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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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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같은 주먹밥 한덩이를 먹으며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33)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6-15 (화) 11:28:55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33)

 

11월 25일 1975년

노야, 나는 지금 이름없는 산골짜기에서 싸늘한 땅위에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다오.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야 하고 손에서 피가 나고 입술은 완전히 부르터서 고통이 심하다오. 

온몸은 완전히 전투군의 복장이오. 지금 옆에선 이동을 서두르는 동료들이 텐트를 걷고 있고 (2시간 전에 친 텐트) 한쪽에선 지휘관들이 지도를 펴놓고 한참 토의를 하고 있소

어제와 오늘 일을 다 쓸려면 10장 이상이 필요할거요. 내 이제 조금씩 쓰리다. 출발신호가 울렸소. 나는 완전히 다리를 질질 끄는 부상자가 되었소. 그래서 더욱 실감나게 상황이 느껴지오.

어제 낮 1시에 출발, 전원이 뚜껑없는 트럭에 분승 나는 3중대로 배속이 되었다. 이 차는 청평까지 가서 거기서 새벽 5시까지 행군을 하여 포천에서도

얼마 더 가는 강행군이 된다고 했다.

지금 27일,구름이 낮게 깔리고 황토길이 마치 연필로 아무렇게나 선을 그은 듯이 끊겼다 붙었다 하는 길을 해발 1000m 가까이 되는 산 위에서 몸이 날라가 버릴 것 같은 바람을 맞으며 적국의 동태를 살피는 척후병으로 나와 고와서 펴지지도 않는 손으로 노야에게 얘길하고 있다.

 

벌써 27일이라 지난 얘기는 나의 회상을 따라가야 할 것 같다. 24일 부터 오늘까지 공격이네 방어네 하고 또 판초 한 장만 뒤집어쓰고 언 땅에 그냥 누워자는 잠이라 잠이 들면 몸이 상해서 아직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다리는 다쳐 붕대를 감고 있다. 이처럼 온몸을 찢어놓는 고생을 하고 밥도 어제 오늘 겨우 얼음밥 두 덩이를 먹었을 뿐이다. 재수없이 진눈깨비도 내린다. 손이 고와 더 쓰지 못하겠다. 다시 쓰리다

24일 차를 타고 남한강을 끼고 달렸다. 끝이 없는 자동차의 행렬이 계속되었다. 머리를 들어 뒤를 돌아보면 끝없이 이은 군용트럭이 넘칠 듯이 병력을 싣고 청홍의 깃발을 펄럭이면서 달리고 있다. 남한강 물빛은 파란 보라빛 경치는 숨이 막힐 듯이 훌륭하다. 그 강 위에 정찰기가 한 대 계속 우리 뒤를따른다. 바라보면 꼭 하늘에 박혀있는 파란 종이 위의 낙서같다.

흙먼지로 숨막힐 듯한 황토길을 그렇게 달리다 보면 온몸은 먼지로 덮어 쓴다. 청평 조금 못 가서 자동차 행렬이 일제히 정지하여 보니 트럭 한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개미떼처럼 군인들이 차에 매달려 있다. 사고가 난거다.

나는 구급낭을 매고 달려가 보니 맙소사! 2명이 팔 다리 허리가 잘린 채 차밑에 깔려 즉사하고 4명이 운신을 못하는 중환자다.

나는 차 밑에 들어가 보았다. 차의 무게로 시신을 끌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병사의 소대장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동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군인이 된 나는 이러한 불행한 장면을 보고도 군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노야 손이 몹시 곱구려.


앰블런스가 급히 출동하고 부대는 목적지로 아무런 일도 없는 양 다시 출발했다. 이게 군대라는 것인 모양이다. 청평에서 내려서 여기서 부터 라면봉지에 싼 주먹밥을 한 덩이씩 먹고 48Km 행군이 강행되었다. 내 여지껏 이렇게 무서운 육체적 고통은 처음이다.

차거운 밤하늘에 죽음처럼 정밀한 행군이 12시간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불빛 한 점 없이 넘었다. 간간히 취하는 휴식에 너도 나도 싸늘한 땅 위에 뼈가 시린 추위 속에서도 코를 골고 잔다. 발은 완전히 물집이 박혀 절룩거리고 이따금 낙오하는 병사가 생기기 시작한다. 내 옆의 동료는 코피가 터졌다.

나도 한기와 졸음이 이토록 무서운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 눈 속이라도 누울 수만 있다면 잠들 것 같은 착각. 걸으면서 졸다 눈두렁에 빠지길 수십번, 그럴 땐 노야의 환상이 나를 괴롭힌다. 새벽 2시가 넘고 3시가 넘는다.


