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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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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4>

현승효가 군에서 몰래 쓴 일기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06-15 (월) 05: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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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묘한 인생의 장난이다. 224일 부터 쓰던 일기를 5월 초순경 후반기 교육을 받을 때 보안문제와 심한 공포감으로 변소에 넣어 버렸다. 이병석 소위와의 사연은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또 다시 어려운 일기를 몰래 쓰기로 결심하다.

여기는 양평이다. 논산을 출발해서 용사의 집(용산) 시멘트 바닥에서 건빵을 씹으며 하루를 자고, 의정부 배출대에서 23, 다시 5군 사령부로 팔려가기 위해 의정부서 청량리로 가는 추럭에 실렸다.

 

청량리로 가는 길에 그 한많고 노야와 사랑에 몸이 떨리던 미아리고개를 넘을 때 눈물이 흘렀다. 전번에 쓰던 일기에 노야에 대한 내 마음의 연연한 정과 애닮음, 연정을 얼마나 썼던가. 너는 나의 생명, 나의 의지이다.

의정부 배출대에서 권창운 선밸 우연히 만나 노야와 주선생님께 편지를 부탁했다. 모든 것은 각본에서 어긋나 버렸다. 이제는 몸은 하늘에 마음은 노야에게 맡기고 내일 또 떠나게 된다. 멀리 용문산이 보이는 이곳은 양평. 자꾸만 바보가 되는 것 같다. 변소에 버린 내 아프던 시절의 기록이 너무도 아쉽다. 버리고야 말았던 것이 가슴이 저미도록 후회가 된다. 그 당시 상황은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언젠가 노야에게 주려고 쓰던 일기였는데. 노야 미안하다. 이제부터 또박또박 또 시작하는거다.

어제는 워카로 정강이를 까여서 뼈가 부셔졌다. 맞는 것, 욕설, 비인간적 대우,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 처음 쓰던 일기에서처럼 가슴 저미는 감정을 글로 옮길 수 없다. 그래서 버린 그 일기가 더욱 아깝고 애석하다. 이제 남은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세월이 흐르면 노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나의 의지가 된다.

나의 개성, 의지, 실력, 지성, 이런 건 무언지 도대체 군에서 느껴본 적도 발휘한 적도 없다. 이래선 안 되는데. 지금은 피마자 밭에 사역을 와서 쉬고 있다. 멀리 산을 보며 노야와 어머니 생각을 한다. 차라리 형무소였다면 몸과 마음은 괴로울지라도 이곳에서처럼 이렇게 무력해지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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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중대에서 이름도 잘 모르는 이곳으로 추럭에 실려왔다. 뚜껑도 없는

트럭을 타고 너무나 비슷한 시골 길을 한참이나 달렸다. 우측으로는 남한강이

꿈처럼 흐르고 길가로 만개한 아카시아 향기가 물씬나는 정이 가는 길이었다.

 

매미 울음소리는 왜 그렇게 요란한지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저께 의정부에서

양평으로 가는 길에 넘던 미아리고개, 노야와의 추억, 그 아름답던 나날들.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싸움은 졌다. 모두들 수십년 끈 싸움에서 패배를 자인할

구실을 찾고 있었던 듯하다. 자유, 민주, 안보, 모든 것은 피안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같은 그런 함성이었다. 동지는 숨통이 끊겼다. 요즈음은 간혹 자살을 생각해 본다. 도대체가 아까운 것 애착이 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모두가 깔려 질식할 것같은 이 사회현실.

지금은 불침번 시간이다. 며칠 계속되는 설사에 몸이 괴롭다. , 식사 모두

가 근근히 목숨을 이을 최하의 상태다. 며칠동안 세수도 세면도 없다. 머리

가 몹시 가렵다. 언제나 자다 깰 때는 죽음을 생각한다. 3년이란 세월이 두

려운 게 아니다. 노야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는 것 같다.

 

오늘은 종일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다. 나 하나야 죽든지 사라지던지

버둥대어야 할 애착과 의욕이 사라진지 오래다. 모든 게 그저 그날 하루를 맹목적으로 사는 것뿐인 나의 생활이지만 노얄 생각하면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져 더욱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지금 같아선 널 만나게 돨 것 같지가 않다.

