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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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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26)

나의 노야, 네가 그립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4-01 (목) 10:49:19

나의 노야, 네가 그립다

 

 

107,,1975

새벽에 비상이 걸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욕먹고 정신없고 그리고 다시 원위치시키고 그것이 오늘 오전의 일과였다. 오후에는 검열을 받는다고 시간이 많이 비었다.

 

무언가 배우고 싶은 욕망에 오늘은 이발을 배웠다. 난생 처음으로 면도칼로 내 수염을 밀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수염도 밀어 주었다. 재미있다. 그리고 환자들 치료 좀 해주고 독서도 좀 하고 그런대로 유감이 없는 하루였다. 무언가 나의 정신적 빈곤을 채워 넣을 수 있었는 하루란 이렇게 개운한 것을! 물론 눈치를 보며 읽는 책이니 그렇게 보는 양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나를 기쁘게 한다.

강우만 병장이 시계를 분실하여 중대 분위기가 찜찜하다. 밤에는 집과 내 사랑에게 편질 쓰다.

오늘 읽은 것 중에 권력의 유지란 생산조건 자체에 의해서 규정되어지는 한계를 지닌다는 말, 공산주의 국가 고사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역시 까뮈는 날카롭다. 그에 의하면 거주의 조건이 무상으로 주어질 때 국가는 없어진다는 예를 들며 이것이 성립될 때까지는 보다 강력한 정권의 유보 타당성을 갖는 것이라고 그들의 정체를 설명한다. 재미있는 말이다.

지금은 새벽 4, 또 몇시간만 있으면 하루가 시작되고 그리운 이를 만날 날이 하루 당겨진다. 안녕 나의 천사여 나의 생명이여.

108,,1975

C.M.(벙커구축 작업)을 갔던 재미없는 친구들이 돌아오자마자 중대 분위기는 더러워지기 시작한다. 오늘 검열이 끝나는 날인데 드디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ONE STAR가 지나가는데 졸병들이 얼어붙어 우물쭈물하다 경례를 못해 버려서 난리가 났다. 그중에서 제일 고참인 권상병이 영창을 갔다. 군대란 정말 철저한 계급사회다.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생각하게 한 하루였다.

오후엔 배구 축구로 사역을 해서 온몸이 춥고 욱씬거린다. 따뜻한 방에서 푹 자고 싶다. 노야가 그리워지고 보고싶다. 편지도 없다. 무정한 사람. 나는 이 고달픈 사병생활 속에서 나를 구현해야만 한다. 그리고 본전을 찾아야 한다. 노야를 위해서도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더욱 강해지고 강인해져야 한다.

그립다 나의 노야. 지금 내 손엔 한개피 화랑담배가 필터까지 타고 있다. 왠지 머리가 멍해지고 피곤에 지친다. 나의 노야 네가 그립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토록 애절하고 안타까울 줄이야..

109,,1975

한글날이라 모처럼 휴일이다. 적당히 쉰다는 것은 항상 기분이 좋은 일이다. 오늘은 독서도 꽤 많이 했다. 反抗革命의 차이를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서 기뻣다.

 

反抗이란 "' 속에서의 "no"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그것은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에 인간이 굴복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인간성의 용인을 의미하며 전체성이 강요하는 비인간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 악 위선 기만 불행을 용납한다는 것은 革命이 강요하는 하나의 비극이며 궁극적으로 Nihilism의 비극이다. 反抗은 존재의 부분에 대해서만 거부하는 것이기에 그 No’는 부분적이며 그 존재에 의해 앙양되는 것을 가지고 거부한다. 그 앙양되는 존재의 부분이 집요하면 집요할수록 거부는 전체에로 전진되며 궁극에는 전부의 부정 나아가 자기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전체성은 통일이 아니다. 혁명은 전체성을 강요한다. 그리고 혁명은 인간성의 전적인 순응성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현현하는 과정에서 볼 때 결코 하나의 가치가 될 수 없다. 역사란 가치 그 자체도 아니고 그 속에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오히려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에 불과하다.

언제부터인가 무언가 나의 정신적 소산을 이 종이에다 옮겨 적을려면 손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기에 힘이 들고 나중에는 짜증스러워진다. 이렇게 쓰다가 중도에 그치고 만다. 지금은 추위에 떨며 보초를 서고 있다. 얼핏 거울에 비쳐보는 내 모습, 머리엔 귀를 길게 덮고 있는 방한모 위엔 산타크로스 상의같은 야전잠바 어깨엔 소총. 마치 영화에서 보는 19세기 비행기 조종사같다. 아니면 중공군 같기도 해서 우습다.

 

노얀 왜 편지를 안 쓰나. 얼마나 기다리고 나를 애닯게 만드는데. 혹시 또 아픈건 아닌지. 오늘 4번째 편질 썼다. 내일은 소식이 올테지. 별일 없이 그저 무심해서 소식이 늦어지면 좋겠다. 그리고 별일 없겠지.

