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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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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7)

나에겐 생명보다도 소중한 노야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2-01-16 (일) 17:21:18

나에겐 생명보다도 소중한 노야

 

 

***사랑하는 내님께

대구서 막차를 타고 오며 집에 가면 님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겠거니 하며 달려 왔어요. 역시 당신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당신의 편지를 대하면 가슴이 뭉클해 오고 보고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 와 주체할 수 없지만 이번에는 더 못 견디겠군요. 소식없어 어디 멀리 힘든 길 떠나신 걸로 생각했어요.

 

한 번 더 당신에게 다녀오고 싶었지만 당신의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축을 내고 나로 인해 이것 저것 번거러운 일이 생길 건 뻔해서 길을 나서기를 포기했어요. 지금 이 시간은 당신에게는 다시 오지 않는 정말 소중한 기회가 아니겠어요. 막무가내로 남자의 사랑을 받기만을 고집할 때는 다 지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도 잡념없이 올 한해를 잘 보내세요. 정성드려 기도하겠어요.

1977년 1월 26일 노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날씨가 계속 영하 20도를 육박하고 있구려. 나는 건강하고 타인들의 값비싼 노동으로 그저 나의 시간만 유용하고 있으니 죄스럽기도 하오. 그러나 훗날 모든 사람들에게 댓가를 지불하리라 마음먹고 있다오.

 

1월 26일 字 편지를 잘 받았소. 아무리 날이 춥고 생활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나의 의지는 더욱 뜨겁고 어떠한 것도 나의 집념을 꺾진 못할 것이오. 나는 결코 시간과 노력을 탕진하지 않을 거요.

 

나에겐 생명보다도 소중한 노야가 있고 思考의 공간이 있으니 말이요. 신문에서 종종 보오마는 역시 세계양심이 있는 한 나의 진행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오.

 

금년은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소. 노얀 그저 아무런 걱정말고 항상 노야의 빛을 잃지 말고 생활하오. 얼마 있지 않으면 또 만나리라. 어제는 미국서 형님 편지를 받았다오. 여전히 동생 걱정, 맏아들로서의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에 젖은 내용이었고 나의 무분별을 책망하면서 노야 걱정도 하고 있었소.

 

못난 나 때문에 노야 고통이야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나는 그런대로 나의 환경을 선용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 이겨 낼 것이요. 또 좀 있으면 노야의 방문을 두드리는 시간이 오리라. 그때까지 부지런히 살찌고 건강하오. 그저 나에겐 노야가 건강한 모습으로만 있으면 그만이오.

 

신천동에 종종 들려주고 남산동 어머님, 瑗喜누님께도 안부 전해주시오. 이선생께도 안부 전하고, 그리고 영순 진미 수남이 병원 취직이 잘 안된다 하니 어찌 되었나 궁금하오. 살찌시고 태평한 마음으로 지내기 바라오.

1977년 1월 30일 승효.

 


 

------사랑하는 노야에게

아마 이 편지가 도착될 쯤이면 개학을 했으리라 생각하오. 나는 건강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고 道도 진행이 잘 되고 있소. 그러나 너무나 방대한 작업이라 세월이 예상보다 더 많이 걸릴지도 모르겠소.

 

오늘 새벽에는 갑자기 깨어서 노야가 그리워 혼이 났소.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노야도 그런 날이 많으리라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러웠소. 그러나 노야의 기다리는 고통 외로움의 보상은 오직 지금 이 시간을 善用하는데만 있다고 생각하고 더욱 매질을 하고 있소.

 

우리는 타인들과는 다르고 기다림과 보람과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니 오히려 이 기회가 더욱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가능하면 노야도 매일이 아니더라도 일기를 쓰오. 나랑 매일매일 하고픈 애기를 기록해 놓으면 좋으리라 생각되오,

 

이 하늘 밑 이 땅 위에 오직 한사람 내가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노야가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춥지도 않고 고달프지도 않소. 살 많이 찌오, 포동포동한 당신을 안는 것이 나의 커다란 소망이오. 안녕, 나의 사랑 노야.

1977년 2월 3일 승효.