차를 타고 편히 가는 저 장교들 약간의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이 힘든 체험 속에서 번쩍이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새벽에 문을 연 가게에서 빵을 사서 허겁지겁 씹는다. 그리고 이름없는 산, 개천을 깜깜한 밤하늘아래 수도 없이 넘는다. 하나님 저 어리고 불쌍한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소서.


노야, 저들이 얼마나 장한가. 잘도 참고 마치 몇년을 저렇게 살아온 듯이 순종하고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견디는 저 어린 병사들을 나는 부끄러워서 차를 탈 수 없었다. 내 것보다 몇 배나 더 무거운 짐을 진 병사들. 내가 그들의 포와 탄약을 들어줄 수 없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는 옷을 적게 입고 와서 이 고통을 견뎌내기 힘이 든다. 입술은 부르트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잠을 이기고 한조각이라도 더 기억을 적기 위해 졸면서 걸어 가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오.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며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니 새벽 6시 30분, 먼동이 터오른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언 땅과 황량한 들판 그리고 새로운 작전명령이었다.


텐트를 치고 2시간여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산으로 향했다. 박격포 전차포 중무기로 무장한 우리는 다리를 끌며 어딘지도 모르고 동서남북이 정해지지도 않은 곳에서 이리저리 헤맨다. 나는 다친 다리때문에 뒤로 뒤로 쳐지다 완전히 낙오해 버렸다. 낙오란 것이 얼마나 쉽게 그리고 얼마나 고달프고 인간을 소외감과 고독에 떨게 하는가를 실감했다.

동서남북도 모른 채 길도 없는 산능선을 밤이 새도록 헤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태평이요 그저 새로운 세계에 직면하는 경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괴롭고 외롭긴 했으나 어떻게 되겠지 하는 믿음이었다. 그러다 어느 산 계곡에서 전화선을 설치하는 통신병들을 만나 같이 산을 헤매기 몇 시간 점심도 저녁도 완전히 굶고 하늘엔 별만 초롱초롱한 밤에 드디어 묻고 물은 뒤 3중대를 찾아 들었다.


그러나 거긴 내가 배속된 중대이나 반가이 맞아주는 이도 따뜻한 마실 것도 없는 야산이었다. 거기에 설치해 논 텐트 안 맨땅에 앉아서 졸기를 2시간 온몸은 부서지는 듯하고 추위와 공복으로 포근한 고향집 노야와 먹는 따뜻한 밥이 간절히 생각이 났다.


다시 새벽 2시에 작전이 시작되었고 언 손으로 물건을 정비하고 또 행군. 5시경 얼음덩이같은 주먹밥 한 덩이를 배급받다. 새벽녁의 하늘은 침울하고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역시 자연의 힘이란 끝이 없이 포근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날씨가 제발 좋아야 할텐데 하늘에 기도하다. 나보다 몇배나 더 무섭게 고생하는 소총병들, 나는 다시는 괴롭다 고통스럽다는 상념을 가지지 않으리. 물론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지마는 그들은 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생활의 지혜를 닦는 것 같았다. 그 지혜란 것이 타협과 체념과 자기비하로 흐르는 것이겠지마는 나는 오히려 이 고통과 고난이란 걸

더욱 큰 시련을 위한 양식으로 삼겠다는 확신이 가슴에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상한 모든 인간의 사유의 산물, 사상과 반성을 통해서 획득된 인간의 모든 위대한 개념들은 오히려 이 자연에 노출된 인간에겐 사소한 것인 줄도 모르겠다. 기도의 효과인지 날씨가 개었다. 그러나 조금 있자니 비바람이 산마루를 뒤덮더니 드디어 우박이 때리기 시작한다. 피할 곳도 피할 상황도 아니다.

그렇게 있으며 2시간, 온몸은 완전히 동태가 되어 버리고 입도 떨어지지 않고 입술은 찢어져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떨어지는 후퇴 명령. 그러나 저 어린 병사들은 잘도 해낸다. 나는 다리가 아파 걸음이 부자유스러워 실족, 왼다리는 삐어 버렸다. 그렇게 다시 낙오해서 걷기를 수시간 오후 3시가 되어 어느 부대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또 다시 혼자 걷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만약 전쟁이 나면 실종 행방불명은 이렇게 해서 되는거겠지. 어떤 이는 사망 혹은 포로 그렇게 되겠지. 누가 혹 보지않나싶어 허겁지겁 건빵을 입에 줏어 넣는다


다시 부모님과 사랑하는 이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숭고한가를 실감했다. 그렇게 내를 건느고 산을 건너 5-6시간을 걷다가 어느 부대에 도착. 그곳은 전투지원 중대로 내가 있던 연대에서 나온 병력이었다. 거기서 날 반가이 맞아주는 사람들은 다 전에 나의 환자들이었다. 밥을 좀 얻어먹고 얼고 주린 소이로 병이 난 나를 연대 의무중대로 보내 주겠단다.