 

1010,,1975

늦게야 잠자리에 들고 새 아침을 맞았다. 왠지 밤에 쥐가 나서 고통스러웠다. 다리가 몹시 당긴다. 며칠 전에 축구를 한 것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새벽에 일어나면 몹시 춥고 따뜻한 방이 그리워진다, 일어나자 마자 대신면에 슬레이트를 싣고 다녀 오란다. 뚜껑없는 트럭을 타고 대신으로 달렸다. 몹시 추웠으나 외출을 한다는 것은 언제 어느 때고 즐거운 일이다. 손이 몹시 시러웠다. 슬레이트를 운반하고 나니 손이 곱아 호호 불었다.

다녀오고 나니 싸늘한 짬밥이 한그릇 덩그라니 기다리고 있다. 뜨거운 것이 마시고 싶어 살짝이 탈출해서 라면을 사왔다. 그리고 동료들의 눈칠 보며 그놈을 끓이고 있다.

문득 물밀듯이 밀려오는 노야의 환상에 코 끝이 찡해졌다. 왜 편지 한장이 없나. 물론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과 고생은 고통과 고생이라 할 것도 없다. 잘생긴 청년으로서 용기와 신념과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항상 절대가치를 추구한다고 자부해온 한 젊은 지성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무어 후회와 안타까움이 있겠느냐마는 독재와 권력으로 하여금 확신을 심게 해주는 대다수 인간들의 저 순응성, 그런 대중은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어있는 것도 아닌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들을 생각할 때 외로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차라리 나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노야가 있다. 한 사람을 이토록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자기가 再生한다는 의미이다. 보고싶다. 그리고 옆에서 네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 작은 나의 참새. 사랑이 가슴속에 있을 때 나의 가슴은 탄다. 그리고 절망하지 않고 끝없이 강열한 생명력 속에 나를 몰아 넣을 수 있다. 나의 사랑 나의 천사 나의 생명. 왠지 오늘은 더욱 네가 보고싶다. 언제나 널 기다리게 하고 아프게 하고 애닳게만 해온 못난 나였다. 노야 보고싶다.

지금은 오후 2-3시경, 지난 여름 노야가 왔을 때 밤하늘을 보면서 개울물 소리를 듣던 그 개울 옆에서 나는 볏단을 나르면서 잠시 앉아 이 글을 쓴다. 이곳 사람은 땅콩 농사를 많이 짓는다. 그들이 훑고 버린 땅콩 포기에 붙어있는 땅콩을 줏어 먹으며(물론 흙이 묻은 생콩이다) 노야를 바라보며 하늘을 본다. 멀리 달려간 하늘엔 구름이 낮게 깔려있다. 그리고 먼 곳에서 그것은 땅과 만나고 있다. 저 하늘에 원을 그리며 오는 비행기들, 내 가슴은 지금 노얄 만나고 있다.

땅콩을 많이 주워 그대로 땅에 놓고 굽는다. 고소하다. 너도 나도 많이 줏어 먹으려고 야단이다. 모두가 입이 새까맣다.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지내고 돌아왔다. 저녁엔 아주 졸열한 놈에게 쥐어박히다. 별 이유가 있겠느냐마는 참느라고 혼이 났다. 죽여 버릴까 했다. 어린 놈이라 용서를 해줬으나 괘씸하다.

밤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보초를 서려고 나오니 몹시 떨린다. 그놈의 자는 모습을 위에서 한참 노려봤다. 속에서 치미는 울분으로 총으로 얼굴을 콱 찢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인내다. 나는 견딜 것이다. 그리고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적 희열을 누릴 것이다. 나는 그들로부터 멀리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야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보고싶다.

오늘은 쌍십절 북한 노동당 창립일이다. 군에서 쓸데없는 엄포를 한다. 그리고 TV에서 김옥선 의원의 제명 소식을 듣다. 과도한 안보의식을 이용하여 정치적 독재를 더욱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반항이란 궁극적으로 우리의 바깥에 존재하는 원리를 위해 구현하기 위해 사느냐 죽는냐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위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기에 거기엔 충분한 논리적 귀결과 생명의 철학이 있다. 김옥선 의원에게 건투를 보낸다.

진리와 생명의 외경이란 것은 언제고 존재하는 것이다. 반항이란 문학 내지는 예술적 미학에 있어서 재현된다. 반항이란 현실을 전면적 거부,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그 속에 통일을 구한다고 하는 한계에 있어서만 즉, 닫혀진 세계 하나의 전형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조각을 봐라. 그 덧없고 변형되고 변화무쌍한 인간적인 모습을 그 찰라에서 포착하며 영원성으로 묶어 버린다.

그것이 양식이다.

