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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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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14)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11-02 (월) 22:31:34

이등병생활은 논 열마지기하고도 안바꾼다는데..’

 

 

***그리운 나의 당신, 나의 사랑 내님께

혹시 당신에게서 소식 있지 않았나 대구 당신 집에 전화 신청하고 기다리며 이 글을 씁니다. 17일날 대구 가서 어제(21) 밤에 죽변으로 돌아 왔습니다.

원래는 20일날 올려고 했는데 그날 당신이 혹 집에 들리지나 않을까 사람들이 기다려 보자고 가지 말라고 붙들어서요.

 

주선생님이 말씀해 주셔서 병원에서 급성위염 진단서까지 끊어서 학교로 보내고 머물렀습니다. 몇달 만에 가 본 대구이지만 당신이 없는 곳 조금도 좋은 줄을 모르겠더이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 당신 생각만 나게 하고 미칠듯한 그리움만 불러 일으켜 정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영순 수남이 진미 할 일을 다 제쳐두고 내내 제 곁에 있어주며 그렇게도 듣고 싶던 당신 얘기만을 하는데 뭉클뭉클 뜨거워 오는 가슴속을 주체할 수 없어 22일까지 당신의 연락을 기다리려던 예정을 하루 앞당겨 떠나와 버렸습니다. 권배씨도 만나보고 아버님 어머님도 그런대로 잘 계시고 어머님은 매일 당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계십디다.

 

참으로 쓸쓸한 가슴을 안고 숙소로 돌아오니 15일자 소인이 찍힌 당신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편지를 기다리며 얼마나 원망하셨습니까.

매정스럽게 생각된다는 말씀에 저의 가슴은 찢어 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 말씀대로 멋대로 상상하고 편지를 띄우지 않았습니다.

 

매정하다는 편지 받고(11일날) 다음 날 아침에 부랴부랴 우체국에 가서 편지 8통을 등기우편으로 보내고 나서 그걸 받아 보면 마음이 풀리겠지 내 마음을 알아 주겠지 하고 마음을 겨우 가라앉치고 있는데 아이고, 어떡해! 그렇게 보낸 그 두툼한 편지가 오늘 아침에 배출이란 딱지를 붙이고 열흘을 돌아다니다 제 손에 다시 되돌아 왔군요.

 

이 심정을 무어라 표현하면 될른지. 온몸에 힘이 스르르 빠지며 그대로 주저 앉아 버릴 것 같았습니다. 문득 누군가 써 준 성경 한 귀절이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의 사슬에 얽매이지는 말라!” 하지만 이 말씀은 제겐 이미 늦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날 이렇게 내버려 두고 어디에 가 있는지요. 모두 퇴근한 뒤 날은 어두워 오고 벽시계의 추만 규칙적으로 들려 옵니다. 이대로 당신 생각만을 하며 밤새도록 꼼짝 안하고 앉아있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아까 교련선생에게 물었더니 휴가는 입대 후 6개월 있어야 하고 면회는 하시라도 된다 하니 6월 중순 경에 한번 당신께 갈까 합니다. 당신이 없는 대구는 고통스러웠습니다. 보는 사람 가는 곳마다 왜 그렇게 모두 당신 얘기 뿐인지. 그렇게도 듣고 싶은 당신 얘기를 듣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몇 일 있는 동안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전화벨 소리에 어느 때 처럼 당신이 절 불러내는 소린가 싶어 깜짝깜짝

놀라고. 모두들 줄곧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만 회상하니 나 혼자만 따돌림 받았다는 생각에 갑자기 외로워지고 당신이 그러느라 날 그처럼 기다리게만 했구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얼마나 많은 날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하고 만나서는 금방 가야 한다 했습니

. 이제는 아무에게도 당신을 빼앗기지 않을거예요. 그것을 구속이라 생각되

면 저와 차라리 이별입니다.

 

거창 학교에서는 사표낸다는 선생이 다시 출근하였다니 글렀습니다. 저는 오선생하고 밥 해먹고 있습니다. 얹혀 사는 게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님과 지금 통화했습니다. 당신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구요. 연락오면 전화주신다 하셨습니다. 어두워서 더 쓸 수가 없습니다. 이만 집에 들어가야겠습니다.

