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아납니다
4월 10일 1976년
나의 생명 나의 천사, 나의 여자 노야에게서 편지가 왔다. 역시 생명과 기쁨을 느끼게 한다. 날씨도 이젠 완연히 봄이다.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진달래도 이제 소담스레 망울을 맺으며 미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이 계속 쑤신다. 이러다 혹 눈이 머는게 아닌가 싶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운동을 하고 뛰고 할 땐 정상이 된다. 아마 눈을 많이 써서 그런가 보다. 이 눈도 노얄 위해 아껴야 한다.
지식이 채워지고 가슴이 만족에 젖을 땐 오직 하나 널 안고 싶은 욕망밖에 없다. 아마 넌 외로움과 고독에 뜬 눈으로 밝히는 날도 있겠지. 그러나 우린 지고한 정신적 사랑의 경지에서도 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기다림은 내일을 위한 찬란한 아픔이다.
****그리운 나의 님
그저께는 영보 씨가 당신의 사진과 글월을 보내 왔구요 어제는 수업 마치고 오니 책상 위에 당신의 편지가 다섯 통이나 있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모두 4월2일 아니면 3일 날 발송되었더군요. 영보 씨 말씀이 당신은 몸이 무척 좋더라 합디다. 그리고 할 일도 많아 보이더라 하대요. 저도 수업과 잡무가 끊이지 않아요. 이제 생활기록부 정리해야 해요. 열심히 하고 나면 하루가 얼른 지나가 버려요.
온 힘을 다해 하루를 충실히 보내려고 합니다. 그것이 행복한 삶 아름다운 삶을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이들에게 성실하게 대해 주니 아이들도 진지해져 갑니다. 제가 하는 일을 애정을 가지고 해 보겠어요.
큰형 말씀은 제게도 큰 기쁨을 주셨어요. 크게 기대는 갖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당신과 저의 미래가 눈 앞에 펼쳐지더군요.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는 하지만 얽매이지는 않겠어요. 당신의 패기와 집념이 저를 씩씩하게 만듭니다.
어제 저녁은 빵과 우유와 계란을 먹었더니 무척 편하고 시간도 많이 절약이 되는군요. 이제 저녁은 간편하게 먹을까 해요. 몸조심 하세요. 저도
잘 있을께요. 1976년 4월 6일 노야.
4월 11일 1976년
봄비가 내린다. 가물었던 대지가 소생한다. 잎사귀도 들도 하늘도 새로운 신선함과 생명의 빛을 발한다. 영보 군에게서 등기가 오다. 편지와 우표와 <독서생활>이란 월간지다. 책은 내가 읽을만치 충분히 가지고 있으나 친구놈의 우정과 정성에 깊은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하지만 심심풀이로 읽는 책이라면 지성의 흉내를 내는 이런 잡지보다 예쁜 여자가 있는 그런 잡지가 이곳에선 더욱 적절하다. 여자가 없는 세계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세계다.
이곳에 있는 한 고참놈은 왜 그런지 놈의 곁에 있으면 비릿한 엽색의 냄새가 나서 역겹다. 낯짝은 반반하게 생겼고 작지만 날씬하고 부지런하고 적당히 음모도 할 줄 아는 놈이다.
어린 놈이 여자 편력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오늘 안 일이지만 딸이 하나 있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저 문란한 말초적인 쾌락만을 위한 성윤리를 나는 역겹게 여긴다.
***사랑하는 내님
어제는 2시에 퇴근해서 점심 먹고 이선생하고 빨래감 챙겨 가지고 개천에 갔어요. 빨래를 한아름 옆에 끼고 가다가 시내에서 남선생들을 만났는데 우리를 보더니 막 웃더군요.
어릴 때 이불호청 빨래하러 언니 따라 수성방천에 갔던 일이 기억났어요. 우리 집에서 수성방천까지 빨래를 한다라이 가득 이고 어떻게 거기까지 걸어 갔는지 정말 불가사의야.