노야, 나는 병이 나 버렸어. 떨며 열이 나는 몸을 뚜껑도 없는 찦차에 타고 지도를 보며 비상도로, 논길, 하천을 달리기를 수시간 주위의 경치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조금 가니 38선이란 팻말이 길가에 서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강을 옆으로 낀 군용도로 한쪽은 파란 강, 길 바로 옆은 수십 길 돌산의 벼랑이 담처럼 쳐져 있는 길이었다.

동굴 속으로도, 물 속으로 물보라를 튀기며 지도를 보고 또 보며 찾아 온 연대 C.P. 내가 타고 온 짚차는 지원 중대장이 직접 몬 것이었다. 앞에서 운전하는 그의 어깨의 대위 견장이 처음으로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연대에 내리니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가? 이곳은 따뜻한 난로에 텐트에 뜨거운 밥에 할 일 없어 라디오를 틀어놓고 흥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다는 소리가 괴로워 죽겠단다. 인간이란 내 익히 아는 바이지만 끝없이 한없이 안일과 편안함을 바라고 그런 끝없는 동굴로 빠져 들어가는 것.


며칠만에 처음으로 실컨 먹고 실컨 잤다. 여기서 상열이를 만나 소주를 한잔 얻어 마셨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낙오해서 산을 헤매는 병사를 수 명이나 만났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도를 보고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 잘 찾아 갔는지 걱정이 된다. 역시 사람이란 시간의 여유가 있고 약간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사람다움이 갖추어지는가 보다. 소총병들은 그들의 생활이 너무도 괴로워 그렇게 모두들 자기밖에 모르는 경향이 있다.



 

11월 2x 1975년

오늘이 며칠인지 나에게는 이제 날짜개념마저 없어져 버렸다. 연대에서 하루

를 자고 다음 날 다시 1대대를 찾아 나섰다. 얻어 탄 차에 실려 이름없는 들

길을 달려 해가 질 무렵에 이곳 C.P.에 도착했다. 많은 휴식을 취했으나 몸은 그렇게 풀리질 않는다 이곳은 맑은 개울이 흐르는 하천 부지에 본부 텐트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여기서 저녁을 얻어먹고 같이 잤다. 인간이란 이렇게 끊임없이 투쟁 속에 살아야 하는가?

전쟁, 질병, 미움, 증오는 도저히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인가? 몇 천

년을 이어온 전쟁, 방화, 살인. 이 글을 쓰다 문득 까뮈의 얘기가 생각난다.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도 죽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신의 위치에 안주시킬 때 결론적으로 결과되는 니힐리즘이라고. 그래서 인간은 태초부터 신을 부르며 절대자의 세계 속에서 살아온 건가?

인간이 이 절대초월자 속에서 그런 삶을 살 땐 이런 전쟁이 없어질까? 어쩌면

이런 야전에서 딩굴며 언 땅을 파고 짓고 허물며 아무 것이나 입에 집어 넣고 싸우고 하는 것 그 원동력이야말로 인간의 생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열려진 자연에 자신을 노출시킬 땐 새로운 생활의

의욕과 자신이 생긴다. 나중에 노야와 같이 살 땐 자주 자주 이런 들판에서 날

것인 채로 살아가는 생활을 하리라. 이런 곳에서 견딘다면 다른 곳에서

의 생활은 누워 떡먹기. 이 일기장도 이 장이 마지막이다

 

11월 28일 1975년

1대대와 합류해서 거기서 하루를 잤다. 오늘이 모든 작전이 종료되는 날이다. 이곳 이름도 없는 하천 지역으로 다시 철수해서 논 위에 텐트를 쳤다. 이곳은

전 연대 병력이 다 머무는 곳이라 넓은 지역이다. 다리를 절며 이곳에서 고참놈들의 심부름을 하다. 저녁에 상열이를 만나 얘기를 하다가 최준위를 만

났다.

