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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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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5>

그리운 노야 보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06-21 (일) 08:00:30

   

---그리운 노야 보오 (연무대에서, 사제편지)

집에서 보낸 편지로 당신이 계신 곳을 알고 죽변중학교로 막 편지를 내고 나니 당신이 보낸 등기편지가 왔소. 너무나 반가웁고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 애를 먹었소. 내 편지가 배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소.

 

여기서도 바깥 소식은 간혹 들을 수 있어 느끼는 것이 하늘이 나를 그리고 당신을 도우는 것 같소. 군에 온 것이 정말 전화위복이 된 것 같소. 우리에게 반드시 영광과 행복이 충일한 내일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으니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잃지 말기 바라오.

 

당신에게 서너 번 띄운(대구로) 편지애도 늘상 하는 말이지만 내가 항상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건강이오. 당신 생각은 잠시라도 내 가슴에서 떠날 날이 없소. 당신에 대한 죄책감과 송구스러움에 자학도 많이 하오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이란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 믿소.

 

앞으로 주어질 기회를 맹세하오. 당신이 건재하고 건강하며 늘 내 곁에 있을 때만이 나의 생명이 뛰고 있었다는 것이 여기서 새삼스럽게 느껴지오. 노야! 많이 먹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휴식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바다와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만끽하오.

 

우리 더욱 싱싱한 젊음과 건강을 가지는 기회라 생각하고 노력합시다. 여기서 417일경에 배출대로 가게 되라라 예상되고 이 편지는 비공식적으로 인편에 뛰우는 편지라 두서가 없이 급히 쓰니 그리 아오.

 

나는 이제 이십 세로 완전히 젊음을 되찾았으니 이 또한 복이 아니오?

노야! 그러면 이만 줄이오. 곧 만날 날이 오리라 안녕. 식사를 절대로 거르지 마오. 꼭이오.

197549일 승효.

 

 

***그리운 당신께

이 밤 저는 살그머니 집을 빠져나와 등대로 가는 언덕 길을 걸어 봅니다. 가만히 당신만을 생각하고 싶어서요. 한방에 있는 아가씨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오늘은 좀 편치 않네요.

 

하늘에는 차거운 별들이 총총 박혀있고 언덕 아래 옹기종기 누워있는 집들은 무척 정다워 보입니다. 언제였던가 꼭 이런 밤에 당신과 함께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절하도록 아름다운 밤입니다.

 

작년 이맘 때 당신은 홀로 참으로 못 견디게 고통스러워 하였지요. 그 괴로움을 같이 못했던 제 우둔함이 이 밤 저의 가슴을 이리도 아프게 하는군요. 그처럼 괴로웠던 당신을 아무 것도 모르고 내버려 두었던 제가 너무나 바보같군요.

그런 나를 어찌 사랑할 수 있었나요. 생각하면 미칠 것 같습니다. 그때 분노로 싸늘한 당신의 표정은 한번씩 흐트려지려는 제 마음에 귀중한 채찍이 되곤 합니다.

 

어디 있는지 단숨에 달려 가 당신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파죽겠는 제 가슴은 좀 나아 질 것 같습니다. 저는 밤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당신과 떨어져 있음이 영원한 것이 아니요 나중에 더 큰 기쁨을 가지기 위한 거라고 위안하지만 이 밤 쉬이 잠을 이룰 것 같지 않습니다.

4101975, 노야

 

***사랑하는 당신

학교에서도 수업시간 외에는 온통 당신 생각으로 보냅니다. 누구라도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과 당신 애기를 하고 싶고 당신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과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살기만 해도 몇년이라도 지루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열렬히 당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저를 찾는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곳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 도대체 누굴꼬 하고 전화기에 대고 여보세요 하니 놀랍게도 당신의 사랑하는 친구 인식씨, 어느 날 새벽에 공군사관생도 정복에 만또를 입은 인식씨가 저를 찾아 왔다가 대문을 열어 준 엄마가 보시고 신선같더라 하시더니 공군 장교복을 입은 훤출한 장부가 나타나니 꾀죄죄한 죽변 작은 마을이 훤히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노선생 애인이 찾아 왔다고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고. 두 여선생은 우리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느라 어디로 가고 우리는 쌓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둘은 당신 얘기를 하며 당신을 몹씨 그리워 했습니다. 당장 당신이 문을 열고 쑥 들어올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칠흑같이 깜깜한 밤길을 좀 걷다가 인식씨는 여인숙으로 가시고 아침에 제가 출근하기 전에 한번 더 하숙집으로 오시기로 했습니다. 아침밥을 같이 먹는데 위장을 버려 거의 밥숟가락을 뜨지 못하길레 너무나 안타까왔습니다.