 

 

1011,,1975

아침 6시에 기상을 하면 해가 무척 짧아졌음을 실감한다. 어둑어둑하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깨어난 남한강에 서린 아침 안개를 내려다 보며 고향 예배를 한다. 그리고 점호를 취하고 노래를 한다. 그것이 끝나면 상의를 완전히 벗고 맑고 차가운 아침 하늘을 가르며 구보를 나간다. 출발을 할 땐 오들오들 떨리고 팔을 깍지끼어 가지만 달리다 보면 온몸이 훈훈해 지고 가슴이 상쾌해진다. 그리고 형편없는 아침밥을 먹으면 새 아침이 시작된다.

노야도 이와 비슷한 매일을 보내고 있겠지. 그녀의 이침 발걸음이 가뿐하고 밝기를 매일 기도한다. 너를 기다리는 즐거움, 시간이 가면 널 만날 수 있다는 가슴에 타는 환희가 나를 새처럼 하늘을 날게 한다. 그리고 틈을 내어 책을 읽는다.

 

오늘 혼자 치료실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청소를 않고 달아나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내 쌓여진 습관이 아직까지도 계속되는가 싶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청소를 잘하지 못한다.

독서는 정말 행복한 순간을 나에게 준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역사의 광경, 새로운 인식의 깊이와 가슴이 터지는 기쁨을 심어다 준다.

 

역사는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볼 때 결코 절대적 진리도 아니고 그 속에 가치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의 의미, 그리고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절대적 실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순진하고 순수한 인간적 존재의 발견 그것의 하나의 보기로 반항이란 글을 읽었다.

여러가지 넘실되는 想念 속에서 오늘 하루를 보낸다. 어느덧 산마루에 해가 걸리고 도저히 사람의 솜씨론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저 분홍의 여명. 하늘에 비단결처럼 펼쳐진 저 분홍의 물결을 봐라. 나는 언제부터인가 저런 황혼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가지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그 여명은 어둠으로 퇴색된다.

그리고 노얄 그려본다. 산으로 넘어가는 저녁 해 속에서 노야가 방긋 웃고 있다. 그리고 인간적 숙명, 한계, 인간의 존재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스스로의 침묵 속에서 모든 얘길 감추고 있는 현인들의 표정을 읽는다. 그것은 말할 수도 쓸 수도 없다. 그것은 느끼는 것이다. 살며시 가슴속에 지피는 불씨처럼 그것은 느껴지는 것이다.

 

노야를 생각한다. 나의 영혼과 나의 생명 속에서 만져지는 노야의 영령, 그것은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가슴속에서 가만히 속삭여 오는 그런 모습이다. 멀리서 흔들리는 가지를 보며 그 바람의 소리 그 모습과 그 흔들리는 광경에서 가슴으로 듣는다. 노야 나의 작은 새야, 며칠 후면 널 만날 수 있다.

나도 그 누군가처럼 역사가 싫다. 절대정의를 위해서 일체의 자유를 유보한다고 하나 그것은 말이 안된다. 양자는 새의 날개처럼 평형되어 날아가야 한다. 만약 정의가 완전히 실현되었을 때는 자유를 주장할 이유조차 없어진다. 유보된 자유는 묵살된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가 현현하는 경험적 사실이다.

反抗은 생명의 운동 그 자체이며 삶을 거절하지 않으면 반항을 부정할 수 없음이 이에 의해 증명된다.” 멋진 말이다. 어떻든 반항이란 일체의 신격화를 거절하고 만인의 투쟁과 운명을 같이 한다. 결론적으로 반항이란 全的 부정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 노야의 편지를 다시 읽는다. 16일날을 기다린다. 나의 파랑새가 달려온다. 내 생명이 다하도록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내님

힘든 일주일이었던만큼 휴일은 무척 안락합니다. 당신도 그렇겠지요. 그날 무사히 귀대하셨는지요. 당신을 쫄쫄 따라가고 싶은 마음 참고 돌아와서 계속 세 시간을 수업했지만 마음이 아주 밝고 힘이 솟는 듯 했어요.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정거장에서의 키스가 힘이 나게 만들었던 같아요.

 

제가 당신을 한번 더 보려고 대구로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내내 허전했을거예요. 무엇이 우리의 사랑을 해가 갈수록 더 향기롭게 빛을 내게 하는지요. 그것은 고통을 달게 받아들이고 줄겁게 이겨내는 내 님의 의지 때문인가 싶습니다.

 

당신 곁에 있으면 여왕도 부럽지 않는 풍족함을 느낍니다. 제게 주고 가신 일기장 작은 수첩에 적힌 당신이 쓴 글씨는 마치 당신의 숨결과도 같이 저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합니다. 심신이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저를 부르는 당신의 음성은 한결 같더군요. 부단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그 승리와 명예는 저에게로 돌려주니 너무 행복하여 제 가슴은 벅차 오릅니다.

 

10월 가정실습은 11일날 체육대회 마치고 16-19일 입니다. 매일 생각한 결론으로는 제가 당신에게 가야한다는 거였어요. 16일 아침 일찍 출발하겠어요. 오늘은 얻어 맞지 않았나요? 조심하세요.

1975105일 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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