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3일 금, 1976년
25일간의 휴가. 피로에 지쳐서 돌아왔다. 기다리는 것은 싸늘한 내무반과
고달픈 졸병생활.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인가? 그토록 조용히 생각하고싶던
일들을 휴가 시작과 함께 깡그리 다 잊어 먹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 한 인간을 한 방울의 피, 한,올의 머리털조차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 이름답고 숭고하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노야 나의 생명,
아니 나는 오늘부터 나의 소년이라 부르고 싶다.
그 모습에 있어서 탐스럽고 예쁘며 그 심성에 있어 정열적이며 용감하고 투
지에 넘친다. 그리고 그 모두에 있어서 장하고 자랑스럽다. 그것이 나의 노
야의 모습이다. 진정 너를 사랑한다.
한없는 경외감으로 그리고 신비와 감사의 정을 가지고 나는 너를 멀리서 그
리며 그리워하며 흐뭇해 하고 있는거다. 이 행복한 졸병, 나는 정말 복받은 졸병이다.
돌아와서 인간 이하의 저들에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도 허허 웃으며 돌
아설 수 있는 것은 나는 이미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이 되는 길인가 하는 것
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학을 졸업한 장교에게 당할 땐 야릇한 감에 빠진
다.
그리고 저들 비참한 병사들을 봐라. 내가 의무대에 있어 누구보다도 그런 비
참한 모습을 많이 본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무서운 추위 속에서 그들
은 한밤중에 2시간씩 보초를 선다. 그리고 발 얼굴 손등이 얼어 터져서 찾아
온다. 가련한 모습, 물론 나도 호령을 하고 소리도 지르지만 나에게 치료 받
으면 제일 좋을거다.
가련한 나의 동포, 나의 전우들. 나의 소년 노야, 우리는 무엇인가를 온몸과 생명조차도 던져서 사랑하지 않고는 회의와 권태와 외로움에 견딜 수가 없다.
나는 너와 있을 때는 혼신의 열로 사랑하고 이렇게 떨어져 있는 지금은 너를 부르며 무서운 집념으로 사유하고 독서한다
어제는 영하 14도, 이 추위에 나는 밖에서 7시간여 숨어서 독서했다. 그래
서 볼이 얼었고 발가락이 시큰거린다. 지금 옆에서 잡담하는 소리 라디오 소
리 모든 소음 속에서도 나의 자유에 침몰한다. 그렇게 열심히 무엇을 희구하
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한시라도 인간은 자신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자기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돌아오는 날부터
Kant의 純粹理性批判을 읽고 있다. 자연과학에 있어 Einstein에 비견할 만
한 인간이성의 발견이다.
오늘로써 나의 천사에게 두 번째 편질 내었다.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대구는
무척 따뜻하겠지. 이곳의 추위는 정말 대단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연병
장을 쓸고 청소를 하고 정신없이 돌아 다니다 보면 취침시간이 온다. 떨면서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빳빳해 진다.
빨리 봄이 와야 할텐데. 봄이 오면 나는 부대를 옮기겠다. 그리고 인사과
보좌관을 만나 휴가를 부탁하다. 2월18일께 또 노얄 볼 수 있겠지. 새로
시작한 이 일기장, 얼마나 애환이 서린 글들이 이 종이에 쓰여질까.
아, 형극의 인생 행로여. 나의 천사 나의 생명 노야! 바깥 날씨가 몹시 차다.
하늘도 땅도 강도 그리고 나무가지도 얼어붙은 겨울이다. 우리 건강하자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 사랑하자. 안녕, 잘 자.
1월 24일 토, 1976년
날씨가 많이 풀렸다. 머리에 털이 나고 그토록 무서운 추위는 처음이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속에서 새벽부터 밤 늦도록 움직여야 하는
졸병에겐 무서운 추위였다. 이제 추위도 이겼다는 새로운 승리감을 이렇게
따뜻한 날씨에 만끽한다. 며칠 후엔 또 100km 행군과 2박 3일의 冬期 훈
련이 있다. 많은 환자와 부상자가 예상된다.