여기서 왔다갔다 하는 병사들은 모두가 얼굴이 파리하고 신경질적이다. 아마

싸움에 패배했다는 좌절감이 나를 완전히 희망이 없어진 인간으로 만들고 있

는지 모르겠다. 애닳고 안타깝다. 놓쳐버린 행복의 시간들이 나의 것이였던

가 싶을 정도로 패배는 처절하고 사람을 죽이는거다. 어머님 아버님 제발

건강하세요. 못난 놈이 못다한 효도 이젠 정말 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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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야 생각에 어제 밤 잠은 완전히 설쳐서 눈이 쓰리다. 아침에 깰 때는 질식(窒息)

과도 같은 고독과 고뇌가 날 괴롭힌다. 노야, 그리운 노야! 이곳 풍경은 붉은

황토흙에 소나무가 덤성덤성 꽂혀있는 계단식 지대다. 마치 해부학 교실에

서 발기발기 찢어논 사체의 앞가슴 같은 살벌한 풍경이다.

낮에는 이곳 연대장 집에 참호를 파러 갔다. 나의 여지껏 생활 타성에서 온

게으름이 나를 죽인다. 하나님이 날 보호하실거다. 형님도, 그 누구도 나를

구할 수 없나보다. 그들의 사업이 실패했음이 틀림이 없다. 여기선 나 자신이

나를 보호해야 한다. 인사계 사람을 만나 면담을 하여 가까스로 의무중대로

빠지게 되었다. 나의 의지와 실력의 승리였다. 아버님 어머님 노야 너무 걱정

마세요.

여기서 서울대 출신 김일병을 만났다.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전철을 밟은 듯 했다. 무척 잘생겼고 키도 컸으나 얼굴은 파리하고 완전히 생명력과 의지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민청에 관련했다고 한다. 그의 말, “현형, 저들이 우릴 죽일 겁니다”.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내 가슴에 증오를 끓게한다.

종일 계속되는 사역, 대한민국 최고 졸병이 겪는 고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노야만 나를 기다려 준다면 나는 최소한의 행복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주여, 어린 양을 보호해 주소서. 오후에는 몇개월을 같이 고생하던 국래, 희우들과 작별을 고하고 나 혼자 여기에 머무르게 되었다. 여기서 3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한다. 형님을 생각한다. 위대하신 나의 형님, 나의 형임을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신이 우리를 갈라 놓더라도 나를 향한 사랑은 변치 않으리라는 노야, 내 너를 위해서라면 마지막 한방울의 피까지 말려도 한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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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시작되는 청소, 식기닦기. 비가 조금씩 내린다. 하사관 출신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사나이 눈에 눈물이 흐를 때 그것은 피눈물이다. 그들은 고향을 그리며 매일 눈물로 지새운다고 했다. 모포를 덮고 잠자리에 들 때 그들은 고향을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일이면 내가 살게 될 의무중대로 가게되고 그러면 노야에게 편지 쓸 수 있을거다.

전반기 6, 후반기 4주동안 하루도 노얄 잊은 적이 없고 버려야만 했던 일기에 노얄 부르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추운 날 몽둥이로 볼을 맞고 서러움에 입술을 깨물고 오열하던 기억, 처음으로 노야 편지를 받고 온몸을 떨던 기억과 그 봉투에 수없이 키스를 하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 그 편지들은 지금도 내 품속에 간직하고 있다.

무지막지한 구타와 욕설 속에서도 내 지성과 심성을 잃지 않으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몸부림치던 생각, 여정남형의 죽음에 명복을 빌며 서쪽 하늘을 향해 서서 허탈에 잠기던 그 뼈저린 상념의 조각들.

큰형의 고충을 이해할 줄 몰랐던 지난 날의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며 빌던 나날들. 어머니 아버님의 건강을 매일 고향을 바라보며 빌던 시각. 아침 점호 시간에 고향예배를 하며 몇초의 그 짧은 시간을 마치 유성처럼 허공을 흐르는 다시 오지않을 시간인 양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부르려고 정신이 없던 나날들.

그 지난 날의 나의 기록은 공포와 구타 때문에 변소에 던져버렸다. 아쉽고 애절한 일이다. 언제나 자고 일어날 때면 칭얼거리고 싶고 착각과 환영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주위를 인식하면 슬퍼지곤 한다.

