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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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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당신에게! 30년만에 쓰는 편지(下)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06-02 (화) 11:27:35

 

3, 신학기라 새로 입학한 여학생들과 새 동료들이 실어 온

봄바람으로 마음이 좀 가벼워 지더군요. 꽃샘바람이 불고

있지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운동장 조회를 한다고 서 있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당신이 저를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을 하였

지요, "당신, 이제 잘 가, ? 나는 산 사람이니 산 사람하고

살아야 되잖아, 그지?" 당신도 듣고 기억하고 있지요?

 

현승효를 본 적도 없는 새로 부임해 온 배영란선생과 김춘선

음악선생은 오자마자 저의 얘기를 들은 후 서로 노선생에게

잘 해요했다 합니다. 털털하면서도 남의 마음을 예리하게 잘

짚어내는 배영란은 매일 퇴근 후 저에게 밥 사 멕인다고 끌고

가서는 음선생도 불러내고 월급을 몽땅 쓰다가 아예 제가 널부

러져 누워있는 방으로 짐을 다 갖고 쳐들어 와서는 콩나물무침

이 먹고 싶니 미역국이 먹고싶니 하며 저보고 밥해 내라고 하여

퍼져 누워 있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루는 운동장에서 학반 배구대회를 앞두고 아이들과 배구

연습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해가 너울너울 지는 것을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치는 공이 성에 안 차다가

마침 지나가는 음악선생을 보고는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껄껄 웃으며 웃도리를 벗어 부치고 파인 볼! 해가며 공을 탕탕

쳐 올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습니다.

 

 

얼마 후 이 남자가 ", 노선생하고 결혼하고 싶어" 그러길래 결혼을

해버리고 딸 둘을 낳아 같이 키우고 살게 되었습니다. 저의 딸 유리

유록과 제가 져야 할 삶의 무게로 당신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아주 다 잊을 수야 있겠습니까. 한번씩 남 몰래

절 위해 쓴 당신의 일기를 꺼내 읽으면 바로 앞에 앉아있는 듯한

생생한 당신의 모습과 사람의 가슴을 헤집는 듯한 노야를 부르는

연가에 미칠 것 같아 몸이 떨리며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그런 후 치밀어 오르는 분노,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 저 너머로 뛰어넘으려는 초인적인 투지를 가진

당신을 기어코 쓰러뜨린 모든 폭력을 향한 분노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아플 때나 속이 많이 상할 때에는 당신 생각에 서러워 울다가

덤벼라, 나는 현승효가 죽도록 사랑하는 노야니라!” 하면

당당해지고 그 어떤 어려움도 겁나지 않아 점점 이 일기는

제가 죽을 때까지 붙들고 살 경전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음악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사정하여 뉴욕으로 이민와서

87년부터 퀸즈공립도서관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한국인 사서가 없었기에 한국책 구입은 저의 몫이어서

좋은 책을 찾아서 사는 일에 열정을 다 쏟고 밤늦도록 책을

읽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쓴 유인물에 오욕의 역사라는 말을 흘낏

본 적이 있었는데 역사책을 읽으며 오욕의 역사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까운 사람들이 너무나 어이없게도 죽임을 당하여 기가

막히고 분하여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어떨 때는 나도 모르게

"다 죽여라 다 죽여 이놈들아!" 막 소리를 지르고 싶었고

이들 모두가 현승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현승효를

잃고 수많은 현승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반전평화시위 같은 것이 있을 때는 당신을

만나러 갈 때처럼 만사를 제끼고 달려가고, 일본군성노예피해자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가 뉴욕에 오셔서

그 힘든 증언을 하신 황금주님을 뵙고 나서는 뉴욕정신대대책협의회를

만드셔서 이리 뛰고 저리 뛰시던 김영호 목사님을 도와서 활동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책을 고르고 읽는 재미로 도서관 일이 보람 있고 좋았

지만 하루 종일 무거운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육체노동

으로 자꾸 목이 쑤시고 머리가 아프더니 9711월에 몸

에 마비가 와서 출근정지를 당하고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목디스크라 하는군요.