노야에게 편지 쓰고 Kant를 계속 읽는다. 그 자체로 고귀한 인간이라고 표현
되는 Kant, 깊이 가슴속에서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너무나 치밀하고 성실한
그의 저술, 그렇게 어렵지 않아 즐거움이 여간 아니다. 이곳의 생활도 예전
에 비하면 너무나 좋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들이라 생활이 즐겁고 고마운 일
이다. 노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편진 받아 보았을까. 긍금하다.
빨리빨리 칸트를 읽자. 이 책이 내 머리를 훑고 지나가고 나면 또 얼마나 풍성한 사유의 자유를 느낄까? 여태까지의 수많은 哲人들과는 판이한 스타일과 인생을 그에게서 본다. 노야는 나의 모든 것, 건강 해다오. 밥맛도 무척 좋아졌다.
1월 25일 일, 1976년
오늘 점심은 라면을 먹는다. 무척이나 맛이 있었다. 날씨는 영상 1-2도 여
지껏 추위가 거짓말 같다. 소총부대의 생활은 보기에 참 민망하다. 군대 3년
이란 모든 것을 망각 속에 묻어 버리는 그런 때인가? 나도 하루하루의 생활
에 타성과 습관에 묻혀버린다. 매일 눈칠 보며 책 보고 12시까지 불침번 서며 또 읽고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모든 고상한 일은 바쁜 틈 속에서 생기는 것. 물론 그것도 너무 바쁘면 불가능 하지마는 확실히 나의 학교시절보다는 많은 걸 읽는다. 왜냐하면 읽으려는 기쁨으로 나는 다음 날을 맞이하고 싶고 일어날 때에도 힘차게 깨어날 수가
있다. 노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예쁘고 착하고 정열적인 나의 노야.
어머닌 지금 또 무얼 하고 계실까?
하나의 인간이 제 몫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고난의 세월과 고통을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까진 나의 힘으로 나의 두뇌로는 자연을, 모든 표상과 사
유를 나만의 것으로 정의내릴 수 없다. 나는 언젠가 이것을 발견해야 한다.
여지껏 어떠한 철인과 사상가도 발견하지 못한 우주와 인간과의 다른 측면을 발견해야 한다.
1월 30일 금, 1975년
어제 2박 3일 혹한기 훈련을 나왔다. RCT 훈련에 비하면 이건 어린애 장난
이다. 밤에 마을로 내려가 밤새껏 술 마시고 더운 방에서 자고 산토낄 삶아 먹었다. 물론 다른 병사들은 텐트에서 잤다. 추웠으리라. 그 고통도 대단했
겠지. 나는 농땡이다. 뱃짱도 두둑하다. 그래서 노얀 날 좋아하는지 모르겠
다.
나의 넘실대는 자유엔 계급관념이 통하지 않아서 그런지 군인정신이 빠져서 그런지 육군 중령인 대대장을 보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높은 산 꼭대기까지 구보로 갔다 오라는 기압을 받았다. 그러나 끝까지 달려 갔다 올 내가 아니다. 물론 대대장이 밑에서 보고 있지만 나는 나무가 많은 산으로 쏙 들어가서 한참 앉았다가 도로 내려왔다. 하하하.
제대를 하면 우선 땅을 돈 되는대로 30평이나 40평을 사겠다. 거기다 나의 설계로 집을 짓겠다. 방은 2~3개. 아담하고 조촐하게, 노야, 좋지? 돈은 여러분에게 무이자로 5년 분할로 200만원정도 꾸자
오늘 오후 3시에 귀대해서 7시 다시 부대를 출발 30 Km 행군으로 들어 간
다고 한다. 나는 또 어떤 상태로 들어 갈까? 늦으막이 저녁을 먹고 위생병
3명이 모여 뒤를 따라 갔다. 그러다가 부대에서 500m 쯤 떨어질 때 내가 골
목으로 2명을 데리고 뛰어들어가 버렸지. 나는 밤만 되면 야전사령관이다.