종일 사역이다. 무우 썰기, 구덩이 파기, 나무심기, 물길어 나르기. 인생은 역시 형극의 길인가 보다. 아담이 에덴을 쫓겨날 때부터 비롯했다는 인간의 원죄.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또 인간이기 위해서 원죄는 그 실체로서 속성으로 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성, 사유, 지성, 무릇 모든 인간이 창조하고 발굴해 낸 고상한 말은 원죄에서 비롯되고 또 그것으로 종결되는 하나의 완전순환 메카니즘이다. 거기에 대립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발전을 하는 통일의 양태가 부여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에서 느끼지만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땀과 수고가 들어 있었는가 하는 것을 실감한다. 군을 구성하는 장병들은 대부분이 건달과 같은 심리를 가지고 있고 학력은 낮다. 전반기 교육동안에 일기에도 썼지마는 진정한 민족양심세력은 노동자 농민 계급이다. 그들은 심성에 있어 겸손하며 항상 몸과 수고로 주위의 환경을 개선한다. 한마디로 부지런하다.

나는 지금 시간이 닿는 한 내 기억을 되살려 지난 날들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

 

221, 노야와 그 극적이고 애닯던 이별을 하고 논산에 22일 새벽에 도착. 추운 밤에 차를 같이 타고 온 동료들과 손을 3명씩 잡고 수용연대로 왔다. 그곳에서 많은 곡절과 긴장에 찬 보름 간의 생활. 학교 선배인 윤종목대위(군의관)의 덕으로 거의 하사관 차출에서 제외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사역과, 구타, 욕설 속에서도 사회에서 같이 온 사람

들이 있어 나의 페이스는 지킬 수 있었다. 거기서 김진곤을 15년만에 만나서 반가운 상봉을 했다. 수용연대에서의 그 긴장과 기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디로 가게 될까. 새벽 530분이면 어김없이 닥아오는 점호시간. 거기서 온몸이 무척이나 부었고 감기가 걸려 혼이 났다.

하루하루는 그냥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양지만 찾는 수용소 생활 그대로다. 224일 부터 처음 일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시작되는 고난과 노야와 헤어져있는 시간을 노야에게 그대로 전하리란 생각에서 쓰기 시작했다.

한날 한시라도 노얄 잊은 적이 없었다. 너무 많은 고통을 주고 늘 기다리게만 하고 그리고 기쁨과 환희보다는 걱정과 암울한 기분 속에서 노얄 지내게 한 시간이 얼마였던가. 처음으로 한 인간에 대해서 그토록 죄책감에 오열을 한 적은 아마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도 없을거다.

훈련기간동안 추운 겨울 밤에 팬티만 입힌 체 등어리에 찬물을 끼얹힐 때도 나는 애써 무감각하고 무표정할 수 있었다. 그 비인간들 속에서 최하의 인간적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는 널 생각했다. 배고픔과 먹어 보겠다는 욕망으로 매점에 할 일 없이 서성이며 동료의 빵을 구걸해 먹던 그 시간에도 나는 미래의 영광과 나의 쌓아올린 명예에 자애할 수 있었기에 노얄 기다리게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감이 조금씩 뽕잎을 파먹는 누에처럼 내 가슴속에서 깎여지기 시작한다. 너무도 좋은 사람, 이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있는 노얄 내가 그렇게 고통을 줄 수 있는가? 결코 나보다 좋은 사람, 딴 사람에게 어쩌고 하는 그런 신파조의 상념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나를 탈피한 발전한 나로 노얄 상봉한다는 부활의 상봉과 재림의 상림을 약속한다는 말이다. 나 외의 이 세상 누구도 노얄 행복하게 할 순 없다. 과거의 나 현승효까지도 그녈 행복하게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지금 문득 형님의 말씀이 기억에 새롭다. 하나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자. 우선 군문제부터. 옳으신 말씀이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한가지 꼭 적어두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은 군인이 된 오늘날까지도 나는 군이 너무도 두렵고, 강제적 폭력적인 속성으로 나같은 사람을 적대시하는 집단이라는 무의식적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아서 군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이질적 집단이라 여겨져 이처럼 적응이 되지않고 그래서 마치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패전지장이 된 것 같이 몹시 불안하고 두렵다. 2명 자살 7명 탈영이란 김일병의 말도 결코 생소하지가 않다. 그러나 나는 거물이다. 그들과 같은 그릇은 아니라고 자부하며 또 그렇게 이곳 군에서도 대접을 받았다. 그 속에 이병석 소대장과는 친우로서의 우정도 나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입대를 하고서는 성경을 틈 나는대로 읽고 또 몸에 지니고 다니고 있다. 유물적 사고방식, 논리 명증적으로만 사물을 보는 인간의 안목이란 그만큼 인생에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아마 노야의 승리였으리라 믿겨진다.

