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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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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15)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11-16 (월) 18:46:14

사랑하는 노야의 편지를 읽는다

 


 

KakaoTalk_Photo_20200508_0224_24808부모님 앞에서는 다 큰 자식 너무 의젓하면 소외감 느끼신다며 바보 영구맹구 같이 행동하고, 상대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합디다..jpg

 

 

 

621, , 1975

드디어 오늘이구나. 어제 밤은 오늘 있을 30kg 완전군장에 8km를 달려야 하는 구보준비로 분주했다. 새벽 330분에 일어나서 대신에서 10km쯤 되는 곳으로 구보를 하러 가야한다.

 

잠을 좀 자둬야 하는데 노야를 만날 수 있다는 흥분에 잠을 못 이루어 12시가 넘어 잠시 눈을 붙이고 3시 반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소금물도 마시고 하며 1대대 쪽으로 가다. 오전 9시경 구보가 시작되었다. 나의 인내와 체력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며 이런 훈련을 거의 매일 받고 있는 동료들의 고초도 맛보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드디어 구보시작. 노야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도 나를 정말 군인처럼 볼거다. 위장망을 둘러친 철모를 깊숙이 눌러쓰고 어깨엔 소총, 등엔 보기에도 중량감이 있는 배낭을 메고 워카를 신은 내 모습, 내가 봐도 군인같다. 뛰기 시작했다. 30분 지나니 도저히 자신이 없어지고 똑같은 포풀라가 늘어선 시골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다. 온몸은 땀으로 소나기를 맞은 것 같고 배낭도 땀이 배어 축축하다. 발이 부르튼다. 동료들은 한 둘 처지기 시작한다. 나도 처진다.

나는 고통스럽게 달리면서 몇시간 후면 만날 노얄 생각하며 쓰러지려는 나를 붙들었다. 노야에게 낙오하고 처지는 나를 보일 수 없다. 이 고통이 지나가면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노얄 만날 때 떳떳할 수 있다는 단지 그 힘만이 나를 최후까지 뛰게 했다.

 

노얄 만날 때 낙오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입술을 베어물었다. 피가 흐른다. 지쳐서 도저히 더 뛸 수가 없었다. 한번 멈추었더니 비틀비틀 쓸어질 것 같고 땅을 바로 디딜 수가 없었다. 전번에 내가 위생병으로 따라 갔을 때에 탈수증 걸린 환자와 비슷한 증상이다. 포기를 해버릴까, 포기를 해버릴까, 그럴 때마다 노얄 생각하며 죽어라고 달렸다. 그래서 낙오하지 않고 거의 선두와 같이 골인점에 들어왔다.

노야, 무척이나 기뻤다. 그리고 퍼마시는 물맛이란! 난 해내었어.

제정신은 아니였지만, 난 이긴거야. 돌아오는 길도 무척이나 멀었다. 부대로 돌아올 때는 제일 꼴찌를 유지하면서 걸었다.

꼴찌로 문입구를 통과할 때 노야가 왔나 볼려고. 그리고 남한강에 목욕갈 때도 또 돌아 올 때도 꼴찌로 왔다. 아직 노야가 올 시간이 아니란 건 알면서도. 나는 지금 몇시간 후면 만날 노야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있다.

이젠 종이도 다 되었다. 언젠가 시험질 묶으면서 이 종이를 다 쓰면 노얄 만나게 되리라고 한 예감이 적중되었다. 지금 1시 가까이 되었다. 노야는 지금 양평을 접어들고 있겠다. 그런데 오늘은 외출 외박이 금지된 날이기 때문에 약간은 마음이 쓰인다. 어제 밤 인사계님이 불러서 갔더니 대구에 전화했다고 한다. 날 면회하지 말고 자기를 면회하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고맙다. 전화 통화료 1000원 드렸다.

지금 나는 뒷산에 와 앉아서 팥죽같은 땀을 흘리고 있다. 면회를 왔는데 이리로 데리고 오겠다고 한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무 그늘에 숨어서 이 글을 쓰고있다. 불과 몇십 분이다. 그러면 만난다. 어떤 얼굴을 할까. 누구랑 왔을까. 노얀 틀림없이 거기 있을거야. 땀이 비오듯 한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니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6241975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님이 주신 이 수첩, 얼굴을 대하는 기분으로 또 차곡차곡 얘길 시작하는거다.

 

어제 노야, 아버님, 어머님이 길을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 돌아와서 울먹울먹해졌다. 노야도 울며 갔을거야.

 

4시경 귀대. 다시 옛날 생활로 돌아온다. 오니 노야, 남산동 어머님

(노야 엄마), 진미, 안명환, 영순이. 홍대위 이렇게 6통의 편지가 날 기다

리고 있어 반가왔고 밥도 역시 군대 밥이 부담 없이 먹을 수가 있다. 밤엔

왜 인지 ambulance를 타고 양평으로 가렌다.