 

억지로 권했더니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다 토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저려오던지 , 젊은 시절 다 한번씩은 시련을 겪는다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그곳의 생활은 무척 힘드시지요. 배도 고프고 훈련은 힘들고 지겹겠지요. 당신은 참을성이 많고 건장하니 잘 지내리라고 믿을래요. 어제는 큰형께 편지를 띄웠습니다. 사업이 잘 안된다 해도 실망하지 않고 더 큰 용기

를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주선생님은 분주하고 바쁜 생활 중에도 당신과 저의 걱정을 늘 하고 계신다 합니다. 이곳에 떠나 오기 전 날 저녁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은 도미하시는 거라든지 귀국하시는 것은 당신의 스케줄을 따라 하시겠다고 하시더군요.

 

당신, 편지 자주 할 수 없는지요? 무리하지는 말고 자주 해 주세요. 당신의 편지가 유일한 기쁨입니다.

이만 안녕

413일 노야

 

 

---노야 보십시요(사제 편지)

글 잘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죽변으로 띄우는 편지로 세번째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주 건강하며 교육 잘 받고 있습니다. 이제 하루에 한번씩 편질 띄울 작정입니다. 기대하십시오.

 

모든 일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느껴지며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언제나 건강에 유의하고 내일의 영광과 희망을 내가 분명히 확신하고 있으니 마음 넓게 먹고 세월을 기다리도록 하십시요.

 

아마 객지 생활이라 불편한 점과 고생되는 일도 많겠지만 주어진 생활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건강과 정신수양에 정진이 있도록 하십시오. 대구에서는 간간이 편지가 와서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누나가 여아를 순산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오기환의 누나와 같이 생활한다니 역시 세상은 좁구나 하는 생각이오. 인식이가 그 먼 곳까지 다녀 갔다니 역시 좋은 친구라 감사하게 생각하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인간의 몸이란 하나밖에 없고 건강치 못한 몸으로는 내일의 어떠한 기쁨도 환희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며 건강이란 평상시에는 아주 등한시 하기 쉬운 것이니까 더욱 유의하오. 그럼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승효드림

 

 

----노야 보오(사제 편지)

건강하시며 하루하루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시는지 궁금하오 나는 노야에게 이렇게 편질 쓰는 것이 무척 즐거운 일이 되었소. 답장이 오든지 오지 않든지 아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자주 쓴다오.

 

주선생님 영순, 재룡이, 많은 사람들에게 편질 뛰워도 감감 무소식이라 언제나 지나가는 배가 나타나리라는 희망과 기대 속에서 먼 바다를 지루하지 않게 바라보는 로빈슨 쿠루소 같은 그런 기분으로 편지를 쓰오. 내 표현이 재미있지 않소.

 

내야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로 마음먹고 있으니 조금도 걱정말고 부족한 것도 없고 몸도 건강하니 노야가 건강에 유의하기 바라오. 이왕 하시는 객지생활이니 그곳 명승지나 두루 구경하시고 하지만 절대로 혼자 먼 곳으로 다니지 말기를 당부하오.

 

내겐 노야가 항시 아기 같아서 그러니 용서하기 바라고 말 잘 듣지 않기로 호가 난 노야가 내 말을 잘 듣지 않을 상 싶지만 또 기대를 가지며 하는 말이니 밥 많이 먹기 바라오. 이제는 정말 말 듣지 않으면 미워질 것 같으니 알아서 잘 하시기 비오.