! 나의 생명 나의 분신 노야야 건강만 해다오. 아버님, 어머님 옥체 강령하소서. 이것이 대강의 나의 기억이다. 계속 기억이 나는대로 이 일기에 삽입을 할 생각이다.

 

이제는 나의 능력과 나의 실력을 이곳에서 발휘할 시간도 온 것 같다. 적이란 생각을 떨쳐 버리겠다. 나의 사람들이란 생각을 가지겠다. 나의 적은 조국을 감옥으로 병영화 시키려는 무형의 의지와 악랄한 하나의 집단적 의식이지 결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문화 양태- 철학, 예술, 진선미에 대한 인간의 발견과 탐구는 여유에서 그리고 풍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역사이래 모든 위대한 문화적 업적은 반민계급의 소유였다. 그들은 절대 다수의 노동착취를 기조로 한가함과 풍족함 속에서 사유와 사색을 계속할 수 있었을 거다.

졸병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야 하고 나 역시 일체의 사색과 사유하는 행위를 박탈당한 하루하루를 낸다. 특권계급이 향유하는 문화 양태는 시간적 경과의 과정을 통해서 하향적으로 파급된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에 대한 착취와 지배는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 규칙, 질서라는 것을 생각해보다.

 

 

첫 편지 (연무대에서, 군사우편)

---안녕하십니까, 노선생님

저는 염려해 주시는 덕분으로 몸 건강히 교육 잘 받고 있으니 조금도 걱정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미안하고 죄스럽게 생각하며 부끄러운 생각이 떠날 날이 없사오나 닥아 올 앞날에 넘치는 희망과 영광이 있을 것을 확신하오니 용기와 여유를 잃지말고 몸 건강히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편지를 내었는데 받으셨는지? 그것만 알려 주십시오,

취직이 어느 곳으로 되어서 가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리고 큰형님의 사업은 잘 되었으면 좋겠사옵고 집안은 모두 평안한지 궁금합니다. 제가 늘상 얘기드리지만 사람의 몸은 만들면 만들어 질 수 있사오니 건강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저에게 답장주시기 바라옵고 선생님들께

또 여러분들에게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무척 뵙고 싶사옵니다 곧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

 

 

두번 째 편지(연무대에서, 사제편지)

----노선생 보십시오

건강하시고 하루하루 보람찬 생활 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한 몸으로 교육 잘 받고 있으니 걱정마시기 바랍니다. 대구로 연락을 해도 감감 소식이라 긍금하던 중 아버님께서 죽변으로 가셨다고 소식을 전해 주셔서 반가왔습니다.

 

항상 걱정과 번민만 주어 온 내가 부끄럽고 죄스러움에 항시 갈등으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허나 태양은 내일도 뜨는 것이고 앞으로 많은 기회가 주워 지리라 자위도 하고 새로운 각오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으니 용기를 잃지말고 건강한 몸으로 생활하시기를 빕니다.

 

보고싶고 드리고 싶은 얘기가 무척이나 많이 쌓인 것 같습니다. 닥아오는 앞날에 분명히 우리에게 영광과 평안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니 새로운 생활 객지생활에서 마음의 평화를 잃지말고 지내시기 빌며 아울러 내가 항상 귀에 닳도록 얘기하는 건강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여기서 듣기를 죽변리란 자그마한 어촌이라고 들었는데 어떠한지 궁금도

합니다. 항상 바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잘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촌이니까 생선 많이 잡수시고 절대로 식사를 거르지 말기를 거듭 거듭 부탁

하오니 꼭 지키기 바랍니다.

 

대구에서의 소식이 누나가 여아를 순산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아마 답장을 주시면 제가 한번은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니 엽서나 한장 보내 주십시요

 

건강 건강이 내가 항상 기도하는 소원이니 유의하시기 빕니다.