 

 

****나의 님에게

날씨가 아직도 쌀쌀맞군요. 그간도 고생 많으셨지요. 당신의 피와 땀으로 산 하루는 후에 우리의 보석같은 날로 보상을 받겠지요. 자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고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은 저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나요? 어제는 어느 학부형에게서 거친 항의를 받았어요. 성적을 제가 잘못 기입해서요.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 당황도 되고 챙피스럽고 너무 심하게 하길래 이게 무슨 수모인가 싶어 당장 때려 치울까 할 정도로 화도 많이 났어요.

 

잠시 당신 생각을 했어요. “나의 님은 이보다 몇천배 몇만배 더한 수모를 이겨내고 있지 않은가” 하며 침착해 졌어요. 그 아이의 답안지를 찾아서 정정해 주고 죄송하다는 말과 웃으며 겸손하게 충분히 설명했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 졌어요.

 

요새는 집에서 편하게 있을 때보다 밥도 잘 멕히고 잠도 푹 잘 자요. 역시 사람이란 노동을 해야 몸에 좋은가 봐요. 수업도 제가 열심히 하니까 아이들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시작종이 울려도 그 질색이던 소리가 싫지가 않아요.

1977년 2월 12일 노야.

 

 

****사랑하는 당신

오랜만에 가져보는 일요일이라 이불 속에서 음악 듣고 책 읽었어요. 년말 성적처리는 무척 복잡하지만 어제 밤 늦게까지 다 했어요. 그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음악도 즐기고. 와그너의 탄호이저 전곡을 다 들었어요. 너무 감동적이라 가슴이 뻐근해지다가 출렁이다가 막 아프다가 했어요. 끝나고도 한참이나 감동의 물결로 꼼짝을 못했어요.

 

그리고는 <여자의 일생>을 다 읽었어요. 이제 무얼 좀 먹고 산책을 나갈까 해요. 직장생활이 체질에 맞는지 옛날에는 할일을 미룰 때까지 미루다가 할 수 없이 했는데 이제는 미루지 않고 하게 되었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제가 열렬히 사랑할 수 있고 저를 온힘을 다해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파상이 잔느가 아니라 저를 주인공으로 했으면 수많은 여자들이 미리 여자의 생에 대해 절망하지 않을 것을.

 

맨날 가슴 답답하게 그리워만 하며 사는가 하고 있을 때면 당신은 불쑥 나타나 저를 벽에 세워놓고 정신없이 보고 그리고는 격렬히 포옹하고 했어요. 그럴 때는 잠시 정신을 잃을 것 같아요. 당신이 몹시 그리울 때는 그 순간을 회상하곤 해요.

 

의대 학장은 황기석 교수님이 취임하셨다는군요. 당신도 존경하는 분이라고 영순이 그러더군요. 한 번 다녀갈 수 없는지요?

1977년 2월13일, 노야

 

 

-----사랑하는 노야에게

무사히 귀대하였소. 노야의 냄새를 맡느라고 10분 지체해서 김천행을 놓쳐서 혼이 났소. 김천 가는 사람이 엄청 많아서 자리가 없어 꼽다시 서서 졸지도 못하고 씨름을 하면서 입석 열차를 타고 갔소. 서울 도착하니 오후 5시였소. 시간 안에 못 올까봐 애가 탔었소. 그러나 7시가 되어 가까스로 도착했소.

 

역시 사람이란 10분 늦으면 10년 늦어진다는 말을 실감했다오. 노야도 해야 할 일은 결코 미루지 말고 후딱 해버리도록 하오. 그러면 더욱 긴 휴식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걸 우리 죽을 때까지 잊지 맙시다.

 

돌아오니 미국서 형님이 보낸 편지와 노야가 보낸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소. 형 편지는 동봉할테니 노야가 대신 답장 좀 하시오. 그리고 화엄사 스님에게도 꼭 하시오, 내게 큰 도움을 주실 것 같소.

 

날씨는 많이 풀렸으나 황량한 들판에 모랫바람이 기승을 부리는구려. 황진이 온 들판을 흐려놓고 있소. 이제 또 道의 길로 나설 작정이오.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리다. 그리고 형은 유학 건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오.

 

우선 노야가 틈틈이 공부하도록 하시오. 언제나 하늘 아래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생활의 괴로움을 이겨 나가도록 하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시간은 나에겐 그지없이 중요한 시간이오. 나에게는 오직 노야 뿐이오. 건강하고 살많이 찌고, 안녕.

1977년 2월 23일 승효.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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