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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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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24)

당신을 처음 만난 날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3-07 (일) 15:18:59

당신을 처음 만난 날

 


 

***그리운 내님

노야, 우리는 시공을 초월하였어!”

70831일 정오, 그 말을 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1970, 그때는 모두들 대망의 70년이라 그랬지요.

대망의 7079, 당신은 내가 타는 미아리행 버스에 따라 타고

쫒아 와 우리는 만나기 시작했지요. 만나고 안 만나고 내 마음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다고 자신을 했는데 오래 만나오던 사람처럼 너무 편하고 재미있어 어 이러면 안되는데 덜컥 겁이 났지요.

 

나는 공부도 좀 하고 인생 경험을 좀 한 뒤에 몸을 세상에 바친다는 장래 계획한 일도 있고 어른들에게 약속한 일이 있어 내가 깊게 사랑하기 전에 선을 긋고 못을 박어 둔다고 우리 친구해요하니까 당신은 비실비실 웃으며 내가 뭐 친구가 아쉬운 놈이라서 여식아와 친구하게 생겼습니까?” 하더니 그래도 그 말을 자꾸 하니까 하루는 정색을 싹 하고는 암놈 숫놈 만나 친구 좋아하시네팍 내뱉는데 엄마야 얼굴이 화끈거려 다시는 그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다가 무슨 심한 말을 또 들을려고..

 

당신은 홍길동같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더니 삼일인가 코꼬배기도 안 보여 내가 안절부절 되었습니다. 대성학원, 수업을 하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당신이 강의 듣는 학원으로 갔습니다. 맨날 날 찾아 왔기에 당신이 어느 학원 몇시에 있는지도 알 필요가 없어서 묻지도 않았는데 얼핏 듣기에 상아탑이라 하여 그냥 가 봤습니다.

 

학원 바로 앞까지 갔다가 12시에 수업이 마치면 학생들이 왁짝 나올꺼야

저 쯤에 서 있어야지 하고 막 돌아섰는데 오 하나님! 저어기 내 눈 앞에서 이마가 반듯하게 생긴 젊은 남자 하나가 장난기가 가득하게 눈은 감고 환하게 웃으며 팔을 있는대로 흔들며 내게로 오고 있지 않겠어요?

 

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좀 있으니 그제서야 기환 씨도 옆에 있는게 보이더군요. 머리가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당신이 끄는대로 가까운 빵집으로 들어 갔지요.

 

(며칠 전에 대구에서 올라온 후배라며 기환씨를 저에게 보여주고 우리 셋은 사직공원에 같이 갔습니다. 상쾌한 여름 밤, 잔디에 편안히 앉아 있는데 기환씨는 말도 없이 우리 앞에 사이다를 사다가 실무시 놓고 가더니 좀 있다가는 우유를 놓고 가고 또 조금 있다가는 담배를 사서 조용히 놓고는 옆에는 오지도 않고 저쪽에 좀 떨어져서 우리를 보고 있기만 해서 아, 남자들은 저런 식으로 마음을 써주는구나 가슴이 뭉쿨해 졌습니다.)

 

잠깐 당신이 담배 사러 간 사이에 기환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형이 갑자기 기환아 잠깐 내하고 어데 좀 가자 해서 왔심더

나는 아직도 어지러운데 기환 씨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러더군요

 

담배를 사가지고 들어오니 기환 씨가 , 나는 갑니다하고 가버리자마자

당신은 탁자 밑으로 내 손을 찾아 꼭 잡고는 저의 눈을 이윽이 들여다 보면서

노야, 우리는 時空을 초월하였어그러는데 저는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이 아득해지고……….

 

기환 씨 말은 당신이 다방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웃고 하다가 갑자기 이리로 오자해서 막 달리다싶이 왔다 하는데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날 저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몸에 있는 물기가 다 빠져 나간 것 같이 혼미해져 버렸어요.