411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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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야의 첫 답장

***그리운 당신께

아파트로 보낸 당신의 편지가 오늘 이리로 도착했습니다. 봉투를 오리는데 엽서가 삐죽이 보이길레 가슴이 쿵쿵 뛰며 행여나 했는데 오, 하느님! 꿈만 같게도 당신의 육필이 눈에 들어 오는데 정신이 아찔해 지더군요. 한 자 한 자가 글자가 아니라 당신의 피와 살 같더이다. 편지에는 다 쓸 수 없는 당신의 깊은 마음을 읽으며 남몰래 눈물을 닦으며 읽고 또 읽고 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아무리 억압하는 사악한 자가 당신 곁에 있고 싶어하는 저의 단 한가지 소망을 짓밟는다 해도 당신을 사랑하는 제 마음은 막지 못할 것이며 당신을 기원하는 제 의지를 꺾지 못할 것입니다

 

221일 의성 작은 이발소에 같이 가서 머리를 짧게 깎은 당신은 소집장소인 학교 운동장에 가득한 농촌 청년들과 섞여서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일어섯 앉앗! 하는 군인의 호령소리에 움직이다가 마침내 죽 열을 지어 논산으로 가는 역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여주려고 연신 뒤를 돌아보는 당신이 사라져 안 보일 때까지 서 있다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무슨 정신으로 대구로 돌아 왔는지..

 

해가 다 저물어 대구에 떨어져 신천동으로 가서 어머님께 당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 전화가 때르릉 심상치 않게 울리더니 역시 당신이 동대구역을 지나며 역에 있는 아무나 한사람에게 이리로 지나 갔다는 말을 집으로 전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의 전화였습니다. 당신은 참 재빠르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번 느꼈습니다.

 

너무나 허전하고 쓸쓸하여 당신의 그림자를 찾고 싶어 집으로 가다가 영순의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언제나 담대하고 현명하고 침착한 영순은 저의 휑한 마음을 채워 주었습니다.

 

2월말 신문에 공립중학교 발령받은 사람 명단 중에 제 이름도 있어 걱정 하나는 덜어서 좋았고 우리를 염려해 주시는 분들도 다 휴 안도의 숨을 쉬시고 영순과 동신다방에서 주선생님을 뵙고 말씀드렸더니 얼마나 기뻐해 주시던지

 

7시간을 버스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이곳 죽변에 도착했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경치가 당신 생각으로 꽉 차 있어 바다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집에서는 제가 염려되어 사촌동생 우식이를 딸려 같이 가게 했습니다.

 

꾸무레한 날씨 때문인지 텅 빈 마음 탓인지 처음 본 죽변은 참 황량하였습니다. 그런데 숙소를 찾아 가니 마침 효대를 나온 가정선생 둘이도 막 발령받아 와서 한 방을 같이 쓰게 되어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오선생 김선생인데 놀랍게도 오선생은 708월 말 당신이 사랑하는 후배라고 소개해준 오기환씨의 한살 위 누나였습니다.

 

그녀는 당신을 고등학교 때 대구영수학원에서 본 적이 있다는데 당신이 경북고 모자를 쓰고 위에는 교복을 입었는데 밑에는 핫바지를 입고 꺼먼 고무신을 신었더라 해서 우리 셋이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습니다. 노선생 애인은 괴짜라면서.

 

기환씨는(지금 공군에 입대, 팔공산에 있다 합니다) 첨 보는 날 자기 누나하고 내가 많이 비슷하게 생겼다 하더니 이렇게 한 학교에 같이 근무하게 될 줄이야! 땡글땡글 얼마나 다부진지 나는 그녀에게 대면 어리버리 같습니다.

 

김선생은 문학소녀로 책도 많이 읽고 멋도 많이 부리고 감정이 풍부하고 말도 참 재미있게 하여 금방 친하게 되었습니다. 난 이 여선생들이 어른 밥그릇으로 한그릇 뚝딱 먹어 치울길래 깜짝 놀라 얼씨구 나도 한번 뚝딱 비워보자 하고 난생 처음으로 밥 한그릇을 안 남기고 다 먹어 버렸으니 내 배가 놀라 나자빠 졌을거예요. 맨날 밥 많이 안 먹는다고 미워 죽을라 하던 당신 표정이 생각났습니다.

