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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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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41)

사랑하고 사랑하는 내님..미친 듯이 그립게 만들었습니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11-28 (일) 17:22:17

사랑하고 사랑하는 내님..미친 듯이 그립게 만들었습니다

 

3월 23일 월, 1976년

군대란 이상해서 별일 아닌 데도 잔소리를 하고 몽둥이를 댄다. 별 이유도

없이 30여대 맞았다. 딴 친구는 궁둥이가 그대로 포도빛으로 변했으나 나는

슬슬 맞아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도 기분이 나빠 몇일 인상을 쓰면서 다니다 드디어 이래선 안되겠다고 마음먹고 고참놈을 잡아 공갈을 디게 쳐버렸더니

웬걸 이건 완전히 강아지가 되어 버렸다.

이 고참놈은 겁이 많고 잔인하고 교활하다. 그러다 나에게 걸린 것. 잘해봐

라 이젠 내 마음먹은 대로 군생활을 할 수 있게 되겠지. 일기에 이런 걸 쓸

때는 불쾌하다. 신성하고 아름다와야 할 인간의 기록이 이래서야 쓰겠나.

3월 24일 화, 1976년

새로이 접하는 위대한 사상과 발견의 경지. <<도덕형이상학원론,1785년>>

칸트(1724.4.22~1804.2.12)의 61세때 작품이다. 나는 칸트의 냉철하고 사려

깊은 사유의 오솔길을 따라 나선다.

 

그 길 끝에는 노야가 서서 기다리는 것 같은 그런 착각에 빠지면서. 요즘에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 졸병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그의 저서를 접

할 기회가 영원히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 발자욱 한 발자욱 나의 지식을 확대해 가고 나의 이성을 밝게 가지게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운명지워진 사명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일까

노야의 편진 계속 없다. 아마 주눅이 들어 이선생 집에나 들어박혀 있지나 않은지? 예민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라 이러저러한 공상 망상으로 정신을 피로하게 하고 있을지도 몰라.

인간이란 의무를 自己立法으로 할 줄 아는 것 거기에 인간의 존엄과 숭고함

이 있는 것, 나는 이것을 발전키 위해 계속 투쟁하고 있고 그 성과도 어느

정도 획득하고 있다.

 

사실 나의 학창시절을 회상해보면 우린 정말 3류 학생이었다. 윤리 도덕 이성 자유 기율 법칙 인간성 존엄성 이런 모든 신성한 것과의 접촉도 연구도 토론도 성취도 없었다.

이제야 이렇게 외따로 떨어진 산기슭에 누워 그런 걸 접할 수 있게 되다니.

지난 세월이 너무도 애석하다. 나는 이제 나의 노얄 사상적으로도 원숙한

나의 여자로 만들거다. 내 일생을 걸려서 만들려고 작정한다. 사실 우린

사랑만 먹고 살았지 위대한 정신의 정수는 나눠 갖지 못했다.

나는 요즈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아령, 역기, 달리기, 나의 몸은 근육

으로 울퉁불퉁하다. 그 통쾌함과 시원함을 건강한 육체에서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타리 사이 물건이 몹시 거추장스럽다. 젊다는 건 학문하는 이에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노야 장하고 지독해 다오.

 

 

3월 25일 수, 1976년

이곳의 생활은 모든 것이 나의 요령과 뱃짱이 배합되어 나의 목적들로 결합

되어 있다. 지금은 산기슭에 도승처럼 앉아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 현재

까지 독서를 하고 있다. 달아나서 산에 와 앉았는거다.

노야에게서는 오늘도 편지가 없다. 내가 너무 자주 가서 그 독한 아가씨의

가슴의 城이 무너졌는가보다. 한편 다시 생각하면 딴 사람들에 비해 우리처럼

자주 만나는 coulpe도 없는데 그걸 못 참다니 아마 노얀 忍苦의 스타일은 아

닌가 보다. 하하하. 하기야 너무 좋아해서 그렇지만 생활의 지혜와 인내의

덕성은 큰 재산이 된다.

 


 

-----보고픈 노야

소식이 없으니 궁금하오. 나는 건강하며 잘 지내고 있소. 알고 보니 내 편지가 발송이 안 되어 있더군. 아마 서너 통 한꺼번에 받을 수 있을거요. 노야를

생각하면 언제나 꿈만 같고 나에게 새로운 용기와 의욕을 심어주고 있소.