하하. 거기서 500원을 주고 셋이서 여인숙에 투숙, 새벽 3시까지 씩씩 자다
가 돌아 와 버렸다. 병력들은 새벽 2시에 귀대 했단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것으로 오케이.
물론 나는 이렇게 빠져서 책을 읽을 양으로 배에 책을 품고 갔지만 자버렸다 다음 날 잠을 줄여서 읽으면 되니까. 기회와 여유는 노리는 사람과 필요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물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나는 나의 노야를 생명으로 사랑할거다. 그리고 그녀를 이 세상의 여왕으로 만들테다. 나의 집념과 사랑이 그것에 대한 보증이다. 노야 잘 자,
1월 31일 토, 1976년
오늘 모포를 내다 말리며 내가 또 감시로 남아 독서 독서, 신나는 달밤이다.
물론 낮이였지만. 그리고 노야와 영순이 편질 받다. 즐거움에 가슴이 뿌듯
하다. 그리고 밤엔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불침번을 서면서 독서했다. 그러
다 난로불이 끄져서 불을 피우느라 애를 먹었다.새벽 2시가 넘어 취침.
오랫만에 속옷과 내복을 갈아 입어 기분이 상쾌하다. 이제 며칠 후면 100
Km 행군이다. 그땐 열심히 따라 다닐테다. 그 행군에서는 얻는 게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사랑하는 당신께
좋아지지 않은 몸으로 떠나는 당신이 무척 안스럽다가 언제나 가슴을 뿌듯하게 해주는 당신의 글을 받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편지는 마침 출근한 날에 도착되어 아주 기쁘게 읽었습니다.
혹독하게 추운 그곳에 당신을 두고 나는 떠나왔습니다. 온실의 꽃같은 나약한
나를 위해 밤에 몇 번이나 나가서 잠을 설치며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바람이
안 들게 이불을 꼭꼭 여미어 주던 당신, 그때는 너무 추워 참지 못하고 춥다며 오도방정을 있는대로 떨고 더 있지 않고 와버려 지금은 너무 후회가 되고 마음
이 아픔니다. 춥더라도 괜찮은 척 참을 걸!
당신을 만나고 수년이 흘렀지만 당신은 항상 새로운 모습이라 제 작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합니다. 그날 동대문으로 와서 바로 대구로 내려 왔습니다. 인식
씨는 제가 애처럽게 보였던지 한 팔로는 신 양을 다른 한 팔로는 저를 걸을 때 감싸안다싶이하고 다니더군요. 그는 제가 씩씩하고 강한 소년이라는 것을 모르나 보죠.
이번 겨울 당신의 귀중한 휴가, 우리 둘의 소중한 시간을 좀 희생하고 오빠 3
식구가 생계를 꾸릴 가게를 하나 열어 주느라 쫒아 다닌 보람이 있는지 옷가
게는 아주 잘되고 있어요. 가게 보러 다니고 돌아오면 당신은 부엌바닥에 쪼
그리고 앉아 연탄불로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지요. 부엌에 한번 들
어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쩌면! 나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는 사람.
요새는 죽 여기서 장사를 도와주고 있어요. 선생 때려치우고 장사를 할까봐.
모두들 선선히 잘 사가니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지금도 서울서 물건이 와서 정신없는데 살짝 빠져 나와서 길 건너 권선생 집에 와서 쓰고 있어요.
손님들이 우~~몰려 왔다가 다 나가고 나면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이럴 때는 어김없이 제가 깊이깊이 사랑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 남자
에게 웃어보이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합니다.
빨리 거창 내 방에 가서 저만의 시간을 가지고 당신에게 편지 많이 하겠습니다.
부디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요. 이만 안녕!