 

다른 날은 헤어질 때 내가 칼같이 싹 돌아서서 왔는데 그날은 헤어지기 싫어 당신의 팔에 매달려 우린 걷다가 길거리에 주저 앉았다 서울거리를 밤이 늦도록 걸어 다녔지요. 돈암동에 있는 작고 아늑한 다방에 들어가 우린 떨며 키스를 하염엾이 했지요. 당신이 키스로 제 입안에 넣어 준 커피 한 모금은 얼마나 달콤하였는지! (그 다방은 아직도 그대로 있더군요. 버스를 타고 그 다방을 지나 갈 때는 정신이 아찔해지고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집에 와서 3일을 전신이 아파 끙끙 거리며 몹씨 앓았습니다. 언니는 미야의 죽음 때문에 쇼크를 받아서 병이 났다며 안쓰러워 했습니다.

 

맞아요. 내 친구 미야, 보물같은 친구를 영원히 잃은 상실감과, “우리는 시공을 초월했어하던 그 순간의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두사람 똑같이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주어 내 몸은 둑이 무너지듯 버티지 못하고 생병을 무섭게 앓았습니다.

 

당신을 두번째 만난 날 내 친구 미야 얘기를 했지요? 서울대 미대에 들어가 조각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을 한번 좌절하고 다시 한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원보다 더 많은 돈 많은 집 아이들이 그 학교 교수들에게 레슨을 받고 있어 돈이 없어 레슨을 못 받는 아이들은 리스트에도 올라 가지 않으니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 기운이 쭉 빠져 모든 의지를 잃은 가엾은 미야!

 

몇년을 미대 간다고 수학공부를 하지 않아 다른 원하는 학교에 가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수학공부를 제가 도와 주어도 너무 힘드니 될대로 되라 하고 수업도 안 들어오고

 

비는 얼마나 지겹도록 오던지 세종로 거리가 범람하고 우리가 잘 가던 지하다방도 물이 차고 난리였습니다. 미야 집은 작은 방들이 ㄷ자로 죽 있고 마당을 마루로 싹 깔아 버리고 그 위는 하늘이 훤히 보이는 슬레이트로 덮어버려 비가 오면 슬레이트를 때리는 소리가 요란한데

 

밤낮으로 오는 비소리에 미야는 미칠 것 같아 하였습니다. 햇볕이 쨍한 날이 그립고 불확실한 앞날에 눌려 지친 우리, 미야도 저도 무언가 새로운 것 통쾌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을 몹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수업이 끝나 내려가면 미야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것이 너무도 가슴 아프기도 하고 맥이 쭉 빠졌습니다.

 

하루는 결심하고 미야야 혼자 한 번 견디고 이겨 봐. ?” 했더니 발길을 뚝 끊고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찜찜하고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나약한 가시나에 불과한 나에게 의지하는 게 부담되다가 숨을 좀 쉴 것 같았습니다. 당신과 처음 만나고 온 뒤 나는 기분이 좀 좋아졌는데 미야는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한번 더 날 찾아 왔습니다. 빌려 간 독어사전을 돌려주러 왔다 하며 이런 저런 얘기 좀 나누다가 돌아갈 때 버스에 달랑 올라 타며, “잘 살아!” 해서 웃었습니다.

며칠 뒤 미야에게서 니가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느꼈어. 당분간 멀리 여행을 떠난다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냥 어디 여행 갔거니 하고 있는데 아, 어느 날 미야의 엄마, 언니, 동생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서 저를 찾아 와서는 미야가 집을 나가서 소식이 없다 하더군요.

 

사람을 풀어 서울의 산이란 산은 다 뒤지고 있는 중이라 합디다. 찾았다는 소식이 없어 하루는 미야 집에 들렀더니 이층 안 쓰는 방에서 미야가 지 자화상을 한장 그려놓고는 자는 듯이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는군요. 옆에는 수면제 약병이 있고요. 집을 나갔다가 모두가 밖에서 찾고 있을 동안 미야는 홀로 집안에서 …….

