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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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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의 해방을 모색하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4)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12-30 (목) 13:09:02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4)


 

***사랑하는 나의 당신께

오늘에사 3통의 편지를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당신도 많이 기다리셨더군요. 매일 쓰고 싶지만 저녁 한 술 먹고 씻고나면 웬 잠이 그리 쏟아 지는지요.

 

아침은 또 자습지도 한다고 일찍 나오라 하니 바쁨니다. 힘에 좀 부치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고 하루가 빨리 지나가서 좋아요. 요새는 중간체조 시간이 있어 3교시 마치면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함게 체조를 하니 아침운동하라는 명령은 저절로 지키게 됐어요.

 

오늘은 인식 씨 편지도 받았어요. 5월 16일 12시 공군사관학교 교회에서 결혼식을 한답니다. 가겠다고 답장 보냈어요. 당신과 함께 참석하도록 당신의 상관에게 애걸해 보겠다고 했어요. 웬지 그는 우리들에게 미안해 하고 있었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몇번이나 썼어요. 걱정말고 예쁜 신부님을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라고 했어요.

 

말끔히 씻고 누우면 혼자 생활이 무척 편안하고 안락하다는 생각과 당신이 못견디게 보고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고 만나서 심통부리고 싶은 마음이 막 일어나요. 기다림이 언제나 끝이 날려나.

1976년 4월 22일 노야.



 

4월 26일 1976년

그동안 오랫동안 일기를 걸렀다. 그저 독서와 사색 그리고 운동으로 반복된 그런 생활이라 별 쓸만한 거리가 없었다기보다 무엇에 몰두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요 며칠간은 나에게 깊이 기억할 만한 날들이다.

드디어 딴 철인들의 사고가 아니라 나의 사색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자유와 투쟁이란 2개의 개념이다. 자유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독자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목적개념이다.

왜냐하면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면 그 자체가 하나의 동적 개념을 내포해 있는 것이며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획득된 자유라는 것은 칸트가 말하는 실천이성의 인성으로서 자유의 개념, 즉 원인성으로서 자유의 개념이 또한 나타난다.

따라서 원인과 결과로서의 자유란 동일한 것이 되었고 자유는 자유자체로서 자유가 되었다. 물론 결과의 자유는 확장된 (이성, 감성 양면에서의) 의미의 자유이다.

 

이 원인적 자유와 결과적 자유는 물론 자연적이 아니라 이성적이라는 측면에서 가상계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 스스로의 손에 이 자유라는 무기가 들려져 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는 역시 인간의 자유에 속한다.

 

그것이 선의 방향으로 악의 방향으로 선택 될건가의 가치척도로서의 기준은 도덕법과 하나님이다. 자유는 모든 외적 규정으로부터 무제약적이라 한다

즉 자발성에 의한 원인성이야 한다는 명제에서 분석적으로 자유는 자율에 내포적으로 내적으로 일체의 외적 사실에서 독립된다는 규정을 가진다

이것은 자유는 오직 자유에 속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가진다. 여기서 자명적으로 자유의 복종적 성질이 나타난다. 자유는 내적 복종성, 외적 해방성을 가진다

 

양자 다 자유의 속성. 이 양자 중 하나가 우세할 때는 갈등을 초래한다. 즉 투쟁을 유발케 한다. 투쟁의 動因으로서는 자기만족이다. 이 자기만족이 투쟁의 척도가 된다.

(이 자기만족이 만인과 같은 류의 것은 도덕법)

그러나 이 자기만족도 2개의 류를 가진다. 예지적 정신적 자기만족과, 여기서 神이 요청됨, 쾌를 수반한 감정적 자기만족이다.

<< 나의 변명>>

---이 연구의 동기와 목적, 나의 사상 등 ---

내가 연구를 하게 된 시발점이 된 하나의 단서는 저 부단히 우리를 투쟁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 인간은 영원한 만족 속에 안주할 수 없는가? 이 고통과 아픔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해야 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그 성과를 척도로 나는 위대한 사상들, 인간의 현란한 발견인 자유사상, 이성주의, 변증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와 허무주의를 비교검토하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밝히고 넘어 가려고 하는 것은 나는 오늘의 시대적 조류가 되어있는 물질적 낭만주의, 현실적 실용주의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정열을 기울여 목적으로 하는 것, 의도하는 것은 인간의 고향에 돌아가려는 인간회복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인간존엄의 해방과 그 방법의 모색이 나의 연구의 주류를 이룬다고 해도 좋다.

 

인간이 지금의 현실에서 그냥 사람답게 생활하는 것은 적당한 물질주의, 적당한 인간, 종교는 오히려 생활의 덕성이 될 수 있고 지혜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우리가 정착하고 안주할 그런 집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 바람에 이겨내지 못하고 곧 허물어져 버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현실은 일단 긍정해야만 할 것이다. 긍정하는 인간에게만 행위는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나의 긍정이란 현실적 타협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현실주의에 귀착하지 않는다.

 

나의 절대긍정은 자유의 이념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생명마저 바쳐야 한다. 우리의 至高의 가치가 인간회복의 원동력이 되고 인간가치 인간존엄의 승인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또 낭만주의와 인간중심주의 즉 인간존엄 해방을 시도한 위대한 사상인들이 그 전제를 잘못 선택하여 필연적으로 함몰해 버린 니힐리즘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들의 니힐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된다 (니체도 여기에 속했다) 인간이 절대 주권자가 된다. 인간이 절대 주권자가 되면 이것도 필연적으로 빠져버리게 되고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게 되고 인간 타살의 논리증명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해방이라는 깃발아래 진군의 나팔을 분 군대였으나 결국은 인간말살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아 나중에 인간의 가슴에 심어주는 회오는 허무하고 그논리의 해결을 찾지 못하는 순환에 빠져버리고 말아 버린다.