 

어떤 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노야와 같이 호흡하며 살고 있소. 이제 삼

월도 거의 다 가고 사월이 지나면 만날 수 있지 얺겠소. 모든 게 점점 다져져

가고 있으니 하루가 고되기만 한 것이 아니구려. 학교 일을 하다보면 짜증스

럽고 내팽개치고 싶을 때도 있을거요. 그러나 항시 주어진 상황을 긍정할 때는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도 생기리라.

 

모든 것이 우리의 빛나는 성장을 위한 도정이라 생각하고 긍정하면 노야의 그

예쁜 입술엔 따뜻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소. 오늘 오후에 한없는 사랑

을 이 종이에 실어 당신에게 띄우오. 또 소식 전하리다. 안녕, 승효.

 

 

3월 26일 목, 1976년

고대하던 편지가 오늘에사 왔다. 상상한대로 주녹이 들어 이선생 집에만

있었는 듯하다. 적당히 을씨년스러움도 인간심리엔 청량제가 된다. 그러나

나의 노얀 또 씩씩하고 장한 모습으로 돌아왔겠지. 사람이란 돌이 아닌 한 끊임없는 정념의 소유자이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난 나의 목표에 관한

限 끊임없는 투지와 투쟁으로 다가갔다.

도덕형이상학원론(道德形而上學原論,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도 이제 거의 끝이 난다.

 

 

새로운 개념으로 나에게 부각되는 인간존재 그리고 존엄성, 어쩌면 노얀 인간

존엄, 인간의 실체를 나보다도 훨씬 이전에 그리고 확고하게 체득하고 있었는

듯 하다.

사람은 사실 이성과 의무에 따라 즉, 정언적 형렬에 따라서만 행위할 때 그

에게는 기초와 경향에게 근거를 부여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행복이란 경험적이며 실용적 영역이지만 어쨌든 인간이 행복을 목

적으로만 할 땐 진정한 의미의 인간존엄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란 경험과 감성을 초월한 순수한 의무와 의지, 실천적 이성에

의한 자기행위의 입법에 있다. 그것이 이성적 의지에 근거한다는 점에 모든

것을 초월한 존엄성이 있는거다. 한마디로 존엄성이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실 인간의 행복이란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내적가치를

의미한다

 

나의 노야는 C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택한 행복의 포로가 아니라 나같은 사

람을 세월과 고통 속에서 사랑할 수 있음은 오직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

하고 또한 거기에 따르는 인간존엄을 체득한 것 같다. 그러기에 넌 정말이지

나의 자랑스러운 연인이다.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 또한 온몸과 정

신을 쏟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건강해다오. 그리고 오늘은 재룡군 편지도 받았다. 오늘 밤 답을

쓰리라.

 

 

***사랑하고 사랑하는 내님

당신이 제 곁을 떠나신 후 처음으로 어제는 치울 것도 치우고 밥도 해먹었습

니다. 그간 굶었다는 게 아니라 이선생집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없는 그 방

에 들어가기기 정말 싫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날 퇴근해서 부엌에 들어서니 당신이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놓

은 그릇들을 보니 목에서 울컥 무엇이 넘어오는 것 같고, 방문을 여니 사람

은 흔적이 없고 하얀 편지봉투 하나가 방바닥에 있어 얼른 꺼내보니 당신이 달필로 써놓은 편지가 미친 듯이 당신을 그립게 만들었습니다.

 

그 글자 한 자 한 자는 그대로 제 심장을 콕콕 찌르는 고문이 되어 왔습니다. 어쩌자고 그렇게 자상하게 어루만지 듯 써놓고 갔는지 그걸 보면 제가 와

르르 무너질 줄 정녕 몰랐던 말인가요? 두 다리를 뻗고 엉엉 울었습니다

 

떠나기 전 당신이 운동장으로 해서 우리 학교를 둘러보고 있을 때 창가에

서있는 저를 보셨는지요. 애들 눈치 안 채게 교실 뒤에 서서 볼려고 달려가

창문을 여니 당신은 벌써 등을 돌리고 멀리멀리 가버리시더군요. 천천히 아

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시더군요. 조금이라도 더 저를 느끼실려고 그

러는 거 너무 잘 알지요. 뛰어 나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안타까와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사랑하는 라라를 안전한 곳에 보내기 위해 곧 뒤따라 간다며 속이고 몸서리

치게 싫은 파렴치한 인간 카마롭스키에게 그녀를 보내놓고 미친듯이 이층

으로 달려가 창문을 깨고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는 라라를 울먹이며 바라보

던 지바고의 벌겋게 충혈된 커다란 눈이 생각났습니다.

