가 현승효얘기를 하면 거북해 하고 불편해 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터질 것 같고 벼루다가 끝내
못 했을 때는 참 허전하였다. 특히 진실한 대화를 할 만한 사람과
작정하고 하는 대화일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고
나도 씁쓸하였다
또, 겉도는 대화가 너무 불편해서 내부터 속을 내보이면
별로 듣지도 안 하고 "세월이 그마이 흘렀는데 아직도 못 잊고
그카나?" 아니면 "현실에 충실해야지" 이러면 계단을 헛디뎌
철렁하는 것 같은 낭패감 이런 것이 덮쳤다. 그것도 우리와
친했던 묵은 정이 있는 사람이 그럴 때는 더 그랬다
2004년, "나 현승효기념사업할거야" 하니 "No problem!" 하던 남편
에게 필요할 때는 거리낌없이 하게 되었고 생전 대꾸를 잘 안하는
사람이 의외로 편안하게 대꾸를 잘 해주어 뭉클 행복감을 느꼈다.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을 묻어두고 사는 것이 과연 나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진정한 예의일까? "
남편이 애인 이야기를 싫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은 하지만
내 스스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그 사실이 너무 싫고 이것도 못 하고
살다이 싶어 오랫동안 자존심 상했는데 내가 애인 말을 꺼내고부터
우리는 마음의 둑이 터지듯 시원해져서 확 친하게 되었다
죽은 애인의 일기장을 타이핑하면서 눈물을 질질 흘리는 내 옆에서
안쓰럽게 보다가 또 신경쓰지 말라며 태연한 척 책을 읽는다든가
해서 나는 사람의 향내를 느끼고 가슴은 감동으로 물결쳤다
아내를 배려해주는 사랑에서였는지, 시대 모순을 피하지 않고 깊게
끌어안고 살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동시대의 한 청년에 대한 예의
였는지 하여튼 나는 남편에게 인간애 동지애를 느끼고 지금은
그에게 올인하게 되었다
세째언니는 "승효 이야기가 나오면서 네가 눈물짓는 것을 보고 충격
을 받았다. 그 동안 승효 일은 역사에 맡기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
는 줄로만 알았다" 하는데 그게 추억으로만 간직할 일인가?
또,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책이 나오고도 둘 사이가 아무렇치도
않은 것을 보고 두째언니는 나와 남편을 동키호테 같다 하고
모두들 이제는 잊고 김서방과 행복하게 살라 한다. 남편과는 이미
진정한 소통이 되어 잘 살고 있는데 그칸다.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가던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도 문득문득 떠오
르고 가슴이 아려오는데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을 국가의 폭력으
로 그렇게 잃었는데 잊으라는 말 한마디에 잊어질 수 있다고 생
각하는가? 덮어놓고 잊어라는 말을 하지 말아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라는 개인은 수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만들어졌고 더욱이
내 몸과 마음을 온통 차지하던 사람, 끝없이 우주의 비밀을 찾으려
하고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고민하고 사유하고
연민으로 사랑하던 사람, 내게는 모든 사랑의 원형이 된 그 사람을
털어버리고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하나의 대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활동'(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 중)이라 하는데 내가 가장
잘 아는 그토록 지고한 사랑을 싹 잊고 어떤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와 남편이 행복하지 않았을 때는 내가 애인을 품고 있어서가 아
니다. 애인이 없었던 사람들도 다 겪는 갈등, 아니 갈등 때문이 아
니고 대부분의 아내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소통의 문제 때문이었다
“사랑이 강열한 낭만적 감정만이 아니라 만족스런 관계를 위한 관심
배려 돌봄 판단 결단 행동이다”(에릭 프롬) 이라면 나와 내 남편은 늘 사랑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2004년부터 공개적으로 현승효를 알리는 일을 하고 다니는 나를
기분나빠하지 않는 내 남편에게 고마워 하라고 한다. 이 남자도 참
좋은 사람, 감동도 주고 내게 영감도 불러일으켜 주어 내가 ‘영감재이’
라고 부르지만 이것 때문에 고마워 하라는 건 잘 받아들여지지 않
는다.