안녕!

1975522, 노야.

 

 

****내님께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제 대구에서 당신의 주소를 안 뒤 몇자 끄적거려 띄운 뒤 거창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된 것 같습니다. 죽변은 가는데 7시간 버스에 시달리다가 여기는 다해서 2시간, 아무 것도 아니군요.

아침에 거뜬히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부임 후 교장선생님께서는 서울에서 연수받으신다고 못 만났다가 오늘 아침 처음 인사했습니다. 전형적인 동양선비 타입이였습니다.

 

당신이 주선생님께 올린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운 님의 편지!”하시며 건네 주시더군요. 핑그르르 도는 눈물을 참느라 참으로 큰 인내가 필요하였습니다. 이제 열두 밤만 자면 그립고 그리운 당신의 얼굴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 해도 당신의 부대 앞에서 밤을 새며 기다릴까 합니다

 

형님께서 이등병 생활은 논 열마지기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일병이 되었으니 조금 수월해 졌는지요. 당신의 모습은 많이 변했겠지요. 얼굴은 새까맣고 몸은 빼빼 마르고 많이 대체로 못생겨졌겠지요. 그래도 제게는 이 세상 어느 미남보다도 잘났고 자랑스럽습니다.

 

방금 우체국에서 우편번호가 양평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더욱이 의무중대에 떨어졌다니, 오 하느님! 시작종이 울립니다. 이만 안녕!

197567, 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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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 1975

토요일날 8km , 완전군장에 구보가 있다고 해서 눈을 뜨자마자 예비훈련으

8km를 뛰다. 숨이 턱에 닿으나 다 뛰고나니 기분이 좋다. 낮에 또

밭을 매고 있으려니 온몸에 땀이 그렇게 날 수가 없다. 이건 정말 군인도 아니고 완전히 노무자 내지는 노예다. 몇달을 이 고생을 해야한다. 그리고 chance를 보는거다. 생각도 사고도 완전히 타는 듯한 태양에 완전 K.O패다.

이젠 노얄 만날 날도 내일로 박두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눈 주위 모기에 물린 자국이 쉬이 삭지 않는다. 노야에게 늠름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이건 스타일 뿌룬다. 그토록 자유롭고 행복한 순간들 속에서도 무형의 노스탈쟈를 그리며 반항하던 나다. 하물며 최소한의 인간적 기본권마저 박탈당한 여기서랴!

 

나는 탈출해야 한다. 노예는 발목에 쇠고랑을 찬다. 군인은 발목에 고무줄을 찬다. 이 정도의 비율로 노예와 군인의 고통을 환산하면 될까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노얀 나의 생명이다. 이제 이 종이가 다 채워지면 노야에게 밀렸던 대화를 보상받을 수 있다.

 

나의 하루하루의 얘기가 이 일기에 다 적혀 있으니까 말이다. 노야의 그 애절한 편지 사연들, 그건 피눈물맺힌 너와 나의 사랑의 대화이다. 그 사연도 함께 묶어야 한다. 노야가 즐겨 읽는다는 모 일간지의 신문소설, 우리와 비슷한 연인들의 얘기란다.

노야, 우리 서로 경쟁해 볼까? 그들과 우리 loving couple과 말이야. 그 남자 주인공의 대화와 나의 이 일기에 쓰인 얘기, 그리고 여주인공과 노야와의. 아마 우리 노야가 훨씬 순결하고 용감하고 예쁠거야. 내일 구보를 하고 들어오면 노얄 만날 수 있겠지.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영순이, 재수가 좋으면 주선생님도 뵐 수 있겠지.

내일이 기다려진다기보다 왠지 두려워지고 먼 훗날의 기약처럼 느껴진다. 왜 그런지 나의 심리를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도 지금과 같은 생활에 내가 익숙해져서 그런가. 그래선 안돼. 나는 강하다.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그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능가하는 지성과 여유를 가진 나니까. 만나야 해. 어떠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나의 천사 나의 생명을 만나야해.