 

같이 생활하는 병아리 여선생들에게도 안부인사 드린다고 전해주소. 노얄 내가 잘 부탁한다고 나중에 맛있는 것 사드리겠다고 약속해도 좋소. 안녕,

 

526, , 1975

노야, 지금 눈이 쑤시고 골이 무척 아파. 사람을 이렇게까지 혹사시킬 수 있는지 지독하다오. 어제 밤은 2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해가 질 때까지 10분의 여유도 없이 중노동에 시달렸소. 오늘 새벽은 보초와 3시경에 비상이 걸려 한잠도 자지 못했는데 종일 사역이오. 졸병이 겪는 하잘 것 없는 일과에 불과하오. 나에게 지금 이 일기를 쓰는 시간도 잠이 더욱 아쉬운 시간이지만 결코 이 귀중한 기록을 넘겨 버릴 수 없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그 시간이 날지 모르기 때문이오.

비상이 걸려 새벽 5시경 산을 내려 오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맑고 신선한 색채로 산하가 도색이 되었는지! 광활한 지면 위에 나지막히 연자색으로 아침을 기다리는 산들이며, 그 밑으로 포플라 나무들이 이어져 있고 소리없이 정지되어 태고의 침묵을 음미하는 남한강은 새파란게 숭고한 색 깔이었소.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당신의 눈빛처럼 청량한 넓고 넓은 공간이었소. 그 한가운데 당신의 동공이 하나 동그랗게 박혀 있었소. 꼭 당신의 눈망울같이 그렇게 큰 노란 달이었소. , 산하, 하늘, 하나같이 푸른 빛깔의 진도만 다른 파아란 빛 속에 오직 하나 노란 달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라 현기증이 났다오.

그리고 낮은 무척 무덥고 괴로운 시간이었다오. 사역, 사역, 사역. 나는 그 속에서 노동의 가치와 역사를 움직여온 위대한 학설들을 음미해 보았소.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비롯된다는 노동가치설과 착취된 노동, 잉여된 노동은 그 인간을 소모시킨다고 들어왔소만 한번 더 따지고 생각해 보니 인간의 소모라는 것은 결국은 생에 직결되는 거란 생각이 들었소.

궁극적 가치의 발생 존재는 삶에 근거를 두고 그것은 쾌와 편안함 그리고 경제적 혼용력에 있다는 바보같은 생각에 혼자 피식 웃었다오. 하나 노야가 기뻐해야 할 일이 생겼소. 군생활에선 누구나 기대하고 동경하는 의무대에 내가 가게 되었소. 군의 질서상 아주 힘든 경우였는데 나의 질긴 면담 신청과 최준위의 마음을 움직여 그리 되었다오. 결코 못난 당신의 情人은 아닌가 보오. 하기야 군의관이 되려다 위생병이 된 바보지만 말이오.

지금 나는 야산 언덕에 걸터앉아 있소. 곧 저녁밥 시간이 될 것같소. 귀와 눈은 이 졸병을 부르는 고참들에게 날카롭게 긴장을 시켜놓고 말이요. 그들은 지금 자고있소. 졸병은 2시간밖에 못 잤는데도 더 안 재워 주고 일만 시킨다오. “현졸병하면 하고 쪼르르 달려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오. 무척이나 재미있지 않소? 하하하!.

정말 아버님 어머님 형님 그리고 모든 생활인들이 얼마나 고생과 고통 속에서 가정의 행복을 이루고 하나의 기성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겪는 고생 속에서 깨닫고 있다오. 너무도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였소. 군을 제대하면 생활인으로서도 자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오.

 

노야, 인생은 길지 않으오? 용기와 신념을 가져주오.

날 사랑한 것을 결코 욕되게 하지 않으리다.

 

내 노야에게 짜증스런 편질 쓰던 때의 얘길 하리다. 점호시간에 소지품 검사를 당하여 수첩에 적던 일기가 들켰다오. 군에서는 그것이 불법이라고 하더구먼. 동료 한놈이 사제로 편지 보낸 일로 고참 2명이 소대장에게 엉덩이가 불이 나도록 맞았고 사제편지를 쓴 녀석은 영창에 간다 반성문을 쓴다 굉장히 시끄러웠소. 만약 사제 편지가 그 지경인데 내 일기를 그들이 봤다면 일이 어떻게 되겠소. 그 내용, 내 생각, 나의 느낌들을 쓴 일기, 노야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소.

나는 필사의 투쟁과 이병석 소대장에게 사회의 선배, 입대 전의 나의 모습으로 임해서 그와 친구로 발전하고 일기는 그냥 나의 손으로 회수가 되었소. 그런 일이 있고부터 소지품 검사 검열 때마다 얼마나 공포가 덮치던지 도저히 일기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오.