이선생은 머리까지 질끈 동여 매가지고 꼭 왈순아지매 폼이였어요. 빨래는 물에 설렁설렁 흔드니 지절로 행궈지고 우리는 염소하고도 놀았어요. 그리고는 장보러 갔어요. 사과궤짝도 하나 얻어 예쁜 꽃무늬 비닐을 입혀 찬장을 만들었어요. 하나 안 사고 그런다고 지독한 구두쇠라고 하네요.
부엌 살림을 다 꺼내가지고 말끔히 씻고 바닥도 닦고 정리하고 밥 해먹고 나니 밤 11시가 되었어요. 허리가 좀 아프고 별로 피곤을 못 느끼니 너무 신기합니다. 참 몸무게는 42키로가 됐어요.
오늘은 일직인데 아침은 빵하고 우유하고 먹을려고 해요. 밥 해먹는 시간을 아껴 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아침시간을 더 즐기려고요.
영보 씨는 요새 이선생에게 매일 편지 보낸다고 하니 우리는 술 석잔 벌어 놓았습니다. 그저께 제게는 편지와 여성동아를 부쳤는데 이선생에게는 안 와서 이상하다 했더니 퇴근해 가니 이선생 집에 커다란 소포가 와 있잖아요. 까만색 큰 곰이었어요. 자기가 곰이라면서 사랑 많이 해주라는군요. 곰의 목에는 황금목거리가 걸려 있고요. 18일이 이선생 생일인데 그날까지 못 기다리고 부친거래요. 영보씨에게 놀랬어요. 난 당신만 그렇게 정열적이고 여자에게 잘 해주는지 알았는데…….
(일직하러 학교에 와서 계속)
어느덧 벽시계는 열 번의 종을 울렸습니다. 막 동아일보 8면을 다 훑고 난 뒤입니다. 창밖에는 간간이 테니스 공소리가 퐁퐁 경쾌한 음향으로 들려오고 주위는 너무나 고요합니다. 정녕 봄인가?
따스한 햇볕은 교무실 안에까지 들어왔어요. 당신은 무얼하고 계실까? 당신이 하고 있음직한 모든 것을 다 상상해 보다가 별안간 그리운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아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 이겨내고 있고 참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당신은 너무 피로가 쌓였고 저 또한 보고싶다고 드글드글 볶으며 괴롭혔으니 이제는 좀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당신은 그곳에서 우리는 떨어져서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서로 모습을 더듬고 생각해 보는 이 시간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고 값진 거라고 느껴 집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당신의 힘이 늘 제 주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한사람의 바람직한 생활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깨어나니 갑자기 스케이팅괴 수영이 하고싶어 졌습니다. 올해는 꼭 배우고 싶은데 겁도 나고. 옛날에 왜 억지로라도 안 배워주었나요? 자기는 신나게 잘 하면서.
테니스는 영보 씨가 17일날 라켓을 둘 가지고 와서 저와 이선생에게 준다 했습니다. 이런 운동을 즐길 수 있다면 더 풍요로운 삶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수업지도안과 생활기록부를 슬슬 정리해 볼까요?
1976년 4월 11일 노야.
****사랑하는 내님
언젠가 제가 수업 하는게 하루종일 똑같은 말만 하니 지겨워 죽겠다 했더니 당신은, “노야, 반마다 앉아있는 아이들이 다 다르잖아.” 하였지요. 그 순간 제 머리는 어떤 실마리가 풀린 것 같이 후련했다고 제가 말했던가요?
그리고 또 하나, <몬테 크리스트백작> 영화를 보며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에드몽 단테스가 감옥 속에서 지식이 무궁무진한 노인을 만나 죽음만이 기다리는 그 속에서 노인의 지식을 다 전수받게 됩니다.
