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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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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후의 반항은 만인의 행동이 된다’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12-26 (토) 22:44:41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  

.

 

713, , 1975

어제 노야가 오지 않아서 마음은 놓이지만 혹 이리로 오다가 나쁜 일이나

생기지 않았는가 걱정된다. 이처럼 사랑이란 희열이면서 애타는 마음과

걱정도 따른다. 오늘은 몸 컨디션이 안 좋아 아프다고 하고 종일 잤다.

그래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밤에는 책도 볼 수 있었다.

지금 까뮈의 <반항적 인간>을 읽고 있다. 반항이란 참을 수 없는 어떤 하나

의 경계선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 안에서는 견디는 긍정을 포함한다.

또 정의하기를, 반항이란 인간의 가치 중 하나인 타인과의 동일화 속에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전인류적이라 한다. 다시 말해, 타인이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 반항할 때 이 반항은 개인을 초월한 연대성이며 따라서 인간의 연대성이란 자아를 초월한 어떤 힘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형이상학이다.

그도 헤겔과 마찬가지로 가치란 개인적 특수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 보편적

인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인간을 반항하게 하는 부조리, 그 부조리로 인해

겪는 체험 가운데 고뇌하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고뇌하고 난 후의 반항적 행동은 집단적 의식을 가지게 되고 만인의 행동이 된다. 몇 장 읽지 않았으나 까뮈가 시사하는 것은 읽을 만하다.

노야, 실컨 자고 일어나니 황혼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은 연두색, 차례로 저 멀리 파랑 보라의 산들, 그리고 그 위에 넘실되는

태양빛 구름, 핏빛보다 더 붉은 저녁노을이오. 내 손도 팔도 불타는 듯이

발갛게 되고 나뭇잎은 황혼빛에 젖어 완전히 보라요.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구려.

나는 이제 이렇게 자연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오. 그만큼 내 가슴은 기쁨에

젖어 있소. 건강하고 아름다운 당신이 이 자연 아래에 숨쉬고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은 뛴다오. 저리도 아름다운 색조의 배열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당신의 분신을 상상해 보오.

 

색깔을 바꾸어 가며 높이를 달리해가는 포개어진 겹겹의 산들, 그 위를 장

막처럼 둘러친 빨간 하늘, 기가 막히오. 노야, 정말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오. 이젠 생활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 즐거움도 생기고 있소. 지금까지

의 고통은 익숙되지 않은 생활에서 빚어진 것 같소. 이제 걱정할 필요 없소.

이곳 생활도 나의 승리로 끝이 났소.

 

까뮈를 읽으면서 헤겔의 이야기가 이해된다. 헤겔은 그리스의 정신을 아직

원숙하지 않은 청년기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까뮈는 이렇게 설명

한다. 그리스 신은 단계적 신이며 여기에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창조

전체에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수명이 제한된 제우스신에게 하는 반항이라고.

즉 그리스 신들은 절대보편으로서의 통일이 아직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

리스 신에게는 개인적인 것이 문제이지 일반적인 것은 아직 문제로 대두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반항의 역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인 악과 죽음이란 것은

예수에 의해 해결됐다는 까뮈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그의 지성에 감탄하게

한다.

인신인 예수는 악과 죽음을 떠맡고 견디어 냈다. 그래서 악과 죽음도 이젠

전적으로 교활한 신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것으로 되었다는 얘기다.

신 자신도 악과 죽음을 주어진 사실로 떠맡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예수도 죽게 되고 그래서 신약전서의 신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다.



KakaoTalk_Photo_20200508_0928_44964사제편지, 이 편지가 들켜 심문 받았다 합니다..jpg


714, , 1975

안타깝게 기다리던 노야의 편지가 와서 나의 소식을 받았다니 마음이 놓인다.

 

쇼펜하우엘의 인생 이야기, 비관적으로 인생을 그저 그런 권태와 실의의 과정으로 보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된다. 사실 죽음, 공포, 슬픔, 비애, 이 세상을 먹구름처럼 덮고 있는 숙명이라는 것은 그처럼 처참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자살은 하등의 문제 해결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삶을 비애로 보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그의 최후의 결론인 자살은 인생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논리 속에서 스스로 오류를 범한다. 차라리 인생을 비관적으로 보나 그것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사실로 간주하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도야말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 실존철학의 key가 있다.

실존철학이란 한마디로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자신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까뮈는 반항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 낭만주의 시대의 반항의 이야기. 낭만주의란 한마디로 개인을 신과 동등히 두려는 시도다. 그는 자유로이 생각하고 감정에 빠져들고 고민하고 연민하며 사랑한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은 항상 긴장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신과 동등하기 때문에낭만주의에 있어서는 니이체와

같이 신은 아직 죽은 것은 아니고 비판의 대상이다---인간은 보편 속에 모든 것을 태평스러이 맡겨놓고 유유자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낭만주의 속에선 일정한 시간이 경과되면 혼돈과 무질서와 피로가 온다. 인간은 너무 오랫동안 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낭만주의는 또 다른 주의로 전환된다.