이등병 하나가 목구멍에 빵꾸가 났다. 보기에 끔찍하다. 돌아와 달게 자는데 깨운다. 보초를 서라 한다. 빗속에 우의를 입고 총을 메고 정말 오랜 만에 보촐선다. 자불면서. 이젠 또 시작이다. 꿈 같았던 지나간 3. 노야와 아버님 어머님이 오신 그날들. 지금도 벙벙히 뭐가 뭔지 모르게 환상같은 느낌이다.

책도 주고 가셨다. 노얀 건강해졌고 어머님은 여전히 당당하시고 밝다. 노야

와의 그 굳은 약속. 나는 건강하게 씩씩하게 지내는거다. 지금부터 모든 게

다시 시작된다.

 

오전은 작업을 하다. 오후에 여주군 대대로 대민진료가 있다해서 중대장님께

부탁 여주군 강천면 갈매마을 국민학교로 왔다. 오는 길에 피곤해서 졸다가

깨어서 달리는 길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꼭 그 옛날 여행을 할 때 뒤로 돌아

앉아 달리면서 뒤로 멀어지던 풍경만 따라 보았던 그런 길이다. 양 길가의

푸라다나스가 아름드리로 자라나 나무동굴 사이를 차는 달린다.

 

싱그러운 들판 길 상쾌하다. 이곳 국민학교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어린

아동들이 여선생의 손짓에 맞춰 부르는 노래 소린 아득히 흘러 간 십여년

전의 전설같은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시킨다.

 

한국 국민은 너무나 가난하다. 치료 중 느낀 것이지만 너무도 비참하고 형

편없는 생활을 한다. 대민진료가 끝나고 반공영화 상영. 왜 인류는 이렇게

처절하게 싸움을 해야 하는가?

밤에 돌아 오면서 술을 많이 마셔서 골이 핑핑 돌고 노야가 다녀간 피로

가 풀리지 않아 몸이 노곤하다. 캄캄한 밤에 신륵사에 들렀다 왔다. 남한

강이 우측으로 넓게 흐르고 그 언덕에 절이 자리잡고 있다. 몹시 피로한 몸

으로 돌아와 12시에 잠들다. 5시에 깨워서 보초서다.

 

 

625, 1975

아침부터 졸병들의 눈초리가 기분나쁘다. 나 혼자 너무 독주를 해서 그런가 보다. 마음이 조금 언짢다. 그러나 사람은 차별이 있는 것이니까. 오전은 종일 골이 먹먹하고 더럽게 피곤하다. 불러서 쿠사리를 한다.

 

6.25행사를 잠시 하고나서 전투력 검열에 대비한 훈련을 하다. 이젠 저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며칠 동안은 사고를 포기하고 그냥 살 작정을 한다. 이젠 곧 또 대민진료를 나가야 한다. 나가면 좀 쉴 수 있겠지. 어젠 돈을 많이썼다. 2500원을 썼고 우표도 사서 돌아 왔다.

밥을 먹으면서 부모님 노야의 건강을 기도하다.

오늘은 웬지 눈을 뜨기가 싫다. 모잘 푹 눌러 쓰고 다닌다. 마음이 찜찜하다. 동료들에게 미안도 하고 쭈굴시럽다. 오후엔 대신으로 대민 진료를 따라갔다. 제일 쫄병인 내가 너무 열외가 되는 것 같아 동료 고참들에게 미안하고 눈치도 많이 보인다. 놈들도 눈총을 많이 준다.

 

이제부터 며칠은 책도 볼려고 하지 않겠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보류하겠다. 편지도 보류다. 피곤한 몸을 ambulance에서 잠으로 때우고

12시가 다 넘어 돌아왔다. 한시간 보촐 서고 잠시 눈을 부치고 기상했다.

626일 목, 1975

피로가 풀리지 않아 앉으면 존다. 인사계가 오전에 불러 치료계 일을 도와 하렌다. 치료계가 문제가 아니라 더럽게 눈치가 보이는 일이 많다. 여하튼

며칠간은 눈 찔끔 감고 견디는 거다. 그러다 또 chance 보는 거야. 쫄병이

책을 본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냥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니 서글프다.

 

힘이 들고 피곤하여 IQ100이하로 떨어진 것 같다. 멍멍하다. 세수도 며칠을

그렇게 돌아 다니다 보니 못했다. 물지게도 져보고 완전히 노가다 판이다.

내일은 전투력 검열이라고 부산하다. 밤에 졸면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3

경 불침번을 서고 잠들다.

 

627, , 1975

오전에 비상이 걸려서 완전군장을 꾸리고 있으려니 전투력 검열을 한다고 한다. 군대생활이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그냥 사는거다. 며칠간

은 사유를 포기한다. 그냥 한번 살아보자. 그러다가 기횔 쥐는거야. 낮잠을

한숨 운좋게 자서 그런지 며칠만에 처음으로 기분이 좋다. 풀이 무척이나 많

이 자랐다. 오늘 남산동 어머님께 (노야엄마) 편질 쓰다. 밤에는 기횔봐서 노야에게 편지해야지. 예쁜 나의 천사.