이소위가 옆 방의 사람이 들으라고 (심문 후 내 존재를 안 뒤에) “이 일기 태우자하면서 빈 휴질 태우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소. 그에게 누가 끼칠까 두려워서 수첩을 변소에 정말 망설이고 망설이다 던져 버렸소.

 

다음 날, 내 편지가 또 검열에 걸렸고 그 와중에 연대본부에서는 나를 호출하더오. 노야가 보낸 엽서 때문이었소. 내가 사제 편질 부쳤기에 배출일이 17일이라고 적은 엽서가 온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소.

사실 전반기에 모험 속에서 집으로 2번 부친 편지가 있어 나는 그것이

발각이 된 줄 알고 당할 각오를 하고 있었소만 그런 신문 조사에는 도가

터진 나였기에 끝내 자백을 하지 않고 넘길 수가 있었다오.

스릴 만점이었소. 그래서 일부러 노야에게 그런 편질 썼고 또 기다리던 편지

가 오지 않아 짜증도 났었다오. 어쨌든 미안하오. 오늘 오후엔 사역하다 짬을

내어 인사과 최준위를 만나 의무중대로 빨리 가게 해달라고 점잖게 부탁했소.

아마 곧 가게 되리라 여겨지오. 그곳서 내 실력 나의 영향을 최대로 발휘하

여 곧 노얄 만나도록 노력하겠소. 안녕!




KakaoTalk_Photo_20200508_0928_44964사제편지, 이 편지가 들켜 심문 받았다 합니다..jpg

이 사제 편지를 들켜 심문을 받게 되었다


 

 

노야 보십시오(사제 편지)

 

안녕 하시고 잘 계시리라 믿소. 거의 매일 노야에게 이렇게 편질 띄우는데

통 소식이 없으니 이제는 슬슬 울화통이 터질려고 하오, 노상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잘 있고 건강하고 편지에 처음 몇줄 안녕하세요 나 잘 있소 하는 말은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오.

 

한편 혹 몸이나 아프지 않은 지 걱정되오. 죽을 일이 아니면 답장 좀 쓰오. 매사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나자신의 의지나 노력 바깥에 속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 뜻에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생각되오.

 

그저께 큰형님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노야 칭찬이 대단했소.

형으로서 모든 것을 충분히 배려하고 선처하고 있는 것 같아 콧마루가 시큰 시큰 했소. 이제부터는 노야에게 편지 쓸 때 성경을 베껴서 보낼 예정이니 기대하시기 바라오. 같이 있는 여선생들과 같이 생활하시니 항상 명랑하고 웃음꽃이 피는 생활을 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분들께도 안부 전한다고 하시오. 그럼 건강 유의히시고 밥 많이 잡수시길 바라겠소. 안녕.

 

 

___노야 보오(군사편지)

안녕하시리라 믿소. 나는 건강하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있으나 이건 너무 매정스럽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소. 엽서 조각은 나에게 배달이 되었으나 꽤나 언짢았소.

 

짜증스런 소릴 해서 미안하오만 내가 편질 달라면 주면 되는거요. 마음대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집에다 편질 내어 노야 소식을 묻고 있소만 집에서도 소식이 없어 궁금하오만 이젠 기다리기로 하고 있으니 초지일관해 주오.

 

큰형님께 두번째 편질 내었다는 소식은 형님께 들어 알고 있소. 오늘은 별 다른 할 말이 없고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미안했소. 아마 편질 무척 기다렸으리라 생각하오만 사정이 그리 되었소.

 

곧 소식 낼 터이니 그때 소식 주오.

건강 건강 건강 유의 부탁하오.

.

 

5 27, 1975

어제 밤에 의무중대로 팔려왔다. 신병이라고 보름간은 아무 것도 하지말고 쉬라고 한다. 여기 있는 3명 가운데서 내가 제일 졸병이다.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을 땐 모두가 같은 동료들이라 마음이 편했으나 여기선 그게 안된다. 이제 하나의 상하 질서의 내무생활로 들어간다. 소위 이것을 시집살이라 한다. 눈치를 보는 게 오늘 종일이다.