 

초임이라 담임은 안주고 1학년 영어 수업을 하는데 하루에 2시간 내지 3시간을 하여 아주 쉬웠습니다. 교장은 생전 학교에 안 나오고 목소리가 쟁쟁 쇠소리가 나는 교감이 교장 일을 다 보는데 교장이 한번씩 나타나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말을 툭툭 던져 간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교장은 지금은 늙었지만 젊을 때는 인물도 좋았겠고 키도 후리후리한데 맨날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게 웃기고 왕년에 배우 지망생이었다나 촌구석에 교장으로 쳐박혀 있는 것을 심히 족팔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샘들은 이 고장 토박이는 별로 없고 거의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좋게 말해서 개성있고 웬지 다들 좀 기이한 기분이 듭니다. 가만히 보니 작은 어촌에 선생들도 유지급이라 툭하면 경찰지서장 우체국장 이런 사람들하고 내기 화투를 하는데

 

그 중에 얘기가 잘 통해서 우리 병아리 여선생들이 좋아하는 선샘 한 분은

한 달 월급을 몽땅 잃고 부인이 얼라를 업고 학교로 생활비를 받으러 왔는데 한 푼도 못 주는 걸 보았습니다. 따서는 싹 다 챙겨넣은 선생은 교회에서는 장로라 하는데 이 사람이 싫어지고 얼굴 쳐다보기가 무서웠습니다.

 

(검열때문에 이것은 편지에 쓸 수 없었지만, 우리는 매일 퇴근하면 동아일보부터 찾았다. 정보부가 툭하면 기자들을 잡아가고 검열을 하여 기자들이 언론자유수호를 선언하니 광고주들을 협박하여 광고를 다 끊는 일이 벌어지는 동아일보 백지 광고사태, 기자들을 지지하는 학생 시민들의 밀물같이 쏟아지는 격려성금 광고문이 어두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한줄기 빛으로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우리는 격려광고 보는 재미로 퇴근길이 즐거웠다

 

동아야, 너마저 배신하면 나는 이민갈거다”,

순아(?) 사랑한다”,

생남을 축하합니다

내 애인 멋재이!”

"술 한 잔 덜 먹고 여기에 내 마음을 담는다."

 

"긴급조치로 구속된 동료학생들에게 사식비로 전하려 했으나 이 길마저 당국이 차단해서 광고 없는 동아일보에 성금으로 바칩니다."

 

대충 이런 광고 문구들은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또 참으로 통쾌하게 만들었다.)

 

3월 한달, 비는 시간마다 이렇게 써 놓으며 당신에게서 주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미칠 것 같았습니다. 편지를 할 수도 받지도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오늘 편지를 받으니 기쁨으로 제 눈물은 흐르고 또 흘러 다 흘러 버려서 영원히 눈물이 말라 버릴 것 같습니다.

 

영순의 편지에 신천동 두분께서는 잘 계시며 주선생님께서 한번 다녀가셔서 저녁을 같이 드시며 당신 걱정을 하셨다 합니다. 선생님은 당신 보내신 후 옆에서 뵙기에 민망할 정도로 허탈해 하시더니 제가 발령받아 이곳으로 떠나

는 날 이른 아침에도 서부정류장까지 나오셔서 초코렛을 한통 사주셨습니다. 애껴애껴 먹어도 이틀 전에는 다 먹고 말아 빈통을 쓰레기 통에 넣으니 왜 그렇게 허전한지요.

 

큰 형님 사업은 잘 되어 가는지 제가 한번 형님께 편지를 낼까 하는 중입니다. 그저께 45일이 연휴라 오선생편에 신천동에 전화 좀 하라고 부탁했더니 아버님이 받으셔서 안그래도 그 일 때문에 바로 전날 서울을 다녀 오셨다 하는군요.

 

42일자로 제가 보낸 편지는 오늘 쯤 받을 수 있겠군요. 요새는 하루가 가는 것이 당신과 재회할 날을 하루 단축한다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대구서 멀다 뿐이지 (버스로 7시간) 평화롭고 부족할 것 없는 어촌입니다. 해산물이 많아 포식하고 있습니다.

 

4시간 수업이 끝날 쯤 되어 운동장으로 눈길을 돌리면 하숙집 아주머니들께서 함지박에 선샘들 더운 점심밥을 해서 머리에 이고 죽 행진해 오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선샘들은 거의 외지에서 오셔서 다 하숙을 하고 있습니다.

 

교무실 책상에 하숙집마다 색다르게 해온 점심을 죽 차려놓고 어느 집 반찬이 더 좋은가 한바꾸 돌아 보고, 집어 먹어보고, 다 먹네 어허이 고만! 소리치고 낄낄 웃고 참 재미있는 풍경입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님, 당신의 부모님, 선생님, 우리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조금치도 바래지 않고 주시기만 하는 그분들께 진실하게 성실하게 건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림으로써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부디 건강하시고 제게 대한 염려는 절대 말아 주세요

471975

노야드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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