이곳에 오는 도중 또 차량 사고가 났다. 트럭과 버스가 충돌하여 버스는 대

파되고 민간인이 하나 다쳤다. 저 곤혹스러워 하는 운전수. 밤 10시가 되어 산으로 퍼져있던 전 연대 병력 천여명이 돌아와 고함을 지르고 짚섶에다 불

을 놓는다. 찬 하늘아래 저 광경이 야릇한 정감을 불러 일으키다.

후라쉬로 비쳐보면 텐트에 모포에 그리고 판쵸에 하얀 성에가 돌돌 돋아있다. 거기서 추위에 떨며 잠들다 2시경 응급환자가 생겨 중대로 데려다 주고 와

자다. 이제 날이 새면 200 Km 의 대행군이 시작된다. 둘아오는 길은 배낭, 장

비는 차로 돌려보내고 판쵸에 모포를 한 장 싸서 어께에 둘러 맨 꼭 영화에서

나 보는 중공군같은 모습으로 행군이 시작된다. 아픈 다리를 끌고 나는 걸으

리라.

돌아오는 길은 다른 병사들보다 오히려 내 짐이 더 무겁다. 구급낭을 매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는 차로 돌아가고 나머지만 걷는다. 아, 이제 먼동이

터오려고 한다

 

11월 29일 1975년

드디어 해가 떴다. 그리고 논과 잡초 잎마다 비늘 끝처럼 돋은 서리 결정체

가 꼭 할아버지 수염처럼 하얗고 정결하다. 모두들 나의 다리를 걱정해서 차

에 타라고 하나 나는 단호히 거절한다. 그들은 오히려 내가 걸어주길 바라

는 눈치다. 그래야 자기들이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내 사랑 노야의 명예와 나의 인내와 체력을 시험대로 올려 놓아야

겠다는 일념에 나는 이 먼 길을 도보로 나섰다. 이곳은 포천에서 100 Km가

더 들어간 곳이다. 이제 대신까지 걸어야 한다. 마을을 지나고 들을 가로 지

르며 다리를 건넜다. 저 평화롭게 누운 마을들 눈동자가 까만 저 시골 소년.

앞 사람의 발 뒷꿈치만 보며 상념에 사로잡혀 걷는다.

이름없는 낯선 땅, 전쟁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 그

리고 자신도 죽일 수 있는 인간이란 것, 인류를 구하고 인간조건을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오히려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인간, 난 칼라이예프의 침묵을 이해할 것 같다. ㅡ

헤어날 수 없는 모순과 당착 속에서 결국은 자신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 그

는 러시아의 테러리스트였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 침묵했다. 어떤 변명도

자기 변호도 하지않는 그의 그 음울한 침묵. 그는 자신을 죽음 앞에 내던지

므로써 오히려 니힐을 초월해서 새로운 삶 속에 자신을 투사한 것이다

수없이 나의 뇌리에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햇살 앞에 사라져버리는 적을 수

없는 상념들 그리고 앞서 가는 사람의 단조롭고 규칙적인 군화소리. 왼쪽 다

리의 힘줄이 댕겨 견디기 힘든 고통. 그러나 계속 다리를 끌고 간다. 나의

이 강인한 다리, 이 건장한 육체를 가진 나를 사랑할 노야, 나의 노야를 위

해서도 나는 결코 나약해서는 안된다.

벌써 많은 사람이 낙오했다. 다시 계속되는 상념. 인간의 존엄을 위해 인간

을 죽이는 세계, 세계사란 것 그래서 누구의 말대로 역사라는 것 이념이란

것은 궁극에 있어 결코 절대가 될 수 없고 결국은 당착에 빠지는 오류를 내

재하고 있는 것인가. 실존과 초월 사이에서 소멸하는 존재로서의 세계여!

다리를 끌며 끌며 이 행군이 언제 끝이 나려나 참고 견디며 걷기를 5시간여

오직 노야에게 강인한 다리와 육체를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일념이 이겼

음인가 갈수록 발이 가벼워지고 다리도 풀린다. 그러나 발의 물집은 이제

손바닥만해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갑고 쓰리다. 이제 저 산만 넘으면

청평이다.

잠깐씩 휴식을 취할 때마다 보물처럼 끄집어내어 펴는 이 일기장, 그것은

나의 소중한 즐거움이다. 청평을 조금 못 미쳐 서동현 중대장이 앰블란스를

세우며 타라고 한다. 차에는 이미 낙오병으로 꽉 찼다. 차를 얻어 타고 청평

댐을 건느고 다시 황톳길을 달리기 수십분, 나는 운신을 못할 정도로 지친

환자 11명을 인계받아 차에서 내렸다.