 

다음 날 전화하면 무슨 말로든 협박해서 이리로 왔다가 서울 가라고 해야지 벼루며 온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화로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 말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제가 얼마나 풀이 죽어 있었는지 당

신은 모르시는 것 같았어요. 잘 하셨지, 여기 또 오셨으면 너무 피곤하기만

할 것을.

 

이번에는 비록 짧았지만 아무 방해 받을 일이 없었고 다른 일로 생각을 뺏

길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 다른 때보다 더 못 견디겠더군요.(매번 힘들지 않

을 때가 없었지만)

 

이선생을 많이 애먹였습니다. 그녀는 밥도 잘 해멕이고 저를 아주 편안히 있

게 해 주었어요. 어제는 방을 치우고 일찍 잤는데 계속 꿈을 꿨어요. 당신은 꿈속에 좀체로 안 보이는데 어제 밤에는 보이더군요. 그런데 몸이 몹시 좋지

않은 것 같았어요. 머리는 예전처럼 길고 까만 오바를 입었는데 눈이 푹 꺼

지고 많이 아픈 것 같았어요. 괜찮으신지 제발 몸조심 하세요.

1976년 3월 16일 노야.

 

 

3월 27일 금, 1976년

내 졸병 4명은 나에게 존경과 애정을 보여준다. 영보군이 4월 3일경 온다

는데 아마 못 만날 것 같다. 자동화 사격장에 훈련을 가야할 것 같다. 2박3일로. 날씨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3월 28일 토, 1976

이곳의 날씨는 정말 지랄같다. 사람이 좋은 기후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는 이곳에 와서 익히 체험했지만 이건 정말 너무 한다. 3월도 이젠

다 갔는데도 정말 봄날같은 봄날은 내 기억으로 꼭 하루밖에 없었다.

 

날씨가 따뜻하고 밝고 맑았다가도 금방 구름이 산에서부터 모여서 온 하늘을

덮어 버리곤 하고 강바람이 모래와 먼지를 싣고 와 계곡과 산을 메우고 또

비나 진눈깨비 눈이 내린다.

하루도 거의 예외가 없이 나쁜 날씨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피부가 모두들 거칠다. 특히 밖에서 책을 읽는 나는 이런 기후와 투쟁하며 사색하려면 보통의 힘과 의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판쵸를 뒤집어 쓰고 계

곡에 앉았거나 지붕 위에서 읽거나 옷을 마구 껴입고 하거나 이젠 정말 신

경질이 난다. 가능하면 조놈의 태양을 바로 곁에 끌어오고 싶다.

고향의 하늘이 그립다. 아직도 새싹은 날 생각도 않는다. 사람들이 여긴 봄

이 없다고 한다. 겨울 여름 겨울 여름으로 1년이 지난다고 한다. 고향의 하

늘이 그립다.

 

3월 29일 일, 1976

오늘도 날씨는 예외가 아니다. 아침에는 제법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도 낮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백광으로 변하고 드디어는 희끄무레한 여광만 하늘에 뿌

린 채 종일 그렇게 지나간다.

오늘도 뒷산 나의 사색장으로 줄행랑을 쳐와서 종일 그곳에서 칸트를 읽다 졸다하며 독서를 하고 담배 피우고 했지만 날씨가 노상 그러니 바람 한점

없는 밝고 찬란한 하늘아래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기껏 작업복 깃을 세우거나 땅이 푹 파진 곳에 몸을 기대거나 할 수 밖에 없

으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의 씨앗은 지금 바람과 모래가 사정

없이 나의 볼을 치고 엉덩이엔 찬 습기가 배어 올라오는 이곳에서 그 숨결을 씩씩거리고 있고 나의 볼은 기쁨과 환희에 석양처럼 타고 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일거다. 나 자신 스스로도 아름답고 고귀

하며 숭고하게 보이니 말이다. 이제 내일이면 <<도덕형이상학원론>>도 끝이

난다. 그러면 <<실천이성비판>>을 읽게 된다. 따뜻한 봄이여 나에게도 너의 여광과 열기를 나누어 다오. 병사의 소원이다.