어릴 때부터 집안에 도는 휑한 공기, 미야가 5살때 아버지는 자유당 권력다툼의 희생양으로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 합니다.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 미국에서 비밀로 데려갔다는 말도 있다고 하고요. 늘 누가 식구들을 미행도 하고 아버지가 안 계시는 불안하고 허전한 집, 한평생 남편을 그리며 다섯 아이와 아둥바둥 사느라 지친 엄마를 지켜보는 괴로움도 너무 컸다 합니다.

 

다섯 아이 중에 미야는 꿈에도 못 잊는 그리운 남편을 제일 많이 닮았고

턱을 괴고 앉은 모습은 둘이 꼭 같다며 엄마는 그 딸에게 집착이 강하여 미야는 너무 부담스러워 일부러 엄마에게 반항하고 막말을 퍼부었다 합니디. 사상과 이념이 뭐길래 권력이 뭐길래 패배한 사람은 숨통이 끊기고 남은 가족들에게도 엄청난 고난을 줍니다. 끝내는 예술적 재능이 있고 똑똑하고 영혼이 지극히 맑은 내 친구 미야를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인생의 주요한 한 시기에 만나 한 넉달 우리는 매일 붙어 살다싶이 공부도 같이 하고 르네상스에 가서 음악도 듣고 서로 절실하게 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 털어놓고 하며 영혼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나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사랑의 환희 때문에 친구를 살피는 내 눈과 마음이 무뎌져 혼자 떠나려는 두렵기도 한 여행 계획을 알아채지 못하여 막지 못했던 죄책감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활기 찬 당신이 나타나 나는 생기가 났고 미야를 찾으면 우리 셋이 즐거운 시간을 같이 하면 되겠다, 만날 때마다 흥미진진한 얘기로 즐겁게 해주는 당신을 미야가 얼마나 재미있어 할까 가슴이 뛰었는데.. 조각을 하고 싶어 미치겠다 할 때 눈물이 글썽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미칠 것 같았습니다.

 

몸을 좀 추스리고 나니 학원에 3일이나 안 갔으니 당신이 걱정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사랑의 극치감을 맛보았으니 이제 그 사랑을 초월하고 몸은 세상에 마음은 영부께 바치기로 마음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순지가 집까지 찾아 와 좀 나가자 하더니 당신이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더군요. 당신은 몹시 걱정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을 다 하고 나니 당신은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노야, 니 좋고 내 좋으면 안 되나?”

 

하고 간절한 눈으로 쳐다 보기만 하였습니다. 니 좋고 내 좋으면 안되나? , 그 말에 내가 나를 어설프게 얽어 맨 마음은 모래성처럼 좌르르 무너지고 가슴이 탁 터지고 그래 맞다 니 좋고 내 좋으면 안되나. 아무 생각말고 그냥 좋아하자. 그래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오랫동안 화두였던 참나이고 무애(無碍)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5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여전히 멋대로이고 한심하지만 당신은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시선은 늘 멀리 있어 저는 못 견디게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 외로움이 큰 만큼 당신은 크게 변모했지요.

 

노야만이 나를 슬프게 할 수 있다했지요? 맞아요. 이제 아무도 저의 당신을 슬프게 할 수 없어요. 당신이 깨알같이 기록한 작은 수첩에 담겨있는 있는 글은 제 목숨보다 더 중히 간직하며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울며 웃다 가슴은 감동으로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저의 사랑과 하나님의 가호와 의롭고 용기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당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1975831일 당신의 노야.

 

95,,1975

나는 아무리 자신의 힘이 미약하고 슬픈 상황이더라도 그리고 모든 희망과

기대가 사그러지는 순간에도 하늘을 바라보는 심성과 용기와 보편의 진리를 확신하는 신념을 잃지 않는 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성실하며 개체의 가치와 가능성을 현현하며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가여운 사람을 나의 형제로 맞아드리고 싶다. 교활하지 않으며 가볍지 않으며 명예를 존중할 줄 알며 용기를 기진 자를 내 친구로 맞고 싶다.