모든 시련을 다 이겨냈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둘이 너무 좋아하고
있을 때 날벼락을 맞은 듯 졸지에 잃은 충격과 트라우마는 아무리
세월이 가도 조금도 바래어지지 않고, 민주화가 된 시대에 공식적인
명예회복은 커녕 우주보다 큰 존재인 한 개인을 그렇게 죽임으로
몰고 간 국가와 대학당국이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 없어
나라도 붙들고 살아야지 하는 결심이 더 굳어져 가고
수십년이 지나 내가 참을 수 없어 미친 듯이 다니기 전에 어느 구석
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볼 수 없어 이럴 수
가 있나 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2004년 3월 31일 한겨레신문에 처음으로 의대학우 신인식이
현승효의 죽음과 1년 후배 심오석의 행방불명문제를 제기한
인터뷰를 한 것을 뒤늦게 보았다
그리고, 현승효를 추모하는 일을 하는 날 조금이라도 찜찜해 하는
마음이 한구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남편과 애초에 깊은
관계를 맺을 일이 없었고 살아있는 자의 최소한의 의무를 하는 것을
왜 고마워 해야 해? 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의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였어요" 하는데도 이 남자가
"나 노선생 필요해요, 결혼하고 싶어" 할 때는 이것저것 재지않고
얼른 받아드렸다. 나는 살아야 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거지
그도 나도, '남편은 이래야 돼, 아내는 저래야 돼' 하는 거 없다.
나는 여전히 '나'로 싸울 일 있으면 사리지 않고 싸우고 그의
감성과 고민에 민감하게 대응해주고 따뜻한 품이 돼 주려고 할
뿐이다
내 책을 읽은 후 사람들은 이제 과거는 추억으로 묻어버리고
현실에 충실하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압니다. 내가 행복하
게 살기를 바라는 진심에서 하는 말인 것을.
나는 현실에 충실하지 않았던가? 내 앞에 놓인 생, 나는 한번도
피하지 않았다. 멀쩡하게 할 거 다 하며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아침에 깨면 가슴이 휑하고 눈물은 그냥 줄줄 흐르고
힘들 때도 많았다. 정신상담도 받을까 여러번 생각했지만 내보다
누가 나를 더 잘 알겠노 싶어 내가 나에게 그랬다.
"천희야, 뭐가 그리 죽겠노? 내한테 다 얘기해봐라"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해서 돈걱정에서도 좀 해방되고 절망감에
휩싸일 정도로 아프던 몸도 좀 건강해지자 본격적으로 내 문제에
집중했다.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 내 자신조차도 대면하기
두려웠던 것, 나를 정면으로 보는 일,
"한번 니 꼴리는대로 다 해봐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이 내가 나의 현실에 충실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 많은
세월이 걸렸던 것이었다. 그것은 먼저 온전한 '나'를 찾는 일이었
고 '나의 고통'을 돌봐주는 일이었다
그 대답이 책을 내는 일이었고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게
되어 한꺼번에 내 문제와 남편과의 문제, 대화기피증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화를 안하는지 못하는지 나의 숨통을 막던
문제도 풀게 되었다.
무반응으로 일관하다가 꼭 물어야 할 일이 있으면 맨날 하는
말이라고는
"뭘 그리 알려고 해?"
"따지지 마라"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 이것 뿐이다
이럴 수가? 헉! 그 후 반응이 있던 없던 편지를 써서 주다가 끝내는
"흥, 내가 얼매나 재민는 여자인데 니는 고 재미도 못 보고, 아이
고 잘났다" 했는데
어럽쇼, 책 말을 꺼내고부터는 매사 심드렁하던 눈이 반들반들해지고
당장 새 노트북을 사오더니 한글을 깔아주고 삐떡하면 불러대도
총알같이 달려와 봐주고, 먹을 거 갖다주고, 2년만에 완성된 원고
를 들고 한국에 갔다 온 뒤에도 "어떻게 되어 가" 묻기도 하고 드디
어 책표지 견본이 두개 오니 "이게 나는 더 좋아" 의견도 말하고,
또 현승효의 삶과 사랑을 쓰는 윤동수 작가가 "노천희선생님과 마
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니 "당신이 한국
에 나가봐라 왜" 그러고 다녀오니 "보고싶어서 죽을 번 했어"
끌안기도 하며 자신만의 표현들, 날 가슴 떨리게 하는 말들을
자연스레 잘 한다
내게 '현실'이란 순간순간 깨어있는 나의 ‘생각의 흐름' 바로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말'
이 순간 내 몸이 '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내게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이거다 할 때까지 골똘히 생각하고
내 자신부터 믿고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말하였다.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갈등을 가지고 살 수 없으며 어떻게 해서
라도 해소해야 하고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온몸과 영혼으로 체험한 현승효라는 남자는 치열하게 살아
가는 그 모습과 그 사랑과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어서 나는 내 죽는 날까지 자꾸 말하여
지상에 그 고귀한 사랑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다. (2007년 10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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