 

이상은 나의 작은 견해다. 까뮈의 생각과 비교해 보자. 더 읽어보고 얼핏 생각나는 일이지만 절대적 부정, 반항이란 성욕에 의한 성욕의 강열한 욕구에 의해서-- 사실 이것은 너무도 강열한 욕구이다-- 이 세상은 파괴되고 전도된다는 학설도 있다.

이 학설의 대표자는 사드라는 친구이다. 그는 주위를 파괴하고 세계를 파괴

하는 것도 만족치 못하여 전 우주마저도 파괴한다. 그러나 전 우주를 파괴하더라도 파괴자인 자기자신은 남는다. 이것은 완전히 오류다.

사드란 친구는 사변에 약한 고삐 풀린 정신적 만행을 수행한다. 반항이란 행

동을 수반하며 정당한 지반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설은 오류다.

 

 

****사랑하는 당신

낮잠을 좀 자고 있는데 애인한테서 편지 왔어요하는 새댁의 고함소리에 깼습니다. 매일 하루에도 몇번씩 왜 편지가 안 와요? 하며 나보다 더 기다리

는 것 같더니 갖다주며 의기양양해 합니다. 학교로 온 것도 받았습니다.

 

주인집 큰아들은 시외버스 운전수인데 무슨 사고로 형무소에 한달간 있어야 한답니다. 새댁은 그 하소연을 시집식구들에겐 못 하고 날 붙들고는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합니다. 하도 그러길레 그럼 삼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 하니까 미안했던지 편지를 갖다주며 기뻐하고 저렇게 신이 나 합니다.

 

요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있고 잠시라도 가만있으면 착 가라

앉을 것 같아 치우고 옷도 벗어 빨고 한낮의 뙤약볕에 시장도 가고 극장 가서 국산영화도 보고 합니다

 

이렇게 더운 한낮에 시장엘 가다니 그전 같으면 굶어 죽으면 죽었지 안 가지요. 방에 가구도 이리저리 옮겨 보고. 가구라 해봤자 접었다 폈다하는 비니루 비치용 침대와 조그만 상과 책 조금 있는 거지만 방이 훨씬 커지고 반듯해 졌어요.

 

주선샘께서 사주신 NOBLE WINE은 당신이 오시는 날 딸려고 했는데 극성스

런 처녀선생들이 놀러 왔을 때 눈길이 자꾸 그리로 가길래 맛 좀 보여 준다고

따 버렸어요. 새콤하고 향기롭습니다. 밤에 자기 전에 비콤 한알 먹으면서 한 모금씩 맛 봅니다. 삼분의 일 조금 더 마셨어요. 한 병은 당신 휴가 나올 때까지 고이 간직할거예요.

 

우리 편지를 취미 고약한 분들이 슬쩍한다는 것을 어제 알았어요. 당신이 노야 보십시요 썼는 앞에 누가 못쓰는 글씨로 사랑하는을 붙였더군요.

필체야 얼른 알아보는데. , 볼려면 보라 하세요. 아랑곳하지 않을거예요.

 

밤에는 날벌레가 완전히 방을 포위해서 문을 꼭꼭 닫고 자야 해요. 모기에 물

린 눈은 다 나았는지요. 방학은 아직도 2주일이나 남았습니다. !

1975712, 당신의 노야가.

715, , 1975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뜬다. 저 강열히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나의 사상의 깊이도, 노야에 대한 사랑도, 내 의지도 강열한 태양이 되어 내 가슴속에서 꿈틀꿈틀 솟아 오른다. 온몸에 용솟음치는 피가 나를 강인하게 만든다.

 

이곳의 환자들과 중대원들은 무료해서 그런지 별것을 다 만든다. 뭐든지 만든다. 탄피를 끊어 반지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배, 인형을 만들고는 다

부수고 다시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 오후엔 비가 내린다. 신나는 공치는 날이다. 내 사랑에게서 편지도 왔다. 자기의 편지를 남이 본다는 것을 알고 무척이나 노여워하는 것 같다. 나도 기분나쁘다. 감히 내 님의 글을 남이

본다는 것이.

새벽 2시가 넘도록 까뮈를 읽고 있다. 갈수록 심오한 지성의 빛이 번득인다. 인간의 절대적 반항이란 영생도 신도 존재치 않는 것으로 정의 내리며 종결한다. 그러면 인간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며 신이 된 인간은 일체의 사실에서 해방 즉 용서받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범죄를 받아 들이는 것이 된다. 거기에는 일체의 것이 허용되어 있다. 거기에 초월적인 힘과 보편적 진리와 섭리의 부정은 필연적으로 허무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니힐리즘이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이 신을 부정할 수 있는가? 니이체의 얘기를 들어보자.