 

나의 말, 재룡이에게 했던 말을 다시 되새겨 본다. 그 고통스럽던 기아와 공포를 명예로 극복하던 나, 그러나 마지막 보루인 명예조차 회의가 들던 때는 얼마나 무기력해지고 허탈해 졌던가. 그때 발견한 것이 일체 인간적인 것을 초월한 신의 말씀이었고 그 속에서 다시 나를 재발견하고 매진하게 되었다는 것을.

 

하긴 이제 수박 겉핥기일 망정 모든 류의 시험을 한번씩 거쳤다. 이것을 발판으로 도약할거야. 그리고 노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줘야 해.

 

 

***당신의 피아노독주 로망스

당신도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영화를 볼 때는 쏙 빠져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아요.

 

<금지된 장난>을 함께 보았지요. 르네 클레망이 감독한 프랑스 영화,

---독일군의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뽈레뜨는 죽은 강아지를 안고 헤매다가 근처 농가에 사는 미셀을 만난다. 미셀은 갈 데가 없는 뽈레뜨를 집으로 데려오고 둘이는 강아지를 묻어주고 십자가도 세워준다.

 

죽은 것은 땅에 묻어주어야 하고 십자가를 세워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은 새, 벌레, 죽은 동물을 모아 무덤을 다 만들어 주고 십자가를 세워준다.

 

무덤이 점점 늘어가고 십자가가 많이 필요해지자 미셀은 교회 십자가도 훔쳐서 세워주고 묘지에서 십자가를 모조리 다 뽑아온다

(그래서 '금지된 장난'이라 했나 보다)

 

그러다 남의 애까지 키울 수 없어 뽈레트를 서에 신고하고 고아원에 데려가기 위해 경찰이 오고 결국 뽈레뜨와 미셀은 헤어지게 된다. 뽈레뜨는 계속 미셀의 이름을 부르며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고 --------

 

67살이 됐을까? 여자 애와 사내애, 그 천사같던 아이들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얼마나 울었던지 영화가 끝나고 밖에 나올 수가 없을 정도로 눈이 퉁퉁 부은 나를 보고 당신도 안되었던지 에고 에고 자꾸 그랬지요.

 

주제음악 '로망스'를 늘 흥얼거렸어요. '금지된 장난의 로망스'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음악 중 하나였지요.

 

데이트 할 때는 당신 집과 우리 집에서 (5분 거리)멀리멀리 떨어진 곳으로 걸었는데 716월 어느 날 밤 웬일인지 당신은 자기 집 골목으로 나를 끌고 가서는 담벼락에 나를 딱 붙여 세워놓고는

 

"노야, 요 꼼짝말고 있어래이. 내 잠깐만 드갔다 나오께" 하더니 혼자만 쏙 들어 기더군요. 밤하늘을 올려다 보니 저 높이 달이 떠있는데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내가 늘 흥얼거리던 입에 익은 로망스 그 선율이 들려 오는게 아니겠어요!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딴딴딴……

너무 놀라서 가슴이 터지는 것 같고

또 전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하고

 

엄마야 언제 피아노는?

만날 때마다 흥미진진한 것을 몰고 오는 당신이었지만 너무 놀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하는데 당신은 어느새 와서 제 앞에 능글능글 웃으며 서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초봄에 같이 있다 한번씩 당신은 혼자 어디 가야 된다며 일찍 일어나길래 너무 아쉬워서 어디 가는데 물으면 몰라도 된다 하고 보따리 같은 걸 뒤로 감추어 흥, 치사하다! 했더니 내 몰래 피아노 배우러 다니셨군요.

 

초봄에 바이엘 기초만 대강 배우고는 로망스만 집중적으로 연습해가지고는 초여름 달빛아래 당신집 담벼락에 날 세워놓고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 피아노 연주를 해 주었어요

 

길을 가다가도 아이들이 볼 차는 걸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비호같이 날아가서 차는 바람에 순식간에 공을 뺏긴 아이들이 "에이 비겁하다 빨리 우리 공 줘요" 하며 숨넘어 가게 만들고

 

보경사 산에 갔을 때는 작은 폭포같은 웅덩이에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보다 더 날렵하게 다이빙을 멋있게 하던 당신의 모습

 

미소 지으며 당신의 그날들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1975617일 너무 행복한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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