1975년 1월 25일 노야.
-----나의 소년에게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소. 下邱하시는 길이 무척이나 고
달프고 함겨웠으리라 생각하오만 당신은 언제나 밝고 건강하고 씩씩한 소년이
기에 잘 견뎌냈으리라 믿소.
무언가 허전하고 해결되지 않는 삶에서 많은 의문과 숙제를 그대의 사랑과
그대의 장한 모습으로 메꾸어 버릴 수 있으니 내 가슴은 풍선과 같다오.
인식 군과 신 양의 뜨거운 전송에 노야가 대신 감사의 말씀을 해주시오. 이곳
의 맑은 공기와 생활은 역시 당분간 내가 살기에 너무도 알맞고 마음에 드는
수련의 도장인 곳처럼 느껴진다오.
노야는 멀리 계시나 거리란 개념은 이미 우리들에겐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 아니겠소. 소년이란 항상 발랄하고 무언가에 용감히 도전하며 과감히 해치우
는 정열과 사랑을 지닌 사람인 줄 알고 있소.
노야는 나의 영원한 소년이오. 게을러 지지말고 더욱 건강해 지길 바라겠소.
이곳에 와서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오. 이젠 틈나는 대로 자주 편질 띄우겠
소. 또 한 해를 우리들의 일년으로 요리해 갑시다. 살 많이 찌고 밥 많이 자
시오. 효.
2월 1일 일, 1976년
새벽 1시가 넘도록 불침번을 섰다. 그래서 잠이 무척 모자라 낮엔 조는 시
간이 많다. 그러나 모두가 잠들고 고요한 밤이 되면 밤의 요기가 살아난다.
눈은 맑게 떠지고 정신은 호롱불처럼 촐랑거리며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칸트를 만난다. 그와의 오랜 시간의 대화는 나를 충일하게 하고 잠자리에 들어서까지도 오랫동안 유추토록 한다.
오늘 영순과 동현에게 편지 쓰다. 내일은 노야에게 편질 쓸거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노얄 만나게 된다.
2월 6일 금, 1976년
날씨 쾌청. 아직도 산에는 잔설이 남았다. 그래서인지 바람도 깨나 차갑다.
오늘 냇가로 빨래를 하러 나왔다. 손이 고추처럼 빨갛게 되었다. 2월 4일
100Km 행군을 새벽 6시에 출발 그날 오후 4시까지 50 Km를 걸었다. 나의
다리도 이젠 거의 강철이 되었나보다. 모두들 절뚝거리는데 나는 아무렇지
도 않다.
오후 8시부터 2월 5일 새벽 6시까지 또 50Km 행군이 시작되었는데 9시가 넘어서자 비와 진눈깨비가 때리기 시작했다. 이 상태에서 행군을 계속한다면 수많은 환자들이 나오리라. 그렇게 칠흑같은 밤에 걷기를 한시간여 같이 간 졸병이 죽어도 못 걷겠다고 하기에 도중에 데리고 마을로 내려와서 뜨거운 방에서 한참 쉬다 부대로 돌아오니 새벽 2시.
아마 알면 영창감이겠지마는 군대일이란 뻔한 것 새벽 2시가 넘어서 도저히
걸을 수 없어 돌아왔다고 하고는 자버렸다. 지치고 허기진 대열은 다음날 아
침 8시경에나 부대에 도착했다. 그것도 길을 잃어서 떼를 지어서 말이다.
저들의 저 고생을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어제 출발하기 전에 조봉계 형과 부완혁 씨(사상계사 대표)의 검찰측 기소내용
과 부씨의 선고를 라디오로 듣다. 돌아오니 노야와 수남이의 편지가 기다리
고 있다. 언제나 젊고 싱싱한 나의 노야. 밤엔 집에 노야 수남에게 편지 쓰다. 환자는 수도 없이 생겼다. 나는 바빠진다. 그것이 내 의무니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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