그런 니힐의 마지막 귀결은 스스로가 스스로을 죽임(자살)으로 귀착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니힐이였다. 그러나 나는 자유의 절대주권 속에서 인간존엄과 인간해방을 찾았다. 그 결론은 니힐이 아니었고 인간에겐 오직 투쟁과 창조만이 중요하다는 것이였다.

 

사실 인간은 兩價的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자체가 진리의 척도가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척도가 되면 논리는 필연적으로 순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자유가 아닌 딴 척도를 제시해야 한다면 오히려 신을 택하겠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비주의에서 인간을 속박하기는 하되 인간중심이 주는 척도보다 훨씬 해악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神중심은 개인적 해악에 그쳐 버리나 인간중심은 그 해악이 대중적이요 전체적이며 훨씬 대량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연구는 인간을 고통의 질곡 속에 빠뜨리는 독재와 파쇼에 항거하며

목숨을 바치며 투쟁하는 세계의 자유시민과 또 불의에 선전을 포고하는 나의 자랑스러운 동료들에게 바치고 싶은 나의 자그마한 소산이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연인 노야에게도 이 글을 바친다.

 

 

----사랑하는 노야

새벽에 기상해서 싸리비를 꼰아들고 주위를 쓱쓱 쓸고 이침 먹고 운동하고 이것 저것 좀 하다 보면 하루 해가 지고 또 밤의 정밀이 찾아 오는구려. 그리움

에 목이 메일 때도 있지만 사람의 고통과 환희란 순간에 불과한 것이오. 중요한 것은 단조로움과 권태를 이겨낼 수 있는 생활의 지혜인 것 같소.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가장 많으니 말이요. 그것은 끊임없는 투쟁을 요구하고 강인한 신념의 받침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오. 한마디로 믿음을 가지는 것인 듯 하오.

 

편지에 인식 군이 결혼에 돌입했다니 축복할 만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청춘의 장이 막을 내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감도 없지 않소.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한 쌍에게 우리 마음껏 축복을 보내 줍시다.

 

우리는 뒤에 하지만 더욱 넓고 열려진 세계에서 할 수 있으리라 오히려 축복받았다고 생각하오.

 

노야, 드디어 나의 책 주제를 잡았고 조금씩 써 나가고 있소. 요즈음은 이 작업으로 온몸과 가슴과 마음이 환희에 들끓고 있다오. 곧 만나면 내 설명해 드리리다. 여건과 환경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문제는 그것을 여하히 선용하느냐 하는 인간 자기의지의 결정인 듯 하오.

 

그러니 노야도 나에게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따라오기 바라오. 모든 것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의 바탕 위에 서는 것이니 많이 먹고 운동도 부지런히 하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이 하루하루 당겨지고 있다는 기쁨으로 하루를 맞기 바라오. 정구는 노야에게는 너무 무거워 무리니 베드민튼이나 탁구 같은 것을 제자들과 즐기기 바라오. 배에는 살찌지 말고 허리운동을 많이 하오. 힘이 들더라도 쉬지 말고. 인체는 배와 허리운동이 제일 건강과 연결되는 것이라오.

또 소식 전하도록 하리다. 승효.

 

 

***사랑하는 찐빵 아저씨께

“노야 드디어 나의 책 주제를 잡았고 조금씩 써 나가고 있소. 요즈음은 이 작업으로 온몸과 가슴과 마음이 환희에 들끓고 있다오.”

 

이 구절을 읽으며 너무 가슴이 벅차 올라 숨을 쉴 수 없었어요. 이런 날이 머잖아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당신이 처한 여건과 환경 속에서 어쩌면!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하루종일 수 십번 그걸 들여다 보며 기뻐합니다. 다 팽개치고 당신에게 달려가 환희에 찬 당신의 얼굴을 보고싶어 미칠 것 같습니다.

 

그저께 소인 찍힌 편지 두 통 받았어요. 어제 답장 써놓고 아직 안 부치고 있는데 인구 씨에게서 시외전화가 왔어요. 직원조회중이라서 긴말은 못 하고 당신이 잘 계시고 인식 씨 결혼참석 하는 일도 알아서 하시겠다는 말씀은 전해 들었어요.

 

찐빵 같이 살이 쪘다니 못생긴 철학자가 되었겠군요. 토요일에 이선생과 대구 같이 나가서 이선생은 영보 씨와 만나고 저는 당신 집에 갔어요.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기분도 좋은신 것 같았어요. 거기에도 당신의 편지가 와 있더군요.

 

그리고는 영순 진미 수남이가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해서 학교로 갔어요. 시험공부 하고 있다가 제가 가니 함성을 지르며 끌어 안고 반가와 하더군요.

너무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어요.

 

걔들 마음속에 제가 이리도 크게 자리잡고 있을 줄 몰랐어요. 그거야 물론 당신이 걔들에게 그만큼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당신이 책 주제를 잡았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너무 기뻐하더군요. 우리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요.

 

영순은 서울대생 복학 얘기를 듣고 학장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좀 더 정확하게 알아오라고 하시더래요. 당신의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당신을 그리워 하신다 하고 김중명선생님은 “승효가 빨리 학교에 와야 학교가 되는데“ 그러셨어요.

 

스승들께서는 당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주선생님은 저보고 당신이 돌아올 때는 ‘왕중왕’이 될거라 하시며 위로해 주셨어요.

책도 좋지만 눈에 너무 무리 안 되게 하세요.

1976년 4월 28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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