지금은 새벽 4시다. 불침번을 서려고 일어났다. 고등학교 3년 교실에 내가 복교하는 꿈을 꿨다. 천연색으로 꿨다. 나는 총천연색 꿈을 아주 자주 꾼다. 색깔이 깨고 나서도 무척 선명하다. 천연색으로 꾼 꿈은 기분이 좋다.

 

그리고 지금 노얀 새근새근 자고 있겠지. 무척 고달플거야. 가엾은 나의 작은 악마. 못난 情人을 만나 고생이 한두 가지가 아니리라. 미안하다. 죄스럽다. 언젠가는 보상받을 날이 오겠지마는 당장 노얀 고생이 많다.

이렇게 자다 깨면 노야가 더욱 그리워 진다. 살짝이 노야가 자는 방문을 열

고 아무도 몰래 들어가서 곁에 눕고 싶다.

 

노야는 장하고 강인한 여자다. 정열이 넘치고 고집이 세고 집념과 의지가 강한 나의 여자다. 그래서 나는 노야를 사랑하나 보다. 나의 영원한 연인이 나약할 수 없다.

나의 생명이 결코 훌쩍 우는 못난이가 될 수는 없다. 노얀 멋쟁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천사다. 그래서 너에게만은 나의 약함을 보이고 기대고 싶어

하는 줄 모른다. 그렇다. 난 여태껏 내 상처를 너에게밖에 그 누구에게도 보

이지 않았다. 잘 자라, 나의 생명. 언젠가 나의 分身을 심을 나의 母胎.

이곳의 풍경은 재미있는 것이 무척 많다. 오늘 훈련 중 몇놈이 오줌을 누다

가 들켜 一八六을 꺼내어 손에 쥐고 연병장을 다섯 바퀴나 돈다. 딴 사람들

은 박수를 치고....그런 광경의 연속이다. 장교로선 보고 느낄 수 없는 광경

이다. 나는 이렇게 사병으로 오게 한 신의 섭리에 감사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체험이 한 둘이 아니다.

 

드디어 마지막 교육의 날이 밝았다. 일어나면 몸이 뒤틀리고 팔다리가 쑤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죽을 힘을 다해 의지로 일어나서 또 뛴다. 그러면 움직여지는 것이 장하다. 오늘 구보는 10km. 노얄 생각하며 끝까지 뛰었다. 오늘은 꾀병환자 도망간 놈 100명 가까이가 이 무서운 구보를 피한다.

비록 다리 힘이 약하나 노야의 남자란 신념을 가지고 달렸다. 오직 의지만이

나의 힘이다. 장거리가 되니까 자꾸 처진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서 66명 중 16등으로 골인했다. 상쾌했다. 그런데 오늘은 웬지 불길한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Tower를 뛸려니 꼭 다칠 것만 같다.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나 마지막에서 내가 하차할 수 없다. 노야의 명예를 위해. 이 생각을 애써 떨쳐 버린다.

그리고 오늘도 안전을 가져다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용감히 하네스

를 착용하고 가장 먼저 달려 올라 갔다. 아니다 다를까 하네스를 검사하니

고리가 고장이 난 것을 나도 모르고 있었다. 검사관이 보고 깜짝 놀란다. Tower에서 뛸 때 하네스가 풀리면 그야말로 빈대떡이 될 뻔 했다. 아마 생명을 건지기 힘들었으리라. 주님께 수없이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공중에 몸을 날렸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그렇게 두번 집단 낙하를 끝냈다.

모든 것을 너무도 명예스럽게 마쳤다. 항상 느끼지만 하나의 업을 마친다는

것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오후엔 공수복을 빨러 냇가로 가서 부랄을 덜렁이며서 맑은 물에 신나게 멱을 감았다. 이 기쁨! 신이 났다. 상쾌하다.

물도 용문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무척이나 맑고 시원하다.