 

식기를 닦으려 해도, 청소를 할려고 해도 눈깔을 부라리고 못하게 한다. 이것 또한 하나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제일 편한 곳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책을 읽을 여유도 있을 것같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얄 한 번 봤으면 원이 없겠다.

여기있는 고참들을 모두가 똥똥하게 잘생겼고 게 중에는 웃기는 놈도 있다.

내가 의대를 다니다 왔다고 몇가지를 물어보고는 잘 모른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알고 있는 의학 지식에 우쭐해 한다. 진풍경이다. 빨리 집으로, 노야와 형님에게 편질해야 할텐데.

 

5 28, 1975

어제 일기를 오늘 29일날 눈치를 보며 쭈구리고 앉아 쓰고있다. 졸병은 전혀 여유가 없다. 여기선 편지 쓰기도 힘이 든다. 대민지원 나가서 종일 좃이 빠지라고 일을 했다. 사실 우표를 좀 살까하고 자원해서 따라 나갔다. 올 때 사서 돌아왔다.

 

모심기와 밭매기를 하고 왔다. 가는 길에 논길을 걸으면서 질서정연히 심어져 있는 못자릴 보고 하나의 질서와 절제라는 것을 생각해 보며 종일을 보내다. 아마 군생활이라는 엄격한 규칙과 질서 속에서 생활하니까 못자릴 보고 하나의 질서와 계급이란 개념이 떠오른지도 모르겠다.

25세가 되어 처음으로 자연의 질서, 우주의 질서를 실감하다. 사계절의 순환 그리고 인간 사이의 질서, 무릇 질서는 일반자를 현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필요하고 존재되어야 하며 주체가 주체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결론짓다.

 

허나 인간이란 그런 질서와 단순한 순환으로써만 존재하는 내적 과정이 아니라 주위를 개조하고 개념적으로 인식하여 발전적 과정을 지향하는 존재양태이기에 주어진 질서와 규율을 탈피한다. 하나의 질서의 파괴와 전진적 요소로서 무질서와 혼란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하나의 속성이다 .

원죄라는 건 인간이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고 감성과 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원죄를 지닌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어느 사람의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다.

밭을 매면서 허리가 몹시 아팠으나 문득 고추나무를 보며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다. 식물적 생명에 있어선 그건 하나의 단순한 순환과정에 불과하다. 열매를 맺고 또 없어지고 씨를 남기고 하지만 변화하는 건 하나도 없다. 그 식물의 근원이 되는 땅 자체는 하등의 변화도 없는 것이다. 하나의 식물 그 자체는 유한하지만 그 내적 변화에 있어서의 과정은 무한한 것이다.

 

생명, 그것은 식물적 삶에 있어선 하나의 동화 이화작용에 불과한 거다. 거기서 한 농부를 봤다. 그는 밥을 먹고 씨를 뿌리고 거두고, 또 씨를 뿌리고 밥을 먹고 거두고 이렇게 늙어간다. 그건 하나의 과정, 식물적 발전 과정의 생활에 불과하다.

인간가치와 그 실체와 본질에 대한 정의를 Hegel이 거의 완벽하게 이미 기술한지 오래다. 아무리 나와 노야가 무의미한 3년을 보내더라도 그것은 minus vector의 삶은 아닐 거라는 위안을 그 농부에게서 얻다.

석양이 지는 들길을 너무도 아름답고 포근한 5월의 들길을 한참이나 걸어서 돌아올 때 생활에 감사하며 노얄 생각하다.

 

작은 나의 천사, 아마 너도 지금 쯤 이렇게 아름다운 시골 길을 타박타박 예쁜 발로 걸으며 피곤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겠지. 기다려다오, 내 너를 만날 때까지.

5 29, 1975

새벽에 잠을 설쳤다. 노야가 우리 연대 담벽을 서성거리는 것을 내가 달려가 안고 어딘가로 가는 꿈을 꾸었다. 다시 잠을 자다 아버님을 안고 내가 통곡하는 꿈을 꾸었다. 아버님께서 건강하셔야 할 텐데.