캄캄한 밤이다. 도저히 걷지 못하는 환자들, 나는 지나가는 버스를 정지시켜 무조건 그들을 올라타게 하고 다시 달려 상납이라는 마을로 왔다. 거기서 우리는 저녁밥을 먹었다. 버스에 탄 시골 사람들은 우리를 퍽이나 연민어린 표정으로 보며 따뜻한 정을 베풀어 주어서 감사했다. 싸늘한 들판 개울가 취사장마다 타는 모닥불,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보는 그 불들은 도저히 애수어린 정감을 먹음치 않고는 바라볼 수가 없다.

어느 민가에서 얻어온 김치, 저 따뜻한 주민들의 마음의 선물. 그들은 우리

들에게 무엇이든지 줄려고 한다. 도시에선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

다. 모두들 허기지고 지친 다리를 끌고 엄마 품처럼 찾아드는 이곳. 모두가 모닥불을 보고 함성을 지른다. 길 어귀에서 속속 도착하는 병사들을 앉아서

보고 있으려니 왠지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저들은 오늘 여기서 쉬게 된다. 환자들에게 일일이 밥을 얻어 먹이질 못해서 아쉬웠다. 나는 1대대 의무대 동료 둘이와 민가에서 잘려고 방을 찾아 나섰

다. 대부분 병사는 이곳으로 나온 지 1주일인 오늘 처음으로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게 된다. 이곳 국민학교 교실이나 민가를 찾다가 주막 집을 찾아

들게 되었다. 주모 아줌씨는 눈이 꼭 두꺼비같이 생겼고 성격이 괄괄하고 재

미있는 분이었는데 벌써 술이 취해 있었다. 이 동네 청년들의 따귀를 때리며

싸운다. 그러나 우리들은 반가이 맞아주며 술대접을 한다.

이곳으로 오는 버스의 차장은 우리들에게서 자기 오빠를, 주모는 자기 아들을, 그리고 어린것들은 자기 형 또는 삼촌의 모습을 발견하는 모양이다. 아마 입이 부르트고 피곤에 지친 군인들을 노야가 만나게 되면 이 못난 情人을 생각하겠지. 그 주모는 술을 주며 훌쩍훌쩍 운다. 노래를 했다. 즐거운 밤이었다. 거기서 밤늦게 술을 마시고 만취하여 따뜻한 방에서 자는 밤, 마치 그리운 엄마의 품으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에 밤새도록 꿈만 꾸었다.

노야! 이때부터 옛날 나의 뱃짱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날 그곳에서 자고 아침밥을 대접받고 10시가 넘어서 2명을 끌고 나왔다. 병력은 새벽 10시에 강행군을 하기 시작했지만 대강의 방향을 머리로 짐작하고 겁먹은 고참들을 데리고 버스에 무조건 올라타고 달리기를 2시간 드디어 유명산이란 계곡에서 본대를 만났다. 연대병력이란 2000명이 조금 넘는다. 그들이 길 옆으로 늘어서서 걷는 모습,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잘 다

듬어진 정원수를 길가에 죽 심어놓은 것 같다.

다시 걷기를 6시간 중간에 대대장을 놀려먹고 (아무 산길이나 지름길을 타고 내려가다 대대장을 만나면 수색나왔다고 사기치고) 양평을 넘어서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양평을 지나 불곡리에 다달아선 완전히 해가 떨어져 버렸다. 거기서 쫄병 한놈을 데리고 뒤로 낙오해서 아무 트럭이나 잡아탔다. 그리고 차 안에 누워서 2000 여명의 군인들 속을 빠져 탈출. 길가에 늘어 선 행렬 사이를 트럭에 누워서 빠져 올 때 스릴은 만점이었다.

트럭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하늘엔 수없이 박힌 별과 은하수의 물결이 길게 흐르고 있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가로수의 가지들이 뭉게구름같이 뒤로뒤로 쳐진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하늘이다. 딴 병력이 도착하려면 아직 3시간이 있어야 한다. 배가 고프고 해서 최보좌관 집을 찾아가 천원을 꾸어 저녁을 사먹고 이글을 쓴다.

그날 밥을 먹고 따뜻한 방에 누웠다. 10시 가까이 되어 이곳 대신에 도착하는 행렬과 합세하여 돌아왔다. 그래도 이곳 막사는 고향집과 같이 마음이 편하다. 언젠가 본 형님의 옥중일기의 한 구절에는 전쟁과 감방의 비탄을 맛본 자만이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노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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