저녁을 먹고 귀대를 한다. 다행히 우리 앰블란스가 왔다. 인사계님도 오시고

전임 중대장님도 오셨다. 인사계님은 무척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악수를 청한

. 그리고 차를 타고 가자고 하시는 것을 거절했다.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

를 거두고 싶었다.

 

3명이 타고 가고 나와 3명이 남아서 행군으로 들어갔다. 길은 멀다. 30km

이다. 돌아오는 길은 언덕길이다. 언덕 밑으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멀리

하얀 염소를 몰고가는 처녀도 보인다. 길 옆으로 열병하고 있는 코스모스는

키가 한 길이나 된다.

 

꽃이 만발한 코스모스가 바람을 희롱하는 모습이 꼭 노야의 가늘은 허리같다. 꽃을 꺾고 싶었으나 손으로 건들이면서 왔다. 노야를 보는 마음은 이 코스모스를 보는 마음과 같다. 그 터질 것 같은 사랑을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기에 난폭해 질까봐 어떨 때는 가만히 보기만 한다.

앞서 가는 전우의 머리 위에 넘어가는 해는 마치 聖畵에서 본 그런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한 전우는 꽃을 꺾어 총구에 가득히 쑤셔박고 간다.

쁘다. 오는 길에 멋쟁이 아가씨 2명 만났다. 모두들 고함을 지르고 아찔하

다고 소릴 지른다. 나도 질렀다. 노야에게 비하면 호박들이지만 그런대로

육감이 풍부하다.

해는 떨어지고 강행군은 계속이다. 몰래 수통에 넣어 온 막걸리를 얼마나 마셨던지 완전 K.O되어 버렸다. 25km는 걸었을까. 10시가 되어 다 되었다. 4시간을 계속 뛰다시피 걸으니 뒤를 따라오는 중사 한사람이 만취한 나를 지나가는 트럭에 실어주어 편히 돌아왔다. 트럭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뒤에 온 사람을 기다리다 같이 귀대하니 중대는 여전히 살벌하고

싸가지가 없는 광경이다. 기압을 주고 있는 중이었다. 기분이 상했다.

정말 오랜만에 거울을 보니 얼굴은 검게 타고 눈은 불같이 이글거린다. 그리고 11시경에 잠들다. 자다가 몇 년 만에 몽정을 했다. 젊음의 상징인

몽정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피곤하면서도 몽정을 한다는 것이 이상

하다. 아마 노얄 너무 열심히 생각해서 그런가 보다. 나의 생명 노야 나의

천사 잘자. 널 무척이나 보고싶다, 안녕.

 

96,,1975

아직도 나의시련이 끝나지 않았는가 보다. 아주 기분나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직군이 위생병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소총수로 전출을 가란다. 인사과에서 우리 인사계님과 중대장님도 걱정이시다. 어디 간들 못해 내겠느냐마는 정든 곳이라 마음이 심란하다. 아버님이 한번 와 주셨으면 좋겠다. 어떻게 되겠지. 마음이 찜찜하여 몰래 상열이를 만나 소주를 마시고 돌아 왔다. 좆같다.

인사계님에게 집으로 전화를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바보처럼 전화를 해서 집에선 무척이나 놀란 모양이다. 형님이 저녁에 올라 오셔서 안도의 숨을 쉰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급히 대신으로 가서 대구로 시외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졸도를 하셨단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노야를 위해서도 나는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송구스럽고 죄스럽다. 밤에 형님과 인사계님이 나가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여관방에 누워 있으려니 옆방에서 야릇한 교성이 난다. 이렇게 기분이 나쁘고 심란할 때에는 강열한 성욕을 느낀다. 어느 심리학자가 성교를 aggression이라 했다. 공격심이란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형님이 오셔서 4시까지 도란도란 애길하다 잠들다. 어떻게 그런대로 해결이 될 것 같다. 상열이에게도 한번 알아 보라고 부탁했다.

97,,1975

형님과 같이 지낸 하루였다. 오후 1시경 상경하고 혼자 맷말에서 낮잠을 자다. 군에서 항상 느끼지만 단조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생활의 지혜를 배워야겠다. 이것이야말로 생활의 발견이며 삶의 지혜가 될 것 같다. 밤에 노야에게 편질하고 잠들다.