어제 우표를 사왔다. 오늘은 편질 부쳐야 한다. 낮에 사역하다 김일병과 한참 얘길 나누다. 조금 돈 친구같을 정도로 무섭고 냉정하고 이상에 사로잡힌 무서운 친구다. 나도 한때는 그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무서운 놈이다. 잘생긴 놈의 눈과 귀는 증오와 정열에 이글거린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거다. 전형적인 혁명가 스타일이다. 김일병, 다시 만나자. 피곤과 열정에 지친 사나이. 그의 눈은 理想 약간은 병적인 理想에 타고 있었다.

5 30, 1975

요즈음은 잠을 자다 노상 깬다. 날씨는 무덥고 고참들의 눈총도 기분나쁘다. 모자를 잃어버렸다. 돈도 한푼도 없는데 고민이다. 오늘 김경화 일병이 후송을 간댄다. 나에게 돈 500원과 화랑담배를 한갑 주다.

동지는 항상 고마운 거다. 벼루고 벼루던 노야에게 드디어 오늘 편지가 발송되다. 기쁜 일이다.

종일 멍청한 기분으로 일만 한다. 시키면 그냥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일어나 움직인다. 비참한 일이다. 아마 노야가 내 모습을 본다면 울부짖을거다. 저녁에 석양을 보며 노야를 생각하다. 결혼을 생각하고 노야의 나이를 생각하고 내 자신을 생각할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은 안타까움과 노야가 불쌍하고 애처러워 가슴이 갈가리 갈라지는 아픔을 느낀다.

달아나고 싶다. 노야와 아무도 없는 영영 먼 곳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에 심장이 마구 뛴다. 밤잠을 설치다.

눈이 몹시 피곤하다. 어떨 땐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은 몹시 깜박거리고 지금은 견딜 수 없이 눈이 아프다. 사람들은 나를 놀린다. 개새끼들. 나의 감내심은 좋다. 여기에 나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덧붙여야 한다. 이 훈련을 나는 군에 있는 동안 해야 한다. 그리고 돈을 벌자. 금전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필요하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 정말 머리에 털이 나고 처음으로 가져보는 생각이다. 황금만이 나의 이상과 경륜을 펴는데 지고의 무기가 된다는 것을 실감하다. 노얄 호강도 시켜야 한다. 가여운 나의 천사.

졸병은 슬프고 바쁘다. 군은 모든 것을 자립자족 한다.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고참을 모시면서 부양할 사람 가족을 거느릴 훈련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옷을 빨고 구두를 닦는다. 책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은 아마도 말짱 도루묵임에 틀림이 없다. 한마디로 더럽게 웃기는 생활이다. 고참 앞에선 웃지도 못한다. 말도 묻는 말만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빛과 색채가 그들을 변색시켜 버릴 날도 멀지 않을거다. 그건 시간이 해결한다. 난 자신이 있다. 기회만 포착해라.

어느 듯 하루 해가 또 저물어 간다.

 

 

531, , 1975

오월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어제는 많은 비가 내렸다. 새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먼 산, 산 허리에는 남은 구름이 수증기처럼 피어 오른다. 한국의 젊은이들 정말 고생이 많다. 노야를 생각하며 오늘도 지겹고 괴로운 하루 해를 보낸다. 비상은 연일 걸린다. 밤잠도 잘 자지 못한다. 새벽 한시에 비상.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도무지 뭘 하는지 모르겠다. 무의미한 하루생활이다.

어제 밤은 내무반에 혼자 쭈구려 앉아 혼미한 정신으로 언어란 걸 생각하다. 언어 그 자체는 하나의 사고에서 유발되며 그것은 행동, 동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그 속성이다. 무릇, 모든 논리란 것은 언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논리학은 변증법적 운동의 성질을 띠지 않을 수 없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정을 줄 사람도 없다. 군에서도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어젠 성경을 몇구절 읽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너의 것이다”. 무릇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 그들은 마음과 심령이 순박하고 겸허하다. 그리고 절대자의 인식과 순응과 겸손함을 지니게 된다. 군에 입대한 나에겐 정말 좋은 경험과 체험을 가지는 것 같다.

내 마음은 가난하고 몸과 정신은 안식과 위로와 평안을 구한다. 교만하지 않으며 심성에 있어 덕성스러워지는 느낌이다. 노야, 하늘은 높고 길은 멀다. 그러나 나에겐 네가 있다. 형님이 있다.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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