 

 

----노야 보오(군사편지)

잘 가셨는지 궁금하오. 긴 얘기도 못하고 못하고 쌓인 대화도 못 다 나누어

못내 섭섭하고 찜찜하오. 급하게 쓰는 글이라 할말은 다 못하겠소만

 

어제 당신 어머님이 소생에게 글월을 주셔서 오늘 답장을 올렸소. 그저 몸

건강히 근무에 충실하시고 학교 선생님들께도 말씀 잘 드려 주오. 노얀 현명한 사람이니 무엇이든지 마음에 쏙쏙 들게 하시는 분이라 잘 하리라 믿소.

 

편지 자주 주시고 많이 자시도록 하시오. 나도 시간 나는대로 노야께 편지

하겠소. 하절기에 건강 더욱 유념하시고 살도 많이 찌기를 바라오. .

628일 토 1975

지금 이 일기는 29일 새벽 5시에 쓰고있다. 28일은 너무나 혹사를 당했고

쓸 짬도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지금 먼동이 트려고 하고 새로운 날의 밝음

을 포태한 산들이 저 멀리 안개 속에서 가물거리고 있다.

보초를 서려고 나와 있다.

 

오른쪽 어깨엔 총, 머리엔 철모. 어제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녔다. 세상이 보기 싫어서였다. 모자란 퍽 편리한 물건이다. 아침부터 욕지거리를 듣고 눈치를 봐야해서 머리가 멍청해지고 완전히 백치가 되어 버린다. 하루종일

땅을 파는 작업을 한다. 그러다 잠시의 짬이 생기면 사랑하는 노야의 편질 읽는다. 읽고, 읽고 또 읽곤 한다. 흙 묻은 손이라 편지지가 새카맣게 되어 버렸다.

그 애절한 사연, 아마도 나의 일기를 읽고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다. 괜히 노야에게 일기를 주어 가슴아프게 해서 마음이 괴롭다. 노야 미안하다. 나는 예민한 놈인 때문이야. 나의 천사야 걱정할 건 하나도 없어.

 

종일 흘린 땀이 온몸에 끈적거려 저녁엔 남한강에 목욕하러 갔다. 고참이나 쫄병이나 꼭 국민학교 학생 같다. 까불고 물장구치고 한다. 이런 잠시의 즐거움이 있어 살아지나보다.

 

 

****, 불쌍한 내 남자!

내 자신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바보멍청이 백치 아다다같은 여자인지 어떻게 그런 곳에 당신을 두고 올 수 있었는지요. 정말이지 죽고 싶습니다.

 

당신이 고통 속에서 피를 말릴 때 저는 언제나 둔하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이런 한심한 제가 무슨 좋은 여자입니까. 좋은 여자입네 하고 있었던 제 자신이 미워 죽겠습니다. 그러고도 어찌 당신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 저는 지금 너무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잘 알아서 하겠지 그저 좀 힘들겠지 하고 있었습니다. 가슴을 졸이며 쓴 당신의 일기문, 깨알같은 글자는 글자가 아니라 당신의 피와 살을 깎아 바꾼 것으로 읽어 내기가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장한 내님 불쌍한 내 남자! 저는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이제야 말로 떳떳한 당신의 여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당신 홀로 그 괴롭고 고통스런 외로움 속에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나누어 마시면서 당신의 고통은 줄어들고 사라지게 될 거라는 생각에 저는 아파 죽을 것 같으면서도 또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를 완전히 가지게 되었으니 거침없이 저를 당신의 생명 당신의 천사로 불러도 됩니다. 그전에는 가짜 생명 가짜 천사였습니다.

 

저를 진짜 생명으로 만들어 주시려고 하나님은 당신을 저에게서 떼어 놓으셨나 봅니다. 당신은 그 모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겨 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날 서울로 와 당신의 부모님께서는 작은 형님을 만나 가시는 걸 보고 저는 정릉 오빠 집으로 왔습니다. 꼭 집어 어딘지 모르게 전신이 아파 들어 누워 있다가 어제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대구행 차를 탔습니다.

 

시간이 없어 주선생님께 편지만 드리고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저녁도 사 먹었습니다. 무슨 경황으로 밥을 넘길 수 있었는지 분명 보이지 않는 무슨 힘이 저의 팔을 움직이게 하고 씹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몸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그 생각만으로 악착같이 숟가락을 놀렸습니다.

 

당신을 위해 건강해지는게 제 의무이며 저는 그 의무를 즐거이 다 할 것입니다. 당신을 떠나온 지 벌써 이틀이 지났습니다. 당신을 보러 갈 날이 이틀 당겨 졌습니다.

 

눈을 뜨면 황혼을 기다리면서 힘든 생활을 기쁘게 감수하고 당신의 여인이 달려 올 날을 꼽으시며 기다려 주세요. 저는 더욱 건강해져서 당신에게 달려 가겠습니다. 다시는 무기력해지지 마세요. 울음을 참고 제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1975625일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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