 

98,,1975

노야에게서 편지 오다. 상열이에게 돈 오천원 부친 것 잘 받았다. 착하고 불쌍한 내 사랑, 모든 것이 미안하고 죄스럽다.

 

 

***내님께

혼자 사는 살림도 참 할 게 많습니다. 빨래에, 청소에, 시장 가고, 반찬 만들고. 학습지도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손도 안 대고 있습니다. 지금 난데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데 너무 가까이에서 나는 것 같아 밖에서 나는지 방에서 나는지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내님! 당신은 노야 없는 자유의 희열보다 노야 있는 속박과 구속을 택하겠노라고. 그걸 읽으며 혼돈 속에 빠져 있나이다. 과연 이 남자는 진정으로 이런 선언을 했을까?

 

수년을 곁에서 끔찍한 사랑도 받고 어떨 때는 새대가리니 책임감이 없니 구박도 받으면서 살아 와서 당신을 좀 안다 할 수 있는데 저의 판단으로는 당신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당신은 위대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한 사람이며 자유의 희열을 이미 맛 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히 당신의 그런 범주를 알 수도 없고 끼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로 인한 속박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저는 당신 곁에 있는 행복이 전부가 될 수 있지만 당신은 그리 될 수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잠시도 정지된 상태를 참을 수 없어하며 변모해 왔던 당신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도 시들지 않고 세월이 감에 더 깊어지고 더 뜨거워 지지 않았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은 지성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지혜를 갊아 왔습니다.

 

며칠 간의 바보스러움에서 벗어나 당신의 여인으로서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곳에서 보는 황혼은 무척 아름답다 하셨지요. 남한강의 그 애잔한 저녁노을이 눈에 어른거리며 행복했던 그 저녁나절이 생각나 제 가슴은 시방 벅찬 감흥에 출렁거립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197592일 노야.

 

 

***사랑하는 당신에게

두번의 편지는 잘 받아 보았습니다. 상열씨께 편지를 보냈으니 만나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 체조도 꼭꼭 합니다. 여선생들이 번갈아 가며 감기 몸살을 하는데 저는 끄떡 없습니다.

 

1학기때보다 마음과 몸이 더 피곤하니 이상합니다. 아마도 그때는 학교도 첨이고 당신에게서 소식 기다리느라 긴장을 놓지 않고 있다가 이젠 학교도 당신 문제도 자리를 잡아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봅니다.

 

당신을 보고 온지도 한달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긴 듯 하나 세월은 무척 빨리 갑니다. 벌서 한달이라니요. 요새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자꾸 집 쪽을 돌아 봅니다. 첫 휴가 와서 당신이 처마 밑에 서서 제 뒷모습을 지켜보는 게 생각나고 그때 가던 길을 돌아 오고 싶은 것처럼 지금 저는 당신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것을 이를 악물고 참고 있습니다.

 

제 영혼은 훨훨 날아 당신 곁에 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잊고 산다면 덜 괴로우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좀 초연해 지려고 도서관에 와 책을 봅니다.

 

옛날 학교 도서관으로 오겠다 해서 기다리면 그 넓은 도서관에 꽉 차 있던 학생들이 다 집에 갈 때까지도 안 오고 지치게 했지요. 여전히 도서관은 사람을 설레게 합니다. 이제는 틈이 나면 이리로 와야겠습니다.

치료계 보시는 일은 어떤지요. 군에 있으면서 책을 보려는 당신의 슬픈 싸움을 보고 있자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가면 나아질지 몸과 마음을 상할까 걱정이 됩니다. 남상사님, 중대장님도 별고 없으시겠지요.

 

상열씨 편에 드린 돈 중에서 닭을 하나 큰 놈으로 사셔서 남상사님 댁에 드리세요. 저번에 가서 사모님께 너무 신세를 졌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와서. 이만 안녕!

197598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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