 

, 내 인생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리 억울할 것도 없는

저의 한 생이지만 그렇게 죽은 당신을 생각하면 미치겠고

당신의 글을 읽을 때는 한 자 한 자 심장을 멎게 하고 가슴을

울리는 이 훌륭한 글을 나 혼자만 보다가 죽을 수 없다는 생

각이 밤낮으로 뒤흔들었습니다.

 

일기문 말고도 정리하다가 다 못하고 결혼하면서 신천동에 드린

철학책 원고가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모르겠고 이렇게

몸이 다 망가져 누워 있으니 초조하여 죽을 것 같았습니다.

 

복직을 위한 재판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성의 없는 변호사

때문에 암담하고 직장 쪽 막강한 보험회사의 위협에 무서

웠지만 정신을 채려 나는 현승효의 영원한 연인이라는 자

신감과 현승효의 배짱으로 재판을 끌고 가 3년이 넘는 지리하고

고통스런 싸움에 승리하여 육체적 노동이 한결 덜한

좋은 자리로 복직도 하였습니다. 당신의 승리였습니다.

 

남편은 아픈 나를 안타까워하고 극진히 보살펴주었습니다.

전신을 공격하는 통증이 기적처럼 조금씩 좋아지자,

일기문과 편지문을 묶어 책을 내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어느덧 좋은 동지가 된 남편에게 먼저 이야기 하니 내방에

처음 왔을 때 방에 도배를 해놓은 당신의 사진을 한참 쳐다

보며 이 친구는 왜 죽어서 노선생 속을 썩여요?” 하더니,

이번에도 당신 건강이나 챙기면서 해하고 노트북을

새로 사 와서 한글을 깔아주었습니다.

 

손가락은 겨우 ㄱ ㄴ ㄷ 더듬거리고 있는데 깨알같은 글씨는

빡빡하고 휴! 하고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사무실에 같이

일하는 김선화언니께서, “내가 쳐주께하면서 신들리듯

손가락을 놀리며 쳐 주셨습니다.

 

이 언니도 유신 시절 크리스찬아카데미사건으로 곤욕을 치룬

적이 있어 선뜻 쳐주시겠다고 하셨나 봅니다. 선화언니가 마지막

일기장 수첩인 77620일부터 27일까지를 쳐주셔서 저는

열심히 한글타자를 연습해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봄부터 치기 시작했나? 남편은 내가 너무 매달려

있으면 병 날라 쉬엄쉬엄 해하며 밥 갖다 주고, 커피 갖다주고

드라마 보고 늘어져 있으면 놀 거 다 놀고 언제 책 만들거야?”

하면서 텔레비전을 톡 끄면서 떠밀기도 하였습니다.

 

당신이 죽었을 때 몸부림을 치며 울다가 시작된 두통,

딱 죽었으면 싶던 극심한 두통이 공개적으로 당신 책을

낸다 하고부터 차츰차츰 가벼워 졌습니다. 맨날 찡그려

붙이고 아프다 하던 소리가 뚝 그쳤다며 남편은 신기해

신기해! 노래를 합니다.

 

일기문을 치는 동안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2004

125일부터 31일까지, 1000 명이 넘는 분들이 <국가

보안법> 철폐를 위해 칼바람이 부는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벌인 단식천막농성이었습니다. 당신도 늘 국보법은

꼭 없애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식하다 병원에 실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뉴욕에 앉아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 평생 자기의견을 말하는 일이 없었던 남편과

한겨레 토론마당네티즌들이 벌인 릴레이단식연대에 동참하여 이틀 굶었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연대하는 기쁨을 알게 해 준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제 노트북이 생기고부터 시작된 한토마와 오마이의 네티즌

들과 나눈 교감과 연대감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당신의 일기도 이분들께 맨 먼저 보여드렸더니, "오랜 세월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실컨 풀어 놓으십시오" 하시며 저에게는

위로를, "현승효님 같은 분때문에 이만큼이나마 민주사회가

되었습니다" 당신에게는 고마움을 표하시고 당신의 정신을

이어받아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힘을 주셔서

이 책을 내는 결정적인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제가 올린 당신의 글을 블러그에 퍼다 나르시며