신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무용하다. 만약 신이 무엇을 바란다면

이 세상을 풍미하는 악과 추 그리고 가치를 저하시키는 원죄와 고뇌를 스스

로 떠맡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의 의지가 결여된 세계는

결코 심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니힐리즘이란 결국 신앙의 포기,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런데 니체는 일견 모순처럼 보이나 이전에 자연에 대한 절대적 긍정을 제시한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계가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순진성으로 볼 때 그것을 시인하고 집착할 때 그것은 완전한 긍정이다.

 

현상의 필연성을 절대라 보고 또 중단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으로 (목적없이) 순진성으로 볼 때 거기엔 속박이 없다. 즉 그것은 자유라는 얘기다. 과오, , 고통, 살인 등을 있는 그대로 볼 때 그것은 시인되고 용인되며 긍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니힐리즘에 대한 앞의 얘기와 배치되지 않는다.

니힐리즘이란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니이체의 결론은 세계를 긍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세계와 자기를 다시 만들고 위대한 예술가가 되어 창조자가 되는 것이라고. 니이체의 자유는 법 속에서의 자유다.

노야, 이글을 다 쓰고 나니 새벽 3, 당신과 너무 오래 얘기했소. 이젠 좀 자야겠소. 530분에 일어나야 하니 2시간 반밖에 잘 수가 없구려. 그러

나 내 가슴은 희열과 행복감으로 뛴다오. 오늘 당신에게 편지했소. 나의 지성

은 오직 당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안녕, 자러 갈려오.

Glory!

 

 

****못냄이 내님

지금 기말 시험을 감독하고 있어요. 감독은 제대로 않고, 앉아서 연애편지를

쓰는 걸 알면 교감은 어이가 없겠지요? 한 아이가 엎드리고 있어요. 저는 그애에게 다가가 잘 생각해봐 요 녀석아, 진작 공부 좀 하지 그랬니?”

 

진작진작 공부 좀 하라는 말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까짓 시험공부 조금만 더 했으면 다 써 넣었을텐데. 기억으로는 내 평생 고 3 일학기 때

한 몇 달하고, 그 다음 해 양영학원 서울대 반에서 이를 악물고. 그때는 정말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했지요. 당신은 맨날 나보고 의지가 약하다

고 꼴비기 싫어하지만 그때는 누구 못지않게 강했어요.

 

일주일에 한번 광교에 있는 아폴로 음악감상실에서 두시간 음악 듣는게 유일

한 휴식이었어요. 그 두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정말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연애는 얼마나 열심히 하나요. 가만히 생각하니 그래도

늘 한 가지 일에는 열심이었던 것 같아요.

 

(집에 와서 다시 씁니다)

또 비가 옵니다. 이제는 비가 와도 우울할 일도 없지만 빨래를 못해 걱정입니

. 마루에서 서서 보는 경치는 비가 오니 더 좋습니다.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한가운데에는 벼가 새파랗게 커가는 논이 있어요. 여기가 거창에서 가장 전망이 좋을 거예요.

 

비가 오면 산들은 구름에 잠겨 있다가 개이면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게 장관입니다. 왜 우리가 주왕산에 갔을 때 장대비가 무섭게 내린 후 이산 저산에서 신비스레 좍 피어 오르던 그 산안개말이예요. 당신이 그 비경에 놀라 입을 벌리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군인은 비가 오면 무엇을 하나요? 비가 오는 것도 상관없이 밖에서 일을 보

나요? 덥지 않아서 좋겠지만 오래 비를 맞으며 일하는 것은 나쁠 것 같은데.

 

당신은 왜 편지를 그렇게 늦게 주셨어요.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불안했는지

모를 거예요. 그리고 평범히 쓰라니,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거예요. 오고 가는 자유는 없다 할지라도 편지 쓰는 것까

지 누군가에게 간섭 당한다 생각하니 화가 나서 죽겠어요.

 

처음에는 너무 챙피하더니 좀 지나고 나니까 약이 오르고 불쾌한 생각이 들어

. 나 상관 못합니다. 나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말 다 써버릴거야. 내 마음

다 안다 하지만 뭘 알아요? 나를 지극스레 위하는 면도 있지만 얼마나 내팽개 쳐놓고 이제 그러지 않겠다는 말 어떻게 믿어요? 그런 말 수십번 하지 않았

나요. 솔직이 미운 생각이 왈칵 드네요.

 

이런 말 한다고 힘빠져 하지는 마시길. 남자는 여자의 푸념도 좀 들어야 해요. 18일은 제가 연구수업을 해요. 모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멋지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1975712,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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