빨리 거추장스러운 옷을 한겹이라도 벗을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겐 축복이 아

닐 수 없다. 종일 먼지와 흙 속에서 딩굴어야 하는 우리들은 한방울의 온수

를 구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강물에 요즘도 세수를 하고 빨래도 해야한

다. 목욕도 없다. 그런 우리에겐 여름이 무척 기다려진다.

 

 

3월 30일 월, 1976년

노야에게서 편지 오다. 인간이 해야 하는 고생이란 아마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이 더욱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보다 더 후덕하고 더 많은 사랑과 포용력을 가졌는가 보다.

 

매일을 하루종일 반복된 행위를 그것도 강제와 힘에 굴복되어 되풀이해야 하는 병사들. 다치는 이도 병든 자도 많다. 주여 그들에게 휴식을 주소서. 그리고 자유를!

 

 

**** 사랑하는 내님께

어제 기다리던 당신의 편지를 받았어요. 21일이 엄마 회갑이라 대구를 한번

다녀오고는 줄곧 이선생네 가 있었어요. 혼자 있기가 너무 싫었어요. 그녀는

저를 극진히 해주었어요. 영보 씨는 대구 갔을 때 잠깐 만났는데 이틀 후 거창

에 또 왔더군요. 사람을 얼마나 놀래게 하는지 이선생은 꼭 도깨비에 홀린 것 같다고 해요.

 

당신도 나를 참 많이 시달리게 했는데…. 만나고 오면 피곤해서 녹초가 되었

지요. 얼마나 산으로 들로 끌고 댕겼는지. 너무 빨리 깊은 사랑에 빠져 이 남

자하고 사귀나 마나 하는 생각도 가져보지 않은 채 도무지 생각을 해 볼 겨

를도 없었어요. 하지만 애인 하나 완벽한 사람을 얻었지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사랑하니 하나 탈이 있다면 너무 좋아하고 있어서 잠시

기다리는 것조차 못 견뎌하는 거예요. 참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주에는 굉장히 추웠어요. 당신이 한번 더 다녀가지 않고 바로 떠나서 얼

마나 맥이 빠져 있었는지 가슴이 답답하고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모르셨죠?

 

친구들과 술 마셨다지요. 너무 미웠어요. 편지도 쓰기 싫고 그랬어요. 벌써 수

백 번을 당신과 만나고 헤어지고 이런 일에 선수가 되어 있으련만 이번엔 왜

그렇게 허전했는지 모르겠어요. 나보고 원숙해졌다 하는데 저는 당신애게는

절대 어른이 되기 싫어요.

 

가난하지만 당신과 조용히 살고 싶어요. 그날이 가까와 온다고 생각하고 있어

요. 많이 먹고 명랑해 지겠어요. 당신도 눈을 너무 혹사하지 마세요. 안녕.

1976년 3월 26일 노야.

 

 

---나의 소년에게

남산동 어머님 회갑을 하셨다는데 내가 아무 한 일이 없어 면구스럽소. 장한

딸을 둔 어머님께선 무척 흐뭇하셨으리라 믿소.

 

사람이란 항시 투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드는 것이오. 기나 긴 인고와 인내를 요구하고 끊임없는 자애를 수반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나에겐 힘드는 일, 인고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고 오직 구도의 길만이 그리고 노야의 건강만이 큰 일이오.

 

여늬 사람과는 모든 면에서 상이한 소년에게는 나를 사랑함으로써 항시 고통과 기다림만 있는 것 같소. 그러나 그것은 내일의 빛을 기다리는, 혹은 새벽을 맞이하는 기다림같은 것이니 희망과 기쁨을 잃지 않을 줄로 알고 있소.

 

오직 나에게 한 사람 소년이 숨쉬고 있다는 생각으로 내 가슴은 포만해 있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치고나갈 충분한 힘이 되고 있다오. 건강하길 빌고

또 비오. 승효.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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