'현승효'를 알린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서태영 기자님은

주요 사안에 대한 글을 매체에 쓰시면서 당신의 이름 석자

현승효를 여러 번 언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2006912일 새벽 3, 작업은 끝나고 옆에서

자다가 말다가 하며 대기하고 있던 남편이 구워 준 시디 석 장을

들고 인천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신인식 안재구 두 분 선생님의

노력으로 2005년부터 당신의 영정도 올려진 범국민추모연대

민주노동통일열사추모제에 날을 맞추어 갔습니다

당신이 가신 지 30년이 되는 2007630일에는 당신의

영전에 책을 바치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서울에 들고 나간 원고는 원희 언니가 염무웅 선생님께 읽어

줍시사 청을 드려 염선생님이 <윤상원평전>을 쓴 윤동수 작가를

소개해 주셔서 인연이 닿았습니다. 윤작가님이 보시고는

<현승효의 삶과 노야와의 사랑>을 소설로 그려내신다고 얼마나

발품을 파시며 현승효에 관해 취재를 하셨던지 이제는 이 세상

에서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윤작가님이 생생한

표정으로 들려주시는 당신의 일화는 무궁무진, 그 하나 하나가 새롭지

않고 눈을 반짝 뜨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삶이 보이는 창> 출판사에서 당신의 책을 내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제가 얼마 전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날개달린 물고기>를 쓰신 이인휘 작가님, <경성트로이카>

쓰신 안재성 작가님, 삶창의 윤작가님과 동고동락하시는 분들의 뜨거운

관심과 도움으로 출판이 이루어 진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삶이 보이는 창> 잡지에서는 3차례에 걸쳐

현승효의 일기문과 노야의 편지문을 싣기로 했고, 3.4

호에 이미 1회분이 실린 것을 보고 몹시 흥분이 되었습

니다.

 

그리고 당신의 철학에세이 <회향에의 인간학적 모색, 자유와 투쟁의

두 원리> 원본 노트 8권도 작년 9월에 형님들과 함께 찾아내어

당신의 경대 후배 박영숙씨에게 맡기고 왔더니 영숙씨가 헌신적으로

추진하여 벌써 출판을 위해 1차 정리가 끝났다 하셔서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을 맛보았습니다.

 

먼저 오정희씨가 알아먹기 힘든 깨알보다 더 작은 글자로 쓴

방대한 양의 원고를 두달도 안 되어 컴퓨터에 다 쳐넣으셨다

는 전갈을 받았을 때는 기쁘기보다 얼마나 진이 빠지셨을까

뼈가 오그라드는 둣 하였습니다. 저야 끔찍했던 당신의 사랑

을 생각하고 할 수 있었지만 정희씨는 무슨 힘으로 그렇게

하셨을꼬 불가사의입니다.

 

이것을 이건재 삼진문화인쇄소 사장님 부부께서는 잘 정리해

주실 분을 찾느라 고심하시다가 이길종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합니다. 이길종 선생님은 원고를 보시고 26, 27세 그 나이에

이런 걸 썼다니 너무 놀랍다 하시고 당신의 요절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셨습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괴로워하다가 또 희열에 떨다가 쓰신 것을 아무도

안 알아 주어도 나혼자 죽을 때까지 읽고 살겠다 했지만 그 말씀을 들으니

기쁜 마음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1차 정리를 끝내셨다 하시고 2차 정리는 당신의 큰형께서 해주신다 하셨으니 당신은 이제야 마음을 놓으셨겠습니다..

 

"나에게 희망이 하나 있다면 나이 서른 전에 책 한권을 내는

일이다" 하고 이 책이 나올려면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거요

수없이 말씀하시더니 꿈만 같게도 이 분들이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군요.

 

책들이 나오면 제 생애에 이보다 더 큰 감격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 마음이 많이 편안해 졌으니 당신 마음도 좀 편안해

졌겠지요. 당신의 색신은 볼 수 없지만 당신의 사랑은 지금도

살아 있어 당신으로 인해 인품의 향기가 진하신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크나 큰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도 강열한 불꽃으로 타고 있습니다.


사본 -현승효노천희.jpg


   

20076월 뉴욕에서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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