전수를 해주는 노인은 신에게 이렇게 감사드립니다. “주여! 다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나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은 찌르르 했습니다.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그것만으로 노인의 절망적인 삶은 희열에 찬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생활은 매일 신에게 경배드려도 부족하겠지요.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좀 벅찬 수업 양이 힘들지 않고 무사히 할 수 있었어요.
이제야 사람들이 아니 당신이 모멸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지성의 길을 놓지 않는 이유를 좀 알 것 같습니다. 교직에 아직은 크게 기쁨을 못 느끼고 또 쓸데없는 잡무를 하면서 짜증스러울 때가 많지만 이 노인을 생각하면 가르치는 일을 기쁘게 해나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소풍을 갔다 돌아오며 회식을 하고 총각선생 하나 꼬셔서 차 얻어 마시러 다방에 가서 막 떠들고 있는데 영보 씨가 쑥 들어 오더군요. 내일 올 예정이었는데… 우리 찾아 몇 시간을 헤맸다는군요. 하하하
우리는 이선생네 집으로 갔어요. 저는 피곤하다 하고 옆으로 누웠어요. 사실은 당신 생각이 몹시 나서. 당신은 제 마음을 잘 알잖아요. 그 누구도 당신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 물으셨지요. “노야, 내가 곤경에 빠지면 내 친구 중 누구에게 달려 갈래?” 그 누구에게 가더라도 제 마음은 조금치도 위로 받을 수 없을 거예요. 당신말고 그 누구도 안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오늘은 고추장 된장이 다 출장 갔어요. 우리는 교장을 고추장, 교감을 된장이라 해요.
저는 누구와 이야기를 할 때에 제 가치판단은 항상 당신께로 귀결이 돼요.
늘 첨에는 잘 참다가도 끝내는 승효 씨가 이렇게 말하더라 해버려 혹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도 되어요. 하지만 그들은 우리들의 깊은 맺음을 부러워 하고 나에게 빙그레 웃어 주어요
저번에 5통이 한꺼번에 온 뒤 당신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군요. 어디 훈련 떠났나 보다 하지만 보고싶은 생각에 발작이 날려고 해요. 그리고 독수리표 전축 월부로 하나 사서 집에 보냈어요. 두 분만 있는 집이 너무 쓸쓸해서 엄마 아부지 음악 듣고 생기가 나시라고. 다음 토요일에는 집에 갈거예요. 당신 집에도 들릴거예요.
1976년 4월 17일 노야.

---그리운 노야에게
당신의 글 기다리던 중 반가이 읽었소. 역시 천계는 어기지 못하는 모양, 이젠 진정 고대하던 봄이 완연하오. 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하여 자주 발걸음을 멈추고 향내를 맡게 되오. 그곳도 初夏의 싱그러움이 성큼 다가 왔으리라 싶소.
나는 건강한 몸으로 군무에 충실하고 있으니 내 걱정은 말고 노야 건강에만 유의하기 바라오. 영보 군이 자주 그곳에 온다하니 덜 무료하시겠구려. 나에게도 일주일 전에 잡지를 한 권 부쳤구려.
그 친군 성질이 불같이 급할 때도 있지만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오. 겉과 속이 틀린 사람은 잠시도 용납을 못하는 한결같은 사람이오. 그래서 이선생같은 분이 많이 좋은가 보오.
시간이 나면 정구도 치고 산책도 하고 또 항상 무언가를 배우는 하루가 되도록 하오. 무엇을 배워가는 사람의 눈은 맑고 부드러워지는 법이오. 요즘의 내 눈도 매우 연해지고 거울로 보는 내 눈이 몹시 아름답소.
항시 무언가를 창조하며 살며 타성이 된 생활에서 탈피하도록 하오. 나도 이젠 여가 나는대로 내 머리속에 있는 걸 노야에게 나누도록 하겠소. 그간 사람만 너무 좋아하다 보니 그냥 보는 걸로만도 만족했더랬소.
이제는 더욱 깊은 정밀 속에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할 것 같소.
이선생님께도 안부 전하시고. 승효.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